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어머니, 공부 시간에 뭐하셨어요?

착한재벌샘정 2004. 3. 1. 01:14

정빈이가 참으로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가 잠자리에 누워 나에게 하루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보통 우리의 대화는 나의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막연히 '오늘 어땠어?'라고 묻지 않고 제일 재미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묻는 이유가 있다.

 

아이의 생각을 열어 줄 수 있는 부모의 발문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에서 돌아 온 아이에게도

'오늘 학교 어땠어?'보다는 '오늘 수업 시간에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어떤 거야?', '선생님이 어떨 때 제일 좋은 것 같아?', '어떤 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기억나는 거 이야기 해 줄래?' 등의 구체적이면서도 긍정적인 기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아이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쉽고 기분 좋았던 이야기이니 신나서 이야기하게 되니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를 좋아하면 일기나 글 쓰기를 좋아하는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부모와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글 쓰기에 부담을 가지는 것은 주제를 정하기가 어렵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전개해 가는 가를 잘 알지 못하기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모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으면서 그 부담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재미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묻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는데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하루 중 우리가 겪게 되는 일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좋은 일보다 나빴던 일을 더 크게 가슴에 남기고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처음 감정보다 강해지는 것을 자주 경험하는데 그로 인해 나 스스로 터득한 것이 있다면 좋은 일은 자꾸 이야기를 하고 좋지 않은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입을 통해 언어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이에게 하루동안 겪은 일 중 가장 재미있었던 일을 찾게 하고 그것을 이야기하게 하다보면 좋았던 일은 더욱 강화시키게 되고 좋지 않았던 기억은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나의 물음에 아이는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이렇게 대답한다.
"이야기, 해줄까요오∼ 말까요?"

'하는 것'이라 하지 않고 '해 주는' 것이라 표현한 것은 작은 차이 같지만 참 크다. 그것은 이야기의 주체가 아이 자신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유도할 때에도 '이야기 해 볼래?'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해줄래?'로 이야기를 선택하고 진행하는 것이 아이 자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야기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는 마치 무슨 대단한 일을 엄마를 위해 해주는 것처럼 뻐기면서 그 시간을 시작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성실하게 들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금방 이런 말이 따라 나온다.
"안 해줘도 돼요?"
그럴라치면 나는 좀 심하게 과장 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아이에게 부탁한다.
"아니 아니. 정빈이 이야기 정말 이야기 듣고 싶어. 얼른 해 줘. 너무너무 듣고 싶어."
아주 유세를 떨면서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해주면서 아이는 그것을 자신의 '취미'라 부른다.


말하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아이와 말을 할 때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는데도 간혹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어머니, 제발 제가 하는 말 좀 끝까지 들으세요. 아직 덜 말했단 말이에요.'
'제가 말 할 때 자꾸 말하지 마세요.'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지 왜 엉뚱한 소리를 하세요?'


그러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이런 말까지 듣게 되었다.
"어머니 초등학교 다닐 때 <말하기 듣기>도 안 배우셨어요? 다른 사람이 말 할 때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책에 나와 있는데 공부 시간에 뭐하셨어요?"

순간 이런 말로 아이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 못 배웠다. 엄마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다녔고 그 때는 <말하기 듣기>라는 과목이 없어서 그런 거 못 배웠다. 그리고 엄마에게 못하는 말이 없어. 그리고 말버릇이 그게 뭐야? 공부 시간에 뭐했냐고? 내가 네 친구니?'

 

그런 한편으로는 나 역시 별 수 없구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요즘 애들 한 마디로 예의라고는 없어요. 어른에게 해야 할 말 안 해야 할 말 구분 못하고 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침없이 다 해대니. 우리 어릴 적엔 어림도 없었잖아요. 그럼, 택도 없었죠. 어른들의 말씀이라면 그저 죽었슴네 하고 듣고 있지 어디 감히…. 요즘 애들이야 눈 똑바로 뜨고 도리어 어른 가르치려고 하니. 세상 참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대화'라는 것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것 같다.
대화(對話)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마주 대하여 이야기함, 또는 그 이야기'로 되어 있다. '서로 마주'가 대화의 가장 중심이 아닐까 한다.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통행이어야 대화가 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을 '말을 잘 듣는 아이'='착한 아이'. 그 말이 어떤 것이냐 보다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가치 중심을 두고 판단하는 어른들의 잣대.

