<연재> : 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연재 17>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착한재벌샘정 2009. 7. 18. 11:17

 

 

완소남 이야기 7 - 아내와의 쇼핑 즐기기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

이 말의 뜻을 아십니까?

아내의 이 말에

“거기 옷장이 미어터지도록 있는 건 옷 아니고 뭐야?”

“옷장에 있는 저 옷들은 다 내 옷이니? 당신 옷은 하나도 없고?”

“어떻게 옷장 열 때마다 옷이 없다고 하냐? 어차피 옷이라곤 없는 옷장 열지를 말던가?”

“계절마다 사들이는 옷들 다 어떡하고 옷이 없대? 지난번에도 원피스 샀었잖어?”

그러다 한술 더 뜨면 이렇게 되죠.

“어떤 옷을 입어도 그게 그거니 아무거나 걸쳐. 호박이 줄긋는 다고 수박되느냐는 말 딱 당신 두고 하는 말이다.”

“백화점 가봐야 사이즈가 있어야지. 지난번에도 사이즈 없다고... 부끄러워죽는 줄 알았네. 어떻게 사이즈가 없어 옷을 못 사냐?”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느냐고요? 자신이 해 본 일만큼 더 잘 아는 게 있겠습니까? 결혼해서 쇼핑 때문에 싸운 적이 많았어요. 어느 날 본격적으로 폭발을 한 거죠. 조카 아들 돌잔치를 앞두고 였을 겁니다.

그날도 옷장 앞에서 옷이 없다는 말을 하기에 한 마디 했죠. 저건 옷이 아니고 뭐냐고. 그랬더니 이러는 겁니다.

“입을 옷이 없다는 거지, 입을 옷.”

“그런 이 옷들은 입을 옷이 아니고 벗을 옷들이냐? 한 번 입고 벗어서 이렇게 걸어두기만 하는 옷이냐고?“

“어떻게 이렇게 꽉 막혔는지 몰라. 아무 옷이나 어떻게 입어. 때와 장소에 맞춰 입어야지.”

“말 잘했다. 그럼 이 옷들은 왜 샀냐? 이 옷도 다 입을 때와 장소가 있어서 돈 주고 샀을 거 아냐? 당신이 연예인이야? 한 번 입은 옷은 안 입게?”

“내가 언제 한 번 입은 옷은 안 입어? 당신 말 참 이상하게 하네? 이 옷 산 지 몇 년이나 된 지 알기나 해? 재작년 내 생일에 그것도 당신이 사 준 게 아니라 언니가 선물로 사 준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 옷이라고요. 그리고 이건 언제 샀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럼 지난주에는 뭐 샀는데? 지난주에도 백화점 갔었잖아. 나 산악회 간다고 같이 쇼핑 안 간다고  입이 한 발 나와서는. 그 때는 뭐 샀는데? 당신 백화점 갔었다며.”

“그때는... 내가 말을 말자, 말을 말아.”

“거 봐 할 말 없으니까.”

“여보세요, 아저씨. 지난주에 내가 백화점 간 건 당신 여름 와이셔츠 사러 갔었거든요. 동서가 우리보다 결혼을 먼저 해서 아이가 둘이나 되는데 삼촌이 그러고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은 것도 못 사준다고 징징거리기에 예주 반바지 그리고 예빈이 티셔츠와 샌들 사러 갔었네요. 당신 조카들 꺼. 그리고 어머님 모시 속옷 사서 갔다 드렸고.”

“.....”

“당신 와이셔츠 줄무늬 맘에 안 든다고 해서 그 다음 날 바꾸러 갔었고요. 이제 기억이 생생하십니까? 나 당신하고 살면서 알만큼 알아요. 당신이 쇼핑 하는 거 싫어하는 거. 그래도 당신 자기 옷에 까탈스러우니까 당신 옷 살 때만이라도 같이 가자고 해도 그것도 싫다는 당신이잖아요. 같이 갔음 될 일을 혼자 가게 만들어서 바꾸러 다시 가게 만드는 사람이 누군데. 그날 내 옷은 사지도 않았어요. 그날 쓴 돈이 얼마인 지나 알아요? 내 옷 살 돈이 어딨다고.”

