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악!에서 에그 부끄러워라!
오늘 아침 거울을 보고 외친 비명입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것은 그래도 용서가 되는데 안경 아래 부분과 윗부분의 그을린 정도가 너무 다른 겁니다.
‘이럴 수가? 그렇게 놀러 다니면서도 열심히 바른 선 크림 덕분에 얼굴색이 크게 변하지 않았었는데 어제 하루, 아니 하루도 아닌 반나절 만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이야? 차라리 모자를 쓰지 말걸. 그랬더라면 얼굴 전체가 고르게 새까매졌을 텐데. 이게 뭐야. 개학도 다 되가는데.’
거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렸지만 어쩌겠습니까?
부득부득 모자를 쓰라고 했던 남편이 어찌 그리 원망스럽던지요. 잠시 들렀던 친구는 새까매진 얼굴, 게다가 아래 위 색이 다른 얼굴에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요?
시어머니의 몸빼 바지,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낡은 남방과 목에 걸친 수건, 색깔이라도 비슷한 것으로 신으려 애써 고른 양말, 구멍 난 모자.
허벅지 부분이 왜 저리 펑퍼짐 한 지 아십니까? 안 그래도 짧은 바지가 옆으로 당겨 더 짧아 보이는군요. 원래 제가 엉덩이와 허벅지가 엄청나기도 하지만 두 주머니 가득 풋고추가 들어 있거든요. 깻잎과 박, 그리고 복숭아만한 애호박을 들고 밭에서 막 집으로 돌아 온 저의 모습입니다.
남편의 휴가 계획 중 빠진 것이 바로 시댁에 가서 농사일을 거드는 것이었습니다.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일요일인 어제 가게 되었지요. 원래는 토요일부터 1박 2일 계획이었으나 예슬이가 친구와 약속이 있고 또 비가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토요일은 세 식구 집에서 빈둥거리기로 했습니다. 정빈이와 놀아주기는 늘 그렇듯 남편의 몫이었기에 사실 빈둥거리기는 저만의 특권(?)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카드놀이 중입니다.
한 사람이 20번 먼저 이길 때 까지 하기로 한 지라(정빈이의 일방적인 요구) 남편의 자세가 아주 불량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카드놀이가 끝나자 오목을 두고 있습니다.
저희 집 큰 바둑 판 기억하시죠? 누워서 하고 싶은 남편은 벽에 세워두었던 것을 바닥에 눕혔습니다. 하지만 바둑을 가르칠 때는 벌떡 일어나 앉아 아주 진지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정빈이와 저의 오목 대결에서 정빈이가 지면 남편이, 제가 지면 제가 저녁을 사기로 했는데 1:1에서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바둑 돌 9개로 제가 지는 바람에 저녁은 제가 한 턱 쏘게 되었는데 계산은 남편이 했습니다. 오전에 텔레비전 요리 프로에서 장어구이가 나왔었는데 정빈이가 꼭 그것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예산을 초과해 저의 지갑 사정을 아는 남편이 알아서 계산을 한 덕분에 저의 지갑 속 돈이 굳어지는 행운을. 정빈아, 고마워~~~.
정빈이는 요즘 식성이 많이 좋아져 가리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언니처럼 휴대폰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큰데 처음에는 언니처럼 중학교 3학년 1월 10일에 사주기로 했는데 남편이 언제라도 키가 170㎝가 되면 그날로 사준다고 했더니 키를 키우기 위해 아주 열심이랍니다. 이 일과 관련된 정빈이의 어록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빠 : 얼른 커. 170만 되면 무조건 사 줄거야.
정빈 : 그거 80만원이나 한대요. 카메라도 되고 엠피쓰리도 되는 거 살 건데 아버지 돈 있어요?
아빠 : 그건 아버지가 걱정할거고 얼른 키나 커.
