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정빈이가 7살이 되거든요.
지난 해 유치원을 다니다가 그만 둔 후로 정빈이는 거의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지요.
유치원에 다닐 만한 체력도 아니고 특히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 간식이나 점심을 먹을 라 치면 구석으로 가서 배가 아프다고 누워버리거나 화장실로 숨거나 바닥에 엎드려 일어나질 않는 등 선생님을 아주 힘들게 했다고 하더군요.
샘이 몹시 많은 아이로 그 정도가 걱정스러울 정도이지요.
언니와 나이 차가 심하다보니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뭐든 "언니와 똑같이"를 외쳐대지요.(싫어요, 전 꼭 언니만큼만 클 거예요.로 바로 갑니다. )
그러다 보니 주변의 또래 아이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정빈이가 마주치기 싫어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많은 부분에서 정빈이보다 앞서가는 아이이지요.
글자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자전거, 롤러브레이드, 키보드와 같은 것도 너무 잘 타고, 한 마디로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예요.
정빈이가 그 아이를 부담스러워하고 시샘을 내는 모양이에요.
정빈이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이야기 기억나시죠?(하루에 아이 둘을 잡았답니다. 로 바로 갑니다. )
정빈이는 아직 한글을 다 깨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제가 혼자 집에 있는 정빈이가 한글을 모두 알게 되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덜 심심할까 싶어 책을 읽어주다가 아는 글자를 읽어보라고 했었지요.
정빈이는
"아휴, 아휴, 땀나. 아휴, 답답해"
하면서 너무나 긴장을 해 자기 가슴을 콩콩 치기도 하고 침대 위에서 떼굴떼굴 구르기도 하더군요.
결국 정빈이의 책읽기는 중단되었고요.
무엇인가를 다잡고 앉아 배우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 하지요.
예슬이도 그랬었거든요.
제가 예슬이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주고 있는 이유도 아이의 그런 성격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예슬이는 스스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누구보다도 집중력이 높고 끈기를 가지고 하게 되더군요.
예슬이는 6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시험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플릇을 시작하며 다시 시작한 피아노는 매일 2시간씩 알아서 연습을 하고 있어 저를 놀라게 하고 있어요.
예전에 조기 교육에 관한 이야기 중 피아노에 관해 부분이 있어 옮겨봅니다.
피아노를 한 가지 예로 들어볼게요.예슬이는 요즈음 가장 많은 시간을 피아노 연습에 할애를 하고 있습니다.저도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보았지요. 여섯 살 되면서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하지만 별로 소질도 없어 보이고 아이도 싫어해서 그만 두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체르니 30번까지는 해야한다고들 충고를 하더군요. 하지만 전 그 말의 근원지가 어딘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더군요.
아직 글도 제대로 모르고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그것도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시켜야 한다는 것은 전 반대입니다.
그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여섯 살 때 석 달 걸려야 할 걸 한달, 아니 보름이면 되는 것을.
소질이 있을까 해서 어릴 때 시켜보는 것은 모르지만 그걸 전공할 것이 아니면 그걸 즐길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 않을까요.
저는 학교에 있는데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피아노 학원 가기"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한 동안 피아노를 안 치던 아이는 막내 이모 결혼식에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이 때다 싶어 개인 선생님을 들여 두 달 동안 열심히 연습을 해 이모 결혼식의 반주를 했었지요.
물론 그리고는 또 그만두고 혼자서 가끔 딩동 거리고 있지요. 얼마 전 가을 동화에서 로망스가 나오고 부터 혼자서 또 열심히 로망스를 치더군요.
그 아이는 피아노를 전공할 아이가 아니기에 그저 자기가 좋을 때, 하고 싶을 때 피아노 앞에 앉아 그걸 즐길 수 있으니 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플릇을 시작하면서 하면서 엉뚱(?)하게 피아노가 재미있어졌다면서 변덕 많은 예슬이는 예고에 가서 음악을 전공해 볼까, 까지 하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별로 소질이 없어 보였던 피아노인데 지도 선생님이 소질이 있으니 한 번 생각을 해보라는군요.
어쩌면 아이의 소질을 늦게 알아 정말 늦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예슬이가 그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누구보다 많이 경험하며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아 온 것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예슬이가 지금 피아노 치기를 즐거워하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살아 갈 수 없겠지요.
여기서 부모들의 세심한 관찰과 배려, 나름대로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제가 예슬이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익히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의 한 극성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아이에게 누구보다 많은 것을 시키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가끔 묻습니다.
"너희 애 뭐 뭐 시키니? 너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되지 싶다."
"너희 애 어느 어느 학원 다니니?"
그런데 제가 애를 옆에 끼고 매일 집에서 데리고 논다고 하면
"그러지 말고 같이 좀 하자. 뭐 그런 것도 비밀이냐? 친구 사이에."
하며 믿지 않은 친구가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예슬이 피아노 선생님조차도
"예슬이 어머니, 안 그런 척 하면서 집에서 몰래 애를 잡는 거 아닙니까? 비밀리에 강행군 시키면서 시치미떼시는 거 아니에요?"하지 뭡니까?
저는 보이지 않는 배려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를 보고 일 욕심이 많다고들 하십니다. 늘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건 사실이지요.
그 이면에는 아이들에게 변화하는 엄마의 모습,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해라, 노력해라, 포기하지 마라, 라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서 자극을 주고 싶은 거지요.
영어를 하면서 그 부분을 가장 많이 느꼈어요.
제가 영어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혀에서 느껴지는 감칠맛이라고 할까요, 하여튼 잘 표현은 못하겠지만 너무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제가 영어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늘 보는지라 아이들이 영어를 별로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엄마가 뒤늦게 저렇게 하는데 나도,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제가 요즈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제가 운동을 하고 변한 것은 예슬이가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일어날 때의 태도입니다. 군말 없이 벌떡 일어나더군요.
