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건강하시고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새해에 어떤 계획들을 세우셨는지요?
저는 올 해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하자는 정도로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래 사진을 봐주세요. 저희 집 거실에 있는 칠판에 적힌 내용을 한 번 봐 주세요.
글씨로 봐서는 정빈이가 쓴 것이라는 것은 금방 알겠는데…, 미스코리아라니? 누가? 정빈이가? 싶으시죠?
정빈이가 쓴 것은 맞는데 미스코리아, 그것도 진이 되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저랍니다.
“어머니, 저의 새해 소망은 어머니가 살 빼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는 거예요. 근데 1등을 뭐라고 하죠?”
“진.”
“미스코리아 진이 되는 거예요. 아셨죠?”
이게 무슨 날 벼락이란 말입니까? 미스코리아 진이라니?
친구들에게 이 날벼락을 이야기 했더니 다들 이러더군요.
“미스코리아에는 아줌마는 못나간다면 이해할거야. 아가씨들만 나갈 수 있다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정빈이는 엄마가 ‘아가씨’인 줄 알고 있으니….
정빈이의 아줌마와 아가씨의 구분 기준은 머리길이랍니다. 긴 생머리를 하고 있으면 아가씨라는 거지요. 슈퍼 같은 곳에서 누가 저를 보고 ‘아줌마 어쩌고’이러면 발끈해서 이러지요.
“저희 어머니 아줌마 아니에요. 아가씨에요.”
남편이 엄마는 결혼을 했으니 아줌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아버지는 아저씨이지만 어머니는 아가씨에요.”라고 빡빡 우긴답니다. 머리 자르러 미장원 간다는 말에 기겁(?)을 하며 제게로 달려와 이러지요.
“어머니 아줌마 되고 싶으세요? 절대로 자르면 안돼요. 절대로. 어머니는 아가씨로 있어야 된단 말이에요.”
정빈이에게 있어 저는 ‘절대미인’입니다. 남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정빈이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지요. 정빈이의 말 중 가장 압권을 소개합니다.
“너무 예뻐요. 너무 예뻐. 어머니는 정말 예뻐요.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이 전부 어머니보다 얼굴이 작아요? 어머니처럼 예쁘려면 어머니처럼 얼굴이 이렇게 커야하는데, 그죠?”
제가 ‘큰 바위 얼굴’인건 다들 다시죠?
이 말을 들은 남편, 몹시 민망해하며 이러더군요.
“밖에 가서는 절대 그런 말 하지 마.”
그러면서 절보고는
“좋겠네. 어쩌면 딸에게 그런 소리까지 듣냐? 좋겠어. 아가씨라고 하질 않나, 게다가 절대미인이라니.”
유난히 얼굴이 작은 정빈이는 엄마만한 얼굴이 되려면 자기 얼굴 네 개, 아니 여섯 개는 붙여야 되겠다며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마누라 얼굴 큰 것이 늘 마음 한구석 걸리(?)는 남편은 정빈이의 그 말에 거의 기절을 할 뻔했구요.
정빈이는 몽실♬몽실♬한 저의 통통(?)함을 무지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대단한 결심을 한 모양이에요. 방학하자마자 언니와 함께 둘이서 서울 이모 집에 놀러 가 있는데 매일 전화를 해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 줄었는지를 꼬박 꼬박 점검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밥은 꼭 먹으셔야해요. 밥은 많이 먹고 열심히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 건강하대요. 아셨죠? 1킬로그램 정도는 빠졌어요?”
“아니, 한 100그램 정도.”
“그게 얼마큼 되는데요?”
“으음~~, 달걀 2개 정도.”
“그래요? 그럼 많이 빠진 거네요. 혹시 제가 서울 있어 안 보인다고 빠지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죠?”
“진짜야.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니까.”
“집에 가서 확인해보면 알겠지요. 운동 꼭 하고 자세요.”
저와 남편, 정빈이의 살찐 정도를 정빈이는 이렇게 표현을 한답니다.
“어머니 살로는 이불 하나와 베개를 만들 수 있고, 아버지는 베개 두 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정빈이는?”
“저요? 저는 으음~~~ 손수건 한 장 정도.”
정빈이가 엄마가 미스코리아진이 되었으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빈이 반 친구 엄마 중에 진짜 미스코리아가 있는데 아마 그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 반에 ◆◆이 엄마는 미스코리아래요.”
“그래? 무지 예쁘겠네.”
“어머니는 왜 안나갔어요?”
“어딜?”
“미스코리아요?”
“(허걱!!!)그 때 많이 바빠서… 바빠서 못 나갔지. 엄마가 늘 많이 바쁘잖니.”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저는 정빈이의 날벼락과도 같은 새해소망 덕분에 연초부터 팔자에 없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갈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 엄마가 너무 좋아, 그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친구의 진짜 미스코리아 엄마보다 훨씬 이뻐 보인다는 정빈이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정빈이가 새해에는 열 살이 됩니다. ‘1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가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그렇지가 안네요. 물론 태어나 꽉 찬 십년을 산 것은 아니지만 열 살이 된다고 생각하니 작년 아홉 살이 되던 이맘때와는 조금 다른, 뭔가……. 혼자서 괜시리 뭉클해지곤 합니다. 밤잠을 설칠 정도로요.
제게는 <기적>과 <사랑>, 그리고 <겸손>과 <감사>를 알게 해 준 아이니까요.
그저 보고만 있어도, 아니 생각만 해도 고맙고 감사한 아이거든요.
언젠가는 정빈이가 엄마가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라는 것을 인정하며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겠지요. 그 때까지 저는 정빈이의 ‘절대미인’으로서 미스코리아 진이 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자아자 파이팅!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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