갑자기 정빈이 얼굴이 웃음이 가득해지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정빈 : 키 170 됐다고 휴대폰 사러갔는데 키 재보니까 169밖에 안되고이. 키키. 아버지 땀땀땀
저희들 뒤집어 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해하셨죠? 키 170됐다고 해서 휴대폰 샀는데 사고 난 뒤 재보니 사실은 170 안되는 169라서 휴대폰 산 정빈이는 웃음이, 휴대폰 사준 남편은 땀이 뻘뻘 난다는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아직 허약체질인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오늘 아침 정빈이의 모습입니다.
어제 밤부터 아래 위 내복을 입기 시작했거든요.
제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거실 바닥에 뒹굴던 쿠션으로 얼굴을 가리더군요. 자동으로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습니다. ㅎㅎㅎ
정빈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정빈이가 아주 좋아하며 매일 휘두르는 요술 봉으로 커튼 봉이랍니다. 길이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카튼 봉을 거의 보물로 여긴답니다.
일요일 아침을 간단히 먹고 시댁으로 출발.
저희들이 간다는 전화에 어머니는 대문 앞에 나와 앉아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가장 먼저 아이들은 할머니 집을 청소를 했습니다.
남편이 거실을 쓸고 정빈이는 닦고.
거실을 제외한 곳은 예슬이의 몫.
예슬이가 무척 수고가 많았답니다. 이렇게 사진을 올리면 예슬이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올립니다. 예슬이는 저에게 늘 너무나 자랑스런 딸이라 많이 많이 자랑을 하고 싶거든요.
예슬이가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안다면 이해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세 사람 청소하는 동안 저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 바빠(?) 청소를 거들 수가 없었어요. 아마 이 광경을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보셨으면 한 마디 하셨을 텐데 시어머니는 저를 워낙 예뻐(?)하시는지라 그저 구경만 하셨어요.
저희 친정어머니 어떤 며느리 원하시느냐 묻는 말에 이러셨거든요.
“너 같은 것만 피하면 돼.”
가끔 혀를 차며 하시는 말씀.
“딸이니 내가 참지 며느리였으면….”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친정어머니는 딸과 다름없이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해주실 분이라 믿습니다.
5일장 갈 준비를 하면서 어머니의 비상금 숨겨두는 곳이 거실 에어컨 ×라는 것도 알아냈답니다. 정확한 위치야 절대 비밀이죠. 쉿!
남편과 셋이서 5일장에 갔는데 어머니는 제가 같이 간 것에 아주 좋아하시며 2,500원 짜리 소피국도 사주셨어요.
남편이 별 맛 없다며 말리는데도 어머니는
“예슬이 오마이 한 번 먹여 보려고 그래. 예전에 시장에 오면 잡채도 사먹고 소피국도 사먹고 그랬는데. 어떤노? 입에 맞으면 한 그릇 더 시켜주마.”
일단 너무 매워, 매운 것을 정빈이만큼도 못 먹는 저인지라 기침을 해대고 물을 몇 컵이나 먹었지만 맛있다며 열심히 먹는 저의 모습에 어머니는 아주 흐뭇해 하셨어요.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시장에 있었답니다. 저희들보다 늦게 도착한 두 분 아주버님으로부터 전화가 몇 통이나 왔었지 뭡니까? 시장에서 뭘 하느냐? 지금 오고 있는 중이냐?
점심을 먹고 해야 할 일은 큰 형님과 저는 고추 따기, 세 남자들은 콩 뽑아 집으로 가져오기.
정부미 포대에 거의 가득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아직 일이 덜 끝난 콩 뽑기를 돕는데 남편이 한 마디 하더군요.
“뿌리에 묻은 흙 잘 털어. 니 남편 어깨 부러질지 모르니.”
뽑은 콩을 밭에서 집으로 지게로 져 날라야 하는데 흙이 많이 묻어 있으면 무거우니 흙을 잘 털어내라는 거지요.
“그만하고 여기 와서 술이나 마시지?”
열심인 제가 기특하고 한편으로는 밤에 써야 할 원고 가 잔뜩 있다는 것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던 지 남편은 밭에 나오신 어머니께 막걸리를 따라드리며 농담까지. 어머니께서도
“넌 그만하고 집에 가거라.”
