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할 수 없음에 대한 간절함

착한재벌샘정 2003. 10. 17. 13:05
정빈이를 위해 보내주신 분들의 많은 마음과 기도에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먼저 정빈이의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에도 웃음을 잃지 않던 아이라 기특하여 한 장 찍어 둔 것이 있어요. 손에 링거액을 꽂고도 활짝 웃는 모습입니다. 포켓몬스터 만화책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윗니가 두 개가 빠져 웃는 모습이 더 귀엽죠?

그리고 아래 사진은 어젯밤에 예슬이의 셔츠를 입고 침대 위에서 붉은 악마의 응원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빈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답니다.
어제까지는 지쳐 아침에 일어나는 걸 무척 힘들어하더니 오늘은 7시 20분에 시계의 알람이 울리자 깨우지 않아도 혼자 일어났고, 무지 싫어하는 머리감기와 샤워도 했답니다. 수술하고 나니 목욕을 안 해도 되어 진짜 좋다고 할 정도로 목욕과 머리감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아이인데 드디어 수술 후 오늘 처음으로 샤워를 했지 뭡니까.
그동안 냄새나는 것 참아주느라 저 많이 힘들었답니다.(^_^)

여러분들의 마음으로 정빈이가 이렇게 빨리 기운을 차리게 된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또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 무지 바쁜데도(학교를 많이 비운 탓에) 여러분들이 정빈이의 소식을 기다릴까 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답니다. 제 정성과 마음 알아 주셔야해요. (거의 협박 수준인 것 같군요.)

오늘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답니다. 하긴 그것이 제 특기(?) 중의 하나랍니다.
저는 가끔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열심히 살아달라고.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 막 화가 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옆으로 스윽 새버렸답니다. 옆으로 샌 그 이야기를 할게요.

정빈이는 흉부외과에 병실이 없어서 혈액종양병동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면역기능이 약한 아이들이라 참 조심스러웠어요. 정빈이가 있던 병실이 같이 있던 아이가 있었어요. 학교에 다녔으면 올해 중학생이 되었을거라고 하더군요.

머리카락 하나 없고 병실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있던 아이는 힘든 치료 중에도 간간히 공부를 하는 것이었어요.
학습지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테이프를 듣고 병원 복도에 있는 책장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어찌 그리 마음이 아프던지요.
저희들처럼 다른 병동에 가야할 아이가 저희 옆 침대에 있었는데 그 아이 엄마가 조그맣게 이러더군요.

"우리 큰 아이가 6학년인데 그 학습지를 해요. 그런데 그거 할 때마다 허리를 어찌나 비비꼬는지. 선생님 오기 직전에 후다닥 할 때도 있고 밀려 밀려서 나에게 혼나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저 아이가 저렇게 열심히 학습지를 하는 걸 보니…."
그 엄마도 마음이 무척 아팠나 봐요.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간절함.

수준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정빈이는 먹는 것에 대해 그 간절함을 나타내더군요.
금식하라고 하니까 왜 그리 먹고 싶은 것도 많다고 졸라대는지. 먹으라고 그냥 사정을 할 때는 안 먹더니만 말입니다.

그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 중의 하나랍니다. 하지만 우리 건강하고 교복입고 교실에 와 앉아 있는 아이들은 그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간절함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밖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은데 왜 이렇게 지겨운 공부를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 하고 말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감정이 격해져서 이런 말까지 했지 뭡니까. 제가 한 과격한다는 건 아시죠?
"가끔 너무 건강한 아이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화가 막 난답니다. 어떨 때는 저 아이를 그 병원 침대에다 눕혀 놓고 그 아이를 데려다 여기, 교실에 책상 앞에 앉혀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좀 심했나요?

물론 겪어보지 않고 그걸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답니다. 전들 그 시절에 그런 걸 알 수 있었을 거며, 그 때 누군가가 옆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겠지만 그리 귀담아 듣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저 감정이 한창 예민한 시절이었으니 병원에 있는 아이가 불쌍해 눈물을 글썽이거나, 사춘기적의 엉뚱한 상상력의 발동으로 얼마 남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이 고작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조금 딴 이야기지만 '외동딸'이 소원이었던 적이 있거든요. 저희 집에 동생이 많잖아요. 그래서 생긴 소원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녀가 소원이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미팅(이런, 이건 비밀인데)에서 만난 남학생에게 얼핏 그런 내용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답니다. 그 남학생 놀라서 다시는 저에게 만나자는 말을 못하겠다고 자기 친구에게 그러더래요. 괜히 분위기 잡다가 멋진 남학생 하나 놓쳤지 뭡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이 저의 그 시절과 별 다를바 없을거라 생각하면서도 오늘 전 아이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그 이야기를 했지요.
"여러분들이 지금 낭비하고 있는 이 오늘이 어제 죽어 간 사람이 그리도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정확한 건지 조금 의심스럽습니다만 하여튼 전 그렇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그 아이의 상황이라면 지금의 나에게 수학 문제가 무슨 의미가 있고 영어 듣기가 다 무슨 소용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삶을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었을 거예요.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서 희망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지요."

그렇게 수업 시간의 일부를 과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로 보내고 난 뒤 쉬는 시간에 잠시 저의 지난 시간들과 현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화가의 꿈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리고 치과의사도 결국은 포기를 했어야 했어요.

그렇게 한 번씩 꺾일 때마다, 그것도 저 스스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형편>이라는 너무나 큰 벽 앞에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때 그 때서야 저는 하지 못 할 것에 대한 절박함을 깨달았었지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 절박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절박함과 좌절의 경험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 것은 앞으로의 제 인생에도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포기했던 것들로 인해 다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그림을 아주 잘 그립니다. 나중에 제가 쓴 글에 예슬이와 정빈이가 그림을 그려, 글/이영미 그림/윤예슬, 윤정빈 이라고 적힌 책을 만들거라는.

치과의시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픈 이를 빼주고 치료해주듯,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치과의사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결코 나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그저께부터 그리스로마신화 15권을 사달라는 정빈이를 힘들게(?)하고 있는 저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 봅니다.
'아이들은 아쉬운 것도 알고 자라야 하는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요, 정빈이는 벗은 옷을 아무데나 던져둔답니다. 이 참에 옷을 옷걸이에 거는 습관을 들이려고요. 그리스로마신화 15권을 당근으로 써 볼려고요. 그 책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 정빈이는 어제 그제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픈 아이인데, 안쓰럽지 않아요? 그까짓 것 얼른 사주지."

정빈이는 "아픈 아이"이기 전에 그냥 "아이"랍니다. 제가 정빈이를 아픈 아이라는 범주에 넣는 경우는 정말정말 가끔이랍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