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대학가서는 수석 해, 알았지?

착한재벌샘정 2008. 1. 26. 09:46

누구 집 아이가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갔는지 궁금하지는 한데 그 쪽 사정을 알 수가 없으니 물을 수도 없고.... 저도 작년 이 맘 때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먼저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섣불리 물을 수도 없고.... 맞죠?^^

 

어제 저녁 예슬이의 합격 소식을 부산에서 들었습니다. 어제 저는 독서치료를 함께 했던 저희 학교 이쁜 아가씨들 열명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거든요. 같이 해온 두 분 선생님들과 열세명이 떠난 부산 여행은 참 좋았습니다. 작년 12월 26일 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한 뒤 지난 주 수요일인 1월 16일에 저희 집에서 마지막 수업이 있었습니다. 맛있는 요리도 해서 먹고 오세암이라는 책으로 독서활동을 하면서 약 3시간 반 정도 함께 했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아쉬워했고 내년에도 만약 제가 이 학교에 있게 된다면 꼭 계속하자는 약속을 하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열세명이 함께 여행을 다녀왔지요. KTX를 타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에 자동차 대신 기차 여행을 했는데 정말 너무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그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예슬이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아이의 몹시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오자 무슨 일이 생겼나 순간 덜컥 겁이 났습니다. 평소 허둥대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침착한 아이인지라.... 합격자 발표는 28일이라고 했고 일찍 나야 일요일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쪽으로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저 합격했어요. 합격. 디자인 학부에 합격했다고요.”

순간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시 가만히 있었습니다.

“합격했다니까요? 들려요? 디자인 학부에 합격했다고요.”

예슬이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 하던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세대학 디자인학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답니다.

세 곳에 원서를 냈었어요. 연세대학 디자인학부와 인문과학부, 그리고 서경대학 패션디자인과.

디자인과 영문학을 두고 많이 망설이다가.... 결국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발표를 기다리던 아이.... 친구들의 재수할거라는 소식이 연달아 오자 더더욱 불안해하면서 여드름도 아닌 것이 온 얼굴을 뒤덮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더군요.

 “왜 그렇게 불안해해. 엄마가 말했지. 합격할거야. 봐봐 어머니 폰. 하트가 일부러 갖다 놓을래도 힘들정도로 딱 머리 위에 가 있잖아. 좋은 징조야. 마치 승리의 월계관을 쓴 거 같지 않니? 믿어 봐. 너의 믿음이 중요해.”

 

 

원서 쓰고 난 뒤 예슬이가 가장 바라는 곳을 휴대전화 화면문구로 적어 놓았어요. 어느 날 문득 바탕 화면 사진을 이리저리 바꾸다 보니 위의 사진과 같이 하트가 그림속의 사람 머리 위에 딱 가는 게 있더군요. 그런 마음 이해하실겁니다. 뭐든 좋은 쪽으로 연결하고 싶은.... 사실 별거 아니지만 예슬이가 불안해 할 때마다 휴대전화를 열어 보이곤 했었답니다. 꼭 합격할 거라고. 13명 모집인원에 수능 우선 선발로 7명을 뽑고 나니 남은 자리는 여섯. 수능 성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아 우선선발로는 사실 기대를 많이 하지도 않았지만 1월 초에 결과를 보고 난 후로는 더 힘들어하더군요. 수시에서 떨어지고 우선선발에도 떨어지고 나니 상심이 컸던 모양이에요. 저도 솔직히 남은 숫자가 여섯명이라는 것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게 사실이고요.

그래도 늘어져 있으면 안 된다며 아침 6시에 일어나 영어방송 틀어놓고 요가로 하루를 시작해 매주 월요일은 점자도서관에 녹음봉사, 나머지 날들은 2월 말에 있을 토익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스스로를 조절하면서 왔답니다. 그리고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것은 3월 2일에 있을 디자인 대회준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입시 공부를 할 때보다 더 오래 앉아 있어서인 지 엉덩이에 종기가 다 났지 뭡니까. 그 사이 읽으라고 슬쩍슬쩍 권하는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그 중 한 권을 소개할게요.


