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어찌나 낯설고 생소하던지요?

착한재벌샘정 2006. 4. 11. 01:45
봄비가 내렸어요.

저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되다보니 그동안 나무들이 많이 자라 봄, 여름, 가을이 모두 예쁘답니다. 그 중에 특히 요즘은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인해 정말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답니다.

보내야 할 신문사 원고가 있어 결국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되었어요. 컴퓨터 앞에 앉은 김에 블로그에 들렀답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저희 집의 아침은 조금 더 일찍 분주해졌어요. 학교가 바로 앞이라 늦잠(?)을 즐기던 예슬이가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저와 함께 요가를 시작했고, 정빈이도 6월에 있을 합주단 대회 준비로 평소보다 30분 일찍 등교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합주단 단복 때문에 난리 아닌 난리를 친 거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올해도 정빈이는 학교 합주단원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정빈이는 여전히 피아노,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하고 요즘은 리코더와 하모니카까지 불어대는 통에 정말 이러다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정말 하루 종일이랍니다. 심지어는 주말에 텔레비전을 볼 때에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한손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제발 좀 텔레비전 보는 동안만이라도 치지 말아 달라 사정을 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슬그머니 피아노 의자에 누운 뒤 발가락으로라도 띵동거리니 이거 정말 우리 같이 성질 좋은 가족 아니었음 어쩔 뻔했냐는 푸념만 해댈 수밖에요.

 

정빈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피아노 학원에 그만 다니고 싶니?”랍니다. 학교 특기적성을 바이올린에서 카이로봇만들기로 바꾸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함께 배우고 있는데 그곳에 못 가게 할까봐 겁을 슬슬 내거든요. 대구KBS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 가고 싶다고 졸라댔지만 표를 구하지 못해 얼마나 속상해 했는지 몰라요. 무료라서 그런 지 정말 빨리 매진이 되어버리더군요. 정빈이의 아쉽고 속상한 마음 풀어줄 수 있는 좋은 공연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정빈이는 이번 대회도 즐겁게 준비를 할 것 같아요.

 

예슬이 이야기도 궁금하시죠? ㅎㅎㅎ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예슬이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학교에서 야간자습을 10시까지 하고 오는데 오늘은 수학 문제를 정신없이 풀다보니 마치는 종이 치더라는군요.

지난 주 토요휴업일을 앞 둔 금요일 밤에는 12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거예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너무 열심히 보내고 나서 맞이하는 학교에 안가는 토요일, 쉴 수 있는 토요일을 생각하니 들뜨고 설레어 잠이 안 온다지 뭡니까?

 

2학년 올라와서 친 모의고사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은 모양입니다. 학교에서 우편으로 보냈다는데 아직 성적표가 집에 도착을 하지 않아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요.

“어머니 제 짝이랑 제 앞에 있는 애가 저보고 너 공부 잘 하는 아이구나, 하는 거 있죠? 어찌나 낯설고 생소하던지요?”

“넌 공부 잘 하잖어?”

“솔직히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보잖아요.”

“이제 정말 너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하는 거야. 어머니는 진작에부터 너의 그런 능력을 알고 있었거든. 그동안 다지고 쌓았던 것들이 성적으로도 나타나는 모양이야. 너 정말 열심히 하고 있잖아.”

 

예슬이는 친구들의 그 말이 참으로 큰 성취감과 동기 부여가 되나 봅니다. 공부만 하던 예슬이가 건강까지 챙기겠다며, 건강해야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너무도 좋아하는 잠을 한 시간이나 줄이면서 아침 운동을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방학 동안 건강 때문에 두 달 동안 열심히 요가를 배우러 다녔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지난 토요일에는 예슬이와 둘이서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았습니다. 정빈이는 목판만들기 체험학습에 가고 남편은 회사일로 집을 비운지라 모처럼만에 예슬이와 단둘의 달콤한 데이트를 즐겼답니다. 이제는 제가 올려다보아야 하게 커버린 딸, 품안에 안고 같이 살날도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예슬이와의 시간 시간들이 어찌 그리 짜안~~ 한지요.

 

토요일 하루를 둘이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답니다. 영화속의 아버지처럼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답니다. 엘리자베스가 언니나 동생과는 달리 다아시의  청혼을 받고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아버지의 서재로 찾아가 대화하는 장면은 정말 감명 깊었어요. 그리고 옆에 앉은 예슬이가 한 번 더 고마웠답니다. 지금도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슬이거든요. 친구 이야기도 곧 잘한답니다. 초등학교 동창 남학생이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 할머니 댁에 갔다가 우연히 만나 동창 남학생이 예슬이의 키에 놀라며 상처 받은 것 같더라는 이야기, 학교생활에 대해서도요. 가끔씩은 석식시간에 문자를 보내옵니다. 배 아프다는 둥. 어쩔까 데리러 갈까 물어보면 괜히 투정이라고, 그냥 엄마에게 응석부려보는 거라는 답을 보내오지 뭡니까. 이렇게 저와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은 예슬이가 참 고마워요.

 

예슬이는 요즘은 학교 공부 외에 인터넷으로 30분씩 영어 강의를 듣고 있는 중입니다. 문과인 예슬이는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지만 영어에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 저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그날 읽은 책이야기, 영어 신문에 난 기사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휴식을 좀 취하고 강의 듣고 나면 밤 12시가 다 되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답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아침에 갈 때마다 그날 읽을 책을 챙겨주면 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읽어 오고 집에 와서 쉬면서 저와 책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요. 요즘은 철학과 고전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내일, 아니 오늘  예슬이가 읽을 책은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의 기원’입니다.

 

제가 정빈이 일찍 재우느라 같이 자다가 예슬이 돌아오는 시간에 다시 일어나고 하다보니 집에서의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모를 정도랍니다. 아, 잠이 오기 시작하네요. 그래도 이 이야기는 하고 자러가야겠어요. ㅎㅎ

 

일요일에 예슬이와 제가 함께 읽은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뭇잎을 타고 강물에 떠내려가던 세 마리의 개구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가 결심한 듯 더워서 강물로 뛰어 들겠다고 말을 하지요.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뭇잎 위에 남은 개구리가 몇 마리이냐고? 두 마리라고 대답하면 미안하지만 틀렸다고. 여전히 세 마리라고.

물에 뛰어 들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물에 뛰어드는 ‘실천’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거라고 말하더군요. 월요일 학교에 그 책을 가지고 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읽어 주고 그 책의 내용을 소개를 했지요. 과학 선생님이 무슨 책이야기지? 개구리가 나와서 그런가?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아이들에게 결심과 실천의 차이를 이야기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도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라고 바꿔 말해야 한다고 쓰여 있더군요.

개구리가 시원한 강물로 뛰어 들면 나뭇잎 위의 편안함은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겠지요.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헤엄을 쳐야하니까요. 하지만 강물의 흐름에 의해 떠내려가는 나뭇잎과는 달리 자신이 가고자 원하는 방향으로 헤엄쳐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