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글
보통 주말에 텔레비전을 보는 저희 집에서 토요일에 정빈이가 유난히 기다리는 프로가 있는데 '느낌표'라는 것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특히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아이인지라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를 정말 좋아합니다.
정빈이가 요즘 가장 아끼는 것은 도서 대출 카드이고 매일 매일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책읽고 독서 감상문 쓰기랍니다. 그리고 그 감상문을 소리내어 제게 읽어 주는 것도 정빈이가참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있었던 독서 감상화 대회에도 그곳에서 추천해서 읽은 책이라며 사달라고 졸라 읽게 된 '가방 들어주는 아이'로 참가했었지요. 정빈이가 아주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저는 잠시 틈을 내 제 일을 하러 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제가 그 프로를 볼 기회는 거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지난 주 일요일에 발표했다는 '하자하자 캠페인'의 주제를 두고 참으로많은 글들이 올라 있었습니다.
"하자하자 5탄 '존댓말로 수업하자'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정작 찾아 간 이유는 제쳐두고 그것에 관한 글부터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으로 오지랖이 넓다는 건 다들 아시죠? 친구의 우정이 듬뿍 담긴 충고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곳에 올린 글입니다.
![]() 이 문장은 2003년 9월 24일자 한겨레21 '논단'에 올린 제 글의 제목입니다. 저는 현직 교사로 한겨레21의 '논단'의 필진으로 글을 쓰고 있고 있습니다. 우연히 '청소년 할인'에 관한 일로 느낌표 게시판에 들어 왔다가 '하자하자 캠페인'의 주제로 많은 글들이 올라 있어 제 의견을 몇 자 올립니다. 우선 제 글을 읽으시기 전에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어 그것부터 적겠습니다. 제가 아래의 글을 쓴 것은 제가 경어를 쓰니 잘하고 있고 경어를 쓰지 않는 다른 선배, 동료, 후배 교사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래 글 중의 두 대목입니다. 저는 교사와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내가 말하는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거나 상처받을 수 있으니 상대방이 듣기 싫어한다면 그것을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것과 경어 사용이 교사로서 나 자신을 다스리는 한 방법이고 그것으로 인해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지요. 제게도 존경하는 스승님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저에게 경어를 쓰셨는지 안 쓰셨는지 조차 기억에 없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경어를 쓰자는 캠페인은 많은 분들의 이야기처럼 자칫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지 않으면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춰 질 염려가 많음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혹여 8월 25일 자 각 신문에 실렸던 '교사들의 폭언'에 관한 논문에 관한 기사에 영향을 받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그 생각 또한 순전히 제 생각이고 또한 제가 그논문의 내용을 모두 보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경어와 반말에 관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말, 정말 중요합니다. 그 글 다음에 정작 제가 쓰고자 했던 글도 올려야했기에, 친구의 충고도 생각나면서 아래글처럼 조금 눈치가 보이더군요. ^_^
![]() 아래의 '너 죽고 싶어?'라는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느낌표에서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하자"는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만 보겠습니다. 2. 책읽기운동의 홈페이지의 <청소년 문학 기행>에서 참가 대상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자하자의 캠페인처럼 우리 나라에는 분명 청소년이지만 학생이 아닌 아이들이 많습니다.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한 곳이기에 기대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번의 반짝 캠페인으로 끝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런 캠페인을 한 이곳부터라고변화된 모습,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 또한 그런 것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이었고, 그러기에 쓸 수밖에 없었던제 글도 함께 올립니다.(10월 15일자 한겨레 21'논단') 제목 : 사회고등학교 청소년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로 오는 문서에 적힌 각종 대회의 참가 자격이 ‘중·고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문구를 아무런 의식 없이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속에 너무나 큰 불평등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한 일이 있었다. 우연하면서도 특별한 인연으로 사제지간이 된 아이가 있다.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고 나 또한 아끼는 제자로생각하는 그 아이가 얼마 전 나의 권유로 한국청년연합회(KYC) 대구본부에서 주관한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평화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1박2일의 봉사활동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선생님, 너무 좋던데요. 진짜 재미있었어요”로이틀 동안의 일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아이.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평화캠프 참여는 좋은 경험과 기억하고픈 추억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그 아이의 모습이 크게 남아서였는지 책상정리를 하다 발견한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관한 안내문이 관심을 끌었고 평화캠프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정리해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 참가해보라고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석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좋은 기회라 싶었는데 신청 기간이 지나서 아쉬움이 컸다. 올해는 기회가 없지만 다음에는 놓치지 말고 참가시켜봐야지 하는 마음에 필요한것들을 살피다 참가 대상에서 눈이 멈추었다. ‘중·고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라면 학생만 된다는 거잖아. 그럼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안… 된… 다… 는…’ 하는 생각이 들자 이제까지 이것에 대해 아무런 의식이 없었던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아이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에 청소년이지만 학생은 아니다. 아이의 소중한 경험담을 또래 아이들에게 전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 참가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불평등한 일인가.행사명은 ‘학생 자원봉사대축전’이 아닌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이지만 참가 대상은재학생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만 된다니 말도 안 돼. 이런 게 어딨어?’ ‘사회고’라는 학교를 아는지?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사회고’에 다닌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사회고’라는 특별한(?) 학교를 만들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편견에 대한 그들 나름의 눈물나는 몸부림이 아닐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한마디에 더 이상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들은 마음의 문이 더 굳게 닫힌다고 한다. 학교를 떠난 이유는 다양하건만 더 이상 묻지 않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을 거라고. 그 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참가 대상 - 중·고 재학 중인 학생 (또는 청소년)’.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이 있어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할인’에만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부분들을 찾아 개선해야 함이 우리의 과제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보듬어 안아야 할아이들이 ‘학생’만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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