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어머니 입도 입이야!!!

착한재벌샘정 2003. 11. 3. 06:30
"어머니,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너무 좋아요. 정말 너무 좋아요."
"내일이 무슨 날인데 그렇게 좋아?"
"내일 되면 11월이잖아요. 그러면 한 달에 한 번 하는 컴퓨터도 할 수 있고,용돈도 받고 그리고 토요일이니까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제 오후부터 정빈이는 '11월 1일 토요일'이 되기를 정말 눈이 빠지게 기다렸답니다.
컴퓨터를 한 달에 한 번 하기로 약속했는데다가 용돈 1,000을 받는 날이기도 하고 마침 11월의 첫날이 토요일이라 좋아하는 만화까지 실컷 볼 수 있다면서 어찌나 설레며 기다리는지 온 식구가 덩달아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는 말을 할 정도였답니다.

정빈이는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인데 얼마 전 저희 윗집에서 제가 닭고기를 좋아하는다는 사실에 찜닭 요리를 해 저녁 초대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갑자기 일이 생겨 제가 약속한 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 없게되었고 예슬이 또한 늦게 오기로 되어 있어 정빈이 혼자 윗집에 먼저 가게 되었답니다.
두 집 식구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기다리게 한 후 도착한 제게 그러더군요.
"우리 아이가 컴퓨터하자고 하니까 자기는 한 달에 한 번만 컴퓨터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어찌나 딱 잘라 이야기하는 지, 오빠가 아무리 설득해도 고개를 젓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둘이서 인형 놀이하고 있어요."
2학년인 그 집 아이는 컴퓨터를 하고 싶은데 정빈이가 안 하겠다는 통에 할 수 없이 양보해 정빈이와 인형 놀이를 하고 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약속을 잘 지키려하지만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11월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거지요. 게다가 용돈까지 받고, 토요일이라 만화까지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다려졌겠습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정빈이는 만화를 보고 있습니다.
남편과 예슬이가 오페라 '명성황후'를 보러 갔는데 따라 가지 못한 정빈이는 몇 살부터 갈 수 있느냐고 물으며 많이 서운해했습니다.
10살 정도면 갈 수 있을거라고 했더니 10살 다 되가니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며, 그래도 만화를 볼 수 있어 괜찮다며 스스로를 달래더니 키득거리며 만화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와는 다른 이유로 정빈이는 11월을 많이 기다린 거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홍시를 먹으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해 조금은 덜 안쓰럽네요.

'홍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홍시로 인해 생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정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홍시입니다. 그러다 보니 감으로 유명한 고장인 청도까지 홍시를 가곤 했는데 바쁘다 보니 홍시가 떨어진 겁니다. 친정에 갈 일이 있었는데 친정에도 홍시가 몇 개 없어 여섯 개를 얻어 왔었어요.
집에 오자마자 정빈이 두 개 먹었고 그 다음 날 아침 정빈이가 두 개 예슬이가 한 개 먹고 마지막 남은 하나를 출근 직전에 제가 먹었거든요.

그런데 오후에 휴대폰으로 전화 한 정빈이는 무척 화가 나 있었습니다.
"어머니, 왜 홍시가 하나도 없어요? 홍시 먹으려고 달려 왔는데 홍시가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했어요?"
"홍시 없어. 다 먹었어."
"그런 게 어딨어요? 어제 할머니께 많이 달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 여섯 개 얻어 왔잖아."
"저는 네 개밖에 안 먹었어요. 어제 밤에 두 개, 아침에 두 개."
"언니도 먹었잖아."
"언니는 한 개 먹었어요. 그러니까 한 개가 남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어머니가 먹었어."
"왜 먹었어요? 제가 먹으려고 했는데. 난 몰라요."
하면서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겁니다. 정빈이의 울음이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 작은 몸 어디서 그런 큰 목소리가 나오는지? 전화기를 통해 들려 오는 울음소리에 귀 터지는 줄 알았답니다.

