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식을 안하고 맞은 방학 첫날
비가 참 많이도 내리더니 잠시 소강상태인 것 같네요.
무덥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날입니다.
다들 건강하신지요?
저는 오늘부터 방학입니다.
오늘 글 제목이 조금 이상하시겠지만 곧 이해하실 겁니다.
방학 첫 날 늘어지게 늦잠을 자야지 했는데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 덕에 몇 시간 공짜(?)로 얻어 컴퓨터 앞에 앉아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들을 했습니다.
원고도 쓰고 보호관찰소에 보내는 보고서도 써서 보내고, 필요한 자료들도 찾고.
칼럼에도 <맛있게 잘 먹자>에 글을 3개나 올렸고요.
방학을 맞아 저와 함께 수업한 다섯 학급의 공주들에게 쓴 편지도 올리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오늘 혼자 몹시 부산을 떨고 있는 중입니다.
학기말이라 바쁘기도 했지만 그동안 집에서 거의 노트북을 가방에서 꺼내지 조차 않았었거든요.
그러면서 이 학교로 전근 와서 한 학기를 보낸 저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지냈습니다.
작년에 비하면 일이 절반 이하로 줄었으니 조금 수월한 시간들이었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었기에.
작년에는 정말 강행군이었지요.
학교 선생으로서의 일 말고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방송 녹화를 했어야 했고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 원고 준비도 했었고 여기 저기 고정적으로 보내야 하는 원고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었거든요.
방송만을 위해 읽어야 하는 책만도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 권은 되었으니.... 지금 되돌아보면 어떻게 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까요.
작년과 달리 올해는 학교의 업무도 워낙에 한직(?)이라 바쁜 동료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인데 왜 그리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년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담임'이었습니다.
제가 작년에는 정빈이의 수술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비담임을 했었거든요.
서른다섯 명의 공주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이 있지요?
저희 반 공주들은 참 착하고 예쁘답니다.
저를 가장 기쁘게 해주는 것은 아이들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아이들과의 시간들이 그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는 것이 서툴다는 느낌.
그것이 가장 저를 힘들게 했나 봅니다.
중학교에서의 6년이라는 시간이 저를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의 눈 맞춤을 어렵게 한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그리 큰 이유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제 안의 문제인데....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더 쉬워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인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노력을 하지만 늘 아이들은 저 만치 달아나 있는 느낌.
제가 2학년 다섯 학급 수업을 하는데 저는 저희 반 공주들과 수업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비록 시험 점수는 꼴찌이지만 아이들이 차악~~~ 제게로 밀착되어 오는 느낌이 가장 강렬하거든요. 작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보여 주어도 호기심에 반짝이는 정도가 가장 크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메울 수 없는 큰 강이 가로 막혀 있다는 느낌.
50분 수업을 하고 난 뒤의 그 허전함이란....
종례를 하고 교실 문을 나설 때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기분....
서른다섯 명의 성적표의 가정 통신란의 글을 세 번이나 다시 썼었어요. 아이들에게는 몇 줄이지만 저는 그 속에 제가 본 아이를 잘 담아보리라 했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문득 부딪히는 막막한 벽.
'나는 이 아이를 제대로 알고나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저희 반은 아직 방학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종업식은 했지만 저희 반 종업식은 하지 않았지요.
내일 시내 서점에서 만나 저희 반만의 종업식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와 동아리 행사가 있다는 3명을 제외한 아이들과 모여 저희 반만의 종업식을 할 계획입니다.
아이들과 학교 밖에서 만나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아이들 곁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바램입니다.
머리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한 아이들, 살짝 살짝 화장도 하고 장신구도 마음껏 한, 자신의 개성을 살린 옷차림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면 저의 답답한 마음에 조금 숨통이 트일까요?
'하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이들의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과 마주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