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잘 먹자

아빠표 군고구마

착한재벌샘정 2004. 3. 1. 14:06

『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
월요일 저녁, 집에 온 남편에게 작은아이가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우리가 「주말 가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참으로 어리둥절해 할 말이다. 집에 어떻게 오셨냐니?

 

남편은 아이를 안아 올리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아이 앞에 내밀었다. 
『자, 물고미.』
『진짜 물고미에요?』
아이는 손뼉까지 짝짝 치며 좋아했고 남편은 안쓰러운 듯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작은아이가 심한 감기를 앓고 있는 것을 보고 간 남편은 아이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그것도 물고구마를 사들고 기차를 타고 먼 퇴근을 한 것이었다.

 

그 순간 불쑥 고개를 드는 딸아이를 향한 질투심.
「마누라가 아팠어 봐. 너 좋아하는 거 해먹든지 영 힘들면 사 먹어, 하는 말이 전부였을 텐데. 아이들이라면 정말! 아이들에게 하는 거 십분의 일만 마누라에게 하면 내가 매일 업고 다닌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말로 나의 입을 막는 남편인지라 이제는 속으로만 투덜거릴 수밖에 없다.
『딸아이들은 언젠가는 우리 품을 떠날 거잖아. 그 때까지만 기다려. 아이들 떠나고 나면 남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는데 그 때는 정말 잘 해줄게.』
우리 집 「아빠표 군고마」'.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분리 수거함을 뒤져 주워 온 낡은 주전자에 돌을 씻어 넣어 만든 군고구마 기계(?)로 구운 고구마는 우리 집 두 아이의 큰 행복 중 하나이다.

 

『혹시 고구미라고 들어봤니? 군대에서 암호를 고구마로 했는데 …』
남편이 들려 준 흘러간 유머로 우리 집에서 고구마는 「고구미」로 바뀌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고구마는 「물고미」라는 새로운 단어로 탄생했다.

일일이 껍질을 까서 호호 불어 식혀주는 아빠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군고구마 먹는 시간을 남편과 아이들 모두 너무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혼자 투덜대는 나. 『난 물고구마보다 밤고구마가 좋은데.』

 

『정빈이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고 있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걱정이 많이 되셨나 봐. 이거 먹고 얼른 나아야지』하며 고구마를 씻으려 꺼내는데 아이가 하는 말.
『고구마가 꼭 머슴애 고추 같아요.』
작은 아이 먹기 딱 적당하게 크기까지 신경 써서 사 온 남편의 세심한 배려가 낳은 결과였다. 아이의 표현이란 어쩜 이리도 적절하면서도 기발할까? 에 감탄하며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고추 물고미 아직 멀었어요?』
서 있기도 힘들다던 아이였지만 싱크대 위에 걸터앉아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렸다.
『물 없이 돌을 달구어 굽는 거니까 조금 기다려야지.』
『그건 열의 전도죠? 직접 이동하는 거니까.』
과학 선생 딸 아니랄까 봐 열의 이동까지 설명하며 「고추 물고미」를 기다린 아이.

따뜻한 유자차 한 잔과 물김치를 곁들인 군고구마. 아이는 물고미가 아닌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있었다.   

◇방법 = ① 못쓰게 된 냄비나 주전자(밑이 두꺼운 것일수록 좋다)에 깨끗이 씻은 돌을 담는다.
② 고구마를 넣고 가스 불 위에 얹고 굽는다. 이 때 뚜껑을 닫아야 고구마 내부의 수분으로 고구마가 잘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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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매일신문 요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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