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착한재벌샘정 2004. 6. 19. 10:15

비가 억수같이 온다는 표현이 어울리게 쏟아 붓더니 거짓말처럼 개어 있습니다.

어제부터 오늘 강연회 준비를 해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비가 올 줄 알았나 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비가 오는 바람에 강의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으니 미리 준비를 했더라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을테니까요.ㅎㅎ

아침을 먹는데 정빈이가 걱정을 하더군요.

“오늘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해요?”

남편도 걱정이 되나봐요. 하지만 저는 반대였습니다.

“반대일수도 있어. 놀러 가려던 사람들 비가 와서 못가고 올수도 있거든.”

 

제가 이렇습니다. 제가 걱정을 하면 해결 될 일이라면 걱정을 하겠지만 강연회에 오고 안 오고는 제가 걱정해서 될 문제가 아니기에 저는 걱정을 안 한답니다. 그러면서 도리어 비가 와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강의는 오늘의 날씨에 맞추어 ‘비와 우산’이야기로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중력, 마찰력, 원심력, 관성, 기화열, 냉장고와 에어컨의 원리 등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제가 사실 유명한 연설가들이 강조하는 것 처럼 원고를 성의있게 꼼꼼히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큰 테두리만 정해두고 그 상황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람이라 이 정도만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아끼는 우산이 있는데 좋은 소품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강의 준비는 대충(?)해두고 칼럼을 쓰고 있는 이유가 있답니다. 자기 주장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했던 저희 반 미나 공주 기억하시죠?

미나가 오늘 저에게 강연회 잘하라는 편지가 적힌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최인호씨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입니다.

 

mom


 

저 지금 무척 행복하겠죠?

아침에 눈을 뜨니 친구와 제자들에게서 문자가 많이 와 있더군요. 어제 밤부터 날아온 문자들이었습니다. 폰이 꺼져있어 몰랐거든요. 모두 오늘 강연회 잘하라는 격려의 글들이었습니다. 그 글들로 인해 행복한 출발을 하였는데 학교에 오니 미나가 살며시 다가와서는 제게 책 한 권을 선물로 내미는 겁니다.

 

‘나는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로 보지 못하였고, 어머니의 고통과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비정한 자식이었다’는 글에서 저의 눈은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머니.....

칼럼 곳곳에서 제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왜 어머니라는 단어는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밀려올까요?

저를 과학 선생으로 만든 것은 어쩌면 100% 저희 어머니입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저를 사범대학에 보내기 위해 점쟁이에게 거짓말 사주를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었다는 이야기. 저는 그렇게 단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사범대학을, 더더욱 생각지 못했던 과학 선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저는 수업을 하던 중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질문 하나 해 주세요.”

“어떤 거요?”

“왜 과학이 좋으냐고 물어주세요.”

“과학이 왜 좋으세요?”

“과학이 좋은 이유는 내가 생각해 볼게 너무 많아서 좋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게 많아서 좋습니다. 이제까지 배운 것들 중 무엇을 가져와서 문제를 해결할까 궁리하는 것도, 그 중 몇 개를 선택해서 가져올 때의 짜릿함이랄까요? 한 가지 더 물어 봐주세요. 선생이라는 직업이 왜 좋으냐고?”

“왜 좋으세요?”

“변덕이 심하고 주의가 산만한 내 성격에 딱 어울리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

“선생이 참으로 변화 없는,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서른다섯 명의 아이들이 매 시간 아니, 매 순간 다른 모습 다른 반응들을 보여주니 얼마나 재미있어요. 주의가 산만한 것도 선생에게는 아주 장점으로 쓰인다니까요. 수업 시간 동안 서른다섯 명의 아이들을 다 살피면서 그 반응들을 보면서 수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은 늘 똑같은 것 같지만 선생님은 매일 매시간의 여러분들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보다 더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직업이 선생 말고 또 있을까요?”

 

한 때는 저의 꿈을 꺾었다는 이유로 많이도 원망했었던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저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고마운 분이시랍니다.

 

어머니....

책의 제목처럼 어머니가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머니는 내 속에서 그리고 내 아이들의 삶 속에 녹아 흘러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킬럼을 쓰려고 컴퓨터를 열었더니 메일이 엄청 와 있습니다.

전부 강연회 잘하라는 우리 반 공주들의 격려 메일이네요.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