물론 "슈퍼 엄마"가 되려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의 성장기에 자극과 격려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저는 제 자신의 일과 연결하고 있는 거지요.
저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옷이나 머리 모양에도 별로 신경을 써주지 못합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딸 둘을 키우면서 어떻게 아이들 머리 모양이 똑같으냐고요.
저희 아이들 둘 다 머리에 핀 하나라도 꽂는 것을 싫어합니다. 편한 걸 좋아하지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 둘 다 일면 클레오파트라 머리가 기본이고 가끔 뒷 머리카락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이 전부였네요.
머리를 길러 양 갈래로 묶어 주거나 땋아 준 적이 없어요.
옷도 그저 편한 것,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마련을 해주고요.
이야기가 또 많이 빗나갔네요.
정빈이는 놀기만 하는 유치원을 찾아오랍니다.
요즈음 대부분의 유치원들이 대부분 "놀이를 통해" 라는 슬로건을 많이 내 걸고 있더군요.
정빈이가 다니다 그만 둔 유치원도 그런 쪽으로 꽤 이름이 난 유치원이었어요.
하지만 정빈이는
"너무 많이 가르친단 말이에요. 숫자하고 글자 배우기 힘들어요."하며 결국은 그만두고 말았지요.
정빈이도 시간에 구애되고 책상 앞에 마주 앉아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 많은 부담을 가지더군요.
정빈이는 할머니와 집에서 놉니다.
인형놀이, 오목 두기, 화투치기, 그림 그리기, 책읽기(할머니께서 읽어 주십니다.), 블럭 가지고 놀기, 공차기, 칼싸움, 로봇 놀이 등등
주중에는 TV를 보지 않고 있기에 비디오는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보는 영어 비디오를 언니와 함께 보지요.
정빈와 가장 잘 놀아주는 사람은 남편이에요.
정빈이는 남편이 퇴근해 오면 다녀오셨어요, 라는 말 대신
"아버지 놀아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그 때 아이의 표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정빈이와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저를 보던 예슬이가 그러더군요.
"어머니, 저를 키우실 때도 어머니 아버지께서 정빈이에게 하는 것처럼 키우셨어요?"
"왜?"
"어머니 아버지가 정빈이와 놀라주는 걸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저 어릴 때에도 저렇게 놀아 주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면 무척 기분이 좋아지고요. 하여튼 어머니 대단하세요."
"네가 어릴 때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더 젊었고 아이가 너 하나였으니 이것보다 더 잘 놀아 주었어 임마!"
했더니 예슬이가 아주 흐뭇해하더군요.
정빈이가 바라는 정말로 놀기만 하는 유치원을 구하지 못해 결국 원서 마감 일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유치원을 가지 않는 아이, 아니 못 가는 아이들도 많은 줄 압니다. 꼭 유치원을 다녀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정빈이가 또래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 간절합니다.
정빈이는 토요일 오후면 보통 저와 놀이터에 갑니다.
정빈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정말 좋아해요. 다른 아이들도 그렇지요?
어디를 가든 정빈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줄에 매달리는 걸 너무 좋아해요.
정빈이가 원하는 놀기만 하는 곳은 정말 없을까요?
정빈이 때문에 요즈음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홈러닝"입니다.
그러면서 펼쳐드는 책이 "나의 나무 아래서"입니다.
첫장의 제목이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이지요.
히카루는 자기보다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그 친구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참고 : 히카루는 작가의 맏이로 특수학교와 양호학교를 다녔습니다.)자기가 친구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일은, 집에 있으면 무엇이든 어머니한테 의지하는 히카루에게, 신선한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중략>
지금 히카루에게 음악은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깊고 풍부한 감정을 스스로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그리고 자기를 사회와 연결시켜나가는데에 기장 도움이 되는 언어입니다.
이것은 가정생활에서 싹튼 것이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확실한 형태를 이루었습니다.
자국어뿐만 아니라 과학도 산수도 체조도 음악도 자기를 확실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시켜나가기 위한 언어입니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것을 배우기 위해서 어느 세상에서나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카드로 만든 집♥
예슬이가 여러 가지로 너무 느려서 애를 태운 경험이 있습니다.
24개월이 되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뭐든 많이 느리더군요.
우유 젖병을 5살이 넘어도 떼지 못했고요.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하러 다니기도 했고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예슬이는 또래보다 2년 느리다."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 지키려고 조급증을 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지금까지 오고 있지요.
그 때 예슬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너무 좋아해 한 때 자폐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본 영화로 여러분들에게 한 번 소개해 보고 싶어요.
이 영화는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자폐증에 걸린 딸을 치료하고 그 내면을 이해하기 위한 엄마의 노력을 그린 영화입니다.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자폐증 증세를 보이는 6살짜리 소녀는 말을 잃어버리고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려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요.
하지만 딸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또한 제가 처음 정빈이의 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겠지, 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동심리학자의 자폐증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치료하려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카드로 쌓아 올린 탑을 보고 그 솜씨가 뛰어난 것에 놀란 엄마는 그 카드 탑을 사진을 찍어 딸의 심리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남편의 죽음을 보게 되지요.
엄마는 숲 속에 나무판을 이용하여 딸의 카드 탑과 똑같은 것을 만들고 딸과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하지요.
딸아이는 탑에 올라감으로서 아빠의 죽음을 보게 되고 엄마는 자신의 어린 딸이 아버지가 있는 달나라로 가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 영화가 제 기억 속에 오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이를 위한 무조건 적인 모성감정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내면으로 접근해 가는 엄마의 노력이 큰 감동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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