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잘 보내셨어요? 먼 길 오가시는 분들은 힘드셨죠?
인천 사는 막내 동생 부부는 대구까지 13시간이나 걸렸다고 하더군요. 결혼 해 처음 맞는 귀성 행렬이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기차를 타고 올 예정이었는데 동생이 정형외과를 하고 있는데 그 병원의 특성상 응급환자가 생기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에요. 기차를 놓쳐 할 수 없이 차를 가지고 오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귀향길 지루하고 힘들다고 해도 나와 직접 연관 있는 사람 없으니 크게 귀에 들어오지 않더니.... ‘한 다리가 천리’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더군요.
이번 설에는 유난히 마음에 남는 일이 있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올해 구순이 되셨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남편과 찍은 사진에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참 고우시답니다. 그 어머니께서 저를 감동시키시더군요.
2월에 집안에 혼사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시누가 네 분 계시는데 큰시누 막내아들이 장가를 간다고.
“큰 애가 와서 그러잖어. 어메(어머니의 사투리^^), 우리 막내 장가가요. 내 어찌나 기쁘던지. 그러면서 그러잖어. 근데 어메, 색시가 좀....”
무슨 일인가 살짝 긴장이 되는 거예요.
“너거 시누하는 말이 어메, 색시가 다리를 살짝 절어요, 하는 거야.”
사실 저는 조금 당황했어요. 그런 저를 보고 어머니께서 이러는 겁니다.
“내가 그랬다. 괜찮다. 다리 조금 저는 게 문제될 건 없다, 하고.”
저는 솔직히 어머니의 그 말씀에 깜짝 놀랐어요. 연세가 구순이신 어머니께서 어떻게, 싶은 것이.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지셨습니다.
“그래도 너거 시누는 조금 그런 눈치더구나. 그래서 내가 그랬지. 사람 몸이 조금 그런 거야 아무 문제 될 거 없다. 그럼 다리 저는 사람은 평생 결혼도 못한단 말이가? 우리야 그런 자슥없어 그렇지만 그 집 부모 생각해봐라. 그 자식 키우면서 얼마나 애닯았겠노. 그런데 그런 거 때문에 결혼도 못한다믄.... 다리를 전다고 부모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테고 아이를 못 낳는 것도 아닐 텐데... 그냥 보기 조금 그렇다는 것뿐인데. 그거야 너거 자슥이 괜찮다 생각했으니 결혼할라 했을 테고. 그라마 됐지 뭐가 문제고? 니가 그럴 건 없다, 하고 말이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답니다. 살아오신 세월의 연륜에서 오는 따뜻함과 너그러움일까요?
어머니는 그러시더군요.
“안 그렇나? 다리를 조금 저는 것보다 못한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데... 마음을 저는 놈도 많을 테고. 그런 건 눈에 안보이니까 괜찮다 넘어가지만 그게 더 무서운 거여. 다리 저는 거, 내 아직 보지는 못했다만은 그건 우리만 괜찮다 봐주면 되는 거야. 불편해도 지가 더 불편하고 속상해도 지가 더 속상하제. 우린 그냥 우리 손주 짝이다 이쁘게만 봐주면 그만 인 게야. 너거 시누도 다 욕심인거야. 자기 아들은 다리 저는 것보다 더 못한 게 있을 지 어떻게 아냐? 그 놈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세상없이 착한 놈이라는 거 내 안다. 그러니까 그런 색시도 이쁘다 장가 갈려는 걸 테고. 내 말은 내 자슥 흠은 못보고 남의 자슥 흠만 보면 안 된다는 거제.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한 게 얼마나 많은지 갸는 칠십이 되도록 모른단 말인지, 내 답답해서리. 욕심을 쫌만 버리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갑더라.”
칠십의 딸을 걱정하시는 구순의 노모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동생 부부 생각이 나더군요. 그냥 멀리서 고향오는 사람들 힘들겠구나, 별 감정 없이 생각하던 것도 동생 부부가 그렇게 힘들게 왔다니 바로 내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남의 일이라면 어쩌면 다리 조금 저는 것쯤이야 어때요?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장 내 조카의 일이다 싶고 우리 가족이 될 사람이다 싶으면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저인데.
어머니는 그런 저에게 감동과 삶의 지혜를 세뱃돈 주셨답니다. 올해 받은 세뱃돈은 두고두고 저의 마음에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의 ‘우리만 괜찮다 봐주면 되는 거야.’라던 말씀. 우리 마음에 그 사람을 따뜻이 안을 수만 있다면 된다는 그 말씀이 지금도 저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어머니는 저희에게 알려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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