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다행 찾기

착한재벌샘정 2003. 10. 9. 12:45



안녕하세요, 여러분?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들 지내고 계시는지요?

지난주에 서울 다녀와서 얼른 소식 올린다는 것이 좀 늦었습니다.정빈이는 왼쪽 허파로 가는 혈액의 양이 3% 정도 늘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지난 번의 수술이 비록 저희 기대에는 너무 미치지 못했지만 조금, 아주 조금은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한 1년 정도는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답니다. 물론 아이의 상태를 계속 지켜보아야지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많은 분들이 그러십니다."다 나은 게 아니고? 겨우 1년 여유?"

하지만 저희들에게는 팔짝팔짝 뛸만큼 좋은 결과랍니다. 정빈이는 또 다시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해야하는 줄 알고 병원에 갔다가 그냥 집으로 가도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진짜 집으로 가는 거냐며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그리고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러더군요.
"제가요 결과가 너무 좋대요."
아이 자신도 결과가 좋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 채 하는 말이었지만 수술 없이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을 했겠지요.
"결과가 너무 좋대요. 그렇죠 어머니?"
하며 저를 바라보던 아이의 상기된 얼굴에서 저는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또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어요. 지난 토요일은 정말 힘든 하루였습니다.
우선 4월 28일 제 생일에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남편에게 보낸 편지를 먼저 보여드릴게요.

4월 28일 내 생일을 맞으면서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내게 있어 "병원"이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신이잖아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우리에게로 와 8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아이.

그 아이와 함께 한 병원 생활만으로도,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할지도 모르는 시간이 우리 앞에 있는데 당신마저 당뇨병 진단을 받게 되다니 정말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요.

"정말 흰머리가 많네."
이제는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져 버린 내 머리를 만져주며 당신이 안타깝게 한 말이지요.

내 생일에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내가 너무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만난 지 이제 20년이라는 다 되어갑니다.
그 동안 당신은 정말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었지요.

지나 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정말 당신에게 미안한 것이 너무 많아요.
나는 늘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꺾어버리는 사람이었어요.
당신이 계속 공부하고 싶다던 것,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고 싶다던 것,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싶다던 것까지.
내 이기심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기 싫다는 이유로 당신을 여러 번 마음 아프게 했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그런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할 때마다
"그래 해봐. 내가 도와줄게."하며 나를 격려해주었어요.

매일 아침 보리쌀까지 삶아 아침 준비를 하는 당신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정말 그런 남자가 있느냐고, 꿈같은 이야기라고들 해요. 당신의 그 자상함은 이 세상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을 정도라는 거 나도 알아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요. 그런 당신이 너무 야위어서 당신을 바라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파요.

당신, 알아요? 내가 다이어트 시작했다는 거?
당신이 그렇게 원해도, 처녀 적 몸매는 아니더라도 10kg만이라도 빼달라고 애원을 할 때에도, "뚱띠 아줌마"라고 구박을 할 때에도 꿋꿋이 버티던 내가 대단한 결심을 했답니다.
왠지 알아요? 너무 야윈 당신 곁에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래서....

내가 언젠가 그랬었죠? 당신은 꼭 하루라도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아침에 헤어져 몇 시간 사이에도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운데....

기억나요? 4월 28일이 내 생일 말고 무슨 날인지?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가 있은 날이잖아요. 그 날 우린 사고 현장을 지나 갔었죠. 사고나기 10분전에.
생일날이 제삿날이 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자 고 다짐했었지요. 그렇게 4월 28일에 두 번 태어난 사람이에요.

여보, 난 늘 운이 좋고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거 당신도 알죠? 당신을 만난 게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라는 것도. 그러니 건강하게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어야 해요.

당신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랍니다.
여보, 사랑해요.

남편의 검사 결과가 토요일에 나왔는데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약으로도 안되고 우선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해서 집중적으로 주사를 통한 치료를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 후인 19일 다른 검사 결과를 본 뒤 입원을 할 것 같습니다.

"참, 살다보니 내가 병원에 입원을 하는 날이 생길 줄이야."
라는 혼잣말을 하며 남편은 아주 힘들어했어요. 그런 남편의 모습에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일요일 아침에 같이 앞산을 오르는데 눈이 좀 부은 것 같다고 했더니 이러는 겁니다.
"울어서 그래."
하는데 평소 워낙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라 설마 농담이겠지 하면서도 그 말에는 가슴이 턱하고 막히더군요.

산을 내려 온 뒤 친정 식구들과 함께 미술관으로 소풍을 갔었는데 그때 정빈이가 찍어 준 저희 부부의 모습입니다.

