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 자식이기도 하고 어버이이기도 한 저희 세대들이 참 바쁜 한 주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올 5월을 좀 힘겹게 맞았습니다.
제가 정빈이로 인해 퀼트에서 손을 뗐다가 예슬이로 인해 다시 퀼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아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빈이가 첫 수술을 한 후 제가 한동안 참 열심히 퀼트를 하면서 괜시리 실을 길이에 아이의 운을 걸어보기도 하다 어느 순간 퀼트를 손에서 완전히 놓아버렸습니다.
그러다 예슬이의 과학 경진대회 준비를 도와주신 선생님의 사모님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작은 가방을 만들어 드리면서 다시 퀼트를 시작했었답니다. 퇴직하신 선생님이 어찌나 열심이셨던지 아이가 매일 밤 12시까지 선생님 댁에서 대회 준비를 했는데 꼬마 손님을 귀찮다 여기지 않고 참으로 정성껏 돌봐주셨어요. 그 뒤에서 보이지 않게 더 애를 쓰신 분이 사모님이셨기에 마음을 듬뿍 담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퀼트가 요즘은 제게 또 다른 의미가 되었어요.
우리 아이 사고 후 참으로 힘들 때 제가 뭔가에 몰입할 것이 필요할 때 제가 선택한 것이 뜨개질과 바느질이었거든요. 그 일 이후 처음에는 뜨개질에, 계절이 바뀌면서 퀼트로. 참 많은 모자와 가방 등을 만들었답니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버려 남은 것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요.
5월을 맞으면서 저는 또 한 번 열심히 바느질을 했습니다. 1개 만드는데 꼬박 4시간이 걸리는 키홀더를 다섯 개를 만들었답니다.
친정어머니를 위해 1개,
탁이 어머니를 위해 1개,
저의 새 친구의 어머니를 위해 1개,
저를 위해,
마지막 1개는 3월 13일 너무나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선배를 위해 1개.
주름이 늘어만 가시는 모습에 생각만 해도, 바라만 보아도 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친정어머니. 저는 제 어머니를 참 사랑합니다. 그분의 눈물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에. 그리고 그분이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일찍 느껴버린 저에게 사춘기 시절부터 어머니는 참으로 안타깝고 애닯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 하나의 아들을 잃고 슬픔의 시간을 힘들게 이겨내려 애쓰시는 탁이 어머니,
여섯 살, 아홉 살 두 딸을 두고 떠난 남편 생각에 뒷모습마저도 안쓰러운 선배 언니,
그리고 이들과 함께 저 스스로도 선물을 받고 싶었기에 저를 위한 것도.
하지만 저는 결국 하나를 더 만들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탁이 어머니의 것을 만드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느질이 안되는 겁니다.
처음 만든 것은 너무 작고, 다시 만든 것은 너무 크고.
정말 제 평생에 바느질이 그렇게 안 되기는 처음이었어요.
바느질을 하다하다 열 받아 잠시 쉬다가 저도 모르게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머니에게 샘이 작은 선물을 하고 싶은데 받아 줄래?’
결국 탁이 어머니의 것을 뒤로 미루고 새 친구의 어머니를 위한 선물부터 만들고 나서야 탁이 어머니를 위한 것을 만들 수가 있었어요. 정말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딱, 그것이 되더군요. 바로 이것입니다. 탁이 어머니께 전해드리기 전에 제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어 두었어요. 기억의 한계를 아는지라.
저를 위한 것은 새로운 시도가 있었습니다.
종모양으로 이제까지 모자와 가방 만들고 남은 2,3cm 조각까지 알뜰히 이용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가는 것 같군요.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잠깐 만난 새 친구가 문득 이러는 겁니다.
‘마치 제가 샘 아들 같아요.’
그 친구는 샘이 정말 일일이 손으로 다 만들었냐고, 엄마가 정말 좋아할거라며 기뻐해 주었어요.
새 친구를 만나 전해 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면서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탁아, 넌 엄마보다 낫구나. 엄마가 너 때문에 새 친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까봐 그랬던 거지? 그래서 그렇게 바느질이 안되었던 거지? 이 친구 거 다 만들고 어머니 거 만들라고 말이야. 고마워.’
그러면서 아이 생각에 참 많이 울었습니다.
물론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하느냐고 하실 분 계시겠지만 제가 경험한 것으로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바느질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인데 이번만큼 이렇게 작고 간단한 것으로 몇 번이나 실패를 해보기는 정말 바느질을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이었거든요.
새 친구를 위한 선물을 만들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딱, 그것도 너무나 마음에 들게 완성을 했으니 제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무슨 무슨 날이라면 더 생각나고 더 마음 아프다는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었어요.
‘네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참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그런 생각만 자꾸 떠오르고.
그 생각을 잊으려고 시작한 바느질이었고 그랬기에 ‘어머니들’에게 줄 선물을 선택했던 겁니다.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작은 기도를 담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편안하시기를.
그리고 우리에게 늘 시간이라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기에 지금 입을 열고 마음을 열어 제 마음을 전하며 살아가자 한 번 더 새깁니다.
사고 나기 바로 전날 제가 아는 분에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이에게야 시간이 많으니 그리 시간이 많지 않은 어른들부터’라고, 그러면서 ‘탁이는 아직 어리니 앞으로 시간이 많을거라고. 그러니 앞으로 차차 해주면 된다고.’
그런데 아이에게도 시간은 제가 생각한 만큼 없을 수도 있더군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등에 매달려 있는 정빈이의 무게를 느끼며 우리가 세상을 향해 풀어놓아야 할 사랑의 실타래 무게를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낮잠을 푸욱 잔 아이는 글을 쓰는 엄마 힘들다고 등을 박박 긁어 주기도 하는데 시원하기는 한데 의자 1개에 둘이 앞뒤로 앉아 있으니 그 무게가 그대로 저에게 전해지고 있답니다.
사랑한다는 것.
우리가 살아갈 이유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제일 먼저 마주치는 사람에게 참으로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십시오.
그 미소와 함께 사랑을 전하십시오.
사랑한다고.
그리고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과 선물도 좋겠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두 팔로 안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전해보기로 해요. 뺨에 훅하는 입김이 느껴지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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