"왜 먹었냐니? 당연히 먹고 싶으니까 먹었지."
"그런 게 어딨어요? 제가 먹으려고 했는데. 저 지금 홍시 너무너무 먹고 싶단 말이에요?"
"니 입만 입이니? 어머니 입도 입이야. 어머니도 먹고 싶었어. 그래서 먹었는데 뭐가 잘못 됐니? 너는 네 개나 먹었잖아."
"그래도 지금 홍시 먹고 싶단 말이에요. 왜 먹었어요?"
"말했잖아. 어머니가 먹고 싶어서 먹었다고. 어머니 입도 입이라는 말을 또 해야 돼? 너만 먹고 싶은 거 아니야. 어머니도 먹고 싶어. 나도 너처럼 네 개 먹고 싶었는데 달랑 하나 밖에 안 남아 있어서 하나만 먹고 참았어. 어머니도 더 있으면 더 먹고 싶어."
"그래도 남겨둬야지요? 제가 먹을 게 없잖아요!"
"어머니는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너 먹으라고 줘야된단 말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못해. 나도 먹고 싶었으니까. 너는 어머니 위해서 먹고 싶은 거 참고 나 주는 일 잘 없잖아. 너 먹다가 남겨놓은 거 먹으라고 할 때가 대부분이지."
"그래도 저는 지금 홍시가 너무 먹고 싶단 말이에요. 어머니가 먹지 않았으면 지금 먹을 수 있잖아요. 어머니 나빠. 정말정말 나빠!"
"나쁘기는 뭐가 나빠. 어머니 먹고 싶은 거 참아가며 너 먹으라고 남겨둬야 착한 엄마야? 그런 거라면 어머니에게 기대하지 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머니 입도 입이야. 맛있는 거 알고 먹고 싶은 거 많은 것은 너랑 똑같애."
"몰라요. 어머니 나빠!"

이 말만 남기고 정빈이는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저도 다시 걸지 않았고요. 아이의 기분을 달래줘야 하나, 엄마가 먹어 버려서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하나를 두고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둘 다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굳이 아이의 기분을 달래 줄 필요도 없고 더더욱 미안하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넌 역시 계모야.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내 입에 들어가는 것 보다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거 보는 게 더 즐거운 게 엄마들 마음인데 어찌 그리 모지냐? 니 입도 입이라고? 어이구, 그 입 한 번 대단하시네. 그래, 그 홍시 맛있든? 잘 넘어 가든? 아이가 건강하면 말도 안 해. 게다가 뭐든 잘 먹는 아이 같으면 또 몰라. 지 입에 들어갔던 것도 빼줘야 할 판국에 뭐 엄마 입도 입이라고?"
역시 입이 무서운 제 친구더군요. 욕먹어 배터지는 줄 알았습니다.^_^

아마 예슬이가 그랬다면 상황은 달랐을 거라면 변명이라 하실 지 모르지만 정빈이는 욕심이 굉장히 많은데다가 적당한 표현이 될지는 모르지만 매우 인색하게 굴 때가 많아요.

남편과 마주보며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중에 정빈이 집에 가서 밥이나 한 그릇 제대로 얻어 먹을라나 몰라?"

친구들과는 어떤 지 모르지만 집에서의 정빈이는 정말 욕심이 많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하답니다. 자기 입에 맞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길이 가 멈추는 것 조차 경계를 할 정도거든요.
제가 그런 이유, 이해하실런지요?

그렇게 전화를 끊은 정빈이는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먹고 싶은 홍시도 못 먹고 화도 나고 해서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울고불고하면서 기운을 소진해버린 까닭이겠지요.
하지만 퇴근 해 집에 갔을 때는 아이 스스로 많이 누그러졌는지 이러는 게 전부였습니다.
"어머니, 나중에 홍시 사주세요? 많이 사주세요."

