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난 참 복도 많아

착한재벌샘정 2004. 6. 17. 12:23

지난 주 제주도 여행을 다녀 온 후 밀려오는(?) 인터뷰와 화요일 텔레북 녹화까지 있다보니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요리로 만나는 과학교과서>에 보여 준 관심이 너무 뜨거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교사로서 소홀하지 않을까에 대해서는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감히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책, 방송, 신문 칼럼 등등 그 어떤 것 보다 저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작가 이영미도 방송인 이영미도 아닌 <선생 이영미>이니까요.


사실 며칠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어제는 급기야 퇴근해 드러누웠으니까요. 자상하기 이를데없는 남편, 제가 많이 힘들거라는 것을 알고 김천에서 올라와 주었습니다. 예쁜 목걸이까지 선물로 주었어요.  

참, 청국장 냄새가 물씬 나는 가루까지 사 왔더군요. 일이 많아 건강 해칠지 모르니 우유에 타서 먹으라고요. 하지만 그 어떤 것 보다 남편이 집에 있으니 마음 푸욱 놓고 쉴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남편은 낮잠까지 잔 정빈이와 놀아주느라 12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다더군요.

 

오늘 아침 남편을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고 집으로 오니 6시 30분.

남편이 아주 좋다더라며 권한 반신욕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예슬이와 제가 함께 열광하는 노래가 ‘휘성’의 노래들인데 목욕탕에서 들으니 더 좋은 것 같더군요. 9월에 신곡이 나오고 콘서트를 하게 되면 둘이 함께 가자고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정신없이 보낸 며칠로 인해 몇 시간 만끽하는 여유와 휴식의 가치를 절감했다고나 할까요?

‘이야, 난 참 복도 많아. 일찍 출근하는 남편 덕에 이렇게 아침에 반신욕에 휘성 노래까지 감상할 수 있다니.’

혼자 어찌나 흐뭇하고 행복하던지요.


얼마 전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선생님 그 말 참 자주 하는 거 아세요?”

“무슨 말요?”

“금방도 하셨잖아요.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라는 말요.”

“그래요? 난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을 만난 지 1년 쯤 되는데 아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닐까 해요.”

“그 정도로요?”

“저는 그 반대의 말을 잘 하거든요. 난 참 복도 없지,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저도 선생님처럼 난 참 복이 많아, 라는 말을 자주 해야겠다 싶어요. 선생님 일이 잘 되는 건 아마 그 말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아침에도 저는 난 참 복도 많아,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살아있음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음에

가끔 이렇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드는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그리고 아직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스스로 생각함에

등등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선생님의 칼럼을 보면 가끔 잘났어 정말, 이라는 말이 나와요.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면서 자기가 한 일들을 일일이 중계를 해대는지.”

맞습니다. 제가 유치할 정도로 많이 그러는 거 맞지요.

“아마 제 칼럼을 보고 100명이 입을 삐죽이고 못마땅해 한다 하더라도, 단 한사람이라도 내 글로 인해 위로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어, 라는 마음이 생긴다면 나는 행복해요. 아니, 나는 저러지는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라도 해준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저보고 칼럼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저는 말 그대로 선생입니다. 먼저 살아 보았으니, 먼저 해보았으니, 조금 먼저 알게 되고 느낀 것을 알려주는 것은 제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잘해서가 아니라 해보니 이렇더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지요.”


저를 많이 행복하게 해준 것 중 하나로 오랜만에 한 방송 녹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처럼 매주 하는 것은 아닙니다. 6월 특집 방송에 나간 것이었는데 힘들지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녹화를 하면서 느낀 건데 난 정말 방송이 좋아.”

정빈이는 엄마가 너무 늦게 온 것에 화가 나 ‘또 방송 할 거예요?’라며 눈을 흘겼지만 지긋이(?) 저를 바라보며 웃는 예슬이는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어요.

사실 정빈이가 화가 날 만도 했답니다. 어찌하다보니 녹화가 늦어져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가게 되었는데 정빈이는 그 때까지 친구 집에서 놀아야 했거든요. 아무리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지만 화가 나는 건 당연하죠.

 

잠이 온다는 정빈이를 졸라 기념(?) 사진도 찍어 두었습니다.

평소 화장을 하지 않는 저인지라 전문가의 손에 의해 달라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았지요.

역시 화장발의 위력은 대단하더군요. 녹화날이 더워 땀이 날까봐 녹화할 때는 안경까지 벗었는데 이번 일요일 밤 텔레비전을 보시는 분들은 저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입니다.

 

"이 사진 한 3년 써야지."

사진을 찍는 것은 좋아하지만 찍히는 것은 무지 싫어하는 저인지라 보통 사진 한 번 찍으면 몇 년은 쓰거든요. 동아일보에 나온 사진도 작년 가을에 찍은 거였답니다. 제가 사진발을 아주 잘 받는지라 늘 사진이 실물보다 낫게 나오는데다 작년이니 한 살이라도 젊을(?)때 라 모두들 그 사진을 보며 실물보다 150%는 더 잘나왔다고 했는데 아마 이번에 찍은 사진을 보시면 300%는 잘 나온 것 같다, 내지는 딴 사람 아냐? 라는 반응이 나올 것 같습니다. ㅎㅎ


어제 서울의 모 방송사에서 방송 출연을 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왔었어요. 책에 관한 프로그램이라 욕심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거절을 했습니다.

“지금은 학교 아이들을 두고 방송을 하러 갈 형편이 못된답니다. 저는 작가이기 전에 선생이거든요.”

 

아이들이 교생실습과 수학여행으로 수업에 공백이 많았던 까닭에 방학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안 된다고 했더니 이해를 해주시더군요. 물론 하루 연가를 내고 갈 수도 있겠지만 - 수업은 바꾸어서 다 하니까 수업을 안 하는 일은 없겠지만 - 혹여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책을 내더니 아이들은 뒷전이고 책에 더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화요일 녹화도 저희 반 수업 시간을 바꾸고 갔었기 때문에 무척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거든요.

방송이 아무리 좋고 책 소개도 중요하지만 저에게는 경북여정의 과학 선생님, 2학년 9반의 담임이라는 것이 더 소중하거든요  


하지만 방송은 제가 가장 욕심을 내는, 그리고 참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제가 새롭게 꾸는 꿈 중 하나가 환갑, 나이 60이 넘어 라디오 방송 진행을 하는 것입니다. 저와 비슷한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위한 방송을요.

가능할까? 하는 분 계실지 모르지만 일단 꿈을 꾸고 있는 저는 행복하답니다.


저는 나이 60을 제 인생의 또 하나의 출발점으로 정해 놓고 그 새로운 출발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꿈이 있기에 그 꿈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이 시간들이 저를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있지요. 라디오 방송 진행도 그 중 하나랍니다. 이제 40대를 살기 시작한 저이니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고 그로 인해 저의 20년은 조금 더 치열하고 조금 더 열심이고 조금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평균 연령인 80의 나이에도 저는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일하다 제게 주어진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꿈이 너무 거창한가요?

쉬는 시간이 끝나고 4교시가 시작되려고 해 오늘은 여기서 인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세요.

하지만  이 한마디는 하고 가겠습니다. 

‘이런 꿈을 꿀 수 있다니,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