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아이 잘 키우려면 5세 이전엔 TV를 꺼라(미즈엔인터뷰)
착한재벌샘정
2004. 5. 14. 15:13
| “친구들이 저더러 ‘의지의 한국인’이라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살 수 있는지 궁금하대요. 일단 실천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대구에 사는 고등학교 과학교사 이영미씨네 아이들은 주중에는 으레 텔레비전을 안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말에만 온 가족이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때도 어떤 프로그램을 볼 것인지 같이 상의해 결정해서 그 시간만 텔레비전을 보고 끈다.
9살, 15살의 두 자녀를 키우며 느낀 어린이 교육에 대해 책(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킨다, 가야넷)을 펴내기도 한 이씨는 ‘텔레비전 시청은 습관이라서 누구나 마음먹고 노력하면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텔레비전을 안 보면 시간이 얼마나 많아지는데요. 퇴근해서 저녁 먹고 드라마 두어 개 보면 다 가버리는 저녁 시간을 가족들이 함께 보내기도 하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는 알찬 시간으로 남게 되지요.”
둘째 정빈이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학교만 다니고 학원 안 가는 아이다. 학원도 안 가고 텔레비전도 안 보면 긴긴 오후 시간에 아이가 무얼 하느냐고? 정빈이는 무궁무진하게 노는 방법을 스스로 계발해냈다. 정빈이가 만들어낸 놀이로 동네아이들과 어울리고 있으면 ‘애들답게 논다’고 이웃 엄마들도 흐뭇해한다. |
| | 5세 이전엔 ‘부모와의 관계’ 맺기가 더 중요 | |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서영숙 교수는 “아이들이 어릴 때는 TV를 보는 시간을 되도록 줄이고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중요한 것, 즉 부모와 자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에 집중해야한다”고 말한다. 흔히 텔레비전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프로그램이 정서에 미치는 해악’을 이야기하거나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야기하는 수동적 사고’를 거론한다. 따라서 “그렇다면 좋은 프로그램을 골라 보면 될 것 아니냐”라는 ‘TV 유용론’도 등장할 수 있다.
10년 전부터 ‘TV 안보기 주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 교수는 “나쁘고 좋은 프로그램을 구분하기 이전에 문제는 5세 이전, 아이들의 사회성이 발달할 시기에 TV가 뺏어가는 시간”이라고 지적한다.
대체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인 5세 무렵부터 스스로 텔레비전을 보겠다는 주장이 나타나고 그 이전에는 부모들이 아이를 조용히 붙들어두기 위해 TV를 켜두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때가 아이가 부모와의 눈 맞춤, 놀이와 말하기, 신체접촉 등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타인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 때 아이가 부모와의 놀이, 대화하기보다 TV에 빠지면 ‘관계 맺기’의 기본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기본적인 관계가 약해지면 나아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자기를 주장하고 사랑받도록 노력’하는 사회성 발달이 늦어진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어린이가 하루 2시간 이상 TV를 보면 안 되고 특히 2세 이하에게는 TV 시청을 차단하라”고 경고한다. 어릴 적에 독서, 놀이, 대화시간 대신에 TV를 많이 본 아이들은 집중력이 약하고 사고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소아정신과의 신의진 교수(연세대)도 “TV나 컴퓨터는 간접경험인데 아이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머리에 남긴다. 수동적으로 TV를 통해 지식을 접하다보면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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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은 못 보게 하고 부모만 본다? | |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에게는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장난감을 갖고 놀고 부모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며 뛰어노는 습관을 키워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TV를 켜주곤 하면서 시청자를 만들어 놓고 초등학교에 가서 자기주장이 강해진 후에 “이제 공부해야하니 TV 보지마라”고 하면 그 말이 먹힐 턱이 없다.