오늘 청도까지 홍시를 사러갔는데 없어서 대신 단감을 사왔는데 아마 단감 사온 줄 알면 도 몇 개 사왔는지, 어떻게 나눌 것 인지로 몹시 고민할 겁니다. 자기가 많이 먹고 싶은 욕심에 말입니다.
정빈이가 자라는 몸만큼 마음도 넓어지기를 바래봅니다.
최근 저의 글 중 하나를 옮겨왔습니다.

조금 주고 많이 얻으니 고마울 뿐!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평화의 캠프가 1박 2일로 열리는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대. 선생님이 신청할 거니까 너 가야해, 알았지?"
"원폭 피해자? 그게 뭐예요?"
"내가 이래서 무식한 남자는 싫어한다니까. 그것도 몰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아이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전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가득 담겨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지적인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니까요. 알지만 혹시 싶어서 물어 본 건데, 나 참!"
"알아알아. 우리 아들 똑똑한 거. 평화의 캠프 갈 거지?"
"거기 가서 뭘 해요?"
"모두들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 고령이시니 바깥나들이가 힘드시잖아. 그 분들 모시고 바닷가로 여행을 가는 거야. 쉽게 말해 어른들 시중들어 드린다고 생각하면 돼. 여행하는 동안 보살펴드리고 산책도 함께 하고 말벗도 되어드리고. 할 거 많지."
"알았어요. 갈게요."
선선히 참여하겠다 대답하는 아이.

"아이구, 우리 아들 역시 멋지네. 점점 더 멋있어 지는 것 같아."
나의 칭찬에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당연하지요."

갑자기 무슨 아들? 딸만 둘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젠 어딜 가도 듣는 소리.
'아이가 셋이나 되세요? 그리고 이렇게 큰아들이 있었어요?'
지난 4월,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과 1:1 결연을 맺어 그들의 조력자가 되어 주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내게는 아들이 생겼다.

함께 한 시간동안 힘든 일도 적지 않았지만 아이는 나를 믿고 잘 따라 주었기에 우린 비록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지는 않지만 서로를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다.
2003년을 되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이라면 '아들이 생긴 일'이라 말할 것이다.

시인 신현림은 '시간 창고로 가는 길'에서 이제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혈연의 차원을 넘어 서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런 인식을 가지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보람 된 일인가를 동시에 알게 해 준 좋은 계기였다.

아이는 나와 함께 했던 일 중 가장 신났던 것이 지난여름 대구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동안 북한 팀의 응원단으로 함께 자원봉사를 한 것이라 한다.

사람들이 내게 왜 많은 자원봉사 일 중에 하필이면 '아리랑 응원단'이었냐고,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내 대답이 너무 뜻밖이어서 어이없다는듯이 웃기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대답이 이랬기에.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자원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꾸만 미루다가 너무 늦게 참여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그것 말고는 남은 게 솔직히 없었습니다."

그 때를 떠올려보며 그 당시 쓴 글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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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한 자원봉사자 모집에 관한 많은 글과 방송을 1년 가까이 보아오면서도 애써 외면했었다. 스스로에게 이런 변명까지 해가면서.
'난 일이 많잖아. 굳이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 많을 거야. 여름방학 기간이라 학생들이 많이 하겠지. 봉사활동 시간도 받을 겸 말이야.'

'좋은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멘티가 고등학교 3학년으로 취업을 앞두고 있는 터라 다양한 직업을 접하게 해 주려는 생각에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TV프로의 거리 녹화 현장에 함께 갔었다.

PD, 카메라 맨, 리포터, 코디네이터 등 여러 직업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내 눈은 녹화현장 부근에 걸린 '통일유니버시아드 아리랑 응원단 모집'이라는현수막에 가 멈추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대회 기간동안 북한 선수들을 위한 응원단으로 참가해 달라는 젊은이들의 열의에 찬 목소리. 마음이 편치 않아 등을 돌리는데 아이가 물었다.

"저 사람들은 저게 직업이에요? 저기 있는 사람들요?"
아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시 돌아서는데 불현듯 아이다미쓰오의 책 '덕분에' 중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아이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할 수 없었다
하지않았다
어느쪽일까
하지 않을 이유를 찾으려면야 얼마든지 있겠지-
내가 남에게 변명할 때는 그래도 나은 편
내가 나에게 악착같이 변명할 때가 있다.'

