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인천구치소에서 날아온 편지 한통이 준 감동

착한재벌샘정 2004. 6. 25. 16:18
 비가 참 구슬프게 내립니다.

흐느끼듯 온다고 해야할까요?

한 밤중의 산사에 비가 내리니 참으로 더 슬프더이다.

갑자기 일이 생겨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산사.

간간이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촛불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움직임.

고 김선일씨와 그 분의 부모님을 위해 마음을 모아 108배를 드렸습니다.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흐르는 얼굴 사이사이 촛불에 흔들리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촛불로 인해 만들어 진 제 그림자 옆에 서 있던 그림자 하나.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마침 방생일이라 아무도 없는 텅 빈 산사에서 혼자 108배를 올리고 있었는데 잠시 제 뒤에 서 있다 사라진 그림자.

 

108배가 끝나고 우리 탁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돌아오신 절 식구들은 어떻게 알고 늦게 왔냐고 일찍 왔으면 만나지 못할 뻔했다고 우리 탁이가 선생님 도왔나 보다 하시더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답니다. 오늘이 우리 탁이 아버지의 기일이랍니다.

작년까지는 우리 탁이가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절에 갔었는데 우리 탁이가 없으니 올해는 탁이 어머니께서 절에 가실거라고 하더군요. 절에서 지내는 제사라 비용은 어떻게 지불을 하느냐 물었더니 기일에 가서 드린다고 하더군요.

마침 어제 절에 가기로 한 지라 제가 작은 정성을 보태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했는데 계획했던 것처럼 퇴근길에 들렀으면 절에 아무도 안 계셔서 드리지 못하거나 밤 11시가 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을 텐데 마침 일이 생겨 늦게 가게 되었지요. 주지 스님은 그런 저를 반기시며 우리 탁이가 제 생각을 많이 하는 모양이라고 하셨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비가 오고 있어 힘든 운전이 무척 힘들었어요. 다른 날 보다 유난히 돌아오는 길이 슬프더군요.

이러지 않겠다 제 스스로 참으로 많은 다짐을 했건만.....

 

집에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너무나 느긋한 휴식 스케줄>

0625


‘열심히 일한 나에게 선물한 1년 동안의 세계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요.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슬픔과 통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하지만 또 다시 우린 기운을 내야 하잖아요. 우리 스스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 주며, 어깨를 다독여 주며.

하지만 어제 밤에는 그 누군가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저처럼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을거라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프고....

그러면서 펼친 책이었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책 읽는 몇 시간동안이라도 작은 휴식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샀는데 출판사 행사기간이라 덤으로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선물로 주더군요.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라 선배언니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작은 선물에 무척 기뻐하는 선배를 보니 제 마음이 더 행복했습니다. 이런 ‘작은 행복’ 아시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책 속 여행은 제게 많은 위안과 휴식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도 권하고 싶은 책이랍니다.

 

좋은 책을 권하는 기쁨도 쏠쏠하다는 거 아시죠?

오늘 저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자꾸만 좋은 거, 행복한 거, 기분 좋은 것을 선물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게 너무나 큰 선물이 도착을 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니 제 책상위에 편지 한통이 올려져 있었어요.

인천에서 온, 낯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어 의아한 마음으로 열어 보았는데 그 편지는 인천구치소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제 책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에 관한 소식을 접한 분이 보내신 편지였습니다. 빼곡히 세 장이나 되는 편지입니다.


0625-1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곳에서 여름을 맞이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었는데...>로 시작하는 편지.

 

<이렇게 펜을 들기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서두를 시작해야 하는 지... 또 선생님께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받아주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마저 듭니다>

 

이 편지를 보내신 분은 현직에 종사하고 계시는 조리사라고 합니다. 불행한 사고가 있어 지금은 그곳에 계시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그리고 노력이 대단한분이라는 것이 편지 곳곳에 베어 있답니다.

 

<10년 넘는 시간을 ‘일식’ 한 분야에서만 근무를 하다가 일본 현지 조리사 전문학교에서 조리의 기본이 되는 ‘원리 이론’을 좀 더 깊이 있게 수학 하고 나서 퓨전 요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조리사를 지망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단순히 맛을 내기 위함이 아닌 조리 원리를 이해하고 원리 이론을 통한 과학적인 학문으로 인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조리를 과학으로 다시 눈 뜨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제 뒤에 든든한 은사님이 한 분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5개월 전 세상을 뜨신 ×× 호텔 조리장이셨던 제 아버님께서 저를 키워주신, 그래서 아직도 제 가슴 깊은 곳에 살아계시는 .....>

 

<저는 지금 깊이 뉘우치며 칼을 잡고 다시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소망하고 있답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런 큰 기쁨을 이 편지로부터 얻고 어찌나 감동을 했는지 며칠 동안 흘린 슬픔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저에게 선생님의 저서 출간 소식은 정말 저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며칠동안 슬픔에 겨워하고 있는 저에게 너무나 큰 선물이기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 읽고 또 읽었답니다.

저도 편지로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빨리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인천구치소 홈페이지를 통해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곳에 글을 남기면 관리자를 통해 전해진다고 편지 마지막에 적혀 있었거든요.

 

제 책이 비록 그 분이 기대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요리’와 ‘과학’의 접목이라는 시도에서, 그로 인해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그 분의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그리고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그 분이 다시 사회에 나와 요리와 과학의 끈을 더욱 크게 이어주실 거라는 생각에.

 

그 분은 모르실겁니다. 자신의 편지 한통이 제게 얼마나 큰 감동과 용기를 주는 지를. 그러기에 그 분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이렇게 편지의 내용을 공개하는 거랍니다. 아마 그 분도 제가 받은 감동과 기쁨을 아신다면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마운 일이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저희 학교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주셨어요. 2학년, 10학급이 과학을 배우고 있는데 <요리로 만나는 과학교과서>가 각 반 학급 문고 책장에 꽂혔답니다.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답니다.

 

마지막 수업을 하는 반 아이들에게는 제가 직접 책을 전해주었는데 머리말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주고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 새 학기, 첫 과학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말만은 빠뜨리지 않고 꼭 한다.

“과학이란 우리 삶의 일부분이고 스스로 생각하고 직접해보아야 할 것이 많아 선생님은 과학이 정말 좋아요. 올 1년이 지나 선생님과 헤어질 때쯤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선생님과 함께 하는 과학 수업의 목표입니다.”

우리 집 두 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살아가는 곳곳에, 순간순간에 너무나 많은 과학이 함께 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기 바란다.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비단 과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야.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너는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엄마는 너희들이 과학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을 거라 믿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중략)

나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나와 우리 두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책에 이야기한 아이들에는 우리 경북여정의 2학년, 여러분들도 포함이 됩니다. 선생님에게는 여러분들이 소중한 딸이니까요. 여러분들이 과학을 통해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를 향해 있는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제 안의 슬픔을 곰삭이고 그를 밑거름으로 해 더 큰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