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정빈이의 늦은 선물

착한재벌샘정 2007. 5. 14. 00:52

 

정빈이가 열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 지 궁금하시죠?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이 번 주말에 정빈이가 가장 몰입했던 것은......

 

 

바로 십자수였답니다. 한 때 퀼트에 빠져(?)지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십자수였습니다.

며칠 전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었어요. 중3인 아들이 학교에서 십자수를 배우는데 애살많은 아들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십자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달라고 졸라댄다면서 혹시 가르쳐 줄 수 있느냐면서요. 

학교 수업시간에만 한다고,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거둬갔다가 수업시간에 다시 내준다면서 동네 문구점에서 휴대폰 고리를 따로 사서 배워보겠다고 왔었거든요.

그 때 선배 아들이 들고 온 십자수를 보더니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하는 윤정빈이의 두 눈이 십자수에 파악~~~~ 꽂힌 겁니다.

 

토요휴업일의 주제를 십자수로 삼아 어찌나 열심인지.... 

정빈이가 이렇게 열중한데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지난 어버이날 아침

남편 - 윤정빈, 어버이날인데 선물은 있겠지?

정빈 - 없는데요.

남편 - 뭐? 없어? 어버이날인데 선물 정도는 준비했었어야 하는 거 아냐?

정빈 - 어린이날 선물 안 주셨잖아요. 저는 그냥 제가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드리는 것 뿐인데요?

남편 - 허걱!

 

그 때 제가 정리에 나섰습니다.

- 네가 선물을 못 받은 것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이야.

정빈 - 저도 그런 생각으로 선물 준비 안했는데요.

- 그래? 네 논리대로 하면 아버지와 나는 더 이상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이 되는데..

정빈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그렇잖아. 네가 선물을 못 받은 것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인데 너도 같은 생각으로 선물 준비 안했다면서? 그럼 우리는 더 이상 너의 부모님이 아니라는 말인데....  여보, 우린 이제 정빈이에게 옆집 아저씨 어주머니에요.

정빈 - 그런 게 어딨어요?

- 여기!!! 우리는 네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어서 어린이날 선물을 안 한거였어. 그리고 넌 정말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것도 맞고. 그런데 그것을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시키면... 이렇게 되는 거지. 부모님은 더 이상 저의 부모님이 아니니 어버이날 선물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라는 거지.

정빈 - (멍한 얼굴로 저희 부부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그렇게 되는 거예요?

- 이건 정빈이가 받은대로 돌려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지금처럼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일이 이치에  맞는 지, 논리에 맞는 지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지난 번에 어머니가 쓴 블로그의 글 읽어보고 네가 받은 선물이 얼마나 값진 것이라는 거 너도 알았다고 했었잖아.

정빈 - 그래도.... 포장지에 이렇게 된 선물을 못 받은 건 사실이잖아요.

- 틀린 말은 아니야. 그리고 네가 포장된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에게도 선물을 하지 않는다는 거. 그럴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 이유로 네가 생각해 낸 논리가 적합하지 않다는 거지. 그렇게 하니 우리는 더 이상 너의 부모님이 되지 않는데 그래도 괜찮아?

정빈 -  ........

 

그렇게 어버이날을 보내고 난 뒤 정빈이는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에요. 십자수를 보는 순간 열쇠고리를 만들어 <늦은 선물>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남편 - 이거 누구 줄거야?

정빈 - 어머니요.

남편 - 뭐? 그럼 나는?

정빈 - 어머니는 휴대폰 고리도 바꿔야 하고 열쇠고리도 바꿔야 된단 말이에요. 두 개다 너무 오래되서....아버지는 안 바꿔도 되잖아요.

남편 - 그래도 나도 선물 받고 싶은데....

정빈 - 일단 한 번 만들어 보고요. 처음이라 잘 안될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압권이었답니다.

"잘 되면 제가 하고요."

 

어버이날 선물을 못해 미안한 마음에 늦게라도 선물을 하겠다고 십자수로 열쇠고리 만들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처음 만드는 거라 크게 자신은 없는 상황인데 만약 생각보다 이쁘게 잘 만들어지면 처음에 엄마에게 선물하겠다던 거 취소하고 자기가 갖겠다는 겁니다. 열쇠는 없어도 가방에 달고 다녀도 된다면서요. 아마도 만들면서 갈등이 적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틀동안 열심히 만들어 드디어 제게 준 열쇠고리입니다.

