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머리핀 대신 받은 남편의 마음

착한재벌샘정 2007. 3. 23. 11:22

오랜만입니다. 봄이 어느새 제 곁에 성큼 와 있네요.

오늘은 두껍던 겨울옷을 벗고 얇은 봄 재킷을 입었더니 조금 쌀쌀한 듯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철지난 화이트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요. 남편은 일명 ‘무슨무슨 날’을 꽤 챙기는 편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올 발렌타인데이에서부터 출발을 해야하겠네요.

2월 13일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남편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비가 좀 왔었는데 우산이 없었던 지 양복은 비에 젖어 있었고 추운 듯 움츠리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더군요. 저의 눈은 비에 젖은 남편의 양복에서 남편 손에 들려져 있는 비닐봉지에게로 옮겨졌는데.... 그런 저에게 비닐  봉지를 내밀면서 이러는 겁니다.

“내일 무슨 날이지? 술 마시다 문득 그 생각이 났는데....무슨 날이긴 한 것 같은데 내가 받는 날인 지  내가 주는 날인 지 헷갈려서 말이야. 그래서.... 이거...”

“뭐예요?”

“딸기다. 너무 늦어서 뭘 파는 곳이 없어서 말이야. 근데 딸기 파는 차가 있기에..... 내가 받는 날이면 괜찮지만 내가 주는 날이면 아무것도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근데 내일이 뭔 날이냐? 내가 주는 날이냐 받는 날이냐? 내가 주는 날이면 이거.... 이 딸기로 만족해줘라. 뭐라도 사오려고 돌아다니다 옷이 다 젖어 추워죽는 줄 알았으니. 으~~~~ 춥다.”

남편이 내미는 딸기를 받아들면서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라 당신이 주는 날이 아니라 받는 날인걸요.”

했더니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럼 이 딸기는 그냥.... 좀 씻어 와봐라.”

“이 밤중에요?”

“그래. 씻어 와봐. 그래도 이거 사오려고 애쓴 보람은 있어야 할 거 아냐. 얼른 씻어 와.”

“보람은 무슨 보람?”

“당신 먹으라고.... 씻어 와라 얼른. 많이 씻어 와서 많이 먹어. 나도 먹을 거니까 많이 씻어라 많이. 많이.....”

딸기 씻는 동안 남편은 넥타이만 풀고 거실 한 가운데에 누워 잠이 들었고 코를 드렁드렁 고는 남편 옆에서 밤 12시가 다 되어 딸기를 잔뜩 먹었던 2월 13일 밤의 기억.

3월 14일 아침.

“아침 먹자.”

“정빈이랑 먹어요. 나는 머리 세팅 할 거라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오늘 뭔 날이가?”

“화이트데이.”

“오늘 내가 학교까지 태워다 줄게. 이야~~~ 정말 자상한 남편이다, 그치? 화이트데이라고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이런 자상한 남편 있음 나와 보라 그래?”

“그래요? 그럼 이렇게 이쁘고 매력적인 아내 있음 나와 보라고 해요?”

이러면서 남편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데 그러는 저를 휙 밀쳐내며 이러더군요.

“됐다. 고마하자. 남들이 보면 둘이 뭔 짓이고 할끼다.”

“남들이 보긴 누가 봐요? 우리 집 거실에서 이러는데?”

“그래도 고마하자. 빨리 준비해야 데려다 주지.”

화이트데이라고 머리 세팅까지 하고 제일 맘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출근을 했더니 정성들인 보람이 있었는지 2학년 7반 수업을 들어갔더니 절 보고 ‘선생님, 바비인형 같아요’라는, 저도 놀라고 인정하기 어려운(ㅋㅋㅋ) 칭찬까지 받았답니다. 퇴근 해 온 남편에게 아이들이 바비인형 같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했더니 한 마디로 평정을 하더군요.

“바비 인형 공장 망할라카나?”

아, 그런데 그날 오후의 멋진(?)곳에서의 외식에 대한 기대는 고3이 된 후 첫 모의고사를 치고 일찍 집에 온 예슬이의

“닭똥집 튀김 먹고 싶어요.”

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답니다. 마누라, 예슬, 정빈이의 말 중 남편이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이 예슬이의 말인지라.... 정빈이와 저의 튀어나온 입은 들어갈 줄 몰랐지만 남편은 대구의 명물이라는 ‘똥집골목’이 있는 평화시장으로 저희를 데리고 가더군요. 

