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예슬아, 미안해. 이해해주리라 믿어!

착한재벌샘정 2004. 1. 26. 06:52
주말에 저희 가족은 바다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밤바다는 정말 언제 보아도 너무 좋더군요.
바다를 좋아하는 저를 위한 남편의 배려로 떠난 여행이었어요.

저 보다 신이 난 것은 정빈이입니다.
물 속에 들어 가 어찌나 신나게 놀던지요. 마치 인어 공주 같죠? 제가 팔불출인 거 아시잖아요!^_^

정빈이 못지 않게 신이 난 사람은 저희 집의 영원한 피터팬인 남편입니다.
아이와 물수제비 뜨기를 하고 모래성도 쌓으며 정말 소년 같은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예슬이는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모래사장에 앉아 제법 숙녀티(?)를 내면서 동생의 노는 모습에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발견하고는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모래성을 쌓는 모습을 보면서
"사진 속의 내 모습과 똑같아요. 그렇죠? 진짜 똑같다."
를 연발하더군요.

짧은 여행이었지만 저에게는 참으로 큰 휴식이 되어 주었습니다.
토요일이라 시내에 가서 영화라도 한 편 봤으면 했는데 뜻밖의 여행에 기분 전환이 많이 되었답니다.

이 번 여행을 다녀오면서 예슬이가 부쩍 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춘기의 한가운데는 통과한 듯한, 약간은 이완된 듯한 편안한 듯하면서 속이 깊어진 느낌이랄까요?
여행은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속내를 보여주게 되기도 하잖아요.
아이가 보여주는 그런 성숙의 느낌은 조금 낯설면서도 뭔가 가슴이 꽉 차오는 것 같았어요.

지난 번 칼럼에서 예슬이에게 90편의 사랑의 시를 읽어보라고 했었다고 했었지요.
예슬이가 뽑은 10편의 시로 작은 시집을 만들었습니다.
예슬이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 제일 먼저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요.
예슬이가 좋아하는 시로 예쁜 시집을 만들어 남자 친구에게 선물하라고 주는 것이었지요.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저 혼자 가슴 설레며 기다려 온 일이라고 할까요.
이런 편지와 함께 예쁘게 만든 시집을 아이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었어요.

사랑하는 딸에게

우리 딸은 남자 친구를 어디서 만날까?

서점의 시집 코너 앞에서 교복을 입은 두 아이가 만나는 모습을 그려본다.
너희들은 교복입고 만나지도 않겠지만 말이야.

엄마는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하곤 했어.
우리 딸이 남자 친구가 생기면 가끔 만나는 장소가 서점의 시집 코너 앞이었으면 하고 말이야.
너무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맞아. 그렇게 생각 될 거야.
엄마는 구시대 사람이니까.

엄마는 우리 딸이 언젠가는 참 좋은 사람을 만날 때 그 곳을 약속 장소로 정하고 네가 좋아하는 시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골라주는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어.

엄마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늘 <대구 서점>의 시집 코너 앞에서 날 기다려 주곤 했었어. 그 아이 덕분에 나는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내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우리 딸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해.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 한 편 외워줄 수 있는 사람.
예슬이의 예쁜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시 한편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뭐,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와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예슬이를 위해서 아니라 다른 아이를 위해 먼저 해버렸답니다.
저의 남자 친구(아시죠?)가 지난 금요일에 여자친구(저 말고 진짜 여자친구)와 100일 기념일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예슬이가 고른 시로 시집을 만들어서 그 아이에게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라고 했어요.
제가 만든 시집입니다.

이거 만드느라고 저 손톱이 다 닳았답니다. 손 코팅지로 11장을 코팅하느라 팔에 파스까지 붙여 가면서요.
예슬이가 이 글을 읽으면 서운해 할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일을 엄마가 오빠를 위해 먼저 해 버렸다는 것에서 서운함을 느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또한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믿을 만큼 아이는 아주 깊이가 있어진 것을 이번 여행에서 느꼈거든요.

엄마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라며 목욕을 무지 싫어하는 정빈이를 달래어 동네 목욕탕을 다녀오는 아이랍니다. 그 시간만큼은 엄마 푹 좀 쉬라고.
일이 있어 늦는 날에도 정빈이를 어찌나 잘 데리고 있는지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믿음이 가고요. 그런 아이이니 오빠에게 먼저 시집을 만들어준 것쯤은 이해해주리라 믿어요.