 

조목조목 따지는 성격에다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를 듣고 싶어하는 나에게 어른들은 이런 대답으로 내 입을 막곤 했었다.


"어디 말대꾸야? 어른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그러다 보니 '아이와의 대화'에 많은 신경을 쓰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나 또한 아이의 말에 불쑥 그런 말로 아이의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자괴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엄마는 <말하기 듣기>도 안 배웠냐고 물었을까? 그 일이 있고 며칠 동안 밤마다 아이의 '이야기 해주기' 취미생활에 동참하며 나 자신을 살펴보고는 아이의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지원이랑 만들기를 했는데"
"토끼 만들었니?"
"아직 말 덜했어요."
"알았어. 계속 해."
"만들기를 할 때 저번에 주워서 책 속에 끼워 두었던"
"낙엽으로 만들었구나. 가을에 엄마랑 주워서 책갈피에 끼워두었잖아."
"제 말 좀 끝까지 들으세요."
"그 낙엽 어느 책에 끼워 두었는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니?"
"정말 왜 그러세요? 제가 말하는 동안 좀 열심히 들으시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알았어. 그런데 네가 뭘 이야기할 건지 알겠는 걸 뭐."
"다 알겠어도 좀 참고 들으세요. 다른 사람이 말 할 때는 끝까지 들어주는 게 기본이에요. 그리고 제가 앞으로 어떤 말을 할지 어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어머니가 자꾸 끼어 드니까 제가 뭘 이야기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렸잖아요. 정말 속상해서 이야기 안 할거예요."
"알았어. 지원이랑 만들기 했는데 만들기 할 때 책 속에 끼워 둔, 여기까지 했어. 계속 이야기 해."
"싫어요. 더 안 말해줄 거예요."
"이제 안 그런다니까. 그러니까 계속 해 봐."
"싫어요. 어머니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마세요. 저 오늘 이야기하기 싫어졌단 말이에요. 자꾸만 알았다는 이야기만 하고! 하나도 안 알았으면서."

아이를 화나게 만든 이유를 찾아보면
말 중간에 끼어 들기.
이야기를 짐작하여 미리 이야기하기.
이야기의 방향을 흩으러놓기.
그리고 가장 큰 것은 아이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아이가 느낀 감정에도 무심했던 것까지.
아이와의 대화.


그건 아이가 하는 말만이 아닌 그 행간에 숨어있는 아이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그리 잘 알면서도 실천이 이리도 어려우니.
이런 날 책장에서 꺼내 펼치는 책, '부모와 아이 사이'.
그 속에서 깜빡 깜박 잊어버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를 얻고 싶은 간절함으로.

l9788990220127.jpg

 

 

 

 

 

 

 

 

 

 

 

▣ <부모와 아이 사이>는 어떤 책일까?
이 책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론이 아닌 수많은 대화들, 수년간 어린이 심리치료사로서 일을 한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것들로 부모로서의 우리가 과연 어떤 말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프롤로그의 몇 줄만으로도 작가가 우리를 얼마나 꿰뚤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들만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싶어한다. 불행하게도 아이를 사랑하고, 선의를 가진 부모들도 아이를 비난하고, 창피를 주고, 꾸짖고, 조롱하고, 위협하고, 매수하고, 낙인찍고, 처벌하고, 설교하고 훈계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부모들 대부분이 말이 가진 파괴적인 힘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옛날에 자기 부모들에게 들었던 말들을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있다. 본래는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던 말들을, 자기도 좋아하지 않았던 어조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사 소통의 비극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곧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 좋은 인간 관계를 맺고 좋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부모들에게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우리가 알아야 할, 익혀야 할 '방법'을 아주 자세히, 친절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리라.

 

종로서적에서 나온 깨알같은 글씨로 된 작은 책의 번역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2003년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에 같은 책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갔더니 글자만 커진 게 아니라 고맙게도 아이들과의 대화 부분이 너무도 많이 보강이 되어있었다. 


 
 -책나무 1월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