이영미씨는 두 아이가 어릴 적에 집에서 TV를 안 보게 하기 위해 식구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직장에 가 있는 시간에 아이를 봐주시던 어머니가 “딸네 집에 와서 애봐주면서 텔레비전도 맘대로 못 보냐”고 푸념하셨고 그러자 남편도 “사실은 나도 집에 와서 TV 좀 보고 싶은데”라며 은근히 가세했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부모 노력이 필요한 때가 지금 10년 정도이고 그 다음에는 해줄 것이 없다. 이 시기만 아이한테 투자하는 셈으로 참아 달라”고 요청했다. 식구들도 이씨의 뜻을 이해했고 할머니나 아빠가 꼭 보고 싶어 하는 드라마가 있을 때는 이씨가 아이들을 방에 데려가서 함께 책을 보거나 만들기를 하며 놀아줬다.
“어른이 자기들은 TV 켜놓고 드라마 보면서 애들보고, ‘너희는 보면 안 되니까 방에 들어가라’는 식으로 나오면 아무 효과 없습니다. TV를 안 보는 대신 부모가 아이들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이씨는 만화를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게 된 아이를 위해 두꺼운 그리스 로마신화 책을 사서 밤마다 읽어줬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거나 만들기 놀이를 같이 해주면 아이들은 TV를 굳이 찾지 않는다.
서영숙 교수도 “아이들의 즐거움의 원천이 부모에게 있고, 부모는 ‘권위 있고 배우고 닮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 TV를 못 보게 하는 가짜 권위 말고 진정 사랑받고 존중받는 부모가 되려면 같이 TV를 끄고 시간을 함께 보내라”고 권한다. |
| | TV, 아이들 교육에 도움되는 ‘공부상자’ 만드는 법 | | 아예 집 안에 TV를 들여놓지 않는 이상 아이들에게 전혀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할 수는 없다. 또 TV 속에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계발하고 창의력을 자극하는 좋은 프로그램들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방법은 처음부터 아이들과 TV시청에 관한 규칙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TV를 늘 켜놓지 말고 ‘부모와 함께 봐도 될’ 프로그램을 아이들과 의논해서 미리 정해놓는다. 보기로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까지 TV를 끄고 각자 할 일을 하거나 같이 노는 시간을 갖는다.
필요한 것만 취하고 시간을 조절하는 자제력이 필요한 건 TV나 컴퓨터 이용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와 정보만 이끌어내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둔다.
- 케이블 TV와 리모트 컨트롤을 없앤다 -
TV나 컴퓨터나 앞에 계속 붙어있다 한없이 빠져들기는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이씨는 아이들이 “만화 채널이 보고 싶으니 우리도 케이블 채널을 달자”고 요구하자 “케이블 TV가 있으면 엄마도 유혹을 이길 자신이 없다”고 달랬다.
‘케이블 안 달면 TV가 안나온다’던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집요하게 추궁해서 ‘개별적으로 안 달 수도 있다’는 실토를 받아냈고 이웃 중에서도 원하지 않는 집은 케이블을 끊게 됐다.
신의진 교수는 부모가 없을 때 아이들끼리 집에서 TV를 보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정해뒀다. 함께 볼 때도 한 프로그램에 집중하지 않고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아예 리모트 콘트롤을 없애버렸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습관을 잘 들여놓으면 고학년이 되면서 TV보다 더 재미있는 걸 스스로 찾아내고 그 다음부터는 자율적으로 TV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 TV 프로그램의 연령제한 표시를 이용한다 -
이영미씨는 프로그램마다 붙어 나오는 연령제한 숫자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9살인 둘째 정빈이는 텔레비전에서 12, 또는 15의 숫자가 나오면 “이건 내가 보면 안 되는 거네”라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안다.
“부모가 작은 규정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연령제한 표시는 ‘나 좋을 대로 하면 그만’이 아니라 다소 불편해도 작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
- TV속 화제에 대한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찾아준다 -
아이가 TV를 안 봐서 다른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될까 걱정된다면? 이씨는 TV에서 시청률 높은 사극을 하면 그와 관련된 위인전을 사줘 읽게 했다. 위인전이라면 재미없어 하던 큰 아이도 ‘반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다 얘기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위인전을 독파했고 그 다음부터 위인전도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TV에 나오는 정보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더 알찬 내용을 얻을 수 있는 길인 ‘독서'로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 오진영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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