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키가 크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자르지 않겠다던 머리카락도 단발로 싹둑 잘랐답니다. 몸도 마음도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건지.... 감으라고 감으라고 부탁을 해도 자기 고집대로 하던 머리도 요즘은 제가 도리어 말릴 정도로 자주 감고 있으니.....
그러다 보니 엄마인 제가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되네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월요일 과학 수업 준비물이 금붕어 두 마리인지라 남편과 함께 가서 사 왔더군요.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정빈이는 좋아서 입이 함지박만해져 왔더군요. 실험하고 난 뒤 집에서 기르면 되니 너무 좋다는 겁니다.
“물고기 숨 쉴 수 있게 비닐 열어 두어야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잠깐 만요. 그릇을 어떤걸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금붕어들을 담을 그릇을 찾느라 분주한 정빈이이게 저와 남편이 같이 말했습니다.
“내일 학교 가져 갈거니까 그냥 비닐째로 적당한 통에 담아 두면 되잖아. 위에 묶인 입구만 풀고.”
“저는 그렇게 하기 싫어요. 통에 부을 거예요.”
“통에 붓기는 왜? 통 버더렵혀지고 내일 학교 가져 가기도 힘들고.”
“어차피 학교 가서도 통에 담아둬야 하니까 지금 통에..”
“학교에 가면 과학실에 수조 있을 거니까 그냥 비닐에...”
“과학실에서 수업 안하고 교실에서 한단 말이에요.”
“그래도...”
하며 남편이 장난감 통에 비닐에 든 상태로 넣고 졸라 맨 입구를 풀고 있는데 정빈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이러는 겁니다.
“제 마음대로 하게 그냥 좀 두세요. 제가 뭔 어린앤줄 아세요?”
그러더니 물고기가 든 통을 거칠게 들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쾅! 하고 닫는 겁니다. 평소에는 방문 그렇게 닫으면 꼭 열고 들어가, 만약 잠그었다면 열쇠로 열고 들어가서라도 그런 행동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저였지만 오늘은 그저 닫힌 방문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제가 뭔 어린앤줄 아느냐고? 그럼, 지가 어린애 아니고 어른이야?’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되던 것이 슬슬 시간이 지나자
‘맞아. 열 두 살에 나는.... 그랬었지. 나는 지금의 정빈이 보다 훨씬 더 앞에 저랬었는데....’
5시쯤 그런 일이 있고 약간 늦은 저녁을 먹는 7시가 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정빈이가 하는 것만 바라 보았습니다. 자신이 많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유난히 거칠게 여닫는 방문과 쿵쾅거리는 걸음걸이. 찾고 있던 물건을 집을 때도 휙하는 소리가 나도록.....
정빈이의 모든 것에서
‘나 정말 화났단 말이에요. 나도 컸으니 그냥 좀 내버려 둬요.’
하는 메시지가 전해져 오더군요. 저보다 약간 눈치가 없는 남편은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어냐는 듯이
‘정빈아’를 외쳐댔지만 정빈이는 끝내 대답도 안하는 겁니다. 급기야 남편 하는 말
“쟤, 왜저래?”
빙긋이 웃으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크느라고 그러는 거예요. 이쁘잖아요. 쑥쑥 자라는 것이.”
저녁 상을 다 차리자 남편은 정빈이 방으로 가 밥을 먹자고 했지만 그 때까지 퉁퉁 부어 있던 정빈이는 침대에 드러 누워 일어나지도 않고 배도 안고프다고 하면서 밥 안 먹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남편의 애간장을 다 태우는 겁니다.
남편을 식탁으로 보내고 난 뒤 누워 있는 정빈이 곁에 앉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상했나 보네. 어머니가 정빈이에게 아기처럼 해서 많이 속상했나 보네. 미안해. 엄마라는 사람들은 그런가봐. 자꾸만 도와주고 싶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 주고 싶고. 정빈이는 정말 이제 많이 커서 그런 것쯤은 혼자서도 다 알아서 잘 하는데 말이야, 그지? 왜 그랬을까? 참나. 정빈이 화나게, 그지? 너무 맘 상해하지 말고 일어나 같이 밥 먹자. 정빈이가 크는 것처럼 빨리는 안되겠지만 어머니도 정빈이가 어려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노력할게. 키가 쑥쑥 크는 것에 정신이 팔려 마음도 그만큼, 아니 키보다 더 쑤욱~~~ 자랐다는 걸 어머니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미안. 얼른 일어나. 어머니가 일으켜 줄까? 허걱! 또 이런다 그지? 혼자서도 잘 일어날 수 있는데 말이야. 참나, 왜 자꾸 이러는 지 몰라. 반성하세요, 이영미 어머니.”
이러는 저를 조금 멋쩍은 듯 바라보던 정빈이는 벌떡 일어나 손 씻으러 가더군요.
예슬이와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이제부터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의 사춘기 시절을 옆에서 같이 지나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일기에 그렇게 썼습니다.
‘정빈이와의 시간들이 자주 삐걱인다.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 참으로 중요한 시간일 줄 아니까...’
사춘기를 시작하는 정빈이. 괜시리 제 가슴이 마구 떨리는 건 왜 일까요? 이렇게 조금씩 커가는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이쁜 거 있죠? 정빈이가 사춘기를 잘 지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늦은 밤까지 잠을 설치고 있는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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