 (사진은 인터넷 교보에서 가져왔습니다)


아이리버를 디자인한 김영세씨의 이 책은 예슬이에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스스로를 조절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그것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아이를 많이 힘들게 했겠지요.

“수능 디데이 30일보다 플러스 30일이 더 힘들어요.”

라는 아이의 한 마디가 그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기회를 얻은 예슬이에게 축하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대학가서는 수석 해, 알았지? 그동안 어머니가 너에게 1등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 물론 너 키우면서 너를 늘 1등박사라 불렀지만 그건 학교 성적을 이야기 하는 1등은 아니었어. 이제부터 진짜 1등을 해야 할, 그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수석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 일에서 만큼은 최고가 되어야 해. 누구하고 비교를 해서 최고가 아닌 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최고가. 살아보니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어렵더구나. 남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자신은.... 무슨 뜻인지 알지? 너 디자인 대회 준비하다가 그렇게 열심히 한 거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잖아. 왜 그랬어? 우리 모두 끝내주는 작품들이라고 했건만 너는 아니라고 했지?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바로 너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거야. 니가 니 스스로에게... 그래 됐어, 수고했어,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 공부는 이제부터야. 죽을 각오로 공부.... 해 봤잖아? 대학가서는 그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할 거야.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으니 부모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공부해야겠지. 가장 좋은 것은 네가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저의 이야기를 들은 예슬이는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디자인 대회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예슬이입니다. 얼마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지 사진 한 장 찍어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다고 했더니 세수도 안 한 추한(?) 모습은 도저히 공개를 못하겠다고 하네요.^^

 

언니가 대학 합격했다는 소식에 정빈이가 가장(?)좋아합니다. ‘언니 없는 세상에’ 살아 보는 것이 정빈 이 소원 중에 하나거든요.ㅎㅎㅎ(아이, 어머니 이걸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면 안되죠, 아잉! 하고 옆에서 이 글 쓰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정빈이가 한 마디 하네요.)  이제 언니가 대학을 가면 언니가 쓰던 큰 방과 퀸 사이즈의 큰 침대도 자기 차지가 될 거라고 너무 좋아합니다.  

정빈이가 은근히 언니에게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드디어 175㎝가 된 언니의 큰 키와 공부부분에서요. 정빈이는 뒹굴뒹굴거리면서 놀아가면서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라서 영어 단어도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입으로 외우지 진득히 앉아 공부를 하거나 연습장에 써가면서 외우지를 못해요. 그런 정빈이다 보니 책상 앞에 앉아 꼼짝 안하고 공부하는 언니가 괜히 무서워 보인다고 까지 하거든요. 게다가 수시에 떨어졌다는 소식에 ‘언니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도 대학에 떨어지면 나처럼 공부 많이 안 하는 아이는 어떡해요?’하며 걱정을 하기도 했었던 정빈인지라 무척 좋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1학년 말까지 참으로 많은 곳을 돌아 돌아 온 예슬이였습니다. 그리고 찾은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 온 시간들이었고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아이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진짜 죽을 만큼 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기대하는 것만큼 안 나오면.... 목매달아 죽을 거예요.”

그 말을 듣던 순간의 서늘함에 지금도 저절로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진짜 죽겠구나, 하는. 1년 공부해서..... 아직은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아웃풋이 안 될 때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도와줄까 많은 고민을 했지요. 그리고 결과는 제가 예상한 대로 아이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고요. 그런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었습니다. 보충수업을 해야 한다는 학교에 간곡한 편지를 써서 지금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 지, 가족을 통해 다시 기운을 낼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좀 달라고. 기억하시죠? 재작년 12월, 결혼기념일에 예슬이가 저희 부부에게 커플티를 선물해 주어 여행 내내 그 옷을 입었었다던 이야기.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거라 생각했고 그 여행에서 삶에 대한 용기를 다시 얻어 돌아 온 아이는 처음으로 사탐학원에 등록했고 난생처음 엄마로 하여금 한밤중에 학원 실어 나르는 경험도 하게 해주었지요. 아이는 고3, 1년을 참으로 열심히 살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수시에서 불합격과 수능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로 힘들어하는 시간을 보내야했어요. 이제 자신이 가장 원하던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어 그 기대로 가슴이 벅차다는 아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 온 저희 예슬이의 합격을 축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