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카레라이스
“이런 거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지만 …, 뭘 하는, 그러니까 직업이 무엇인지 ….”
카레라이스를 하려고 돼지고기를 사러 갔더니 동네 정육점 주인이 참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느냐는 내 말에 아주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보통 고기 사러 오면 한 근이나 반근을 달라고 하던지 오천 원, 만원어치를 달라고 하는데 늘 몇 그램을 달라고 하시기에…. 언제 한 번 물어 봐야지 싶었어요. 궁금해서.”
그렇다. 나는 정육점에 가면 필요한 만큼의 고기 양을 정확히 이야기 한다. 카레라이스 할 거니까 돼지고기 200g을 달라고 하고 조금 넘거나 모자란다며 어쩔거냐고 물어오면 될 수 있으면 정확히 양을 맞추어 달라고 요구(?)하는 좀 까탈스러운 손님이었던 것이다.
“보통 조금 넘는다고 하면 그냥 달라고 하는데….”
어쩌면 그 말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적당히 가져가지 꼭 양을 맞춰달라는 유난을 떨기는 하는.
“게을러서 그래요. 카레 가루 한 봉지에는 고기가 200g이 적당한데 몇 천원어치로 사가면 집에 가서 저울로 다시 달아야 하니까 귀찮아서 여기서 정확한 양을 가져가려고요. 있는 저울에 정확히 달아 가면 편하잖아요. 손님 오는 날은 바쁘기도 하니까.”
“카레라이스로 손님을 친다고요?”
너무 성의 없는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고기를 건네주는 아주머니.
카레가루 봉지에 적힌 방법으로 간단히 만들 수도 있는 것이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손님 초대 음식으로도 결코 부족함 없는 요리가 되어 준다.
마늘을 볶아 향을 내고 사과와 토마토, 옥수수, 브로콜리를 넣은 달큰한 카레라이스와 김치 냉장고 덕에 아직 넉넉히 있는 신 김치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차림.
정말 간소하지만 화려함 마저 느껴진다. 이 때 화이트 와인 한 잔을 곁들인다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을 듯. 주부의 음식 만들기에 부담이 없어야 오는 손님도 즐거울 거라는 생각이다.
◇재료=카레가루 100g, 돼지고기 200g, 양파 1개, 당근 ½개, 감자 1개, 피망 1개, 사과 1개, 토마토 1개, 옥수수통조림 2큰술, 브로콜리 40g, 물 4컵(800cc)월계수 잎 1장, 올리브유, 소금과 후추, 생강즙 약간
◇만들기=①돼지고기는 1.5㎤ 정도로 큼직하게 썬 뒤 소금, 후추, 생강즙으로 버무려 둔다.
②카레가루를 풀어 둔다.
③양파, 당근, 감자, 피망도 돼지고기와 비슷한 크기로 썰어 둔다. 감자는 찬물에 담가 전분 기를 제거하고 물기를 뺀 뒤에 볶아야 들러붙지 않는다. 브로콜리도 적당한 크기로 떼어둔다.
④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고 볶다가 고기를 넣고 표면이 하얗게 되도록 익으면 양파, 당근, 감자, 피망을 넣고 볶는다.
⑤물을 넣고 끓으면 월계수 잎을 넣는다.
⑥가장 늦게 익는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풀어 둔 카레가루를 넣고 끓인다.
⑦사과, 토마토, 옥수수, 브로콜리를 넣어 끓인다. 사과와 토마토는 미리 썰어두지 말고 넣기 전에 썰어 넣는다.
⑧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⑨따뜻한 밥 위에 카레 소스를 얹어 낸다. 손님상일 때는 밥과 카레 소스를 따로 내는 것도 좋다.
2004년 5월 13일 매일신문 요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