'마음을 열어 준 101가지 이야기' 중 '서커스'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에게 읽어 준 글이었다.

서커스 구경을 간 아버지와 아들, 돈이 모자라 아이들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들의 입장권 살 돈을 줘버리는 아버지, 서커스 구경을 못하고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마음이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는 아들.

"너였으면 어땠을 것 같아?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줘버리고 나는 구경도 못하게 하느냐고 따졌을 것 같아요."
속상해서 아버지에게 왜 그랬냐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화를 내고 며칠은 토라져있었을 거라는 아이.

"아버지의 일관된, 그리고 늘 실천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비단 그 일이 처음이 아닌, 그 비슷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나눔'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아들 역시 그것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도 갈등했을 거야. 내 아이에게 서커스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기대에 찬 시선과 모자라는 돈 때문에 당황해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싶었을 거야."
이런 말과 함께 아이에게 읽어 주었던 책 '덕분에'의 한 대목이었다.

'도와줄까, 그럼 우리는?'하는 생각으로 갈등했을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과 아들, 두 사람의 기쁨 대신, '온 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할 수 있는 어린이 표 여덟 장과 어른 표 두 장'을 선택했던 것이다.

'할 수 없지 뭐'하며 서커스 구경을 가는 대신 '그래, 정말 잘 한 거야'라며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을 아버지.
그런 아버지로 인해 따뜻한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응원단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아이는 왜 자기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너에게 작은 힘이 되어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너도 다른 사람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을 거야. 그 처음을 북한 선수 응원으로 시작해 보자. 작년 월드컵 때 응원하는 거 봤지? 재미있을 거야. 그리고 특별히 예쁜 북한 응원단도 볼 수 있으니 멋지잖아."

모여서 응원 연습도 해야하고 입장권도 사야한다는 했더니
"이게 뭐예요. 한 번만 응원하러 가면 된다더니 연습도 해야한다고 하고, 입장권도 우리 돈으로 사야한다고 하고. 이걸 왜 해요?"

투덜거리는 아이를 보면서 서커스 구경을 못하고 돌아오면서도 허전하지 않았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이게 '나눔의 훈훈함'을 알게 할 수 있는 길임을 느끼며 스스로에게변명까지 해가며 애써 외면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늦게나마 아이와 함께 이 일에라도 참여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며 아이 몰래 안도의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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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을 해 본 후 아이는 정말 많이 변했다. 자신이 받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고 그후 내가 권하는 자원봉사 활동에 기꺼이 참여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해주었다.

내가 아이에게 준 것은 너무나 작은데 아이는 내게 너무 많은 기쁨을 주고 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쌤 뭐하세요?'라는 문자를 날리는 아이. 일하는 중이라는 내 답 글에 건강 헤칠지 모르니 쉬어가면서 하라고, 나중에 자기가 호강시켜 줄 테니 노후 걱정은 하지 말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아이.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이라며 투정 섞인 목소리로 전화 해 잠을 설치게도 하는 아이. 이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아이.

나는 아이로 인해 그 동안 나도 모르게 쌓았던 많은 벽을 허물어야 했다. 권위와 편견 그리고 불신이라는 벽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작지만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는지를.

아이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 쓴 글에서 나는 우리가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을 수정해야겠다. 우린 불균등 성장을 했으므로. 아이보다 더 훌쩍 커버린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아들아, 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컸단다."

-책나무-

원폭 피해 할머니 할아버지 7년만의 여행 신문 기사로 바로 갑니다.

하루에 두 개의 칼럼을 올리기는 처음 인 것 같습니다.^_^
그렇지 않아도 늘 너무 긴 글로 여러분들을 피곤하게 하는데 두 개씩이나....
그래도 정빈이와 저의 11월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전부 하고 싶은 마음에...
전 역시 욕심을 버리기에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좋은 시간들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