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하지 마> 대신 <해보고 싶어? 한 번 해봐>

착한재벌샘정 2006. 6. 21. 19:55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에 아바타 꾸미기가 있지요. 정빈이도 아바타 수첩이 보물 중의 하나랍니다. 그렇게 손가락보다 작은 것으로 놀이를 하던 정빈이가 갑자기 이러는 겁니다.

“어머니, 어머니 옷으로 진짜 옷 꾸미기를 해도 되요?”

그 말을 하는 정빈이의 눈은 반짝였고 그 표정에는 이미 옷장에서 옷을 꺼내 이리저리 꾸며보는 자신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거 너무 재미있겠다. 예쁘게 코디해봐.”

“진짜 해도 되죠? 그리고 제가 꾸며 놓은 옷 입고 가야해요, 아셨죠?”

“당근이지. 우리 딸 솜씨를 한 번 볼까나? 이거 너무 기대되는데.....”

이렇게 하여 정빈이의 옷 꾸미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 하는 정빈이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네킹 하나 사야하는 거 아냐? 전문가적 솜씨를 발휘하려면 도구도 제대로 갖춰야 하는데...”

마네킹을 사야지 않겠냐는 말에 더더욱 신이 난 정빈이.

 

 

 

 

 

이리하여 완성된 작품 둘입니다.

 

 

 

세부적인 것을 좀 볼까요?

 

 

제가 참 좋아하는 엄청난 크기에 다들 놀라시는 꽃모양 목걸이와 창모자의 매치가 신선하죠?

 

 

게다가 스카프를 이용한 리본 벨트까지.


 

검은 티셔츠 위에 민소매 흰 블라우스를 조끼처럼 걸치고 남편의 벨트로 터프한 멋까지. 벨트 색과 가장 비슷하고 깜찍하라고 골랐다는 작은 백까지.

이정도면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전 어쩔 수 없는 팔불출입니다.)

 

이렇게 두 작품이 나오기 까지 집은 어찌 되었느냐고요? 한마디로 폭탄 맞은 것 같이 되었지요. 옷이라는 옷은 다 꺼내더니 필요 없다 결정된 것들은 둘둘 말아서 옷장 여기저기에 꾹꾹 쑤셔 넣거나 이리저리 자기 눈에만 안 보이는 것에 던져두었으니 말로 다 할 수 없게 되었지요. 액세서리 통도 다 쏟아지고 모자와 머플러도 있는 대로 다 나오고.... 거기에 어울리는 신발을 찾는다면서 신발장까지......

그런데 그 모든 것보다 더한 것은 자신의 작품이라고 치우지도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 잘된 것이라면 엄마가 꼭 입어야 한다지 뭡니까? 그래서 청바지와 코디된 것을 제가 자원봉사자 모임에 입고 나갔었답니다. 아, 무지 더운 날씨에 티셔츠에 블라우스까지 입으려니 정말 덥더구만요. 그래도 딸의 첫 작품이라 열심히 입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하나는 제가 입고 벗는 것으로 겨우 치우게 되었는데 남은 하나는 아직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치우지를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틀을 방바닥에 두고 건너다녔답니다.

물론 당장 치우라고 인상쓰고 말한다면 치우기야하겠지요. 하지만 처음으로 아바타놀이에서 벗어나 진짜 옷과 가장, 모자, 목걸이로 꾸며 본 것을 금방 치우는 아쉬움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하자 치우지 못하게 하는 정빈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좁은 방바닥에 펼쳐놓으니 불편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을 했더니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남편과 저 모두 정빈이의 작품을 지나다닐 때마다 멋진 코디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더니  어느 정도 만족을 했는지, 아니면 다른 거 또 꾸며보고 싶어서인 지 치워도 된다고 하더군요. 저희 안방이 제가 영화 '레드바이올린'을 보고 너무 욕심을 내서 산 엄청난 크기의 침대때문에 정말 공간이 별로 없거든요. 침대가 어찌 큰 지 가로로 네 사람이 다 자고도 남거든요. 아마 영화 레드바이올린을 본 사람은 저를 조금은 이해를 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ㅋㅋ 바이올린을 만든 장인의 사랑하는 아내가 누워있던 침대가 정말 무지 크고 높은 침대였거든요. 저희 침대도 무지 크면서도 높아서 키작은 사람은 누가 잡아 당겨줘야 올라가겠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랍니다. 어머나, 이야기가 어찌 이리 어뚱한 방향으로.... 그 침대사느라 남편에게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 네 식구 모두 같이 잘 수 있어 지금도 대만족이랍니다. ㅋㅋ

 

다시 하던 이야기로 갈게요. 

정빈이의 작품을 방에 펼쳐두고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셨다면 아마 저희 친정어머니 한 말씀 하셨을 겁니다.

“아도 더럽게도 키운다. 아가 치우지 말라한다고 그걸 타넘고 다닌다 말이가. 훌 치워버리면 그만이지. 세상에 저거만 아 키우는 듯이 유난을 떨기는.” 하셨을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아이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일단 해보라고 합니다. 제가 가장 안하는 말 중 하나가 <안돼>라고 친구는 입을 삐죽이며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겁이 없고 뭐든 해보고 싶어 하는 적극적이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캠코더도 디카도 언제든 아이들이 만지고 싶어 할 때마다 주었거든요. 가끔 친구들이 놀러와 저희 아이들이 캠코더로 집안 이곳저곳이나 자기들 장난감 등을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저런 것을 아이 손에 쥐어준다 펄쩍 뛰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당장 뺏으라고. 저러다 고장 나면 어쩌냐고.

“고장이 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런 적이 없는 걸 보니 아이들 능력이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 옆에서 어떻게 쓰는 것인지 잘 가르쳐주면 고장 안내고 얼마나 재미있어하는데. 그리고 고장 나면 수리하면 되잖아.”

그렇다보니 칼도 잘 쓰고 밥은 혼자서도 척척 잘한답니다. 잡곡밥을 싫어하는 정빈이는 쌀밥을 먹기 위해 제가 부엌에 들어가기 전에 쌀 씻어 밥을 해버리기도 한답니다.

사실 정빈이가 한나절 신나게 놀고 난 뒤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늘 손가락만한 아바타를 가지고 꾸미기 놀이를 하던 정빈이에게는 정말 더 없이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구겨진 옷도 방바닥의 작품을 타넘고 다녀야 하는 수고도 기꺼이 웃으며 할 수 있었습니다. 먼지 때문에 세탁을 해야 했지만 저는 손빨래를 싫어해서 웬만하면 세탁기에 두루룩 돌리는 사람이라 수고는 세탁기가 해주었고요.  

그러다 보니 저희 집 두 아이의 방과 앞 베란다는 정말 난리도 아니랍니다. 무슨 필요한 것들이 그렇게 많은 지, 다 놀 때 필요한 거라면서 버리지 못하게 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요.

 

아이들에게 <하지 마>라는 말 대신 <해보고 싶어? 한 번 해봐>라는 말을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 보세요. 아이는 훨씬 더 많이 행복해 한답니다.

정빈이는 장마철 엄마를 위한 새로운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조만간 정빈이의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인해 저희 집 옷장이 또 한 번의 대혼란을 겪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작품으로 출근을 하게 될 지 '기대만빵'이랍니다. 

그런데 남편은 은근히 걱정인가봐요.

"정빈아, 아버지는 전체말고 넥타이 정도만 코디해주면 안되겠니?"

이러는 걸 보면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