갑자기 잘 생긴 남편 자랑 좀 하고 싶어서 그러니 이해해주세요.^_^

제가 쓰고 있는 모자가 원래는 남편 모자인데 얼굴이 작은 남편에게는 주먹이 하나 들어갈 만큼 크다고 해서 제가 쓰게 되었는데, 저는 워낙 큰바위 얼굴이라 남기는 커녕 작은 듯하답니다. 남편이 저를 구박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무기가 바로 저의 큰 바위 얼굴이랍니다.ㅎㅎㅎㅎ

"우와 정말 얼굴 크다"이러면서 말이죠. 물론 약발 안 받는 저로 인해 별로 효과도 없지만요. 위의 사진은 제가 워낙에 뒤에 있는 상태에서 찍은 것이라 조금 눈가림이 되었는데 사진 찍으면서 정빈이가 한 말이 압권입니다.
"사진기로 보니까 어머니 얼굴이 작아졌어요. 진짜는 안 그런데. 왜 이래요?"

지난 호에서 이사온 703호 가족들이 놀러 왔었다고 했었잖아요. 그 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저씨가 참 좋아보인다는 말에 제가 이렇게 대답을 했었답니다.

"맞아요. 남편은 저의 자랑이지요."
아주머니는 무척 놀라더군요. 결혼 10년 정도 넘어서면 보통 "남편 = 웬수"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데 하시면서.
하지만 정말 남편은 저에게 있어 가장 큰 보물이고 자랑이랍니다. 저희 부부를 아시는 분, 백이면 백, 모두 저의 말에 공감을 하실 겁니다.
그런 남편의 나빠진 건강상태는 정말 너무나도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토요일은 정말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이었던 가봐요.
정빈이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다가 친구가 쏜 총알에 얼굴을 맞아 상처를 입었지 뭡니까.
아마 아실 겁니다. 권총처럼 생긴 것으로 하얀색 플라스틱 총알이 있는 것인데 그 위력이 대단하더군요.

그 아이가 정빈이 이름이 남자 같다며 '똥똥빈'이 더 낫겠다며 놀렸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둘이 말다툼을 하다가 그 아이가 총을 정빈이 얼굴에 겨누고 쏜 것이지요.
눈 바로 아래 총알의 흔적이 너무나 선명히 남아 있는데 오늘도 병원에 가야한답니다.

어제 소풍 때 찍은 사진인데 목욕 싫어하는데 상처까지 나는 통에 더더욱 안 씻은 모습의, 꼬질꼬질이 극에 달한 정빈이의 모습을 공개합니다. 게다가 소풍가서 사촌동생과 뛰어 노느라 땀 투성이가 된 모습입니다.^_^

오른쪽 눈아래 상처가 보이시죠?
총알에 맞은 것이라 상처 부위가 크지는 않으나 깊답니다. 맞는 순간 너무 큰 충격에 맞은 부위가 곪은 것처럼 누렇게 변해버려서 약을 먹고는 있는데 더 심해지지 않고 잘 나아야할텐데 걱정이랍니다.

그래도 잘 웃는 것은 여전하죠?

혼자 하는 싸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둘이 함께 부딪쳐 일어난 일이고 아이들이야 싸우며 큰다고들 하지요.
그리고 저희 아이가 결코 순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정빈이는 병원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아이거든요. 그리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고요.

그러니 총을 쏜 그 아이만 잘못했다고 해서는 안될 겁니다.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은 둘 모두의 책임이니까요.

그 아이가 그러더군요.
"내가 쏜다고 하니까 정빈이가 쏘라고 했단 말이에요. 쏘라고 해서 쐈는데 왜 그래요? 난 잘못한 거 없어요."

아이에게 총을 사람에게 겨누어 다치게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제가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의 장난감에 대한 어른들의 방심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총을 사주는 것에서부터 신중해야겠고, 그 총을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향해 겨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싸우다 감정이 폭발해 그것의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총으로 쏴 버릴거야' 하는 아이와 '쏴 보라 쏴.' 했다는 두 아이.
어쩌면 아이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장난감 총을 종이 수 십장을 뚫고 나갈 만큼 위험하게 만들고 그것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어른들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도 놀라 뛰어 와 함께 병원으로 약국으로 따라 다니셨고 미안하다며 정빈이에게 예쁜 선물까지 사주셨어요.

한편으로 운수 대통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약 그 총알이 눈 바로 아래가 아니라 눈에 맞았다면 어쩔 뻔했어, 를 생각하니 저절로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되더군요.
이렇게 정신 없는 주말을 보냈답니다.

하지만 어제 밤에 누워 "다행 찾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건 제가 힘들 때 하는 것으로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기 위한 한 방법이지요.

그래, 다행이야. 그래도 남편의 병도 일찍 알았잖아. 주사 치료 후 식이요법만 잘하면 잘 될 거야.
그래, 다행이야. 남편도 이제까지 자신하던 스스로의 건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그래, 다행이야. 이제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른 좋은 일에 시간을 쓸 수 있을 거야.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고, 함께 생각했던 야학 선생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술 마시며 보냈던 시간을 이 기회에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쓰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 거야.
그래, 다행이야. 그는 지금 우리와 함께 있잖아.
그래, 다행이야. 그가 병원에 입원을 해도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그래, 다행이야. 정빈이도 눈이 아니고 얼굴이어서.
그래, 다행이야. 정빈이가 약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찾다보니 어느새 월요일 아침이더군요.
행복한 한 주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