하시고 큰 형님도
“병나겠다. 죽을 것 같은 표정이네. 그만 집에 가”
하시는데 고맙기도 하고 일 안하는 며느리로 낙인찍힌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집에 돌아 와 저녁 준비를 해두고 식구들 밭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잠시 과학 공부도 좀 했답니다.
콩과 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의 공생이라는 이야기 들어 보셨을 겁니다.
콩과 식물과 흙속의 박테리아들은 공생, 그중에서도 서로가 이익을 주고받는 상리 공생의 관계에 있는데 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식물은 박테리아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것이지요.
보통 녹색의 식물들은 광합성을 통해 녹말을 만들지요. 단백질을 만들지는 못하는 이유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소가 필요한데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이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콩과 식물을 비롯한 몇 몇 식물은 뿌리에 공생하고 있는 박테리아 덕분에 질소를 흡수할 수 있어 그것으로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거지요. 박테리아가 직접 아미노산(단백질)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뿌리 부분을 더 크게 보면 동글동글한 것들이 보일 겁니다. 그 혹 속에 박테리아들이 살고 있는 것이지요.
신기한 것은 콩과식물이 질소를 고정하여 자신에게 제공하지 않는 박테리아에게는 산소 공급을 제한하여 성장을 방해해 서로간의 균형적인 공생 관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질소를 고정하여 식물에게 공급하지 않고 자신의 성장에만 쓰는 박테리아에게는 식물이 산소의 공급을 중단하여 버린다는 거죠. 이기적인 박테리아라고 판단되면 아주 냉정하다고 하네요.
공생을 이야기 하면서 좀 더 자세히 나누어 설명도 하고요.
‘공생’이라는 말은 전문 서적에 의하면 ‘다른 종의 생물이 서로 생리적으로 행동학적으로 깊은 연관을 맺으며 살아가는 관계로 이 정의에 따르면 기생 또한 공생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콩과 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처럼 서로가 이익을 주고받는 상리 공생, 숨이고기가 위험에 처하면 해삼의 몸속(배출강, 쉽게 말하면 항문 안)에 들어가 숨는 것처럼 숨이고기는 생명을 보호하는 이익을 얻지만 해삼은 아무런 이득도 그렇다고 해도 없는 것을 편리 공생이라고 해.”
그리고 기생과의 차이점도요.
“기생충이라는 말 들어 봤지? 기생은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한 쪽은 손해를 보는 관계를 이야기 해. 편리공생과의 차이점 알겠지? 속살이라는 게가 있는데 대합의 몸속에 살아. 그런데 대합의 몸에는 피해를 주지 않고 대합의 몸속으로 물이 들어 올 때 함께 들어 온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고 하거든. 물론 대합은 속살이가 몸에 있다고 해서 이익이 되는 것도 그렇다고 손해가 되는 것도 없다네. 뭘까?”
이런 시간을 보낸 것 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얼굴이 새까매져, 그것도 아래위가 다르게 새까매져버렸지 뭡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부끄럽네요.
어제 제가 겨우 반나절 보낸 시간이 매일의 삶인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분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들이 눈앞에 와 어른거리네요.
잠깐 모든 글을 지워버릴 까 하는 생각도 스쳤으나 이 글을 그대로 둠으로 해 편협하기 짝이 없는 저를 반성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의 휴가 중 제게 오늘 이 글을 쓰다가 마지막에 느낀 부끄러움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맨 위의 사진은 참으로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무슨 큰 일을 한 듯 찍은 저 사진에게서 느낀 부끄러움.
거울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던 순간이 낮뜨거워지는 순간.
처음 글을 쓸 때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진 맺음에...
사실 처음 이 글을 쓰면서 사진을 가져올 때는 자랑하고픈 마음이었습니다.
비록 반나절이지만 열심히 일한 저 자신에 대한.
하지만 누군들 열심이 살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뽀얗던 얼굴로 돌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 시간동안 마음의 키를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