예슬이에게 예슬이가 골라 준 시로 오빠 여자 친구를 위한 시집을 만들어 선물했다고 하니 씨익 웃더군요.그 때는 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시집을 만들어 주었다고만 했었는데 이렇게 지금에서야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면 서운해 할텐데 하는 마음에 제가 그 시집에 실었던 시들을 읽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방송반 출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거니 영광으로 알라며 도리어 큰소리 뻥뻥 쳐가면서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시는 소리내어 읽어야 맛이 나.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읽어 줄 테니 들어 봐."
아이는 언젠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사랑의 시를 읽어 주겠지요.

이렇게 예슬이를 위해 준비하려했던 시집 만들기를 그 아이를 위해 먼저 할 만큼 그 아이는 우리 가족에게는 참 소중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로 인해 저희 집은 구조적인 면에서도 변화가 있었어요.
그 아이가 오기 전과 그 아이가 온 후의 저희 집의 변화입니다. 가끔 오는 아이지만 그 아이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디가 달라졌는지 찾으셨어요? 없던 소파가 들어 왔고 식탁의 위치가 바뀌었답니다.
정빈이는 티 테이블 위에서 책을 읽고 있군요. ^_^
소파가 오기까지의 사연입니다.

소파 없이 훤한 거실을 고집하며 살아왔는데 '좋은 친구 만들기'를 통해 알게 된 새 식구를 위해 소파를 사자고 했을 때 남편은 반대했다. 이제까지 소파 없이 잘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그것이 왜 필요하냐고. 그것도 우리 가족이 필요해서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사람 사이에 스킨십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네 식구는 이제까지 서로 살을 맞대며 부비며 살아왔지만 그 아이는 아니잖아요. 우리 집에 자주 올텐데 이렇게 거실에 뚝뚝 떨어져 앉아 있는 것보다는 소파가 있으면 그곳에 끼여 앉게 될 거고 자연스레 서로 맞닿는 기회가 많아질 거잖아요. 멀뚱히 떨어져 있는 것 보다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는 게 된다면 서로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울거라 생각해요.

소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식탁의 위치도 바꿀 거예요.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벽에 붙여 놓았는데 그 아이가 올 때마다 자신이 손님이라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테니 언제든지 다섯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위치로 바꾸면 아이가 덜 어색해 할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불편해지는 건 없잖아요."

여러 날 남편을 설득해야했다. 남편은 돈도 돈이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느냐, 당신이 이러는 거 남들이 보면 정말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그렇게 중요해요? 맞아요. 이해 못 하는 사람들 많아요. 심지어는 내가 그 아이를 실험 대상으로 쓰고 있느냐는 사람도 있어요. 학위 논문 준비에 필요한 자료를 위해서가 아니냐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내 아이나 잘 키우지 무슨 그런 일까지 하느냐고, 왜 하는지 정말 알 수 없다고 하는 사람 적지 않아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어쩌면 당연한 거야. 나도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도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하는 게 사실이니까. 그저 무난히 살자. 남들이 하는 것처럼 모자라지도 않게 너무 돌출 되지도 않게 말이야."

"나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것이 뭘까요? 난 부모가 참 열심히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 중에서 특히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남겨 주고 싶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결코 큰 것이 아니잖아요. 작지만 누군가가 해야할 일이라 생각해요."
결국 남편이 내 뜻을 받아주어 식탁의 위치도 바꾸고 소파도 사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기에 그 아이의 여자친구를 위한 이벤트에 시집을 만들어 그 이벤트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시집도 한 권 선물했어요. 아이는 제가 내민 몇 권 중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고르더군요. 다음에 만날 때는 시 한편 외워와야한다고 했더니 제일 짧은 걸로 외워오겠다더군요.

아마 속으로는 죽을 맛이라고, 무지 투덜거렸겠지요.^_^
이런 선생 만나 이 무슨 고생이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10대의 시절에 시를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무디어져 가는 이 나이에도 읽으면 가슴이 떨려오는 글들을 그 시절에 읽고 가슴으로 느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요.
하지만 무슨 일인들 억지로 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만큼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요. 그 다음은 그 아이의 선택의 몫으로 남겨두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