돈 이야기가 나오자 더 열이 오르더군요.

“누가 당신 옷 사지 말래? 사, 사라고! 제수씨네가 어떻게 살던 누가 당신보고 그런 거까지 신경 쓰래? 그리고 언제는 그렇게 알뜰했다고? 솔직히 당신 사고 싶은 거 안 산 적 있냐? 결국은 다 사면서 무슨 소리야?”

결혼 1년도 안되어서 쇼핑을 주제로 엄청난 대 폭발이 발생한 거죠.

나는 사람 많은 곳은 딱 질색이거든요. 게다가 휴일에 좀 쉬고 싶은데 뭔 쇼핑을 가자는 건 지. 그렇다고 꼭 사야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닐 때가 더 많아요. 어슬렁어슬렁 이 매장 저 매장 들어가 보는 걸 반나절은 하자니. 그리고 살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입어보고 물어보고 다른 색은 없느냐 사이즈 주문은 되느냐 꼭 살 것처럼 하는 지. 그러고는 빈손으로 나오면서 둘러보고 온다는 둥 생각해 보고 온다는 둥.... 뒤 꼭지가 얼마나 당기는 지 아는 지. 

하여튼 쇼핑이라면 질색이었죠. 그랬던 내가 지금은 아내와의 쇼핑이라면 군말 없이 동행하는 아주 멋진 남편이 되었답니다. 그거 솔직히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나와 같은 남편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쇼핑에만 동행을 잘 해주어도 진짜 큰 점수를 받을 수 있다니까요.

조카 돌잔치가 있은 후 산악회에서 등산을 갔는데 길이 두 사람이 같이 걸을 수 있는 아주 완만한 산길을 가게 되었어요. 앞에 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군요.

마누라도 저 할머니처럼 이런 데나 같이 올 것이지 허구 헌 날 쇼핑이나 가자고 하고... 또 혼자서 쇼핑이나 하고 있겠지, 하면서 두 사람을 따라 걷는데 얼핏 말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백화점 8층 맞죠?”

“그러게... 숨이 차기 시작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릇이 있는 층이에요.”

“나는 당신이 산 꽃무늬 그릇이 제일 맘에 들어.”

“내가 산 그릇은 대부분 꽃무늬가 있어요. 어떤 게 제일 맘에 든다고요?”

“작은 빨간 장미가 있는 거, 그거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허리를 숙여 길가에 핀 꽃을 따더니 이러는 겁니다. 그 바람에 두 분과 나, 모두 걸음을 멈춰야 했고요.

“이거 말하는 거유?”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할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그거. 이게 제일 마음에 드는데 당신은 어때?”

그러자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난 이것보다는 초록색이 더 많이 들어 간 그릇을 좋아해요. 그게 아마 어디 있을텐데...”

다시 허리를 숙이는 할머니 때문에 다시 우린 걸음을 멈춰야 했어요. 할머니께서 걸음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찾는 동안 할아버지는 나를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허리를 편 할머니가 말하더군요.

“여긴 없어요. 저 쪽으로 매장을 옮겼나 봐요. 거기로 가 봐요.”

할아버지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는 그런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하더군요. 중간쯤 올라갔을 때 갈림길이 나왔고 할머니가 가자는 길을 따라 가면서 할아버지가 그러더군요. 나중에 주차장에서 보자고. 산악회 총무에게 주차장으로 바로 간다고 하면 안다고. 산악회 회원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에서 만나 총무에게 이야기를 전했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두 분 이상하지 않더냐고 물기에 보고 들은 대로 이야기를 했더니 또 한 번 빙긋이 웃으며 이러는 겁니다.

“두 분, 저희 부모님이세요.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신데.... 아버지가 참 극진하시죠. 아버지는 늘 그러셨어요. 아버지는 저희 어릴 때에도 당신 사는 이유는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집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을 정도니까요. 내 삶의 이유는 아내 선경이의 복지를 위해서라고. 저는 그게 저희 집 가훈인줄 알았다니까요. 아버지는 모든 걸 어머니를 위해서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건강을 돌보는 것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도 자식들이게 자상하게 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아버지에게는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 귀결이 되었고 그런 이유로 참 열심히 사셨어요. 치과의사이신 아버지는 칠순이 되던 해 까지 일을 하셨어요. 아마 어머니가 편찮으시지 않았다면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실 겁니다. 두 분은 그 옛날에 연애결혼을 하셨다는데 두 분 모두 참 로맨틱하신 분이에요. 오늘은 무얼 쇼핑하시던가요?”

