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정말 기쁜 소식이 있어요?" "뭔데?" "바로 바로…, 궁금하시죠?" "너무 궁금하다. 얼른 이야기 해줘." "바로 바로, 학예회 때 액자에 넣어 전시했던 저의 그림이 집에 도착했답니다." "어머 어머(심하게 오버하면서), 정말 너무 너무 기쁜 소식이다. 드디어 우리 집에 왔단 말이지? 우리 정빈이의 그림이?" "네. 어머니도 너무 기쁘시죠? 그런데 어디다 걸까요?" "어디 걸고 싶어?" "어머니 방에요. 어머니가 매일 매일 감상해야 하니까." "알았어. 매일 매일 보면서 감상할게." 어제 오후 정빈이와의 전화 내용입니다.지난주에 있었던 그림 그리기에서 정빈이가 처음으로 상을 탔습니다. 그리고 이 번 주 학예회 때 전시되었었는데 오늘 그림을 집으로 가져와서는 전화를 한 거지요. 팔불출 엄마인 제가 처음으로 상을 탄 그림 자랑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림 옆에서 흐뭇해하는 정빈이 모습도요. 외할머니께서 가져다 주신 꽃다발을 안고 있네요. 정빈이의 이런 모습 처음이시죠? 머리에 핀 하나 꽂는 것도 싫어하는 아이라 머리 묶은 모습 본 적도 별로 없으실 텐데 말입니다. 그건 저를 꼭 닮았답니다. 저도 머리에 무지 민감하거든요. 핀 꽂기, 묶기 모두 싫어합니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아직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지요. 저희 시어머니 저만 보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들 오마이가 낭자 마냥 머리가 저게 머꼬? 싹뚝 자르고 뽀글뽀글 찌질 꺼 아이가?" 지난 추석에는 저와 정빈이가 거실에 누워 있었더니 4살 된 조카가 이랬답니다. "엄마 귀신 아기 귀신이 누워 있네." 저희 둘의 머리가 한껏 풀어져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던 가봅니다. ^_^ 이런, 이야기가 옆으로! 정빈이는 학예회 때 언니 오빠들과 함께 바이올린 연주를 했는데 그 것 때문에 드레스도 빌리고 머리에 화장까지 한 것이랍니다. 정빈이의 예쁜 모습 봐주세요. 사진에는 웃고 있지만 정빈이는 화가 무지 났었답니다. "난 머리도 이렇게 하는 거 싫어하고 화장하는 것도 싫어요." 드레스 빌린 곳에서 와서 해준 모양인데 제가 강당에 도착했을 때의 정빈이는 골이 잔뜩 나있었답니다. "연주만 끝나면 바로 머리 풀고 화장도 지워주세요. 어머니는 정말 내 마음 몰라요. 이런 거 싫어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듣지도 않고." 하면서 어찌나 토라지는지 골이 너무 나서 무대에 올라가지도 못할 뻔했답니다. 연주가 끝나고 언니 오빠들이 한 곡 더 연주하는 동안 1학년들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있었는데 그 때까지 골이 난 정빈이는 관객을 보지 않고 뒤 돌아서서 강당 벽만 쳐다보면서 자기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계속해서 보여주더군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워낙 마른 아이인지라 키에 맞춰 입은 드레스는 목 부분이 커서 뭐든 딱 맞아야하는 정빈이의 신경을 건드린데다가 안에 입은 속치마의 허리가 너무 커서 조금만 움직여도 줄줄 내려오고 몇 번을 둘둘 말아 접은 부분이 찝찝 해 못 견디겠다는 겁니다. 옷 핀 세 개로 속치마를 드레스에 고정을 시켜도 워낙 허리가 큰 속치마가 이리저리 움직이니 까탈스러운 아이의 성질을 있는 대로 건드린 거지요. 게다가 머리는 당겨서 돌돌 말아놓고 화장까지 해놓았으니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어찌나 성질을 부리는지. "그럼, 무대에 올라가지 말고 드레스 벗으러 가자. 머리도 풀고 화장실 가서 화장도 지우고. 그렇게 모든 게 마음이 안 들어서야 연주가 되겠니?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 머리부터 속치마까지 모두 못마땅한데 어떻게 연주가 되겠어? 뭐든 마음의 문제야. 이 정도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연주라고 생각하는데? 그 동안 팔이 아프게 연습해 놓고 옷이나 머리 때문에 이런다는 건 현명하지 못한 것 같아. 어머니 생각은 그런데 너는 어떤 지 모르지. 뭐가 더 중요한지 어느 부분을 좀 참아야 하는지 네 스스로 결정 해. 물론 이런 드레스 안 입고 연주해도 상관없어. 꼭 입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아.드레스 입어야 연주가 제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드레스 입겠다고 한 것은 너였고 이 드레스를 고른 것도 너였어. 머리와 화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이렇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야. 그러니 엄마에게 그렇게 화내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뒤돌아 서 있는 것으로 표현을 하더군요. 내려오자마자 옷 갈아입고 그 자리에서 머리 풀고 화장 지워달라기에 그림 전시 된 거 보러가쟀더니 그 말에 들떠서는 쏜살같이 운동장으로 달려가더군요. 자신의 그림을 너무나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랑하느라 머리와 화장은 잠시 잊은 듯했습니다. 그림 옆에서 사진도 찍고. 교실에서 가방을 들고 온 정빈이가 상장을 내밀면서 이러는 겁니다. "어머니, 저는 동상 중에 1등이에요." "응?!$%%" "나영이는 동상 중에 4등이고요. 왜냐하면 제가 동상 중에 제일 먼저 상장을 받았거든요. 제 짝 나영이는 동상 중에 네 번째로 상장을 받았어요." 여러 명의 동상 수상자 중에 첫 번째로 상장을 받았다며 '동상 중에 1등'이라며 그 말을 하며 어찌나 흐뭇한 표정을 짓는지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어머니, 자랑스러워요? 제가 상 받아서?" "응." "얼마큼요? 언니보다 제가 더 좋아요?" "거기서 언니 이야기가 왜 나와?" "언니는 상 많이 받아왔잖아요." "상 받아 온 거 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거 하고는 상관없는 거야. 