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느낌표!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글

착한재벌샘정 2003. 10. 18. 02:28
보통 주말에 텔레비전을 보는 저희 집에서 토요일에 정빈이가 유난히 기다리는 프로가 있는데 '느낌표'라는 것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특히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아이인지라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를 정말 좋아합니다.

정빈이가 요즘 가장 아끼는 것은 도서 대출 카드이고 매일 매일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책읽고 독서 감상문 쓰기랍니다. 그리고 그 감상문을 소리내어 제게 읽어 주는 것도 정빈이가참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있었던 독서 감상화 대회에도 그곳에서 추천해서 읽은 책이라며 사달라고 졸라 읽게 된 '가방 들어주는 아이'로 참가했었지요.

정빈이가 아주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저는 잠시 틈을 내 제 일을 하러 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제가 그 프로를 볼 기회는 거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 한겨레21에 올린 제 글의 주제가 그 프로에서 했었던 캠페인과 관련이 있어몇 자 의견을 올리러 그곳의 시청자 게시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지난 주 일요일에 발표했다는 '하자하자 캠페인'의 주제를 두고 참으로많은 글들이 올라 있었습니다.
공지 사항에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하자하자 5탄 '존댓말로 수업하자'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청소년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수업시간 만큼은 존댓말로 대하는 좋은 선생님을 추천해주세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정작 찾아 간 이유는 제쳐두고 그것에 관한 글부터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으로 오지랖이 넓다는 건 다들 아시죠?
제 친구 왈,
"야, 그래도 명색이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그런 곳에, 그것도 실명으로 자기 신분 다 밝히면서 글을 올린다는 거 좀 그렇지 않냐? 잘못하면 오해받기 십상이야.
사람들이 다 네 맘 같지 않다는 거 알아야 해. 좋게 보려는 눈보다는 어떻게든 꼬고 비틀어 보고 싶어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널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가끔 쟤가 정말 왜 저래? 할 때가 있는데 말 다했지 뭐.
그저 웬만하면 하고 싶은 말 있어도 좀 참아라. 넌 그런 것에 신경 안 쓴다지만 그거 그렇지 않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세상이야. 좋은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로. "

친구의 우정이 듬뿍 담긴 충고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곳에 올린 글입니다.

'너, 죽고 싶어?'
이 문장은 2003년 9월 24일자 한겨레21 '논단'에 올린 제 글의 제목입니다. 저는 현직 교사로 한겨레21의 '논단'의 필진으로 글을 쓰고 있고 있습니다.

우연히 '청소년 할인'에 관한 일로 느낌표 게시판에 들어 왔다가 '하자하자 캠페인'의 주제로 많은 글들이 올라 있어 제 의견을 몇 자 올립니다.

우선 제 글을 읽으시기 전에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어 그것부터 적겠습니다.
아래의 제 글로 인해 한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담당 PD의 인터뷰 요청 이유가'학교 현장에서의 교사들의 폭언을 꼬집은 글'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아래의 글을 쓴 것은 제가 경어를 쓰니 잘하고 있고 경어를 쓰지 않는 다른 선배, 동료, 후배 교사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래 글 중의 두 대목입니다.
“짜쓱이 욕 아니어도 저는 그 말 정말 듣기 싫으니까 하지 마세요.”
'말을 하는 선생과 말을 듣는 학생의 느낌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저는 교사와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내가 말하는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거나 상처받을 수 있으니 상대방이 듣기 싫어한다면 그것을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것과 경어 사용이 교사로서 나 자신을 다스리는 한 방법이고 그것으로 인해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지요.

제게도 존경하는 스승님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저에게 경어를 쓰셨는지 안 쓰셨는지 조차 기억에 없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경어를 쓰자는 캠페인은 많은 분들의 이야기처럼 자칫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지 않으면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춰 질 염려가 많음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혹여 8월 25일 자 각 신문에 실렸던 '교사들의 폭언'에 관한 논문에 관한 기사에 영향을 받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그 생각 또한 순전히 제 생각이고 또한 제가 그논문의 내용을 모두 보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경어와 반말에 관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폭언=반말'은 아닙니다.

말, 정말 중요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중학교 2학년의 선생으로서 아이들이 방송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를 알기에 좀 더 신중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에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지난 칼럼에도 옮겨왔던 그 글을 아래에 옮겨 놓았습니다.
그 글 다음에 정작 제가 쓰고자 했던 글도 올려야했기에, 친구의 충고도 생각나면서 아래글처럼 조금 눈치가 보이더군요. ^_^

아래의 '너 죽고 싶어?'라는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원래는 이 주제로 왔는데 어찌 다른 글을 먼저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여 게시판을 도배한다고, 또는 제가 쓴 글을 홍보하려는 게 아니냐며 나무라실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그런 의도는 없으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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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에서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하자"는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청소년=학생"이라는 편견이 느낌표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어 글을 올립니다.

