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들

서른 다섯명의 공주들을 기다리며

착한재벌샘정 2004. 3. 2. 00:43

3월 2일, 오늘부터 새 학교인 경북여자정보고등학교로 출근을 합니다. 

이 봄은 제게 정말 많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 해 2학년 9반 담임을 맡게 되었고 서른 다섯명의 공주들을 새로 만나게 됩니다. 이 학교는 제가 작년까지 근무했던 중학교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진학한 학교이기에 아마 제가 가르치고 담임을 했던 아이들을 몇 년만에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올해 만하더라도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 학교 신입생으로 오늘 입학식을 하러 오는데 그 중 제가 담임을 했었던 아이들이 꽤 있거든요.

2학년에도 아마 중학교 때 저희 반이었던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아는 아이들만 기다려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5학급의 과학을 맡게 되었으니 많은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겠지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첫 편지를 쓰다 칼럼에 우리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위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방 하나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쓴 첫 편지를 올리는 것으로 '서른 다섯명의 공주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 공주들과의 많은 이야기들이 이곳을 통해 여러분들께 전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편지에는 '공주'라는 말 대신 '아가씨'라 썼지만 저는 '공주'라는 말을 참 좋아하기에 여기서는 공주들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물론 우리 공주들이 싫다면야 바꾸어야겠지요.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될까요?ㅎㅎㅎ

 

우리 예쁜 공주들의 모습,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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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9반이라는 운명으로 만난 아가씨들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오랫동안 중학교 동생들과 생활하다 갑자기 고등학교 2학년의 아가씨들을 만난다니 정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모르겠다.


서른 다섯 명의 아가씨들, 사실 어떻게 불러야 좋아할지를 몰라서 말이야.

동생들에게는 늘 '공주'라 불렀었거든.

너희들을 그렇게 부르면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나는 '공주'라는 말을 참 좋아해.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여왕'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너희들이 좋아하는 호칭으로 부르고 싶어. 그러니 좋은 말을 생각해 보렴. 그 동안은 '아가씨들'이라 부를게.

 

우리 아가씨들은 어떤 모습들일까 설레며 첫 편지를 쓴다.
난 과학 선생이지만 운명이라는 것을 믿거든.

그리고 운명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해.

그래서 편지의 첫 머리에도 운명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우리 아가씨들과의 1년도 좋은 운명에 의한 만남이리라 믿어.

 

아직 우린 서로를 모르니 많은 것을 차차 알아가면서 의논하면서 가기로 하고 몇 가지만 선생님 혼자 생각한 것을 이야기 해 볼게.

먼저 우리 반 급훈.

급훈은 우리 아가씨들과 학급 회의를 통해 정하는 것도 좋지만 선생님이 생각한 것을 말해 볼게.

 

『짱이 되자!』

너무 가볍고 유행을 타는 것 같지만 우리 모두 나름대로의 짱이 되어보자는 이야기야.

 

건강한 몸짱도 괜찮고, 공부짱, 절약짱, 부지런짱, 게임짱, 미소짱, 마음짱, 봉사짱, 친절짱, 요리짱, 자격증짱, 청소짱, 도움주기짱, 예쁜글씨짱, 얼짱, 컴짱, 운동짱, 깔끔짱, 약속짱, 노래짱, 춤짱, 등등.

 

이렇게 적고 보니 선생님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 조금 창피하기도하네. 정말 많을 텐데 고작 이것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다니. 좀 고리타분하지?

 

우리 아가씨들의 핑핑 돌아가는 좋은 머리로 멋진 짱들을 만들어내어 선생님 코를 더욱 납작하게 해줘.

 

자존심 상하고 분하기는 하겠지만 우리 아가씨들의 능력을 보는 것은 그걸 능가하는 기분 좋은 일일 테니까.
급훈으로 괜찮을 것 같지 않니?

 

선생님은 우리 아가씨들의 개인적인 목표 짱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우리 반 전체의 목표 짱은 '꿈짱'이었으면 해.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야.

 

모델이 되고 싶은 사람은 팔다리를 길고 날씬하게 만들기 위해 운동 열심히 해야겠지? 자격증을 딸 사람은 열심히 준비를 해야할 거고,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공부 열심히 해야 할거고.

선생님은 우리 아가씨들에게서 '영미쌤짱'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목표로 정했어.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거 알아.

열심히 할 테니 마음을 열고 보여지는 그대로의 선생님을 받아주기를 바랄게.

 

시간이 흘러 헤어질 때쯤 우리 아가씨들의 허심탄회한 평가를 받게 되겠지.

그 때 공정하게 선생님을 평가해 주기 위해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래.

 

'난 우리 선생 이름 밖에 몰라. 그래서 할 말이 없어. 근데 이름이 뭐지? 이름도 아삼삼하네.'
이런 말이 적힌 평가를 받는 것만큼 비참하고 슬픈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선생님의 올 1년의 꿈은 '2학년 9반의 담임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쌤, 짱입니다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선생님은 2학년 9반의 한 사람으로서 학급의 목표인 '꿈짱', 즉 '꿈을 이루며 산 사람'이 되는 거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목표가 있어. 선생님은 8kg감량이 올 봄 목표거든.

제자와 누가 빨리 목표를 달성하나 시합 중인데 꼭 이기고 싶어.

지는 사람이 맛있는 거 사주기로 했는데 맛있는 거 얻어먹어야 하거든.

먹는 거 줄여가며 하는 체중 감량이 아니라 열심히 운동해서 목표에 달성하자는 의미에서 벌칙을 '맛있는 거 사 주기' 정했단다.

열심히 응원해 줘.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은 우리 아가씨들끼리 서로 위해주며 친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야.

그것은 모두 함께 노력 해야만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

 

선생님이 살아보니 학교든 직장이든 매일 만나는 사람이 좋아야 사는 재미가 있더구나.

 

우리 아가씨들은 이제 1년 동안 2학년 9반이라는 공간에서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지낼 테니 조금씩만 양보하고 조금씩만 더 친절하고 배려하며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 바래.

그래서 그 친구 때문에, 그 친구 만나 노는 것이 좋아 학교 오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면….

서로의 성장에 자극이 되고 인생이 도움이 되어주는 친구.

인생에서 친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는 잘 알잖아.

그런 친구를 2학년 9반에서 얻는다면 그것만큼 성공하는 것이 어디 있겠니?

 

좋은 친구가 생기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누군가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도록 노력해 보기로 하자.

 

선생님도 너희들의 좋은 샘, 좋은 언니,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물론 좋은 친구는 기본이지.

 

우리 아가씨들도 선생님에게 멋진 학생, 좋은 친구, 귀여운 동생, 예쁜 딸이 되어주길 바래.

 

 2004년 3월 2일 새벽에 설레는 마음으로 첫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