그럼, 너는 어머니가 안 좋겠네? 어머니는 정빈이 태어나고 상을 받아 온 적이 없으니까." "그런 게 어딨어요? 어머니가 왜 상을 받아요? 상은 아이들이 받는 거지." "아니야. 어른들도 상 받아." "그럼 다른 집 엄마들은 상 받아요?" "받은 사람도 많을 걸. 정빈이는 어머니가 상 못 받아와서 어머니 안 좋아? 그렇지 않잖아. 어머니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기쁘죠?" "물론 기쁘지." "동상 중에 1등이라 더 기쁘죠?" "응. 많이 기뻐." 언니의 상장을 쑥 빼서 거실 탁자 위에 던져두고는 자기 상장을 대신 끼우면서 이러더군요. "언니 꺼는 옛날 거니까." 상장을 쓰다듬으면서 이러는 겁니다. "어머니, 저는 수학을 잘 하잖아요. 수학 시험 치면 또 상 받아 올게요." 그 후로 제가 무슨 말만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수를 가지고 계산을 합니다. "그럼 15가 답이겠네요? 난 정말 수학을 잘 한다니까." "무슨 답?" "그런 게 있어요." 정빈이는 오늘도 열심히 제 말 속에서 찾은 수로 계산을 해대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신지요? 인사 참 빨리도 하죠? 죄송합니다. 위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제가 소식을 전하지 않아 서운해하시고 계신 분들이 계시기에 여기서 변명 좀 하겠습니다. 제가 며칠 몸과 마음이 함께 심하게 아팠었습니다. 마음이 먼저 아팠는데 몸이 따라 아프더군요. 지금은 어떠냐고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먼저 아프기 시작한 마음이 좀 나으니 몸도 덩달아서 낫는 것 같습니다. 저희 친정어머니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언제든지 겸손해야한다. 나이가 들수록 행동 조심 말조심. 늘어나는 나이만큼 조심에 조심을 해야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해야한다. 우리 집에 송아지 한 마리 태어나는 것 보다 남의 집 소 죽는 것이 더 기쁜 게 사람 마음이라는 옛말이 있다. 다 내 맘 같지 않으니 부디 조심해야한다." 저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리 남 의식하고 신경 쓰면서 살 필요가 있나요? 결국 나라는 실체보다는 보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텐데 남들의 그런 시각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남들도 저에게 신경 쓰는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요." 그런데 이 번에 몇 몇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제가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마음이 고단하니 자연 몸도 지치고 병이 나더군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벌써 올 해 들어 몇 번째 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 번에도 그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욕이 막나오더군요. '참으로 할 일없는 사람들 많네. 내가 자기들 한 테 뭔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남의 이야기를 그것도 좋게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자기들 입이 더러워지지 뭐. 에이, 정말 재수없어.' 그렇게 마음속에 분이 쌓이니 더더욱 힘든 건 제 자신이더군요. 며칠 끙끙대고 나니 눈에는 고름이 나고 입안은 헐고 입술은 부르트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나는 단어가 바로 '자업자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누구를 탓하겠는가? 내가 얼마나 덕이 없었으면? 내가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제가 좀 잘난 척을 합니까? 그것이 이제까지 힘들 때마다 저를 지탱해준 하나의 힘이기도 했지만 남들에게는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테니까요. 덕분에 
좋은 일은 네 덕분 나쁜 일은 자업자득「자업자득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와 더불어 나는 염불처럼 이 말을 항상 마음속으로 읊조리고 있습니다. 읊조리면 마음이 진정됩니까? 라고 묻는다면 좀처럼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성인 군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치로는 이해가 되어도, 좋은 일이 생기면 역시 「내 능력이지」하면서 우쭐거리게 되고, 나쁜 일이 생기면 「저 녀석 탓이야」하며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짜증내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이 말을 읊조리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쓸데없는 우쭐거림이나 짜증이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위의 글처럼 저 또한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내 탓보다는 남 탓에 익숙해져 있었고 자업자득이란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별꼴이야, 정말'이라는 말이 삐죽삐죽 디밀로 올라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저 스스로 기특한 것은 지금에나마 '자업자득'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무슨 뜬금 없는 소리냐 하실 분 계시겠지만 한 편으로 이해하시리라 생각하기에 여기서 마무리하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