두 가지만 보겠습니다.
1. 시청자 의견란에 올린 느낌표의 공지사항 중 <책키북키 마을>에 관한 글 중 일부입니다.
: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스카우트연맹이 주관하는 ★청소년★ 책읽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 초부터 청소년들에게 책읽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와 부산, 대구, 등6개 광역시의 ★중학교 1학년 청소년★ 29만 5천 명에게 5천원 상당의 도서교환권을 나눠주는 행사를 시작으로…
이 내용은 각 학교에 배부 된 포스터에도 있는 내용입니다.
▶ 분명 ★청소년★ 책읽기 운동이지만 책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14살의 청소년 중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2. 책읽기운동의 홈페이지의 <청소년 문학 기행>에서 참가 대상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참가 대상 - ★청소년(초,중,고생)★
▶여기서도 참가대상에는 초, 중, 고생 ★학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자하자의 캠페인처럼 우리 나라에는 분명 청소년이지만 학생이 아닌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에게도 책을 받을 권리와 청소년문학기행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한 곳이기에 기대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번의 반짝 캠페인으로 끝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런 캠페인을 한 이곳부터라고변화된 모습,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 또한 그런 것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이었고, 그러기에 쓸 수밖에 없었던제 글도 함께 올립니다.(10월 15일자 한겨레 21'논단')

제목 : 사회고등학교

청소년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사전적인 의미로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접어드는 미성년의 젊은이. 흔히, 10대 후반의 젊은이를 일컬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학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로 오는 문서에 적힌 각종 대회의 참가 자격이 ‘중·고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문구를 아무런 의식 없이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속에 너무나 큰 불평등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한 일이 있었다.

우연하면서도 특별한 인연으로 사제지간이 된 아이가 있다.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고 나 또한 아끼는 제자로생각하는 그 아이가 얼마 전 나의 권유로 한국청년연합회(KYC) 대구본부에서 주관한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평화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1박2일의 봉사활동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선생님, 너무 좋던데요. 진짜 재미있었어요”로이틀 동안의 일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아이.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평화캠프 참여는 좋은 경험과 기억하고픈 추억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그 아이의 모습이 크게 남아서였는지 책상정리를 하다 발견한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관한 안내문이 관심을 끌었고 평화캠프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정리해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 참가해보라고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석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좋은 기회라 싶었는데 신청 기간이 지나서 아쉬움이 컸다. 올해는 기회가 없지만 다음에는 놓치지 말고 참가시켜봐야지 하는 마음에 필요한것들을 살피다 참가 대상에서 눈이 멈추었다.
‘참가 대상 - 시내 중·고 재학 중인 청소년’.

‘중·고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라면 학생만 된다는 거잖아. 그럼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안… 된… 다… 는…’ 하는 생각이 들자 이제까지 이것에 대해 아무런 의식이 없었던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아이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에 청소년이지만 학생은 아니다.

아이의 소중한 경험담을 또래 아이들에게 전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 참가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불평등한 일인가.행사명은 ‘학생 자원봉사대축전’이 아닌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이지만 참가 대상은재학생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만 된다니 말도 안 돼. 이런 게 어딨어?’
나도 모르게 거칠게 튀어나온 말.
그러면서 ‘왜 이제까지는 한번도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런 불평등을 선생인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사회고’라는 학교를 아는지?
열 여덟 살의 아이는 당연히 학생일 거라는 무지에 가까운 편견,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 ‘어느 학교 다니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사회고’에 다닌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사회고’라는 특별한(?) 학교를 만들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편견에 대한 그들 나름의 눈물나는 몸부림이 아닐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한마디에 더 이상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들은 마음의 문이 더 굳게 닫힌다고 한다. 학교를 떠난 이유는 다양하건만 더 이상 묻지 않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을 거라고.
‘사고 치고 잘린 모양이군.’
어른들의 마음속에 높다란 벽 하나가 쌓이기 시작하고 그 벽에 편견과 차별이 장식처럼 달리는 것이 느껴진다는 아이들.

그 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참가 대상 - 중·고 재학 중인 학생 (또는 청소년)’.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이 있어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할인’에만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부분들을 찾아 개선해야 함이 우리의 과제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보듬어 안아야 할아이들이 ‘학생’만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