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직접 해보니까 정말 너무 좋아

착한재벌샘정 2004. 3. 2. 19:39

"지원아,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게."
"뭔데?"
정빈이와 오늘은 또 어떤 것을 할까를 기대하는 지원이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지켜보는 내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번져왔다. 둘은 거의 매일 붙어살다시피 하는 단짝 친구이다.

"이 종이가 거름종이거든. 여기에 사인펜으로 점을 찍고, 이때 주의할 쩜"
주의할 점에 어찌나 힘을 주었던 지 지원이와 나 둘 다 깜짝 놀랬다.
"끝에서 내 손가락 한 마디 쯤에 점을 찍어야 되고 점을 한 번 만 찍지 말고 한 번 찍고 조금 있다 또 한 번, 이렇게 몇 번 찍어서 아주 찐하게 해야 해."
"그 다음에"
지원이가 조바심이 난 표정으로 채근을 했다.

"주의 할 쩜, 또 한 가지.
"또 주의할 점이야?"
"과학 실험을 할 때는 주의 할 점이 아주 많다, 이 말씀. 정확하게 해야 실험이 잘 되거든, 그렇죠 어머니?"
정빈이는 아주 의기양양해져서 내게 동의를 구했다.

"과학 실험이든 요리든 정확하게 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 있으면 지켜주어야 해. 위험할 수도 있고 작은 것을 무시해서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으니까."
"또 뭘 주의해야 하는데?"
"점이 있는 부분까지 가위로 자르고, 이때도 주의할 점. 점이 있는데 까지 다 자르면 안 돼. 이렇게 자르고 나서 요기를 접고 물이 담긴 컵 위에 얹으면 신기한 게 나타나는데 이 때 또 주의할 점. 점이 물 속에 들어가지 않게 해야 돼. 진짜 주의할 점 많지?"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봐봐. 물이 올라가면서 색깔이 나타나는데 사랑표처럼 된다."
"우와, 진짜다. 색깔도 많아지네!"
지원이는 손뼉까지 쳐가며 감탄을 하고 그 곁에선 정빈이는 몸 전체가 굳을 정도로 의기양양해져 있다.

"색깔이 진짜 많지? 내가 검은 색 사인펜만 찍었는데 그 속에 이렇게 많은 색이 숨어 있는 거래."
"너무 신기하다. 보라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자세히 보면 빨간색, 파란색도 있다. 이걸 크, 크…크 뭐랬는데. 어머니 이걸 뭐라고 한다고 했어요?"
"크로마토그래피."
"맞다. 크로마토그래피. 이름이 어려워 잘 기억할 수가 없어요. 이거 왜 이렇게 되는 지 아니?"
"아니, 몰라."
"사실은 나도 몰라. 이야기는 들었는데 잊어버렸어. 그래도 신기하지?"
"응. 나도 해 보고 싶어."
"그래, 해 봐. 거름종이 한 장 더 꺼내 올게."


 

주방 서랍에서 거름종이를 꺼내주며 자기가 말한 주의할 점을 꼭 지켜야 한다고 당부를 하는 정빈이와 종이와 사인펜을 받아들고서는 손가락으로 점을 찍을 위치를 정하느라 긴장하고 고심하는 지원이의 모습에 너무 흐뭇했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쑥쑥 자란다는 것을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17년의 세월 동안 과학교사로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웠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경험의 기회를 주고자 한다.

 

내가 사진 작업을 좋아하다 보니 우리 집에는 여러 종류의 카메라와 캠코더가 있는데 그것들 또한 아이들이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그것도 동네아이들에게까지.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며 깔깔거리고 캠코더로 서로를 인터뷰하고 가족들 인터뷰할 때 필요한 질문까지 적어 연습하며 노는 아이들. 우리 동네 소개하는 작품(?)을 찍는다며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아이.

 

"아홉 살짜리에게 저런 거 줘도 괜찮아? 우리 집에서는 절대 못 만지게 하는데. 우리 애가 정빈이네 집에 오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이유를 알 것 같네. 저렇게 마음껏 가지고 놀게 해주다니. 그래서 그런 지 우리 아이가 말도 잘하고 특히 자신감이 부쩍 는 것 같아. 하루 종일 놀아도 새로운 것이 있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정빈이네 집에 못 가는 날은 애가 얼굴이 다르다니까."

"정빈이하고 놀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게 비디오 안보고 컴퓨터 한다는 소리 잘 안 하고. 그런 거 안 해도 놀게 무궁무진 하니까."

 

"일기랑 독서감상문 쓰기는 말 안 해도 알아서 하기에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빈이가 그걸 놀이로 생각하고 하니까 우리 아이도 따라 하다보니 저절로 습관이 붙은 것 같아. 정빈이는 뭐든 재미있는 놀이로 만들어 놓는데는 재주가 대단한 것 같아."