“네? 아... 그릇을....”

“어머니는 이상하게 치매에 걸리신 후 어디를 가든 쇼핑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 속에서 살고 계신 것 같다고. 어머니는 아주 멋쟁이셨어요. 꾸미는 것도 아주 좋아하시고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제게 있어 어머니는 늘 멋진 모습으로 기억이 되어요. 어머니가 쇼핑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아주 사치스러운 분이 아니었을까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어머니는 아주 평범한 것을 멋지게 변화시키는 마법 같은 재주가 있는 분이었어요. 아버지 수입이 적지 않았는데도 늘 재래시장이나 구제품상회를 즐겨 가시곤 했대요. 아버지도 어머니의 단골 가게를 다 알고 계시더라고요.”

“아버님께서 늘 같이?”

“그랬던 것 같아요. 솔직히 저야 다는 모르지만요. 어머니가 어디를 가도 쇼핑을 한다고 생각하시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그때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저희도 부모님과 같이 쇼핑했던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 연세에... 쇼핑 그거 쉽지 않은데....”

“맞아요. 쉽지 않죠. 아버지가 제가 결혼 할 때 그러시더군요. 쉬운 것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그건 누구나 해줄 수 있다고. 힘들고 어렵지만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그러면서 그러시더군요. 쇼핑을 가자는 말은 뭘 사달라는 말이 아니라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이라고.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 그 말씀을 잘 이해를 못했는데 아내와 같이 다녀보니 무슨 뜻인  지 알겠더라고요. 끊임없이 말하잖아요. 나는 노란색 좋은데 당신은 어때요? 이 옷은 누가 입고 나왔는데 나와 그 배우 중 누가 더 울릴 것 같아요? 나는 얼굴이 동그란데 이런 모양의 선글라스가 어울려요? 신발은 예쁜데 사이즈가 맞는 게 없어 속상해요. 맞추기는 싫단 말이에요. 신어보고 그 느낌이 좋은 걸로 사고 싶단 말이에요 등등. 쇼핑을 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아내의 취향과 생각들. 아내는 꼭 물건이 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그 중에 어떤 것이 마음에 든다  안 든다를 말하면서 자신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라는 걸 알았죠. 아내는 저와 그저 대화가 하고 싶어도 쇼핑을 가자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리저리 구경하며 다니면서는 술술 이야기가 잘 나오니까.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화두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귀걸이를 보면서 드라마 이야기를 꺼낸 것 같더니 어느 새 동창회에서 그 귀걸이를 하고 온 친구 때문에 시샘이 났던 이야기를 하고 모자를 보면서 둘이서 같이 가고 싶은 여행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신발을 신어보면서 자신의 발에 난 티눈이 얼마나 아픈지도 이야기 하고. 화장품 가격을 알려주면서 마누라에게 이런 화장품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벌어야 하는 지도 은근 압력도 넣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자신의 입맛이 딸기 맛에서 초콜릿 맛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알려주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지하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만 사도 아내는 아주 행복해 하죠. 가끔 이것저것 사는 날에는 쇼핑백 몽땅 남편에게 맡겨 두고 마치 자신이 여왕대접이라도 받는 양 기분 좋은 착각도 해보고. 결혼했어요?”

“네. 아직 1년 안됐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산다는 거 쉽지 않죠?”

“네... 뭐.... 그게....”

“아버지는 참으로 현명한 분이셨어요. 집에 가훈처럼 아내의 복지를 위해 산다는 글을 적어 놓으셨다고 했죠? 그 글을 볼 때 마다 어머니는 어땠을까요? 아주 행복했을 거예요. 남편이 오직 자신의 복지만을 위해 산다고 생각해 봐요. 아버지의 진심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아버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직장을 가진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거,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 꼭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누구나 꿈꾸는 거죠. 그걸 아버지는 어머니와 연결시켜 놓으신 거예요. 그럼으로써 당신 스스로도 열심히 하면서 만족을 느끼셨지만 어머니도 평생을 아주 행복하게 해주었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행복 하고 싶으셨고 그걸 이루는 방법을 나름대로 찾으셨다고 생각해요.”

