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2002년 6월 12일 2학년 5반에게 쓴 편지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사랑하는 딸들에게              



오늘은 엄마의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쓴다.

늘 그런 마음이었지만 오늘은 굳이 말로서 표현을 하고 싶구나.

공주들이 오늘 영어 공개 수업을 앞두고 많이 긴장하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야. 엄마의 이런 걱정이 쓸데없는 거라는 걸 오늘 보여 줘. 그동안 참 많이 노력했잖아. 오늘 그 동안 노력한 모습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바래.

지난 미국과의 축구 경기에서 우리 모두는 선수들의 멋진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지. 왜 그랬을까? 그건 최선을 다하는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을 했기 때문일 거야. 그들의 그 멋진 모습은 노력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알지? 그것은 선수들의 피땀의 결과이고 우린 그들에게서 그런 노력의 흔적을 보았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던 거잖아.

엄마는 그 경기를 지켜보면서 우리 공주들 생각을 했었어. 우리 공주들이 선수들에게 박수만 보낼 것이 아니라 저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져 주었으면 하고 말이야.

공주들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온몸에 흐르던 땀방울과 같은 노력을 한다면, 그들의 얼굴에 넘쳐나던 자신감을 가진다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축구 경기를 보면서도 우리 공주들을 떠올리는 엄마 마음을 공주들은 알까?

왜 자꾸 연습을 하느냐고 물었지? 오늘 우리 공주들이 하게 될 수업은 새로운 수업의 형태를 개발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야. 그러니 조금씩 수정을 하면서 가장 나은 형태로 다듬어 가야 하니까 몇 번의 연습이 필요한 거야. 연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 해서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야.

그 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어. 그 수고를 오늘 45분 수업 동안 모두 보여 줄 수 있어야겠지? 끝나고 난 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쉬워.'라는 말처럼 안타깝고 속상한 게 어디 있겠니? 오늘 수업이 끝난 다음 서로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라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래.

그런 우리 공주들을 위해 엄마가 작은 선물을 하나 마련했어. 흰 양말이야.

눈부시게 흰 양말을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최선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야.

하필이면 양말이냐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교복에는 흰 양말만큼 어울리는 게 없거든. 요즈음은 색색의 양말로 멋을 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교복에는 이게 제일 잘 어울려.

'어울림'은 참 아름다운 말이라는 게 엄마 생각이야. 청바지에 어울리는 것이 있고 교복에 어울리는 것이 있잖아. 교복을 입었을 때의 아름다움은 단정하고 깔끔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축구를 할 때도 어울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안정환 선수가 아무리 훌륭한 선수일지라도 혼자서 축구를 할 수는 없는 거야. 11명이 함께 하는 축구에서, 다른 10명의 선수들이 함께 마음을 맞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거지. 그들의 어울림만이 멋진 한 게임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게 아니겠니.

모두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최전방의 공격수를 하고 싶어한다면 축구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못할 거야. 우린 안정환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나머지 열 명의 선수들을 잊지 말아야 할거야. 그 한 골은 11명의 어울림, 조화로운 팀웍이 만들어 낸 것이지 그 선수 혼자만의 것은 결코 아니야.

11명이 해야 아름다운 축구, 교복에 어울리는 흰 양말처럼 우리 서른 일곱의 공주들도 서로 서로 호흡을 맞추어 가며 잘 해주리라 믿어. 엄마가 흰 양말을 고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겠니?

엄마는 그래, 이렇게 작은 것에도 의미를 주고 싶어 해.

우리 공주들을 위해 엄마가 또 하나 준비한 것이 있어. 얼마 전 동생 예슬이가 월경을 시작했어. 축하해주기 바래. 월경을 시작하는 예슬이에게 선물로 고른 책이 있는데 우리 공주들에게도 주고 싶어 따로 한 권을 마련해 학급 문고에 둘게. 대부분 월경을 하고 있겠지만 엄마들이 다 챙겨주지 못한 것들이 책에 꼼꼼히 나와 있어서 우리 공주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사랑해 공주들.

할 수 있는 만큼 해줘. 너희들이 준비한 만큼, 꼭 그 만큼만 하면 되는 거야.

                                              2002년 6월 12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