우리 집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놀면서 아이가 자라고 배우는 게 많다는 것에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는 아이의 엄마.

 

아이들은 스스로 많은 것을 경험할수록 그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낸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생각은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새롭다.

서로의 모습을 그려주며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자신들의 그림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며 재미있어하고 읽은 책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보면서 글 쓰기를 놀이로 생각하며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연극할 대본을 직접 써서 서로에게 연기 지도를 해가며 한 편의 멋진 연극을 완성하기도 하고, 집안 구석에 나뒹구는 건전지 통으로 나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해낼 휴대폰을 만들고, 놀이에 필요한 소품들을 만들기 위해 종이 접기 책 두 권에 있는 만들기 과정을 터득하는 놀라운 능력도 발휘한다.

 

자신들의 다양한 놀이에 필요한 것이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과정이 있어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결국은 만들기에 성공하는 집념을 보여주는 아이들.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 이거 만들어 주세요'라는 말이 필요 없는, '우리가 만들면 돼', '못해도 해 보면 된다니까', '우리 힘으로 해 보자'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그 아이들의 홀로 서기를 도와주는 길이라 생각한다. 언제까지 부모가 곁에서 도와주고 챙겨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떤 부모에겐들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자식이 있겠는가. 한없이 품에 도듬고 있으며 일일이 챙겨주고 도와 주고 싶은 소중한 아이들이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느긋해지려 한다. 

 

그들은 아주 많이 서툴고 미성숙하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무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어 스스로 부딪혀 보고 실패도 해보고 해냈다는 기쁨도 맛볼 수 있도록 한 걸음만, 정말 조금만 떨어져 기다려 주는 내가 되어보자 다짐하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주인이 되어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앞에서 일방적으로 끌어주는 것보다는 뒤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봐 주는 든든함이 아닐까?     

 

그들의 서툰 몸짓에 조급함으로 내가 대신 해주기보단 스스로 해보겠다는 그들의 의지와 열정에 찬사와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조금씩의 변화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내가 되고자 한다.

3월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또 하나의 시작의 달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때 만 교회에 나갔던 나이지만 엄마로서 선생으로서 성경 말씀 중 이 말을 좋아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아이들의 새로운 출발에 부모의 믿음만큼 든든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스스로의 생각, 행동, 실패, 성취 등을 통해 쑥쑥 자라, 우리 아이들의 나중이 심히 창대하기를 바란다. 

"어머니, 오늘은 63쪽 과일 얼음 과자 만들기를 하고 싶어요."
정빈이 손에는 정빈이와 내가 함께 아끼는 아주 긴 제목의 요리 책, <아이를 행복하고 당당하게 키우는 아주 특별한 교육 요리놀이 29가지>가 들려져 있다. 필요한 재료들이 무엇인가를 챙기며 아이가 활짝 웃으면 한 마디 한다.

"내가 직접 해보는 게 정말 좋아요."

 

▣ <아주 특별한 교육 요리놀이 29가지>는 어떤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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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인터뷰에서 아이를 위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무 엇이냐기에 잘 놀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열심히 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노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잘 놀기를 바란다. 신나고 재미있게.

 

 놀면서 공부까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물어 오는 엄마들에게 권하는 1순위가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주방이라는 공간을 놀이와 학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멋진 곳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신나게 놀고 배움까지 듬뿍 얻을 수 있는 비법(?)이 담긴 책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게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해 줘야 해야 할까, 그리고 아이들의 질문에 척척 대답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는 두 가지 바램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책이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하면서 <엄마는 이런 질문을 하세요>, <학습포인트>, <요리 포인트>, <재미있는 놀이>, <알아봅시다>등이 있어  엄마들에게는 보석과 같은 책이라 소개하곤 한다.  

조개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기에는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다. 
"조개를 왜 소금에 담가 놓을까?", "조개의 생김새를 살펴보자", "조개의 종류를 알아보자", "산조개와 죽은 조개는 어떻게 구별할까", "조개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무엇이 있을까", "조개가 익었을 때의 변화" 등의 엄마의 질문을 소개해두었고, "조개가 되어 보자", "조개 껍질에 그림 그리기", "조개껍질 목걸이 만들기" 등의 재미있는 조개 놀이를, 놀이포인트에서는 바지락조개놀이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두었다.

 

그 외에도 책 중간에 요리 기구, 요리 방법 등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유익한 정보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기초로 하여 집에서 즐겨 먹는 요리로 우리 집만의 요리 놀이 책을 만들어 보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2004년 3월 책나무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