“아, 네에~”

“결혼했다면서 이렇게 혼자 산에 오다니...”

“와이프가 산에 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부인이 산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어때요? 왜 이걸 좋아하지 않나 싶죠? 좋은 공기마시면서 멋진 경치 구경하며 땀 좌악 빼고 나면 얼마나 상쾌한데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제 말이 그 말.... 남편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같이 좀...”

“부인은 그렇게 생각할 걸요. 땀 뻘뻘 흘리며 산에 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이걸 왜 못한다는 거야? 기껏 해 봐야 10층 정도인데 여기서 한나절 걷는 거 산에 오르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얼마나 편하고 좋아. 이런 거 저런 거 다 그만두고 딱 한 가지 마누라가 이렇게 좋아하고 원하는데 같이 좀 해주면 안 되나.”

“......”

“매주 일요일 마다 가자는 것도 아니고 갈 때마다 카드를 좍좍 긋는 것도 아닌데. 그저 같이 좀 다니자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나? 가방 들고 쇼핑백 드는 거, 배낭 매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산악회가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도 하루 종일 그렇게 잘 어울리면서 백화점 매장 아가씨 보는 데서는 왜 그렇게 뚱하게 불어터져 폭발하기 직전의 얼굴을 하는 건지.”

“.....”

“어때요? 산악회 따라 산에 오는 것과 아내와 같이 쇼핑을 가는 거. 그 둘이 그렇게 차이가 없죠? 둘 다 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 모두 기꺼이 같이 할 수 있는 것 일 텐데도 서로의 것만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실 우리는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하도 돌아다녀서, 그래요 익숙해서 그게 그렇게 힘든 줄 모르겠던데 친구들은 다들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관심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면 같이 해보면서 관심을 가지고 익숙해지면 되지 않을까합니다. 산에 오는 것도 마찬가지 일 테구요.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어머니가 그 많은 순간들 중에 아버지와 같이 쇼핑했던 그 시절을 가장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결혼해서 살면서 여자들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진대요. 결혼이라는 것이 한 남자와만 사는 게 아니라 여자와 거대한 한 집단이 살게 되는 거라고. 그 속에서 자꾸만 작아지고 없어지는 자신을 남편과 같이 보내는 시간,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풀어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어머니에게는 그 때였던 것 같다고. 비록 손에 들고 오는 것은 남편과 아이들의 옷가지와 반찬거리뿐일지언정 그 시간 속에는 여자인 어머니가 있었던 것 같다고. 간혹 남편의 당신에게 어울리는데, 그거 입으니 멋져 보여, 라는 한 마디에 어머니는 그 어떤 존재도 아닌 아버지를 사랑하는 한 여인으로서 행복했을 거라고.”

노부부를 주차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몇 개의 비닐이 들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할머니가 꺾었을 가지가지의 꽃들이 들어있었어요.

“여보, 그릇 깨지지 않게 잘 들어요.”

“알았어요. 걱정 하지 말아요. 내가 기운이 얼마나 센데. 당신이 고른 그릇 고이고이 잘 들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쇼핑은 재미있었소?”

“네 마음에 쏙 드는 그릇을 살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근데 내일 다시 한 번 와야겠어요.”

“왜요? 사고 싶은데 없는 게 있었소?”

“아니요. 당신하고 마시던 커피요. 여기 지하의 커피가 유난히 맛있다고 당신이 그랬잖아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 못 마셨단 말이에요. 그러니 내일 다시 와요.”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여 오는 게 보였습니다.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침을 꿀꺽 삼킨 뒤 할아버지가 대답하더군요.

“그럽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지 않소. 당신하고 같이 마시는. 내일 다시 와서 꼬옥.... 꼭 같이 마십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분은 그날 산 그릇들을 꺼내보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그런 두 분을 바라보면서 어찌 생각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얼마 전 큰 아이가 브래지어를 할 때가 되었다고 첫 아이의 첫 속옷이니 가족이 다 같이 가자고 해서... 아이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면 인터뷰 할 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