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촛불 문화 축제를 다녀와서
얼마 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출세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받았었어요. 그 때 제가 한 대답입니다.
출세라....
솔직히 저는 한 때 정치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저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접었지만 교실에 앉아 있는 35명의 아이들을 저의 국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그들을 위한 정책을 구상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486세대'
결코 정치에 무심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 온 사람이지만 최근의 저는 솔직히 그러지 못했었습니다.
우리 탁이 그렇게 갑자기 보내고, 3월 13일에는 같은 교무실에 있는 선배 언니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마흔 일곱의 나이로 아홉 살, 여섯 살 두 딸과 아내만 남겨둔 너무나 갑작스런 죽음.
아침에 언니를 학교 앞에 데려다 주고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출근하여 교무회의까지 했다는데 그분은 언니에게 이별의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안겨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통곡하는 언니에게 저는 정말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빠가 구구단을 다 외우면 래미 목걸이를 사준다고 했다며 아빠의 죽음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작은 아이에게 아빠를 대신 해 래미 목걸이를 사주고, 장지까지 함께 해주고 병가를 내어 쉬고 있는 언니를 한 번 찾아가고 우리 아파트로 이사오라며 부동산 찾아가 팔려고 나온 집이 있나 알아 봐 준 것.
이것이 제가 언니에게 해 준 전부네요.
그러면서 우리 탁이 생각 더 나서 더 자주 울고 더 자주 잠을 설치는 시간을 보냈으니 결국 언니의 슬픔을 나누기는커녕 제 슬픔에 겨워 보낸 시간이었던 거죠. 그렇게 저는 제 슬픔에 겨워 있느라 참으로 무심한 사람으로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시내에서 열리는 '촛불 문화 축제'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이제는 체중이 많이 늘어 꽤 무거워진 정빈이를 업고 행진을 하느라 관절염이 있어 상태가 좋지 않은 손가락에 이상이 생겼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 손가락 다 쓰지 않는 독수리인 제가 왼쪽 손가락에 통증이 너무 심해 오른손과 왼쪽 손 검지만으로 글을 쓰려니 쉽지가 않아 아마도 오늘은 글이 평소와는 달리 짧아 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저는 예슬이에게 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달라고 부탁을 했고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활짝 웃었습니다.
뭐 그리 좋은 일이 있어 이렇듯 웃었느냐고요?
아이에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이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안 그래도 큰 바위 얼굴인 저를 예슬이가 너무 곁에서 찍었더니 얼굴이 사진을 꽉 채우고도 넘치네요. ㅎㅎㅎ. 쬐끔 부담스럽더라도 참아주세요.)
그동안 우리 정치와 관련하여 너무도 많은 사진을 아이는 보았을 겁니다. 분노하고 싸우고 절망하는 모습들이 담긴 사진들.
하지만 우리들의 작은 참여와 행동들이 언젠가는 좋은 세상을 가져오리라는 희망이 되는 밑거름이라는 것을, 우리가 하는 이 작은 행동들이 힘겨운 몸짓이 아니라 희망에 겨운 몸짓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촛불 시위'에서 '촛불 문화 축제'로 이름이 바뀐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절망의 미래가 아닌 희망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저는 아이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던 겁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늘 너를 여기에 데리고 함께 온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야. 참여하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슬이에게 한 말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짧은 말로도 제 뜻을 전할 수 있을 만큼 자라 준 예슬이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슬이가 정치를 얼마나 안다고? 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텔레비전 속에서 신문에서만 정치를 만나게 할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 함께 하는 기회를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해 가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그곳에 갔을 테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하게 되겠지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생각과 판단 기준이 치우치면 어쩌나 하는 기우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우 강압(?)적인 부모님이 계시지만 저와 제 부모님의 정치에 관한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그렇듯 저희 아이들 또한 자신들의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