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들

고마움을 전하며 쓴 편지(2004년 12월 18일)

착한재벌샘정 2004. 12. 18. 12:57

<…학업에 대한 열의가 있는 학생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학습 자질이 부족한 학생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들은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거나 미리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학생들은 도무지 참여하지 않고 관심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강의에 대한 열정을 잃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닙니까?>

 

어제 선생님이 읽은 조벽교수의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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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책은 이렇게 시작을 하더구나. 첫 페이지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강의에 대한 열정을 잃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닙니까?’라는 대목이 바로 어제 밤 선생님의 심정이었거든. 꼭 그 심정이었어.

 

우리 공주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다른 반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낸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하지 않은 조가 있었단다.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고 왜 이렇게 하는 지를 선생님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건만 끝끝내 빈손으로 과학실에 와 있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참 많이 화가 났어. 그래서 6교시 수업 후에 남아서 하고 가라고 했는데 그 말마저도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아이들이 있었단다. 그 때부터 선생님의 심정이 꼭 그랬어. ‘강의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이런 아이들과 더 이상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밤새 뒤척이며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더구나. 아침이 되어도. 그래서 갑자기 출근 준비를 하다가 바느질을 했었다. 검은 색 숄에 목도리로 쓰던 토끼털을 달아서 근사하게 만들고 싶었어.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이영미, 기운 내.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 이쁜 거 입고 용기를 내서 학교로 가는 거야. 가버린 아이들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그래도 더 많잖아.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거는 거야.’하며 선생님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싶어서. 바쁜 출근길이라 마음이 급해 어찌나 바늘에 많이 찔렸는지 왼쪽 엄지손가락에는 지금도 손톱 밑으로 스며든 피가 남아 있을 정도란다. 그렇게 오늘 학교로 오는 길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역시 우리 9반 공주들이야. 선생님이 이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우리 공주들이 선생님에게 너무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야. 그게 너무 고마워서.

 

2교시에 우리 공주들이 보여 준 모습에 선생님은 눈에 눈물이 나서 혼났어. 과학실로 가는데 보건실 선생님이 우리 반 공주들이 과학 과제 때문에 보건실 컴퓨터까지 빌려 열심이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도 ‘열심히 하는 조도 있군.’ 정도였는데 각 조에서 준비한 자료 파일들을 여는 순간, 그리고 발표를 위해 준비하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의 심장은 정말 터질 것만 같았단다.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어. 물론 다른 반에도 열심히 해준 조들도 있지만 오늘 우리 9반이 보여준 모습은 정말…. 선생님이 알고 있는 단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구나.

 

공주들, 고마워. 너희들의 그 열정적인 모습이 선생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공주들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정말 고마웠어.

 

우리 공주들의 그런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더구나. 그래서 더 고마웠어. 너희들이 희망이야. 그러기에 선생님은 ‘강의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게’ 되었단다. 선생님도 더 열심히 할게. 오늘 우리 공주들이 보여 준 모습, 3학년이 되어서도 그리고 대학을 가거나 취업을 한 다음에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선생님도 너희들에게서 본 희망을 가슴에 담고 열심히 할게. 사랑해 공주들.

 

2004년 12월 18일 선생님이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