 

 

사실 위의 십자수하는 사진 찍는 거 무척 힘들었답니다. 완성하면 보여준다면서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아주 철저하게 이리 감추고 저리 감추며 비밀(?)리에 작업을 했거든요. 그래서 멀찍히 떨어져서 '줌 기능'을 최대한 써서 찍은 거랍니다.

그런데 뒷면은 곰 두마리가 서로 안고 있는 도안하고는 완전히 다른, 정빈이가 스스로 도안한 것이 수놓아져있었습니다.

 

 

언젠가 학교 아이들이 저를 보고 바비인형이라고 한다던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빈이에게는 제가 그 때 바비인형이라 불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걸로 보였던 모양이에요.

 

"Love

바비

doll"

 

"바비까지 영어로 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눈에 잘 안띨 것 같아서요.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처음에는 나비가 한 마리였는데 너무 허전해서 한 마리 더 만들었어요. 힘들어서 그만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두 마리가 있어야 예쁠 것 같아서요. 제가 만들어도 진짜 잘 한 것 같은데 어머니는 어떠세요?"

"잘 만들어지면 네가 한다더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뒤에 도안에 있는 곰을 할까하다가 어머니에게 특별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고민많이 했어요. 뒤에 어떻게 할까 진짜 생각 많이 했어요. 미스코리아 진을 할까, 올해 안에 55사이즈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s라인 영미, 이런 것도 생각했는데 갑자기 바비인형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말로 바비인형이라고, 아니 바비인형 영미, 라고 할려고 했었는데 요즘 영어 공부를 하고 있으니 영어로 doll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 영미는 빼고 love 가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제가 할 수는 없는거죠. 바비 doll은 제가 아니라 어머니니까."

 

뒤늦은 선물이지만 너무 귀한 선물이죠?

처음에는 잘 남들어지면 자기가 하겠다고 까지 했었는데.... 그래서 한땀한땀 수를 놓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갈등 심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예쁘면 자기가 해야지 하는 갈등이 아니라 뒷면에 엄마를 위해 어떤 특별한 말을 수놓아줄까로 고민을 했었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답니다.

 

십자수에 재미를 붙인 정빈이는 

"이번에는 쿠션에 도전을 해볼까요?'

라는 엄청난(?) 계획을 말하기도 합니다.

눈 아프고 팔 아프다고 솔직히 제가 바느질은 못하게 하거든요. 퀼트도 더 이상 못하게 하고 언니처럼 인형 옷 만들고 싶다는 것도 못하게 하는데 십자수는 하도 졸라대는 통에 휴대폰 고리정도, 작은 거 하나 만드는 걸로 넘어가려했는데....

 

아, 이 이야기 꼭 해야해요.ㅎㅎㅎ

며칠 전 예슬이가 머리가 아프다며 일찍 집에 온 날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좀처럼 간식을 먹지 않는 예슬이가 빙설이 먹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자 정빈이가 자기가 가서 사오겠다며 손을 들더군요. 외출하려 스웨터를 입으면서 하는 말

"집에 수험생이 있다면서 많이 달라고 할까요?"

이러는 겁니다. 예슬이가 중간고사 결과가 나온 날이었는데 그 결과에 저희 가족 모두가 몹시 흥분(?) 상태에 있었거든요. 열심히한 결과로 정말 좋은 성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정빈이는 빙설 사러가면서 수험생이 있으니 많이 달라고 해볼까를 묻었던 것 같아요.

"수험생이 있다고 많이 달라고 해보겠다고?"

남편, 저, 예슬이 모두 동시에 그렇게 물었는데.... 정빈이의 대답에 저희 모두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말을 남기고 나갔던 정빈이.

"보세요. 뚜껑이 닫히지를 않아요."

"진짜 그렇게 말했어? 수험생이 있다고 많이 달라고?"

"네.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많이 주던데요."

덕분에 꾹꾹 눌러 담긴 빙설을 먹을 수 있었답니다.

정빈이, 깜찍하죠?

 

스승의 날은 학교에 안 가니 하루 일찍 드려야 한다며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 자신이 직접 만든 쿠키를 준비해 두고 잠이 든 정빈이는 십자수하고 쿠키 굽느라 정작 학교에 가지고 가야 할 일기는 쓰지를 못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면 물을 끼얹어서라도 꼭 깨워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아마도 물을 끼얹어도 일어나기가 힘들거라는 생각이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