맛있게 잘 먹었으면서도 저는 튀어난 온 입은 들어갈 줄 몰랐고 게다가 시험 친 날이라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예슬이의 말에 예쁜 머리핀을 선물로 받고 싶던 저의 두 번째 기대도 접어야 했답니다. 머리가 허리까지 오다보니 틀어 올린 ‘업스타일’을 해보고 싶어서 진짜 맘에 쏙 드는 핀을 갖고 싶었거든요. 화이트데이에 남편으로부터 꼭 선물로 받고 싶었는데..... 그래서 며칠 째 노래를 불렀건만.....

그 후로 남편은 너무 바빠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났답니다. 정말 어찌 그리 바쁜지요. 그러다 오늘 퇴근 무렵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기에 문득 핀 생각이 났어요.

“핀 사 주세요.”

“그래? 그럼 퇴근하고 회사 근처로 와라.”

“정말요?”

“저번에 못 샀으니 오늘 사자. 와라.”

남편 회사 근처에 지하 쇼핑몰이 있어 핀을 파는 곳이 있나 돌아다녀 보았지만 옷 가게, 화장품 가게, 휴대폰 가게 등등 그 많은 가게가 있는데 핀을 파는 곳은 없더군요. 한 참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어디고?”

“지하상가요.”

“거긴 왜?”

“핀 가게 있나 싶어서....”

“일단 만나자. 올라 와.”

그렇게 만난 남편은 핀 가게가 없더라는 제 말에

“그럼 백화점에 가보자. 예전에 너 거기서 핀 샀던 적 있잖아. 진짜 옛날이다 그지? 예슬이가 어릴 때니까.”

그래서 백화점으로 갔는데 딱히 맘에 드는 것도 없거니와 왜 그리 비싼지요? 이건 좀 괜찮네, 하는 마음에 가격표를 보니 9만원. 남편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보니 이건 정말 아니다 싶고....

“얼마래? 그게 맘에 들어?”

“구 만원.”

“흐이그.”

남편의 표정이 압권이었답니다.ㅎㅎㅎ

“이건 별로에요. 산호랑 원석이라 무거워요. 무거운 거 딱 질색인 거 알잖아요. 그래도 한 번 꽂아는 봐야지.... 어때요?”

“내야 그런 거 잘 아나? 그저 핀 인갑다 싶지. 이쁘고 그런 거 잘 몰라. 니 맘에 드는 걸로 골라. 그게 맘에 들어?”

“별로.... 너무 화려하기도 하고....”

“말은 그렇게 하도 맘에 드는 모양인데?”

“일단 딴 거 찾아보고....”

백화점 매장 다 돌아봐도 사고 싶은 걸 고르지 못하자 남편이 그러더군요.

“꼭 사고 싶다면서? 그럼 밖에 나가보자. 밖에도 핀 파는 곳 많잖아.”   

그래서 이리저리 많은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결국 맘에도 들고 가격도 적당한 것을 고르지 못했답니다.

“됐어요. 그냥 집에 가요.”

“핀 사고 싶다면서?”

“됐어요. 핀 받은 것 보다 더 만족해요. 아까 전화했을 때 당신이 흔쾌히 사주겠다고 했던 거, 그리고 여기저기 예쁜 거 사주려고 따라 다녀준 거.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고마워요.”

“그래도.....”

“진짜에요. 오늘 당신이 보여 준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아침 운동 갔다 오면서 주워 온 핀(남편은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잘 주워오는 편이거든요.ㅎㅎ)으로 머리를 휘익 감아 올려 꽂고 거울을 보았습니다. 큰바위 얼굴이라 그런 지 업스타일을 하니 얼굴도 좀 작아 보이는 것이....

선물.....

연애하면서 처음으로 맞은 화이트데이에 남편은 두꺼운 대학 노트와 아주 맛이 없는 사탕을 선물했었어요. 푸하하. 그 사탕 진짜 맛이 없어 먹느라 고역이었답니다. 어머나~ 그게 20년도 넘었네요. 요즘은 가끔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놀라곤 한답니다. 대학노트에는 둘이서 같이 저희들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해 한동안 한 페이지씩 자신의 마음들을 적어갔던 추억이 있네요. 그 후 남편은 잊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챙겨주곤 했는데.... 상업적이다 어쩐다 말도 적지 않지만 남편과 저에게 이 두 날은 화려하고 값비싼 선물은 없었지만 늘 추억을 남겨주곤 했답니다. 올해 받은 남편의 따뜻한 마음도 두고두고 제 가슴에 남아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