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이러다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니에요?

착한재벌샘정 2003. 9. 29. 08:55
지난주에는 화요일은 정빈이 운동회, 목요일은 예슬이 생일, 금요일에는 예슬이가 경주 문화엑스포 현장학습을 가, 분주한 한 주였습니다.

덕분에 김밥을 46줄이나 쌌답니다. 뭘 그렇게 많이 쌌는지 궁금하시죠?

정빈이 운동회 때는 학교에 가져 갈 것과 방송 날짜를 바꿔 준 방송국 스텝들을 위해 김밥을 쌌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김밥이 짠 거예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된다더니, 정빈이의 첫 운동회에 가져 갈 거라고 저 혼자 너무 긴장을 했던지...이런, 단무지까지 왜 그리 짠지.
단무지를 빼고 먹으니 괜찮더군요. 단무지 없는 김밥은 목이 메이는 거 아시죠. 조금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흑흑흑

총각에게 목요일이 동생 생일이니 집에 와서 저녁 먹자고 했더니 다리가 아파서 꼼짝 못한다더군요. 저희 총각이 취직을 했는데 3일 동안 15층 아파트를 일일이 걸어다니며 일을 한 탓에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 사정이고 보니 동생 생일 축하도 세이 클럽에서 만나 채팅으로 해주었다고 하더군요.

금요일 예슬이를 위해 김밥을 싸면서 정빈이 담임 선생님께 드릴 김밥도 싸고 저희 학교 선생님들께 드릴 김밥도 함께 쌌습니다.
입학하고 난 후 제가 정빈이 담임선생님께 해드린 것은 김밥 두 통이 전부입니다.
1학기 때 예슬이 수학여행(현장학습)갈 때 한 번, 이번에 한 번. 김밥이 별건 아니지만 그냥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슬이 선생님께는 그것도 못 해드렸네요.
오늘 남편이 시골에서 호박을 가져오면 호박죽을 쑤어서 보내드릴까 하는 마음이 지금 이 순간 들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먹는 거 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까요?^_^

그리고 저희 학교 선생님께는 제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달리 해드릴 것도 없고 해서 아이 김밥 싸는 김에 조금 더 싸서 그냥 마음이나마 전하고 싶어서요.

많이 싼다고 했는데 워낙 챙겨야 할 분이 많다보니 결국 따로 챙겨드리지 못한 분도 있어 도리어 미안하게 되어 버렸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나는 김밥 구경도 못했는데.'하실 분 있을 겁니다. 누군지 본인은 알 테니 여기서 미안한 마음 전해야겠어요.
'25일에 딸아이가 운동회를 했기에 김밥 먹었을 거야. 오늘은 도저히 못 챙기겠어. 미안!!!'이런 마음이었는데 이해해줘요.^_^

오후에 출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뭔가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까닭을 그 때서야 깨달았답니다.
아침 7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오후 6시가 되어서 퇴근을 한다는 우리 총각 때문이었던 겁니다.
힘들지만 일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어찌나 기특한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김밥 쌀 장을 다시 보게되었지요. 장을 보면서 생각하니 금요일은 아침 7시에 출근해 거의 밤을 새다시피 일을 한다던 김피디 생각이 나더군요.
지난 번 김밥이 짜기도 했기에 이번에 진짜 실력(?)도 보여 줄 겸 말입니다. 제가 보기와는 달리 요리를 잘 한답니다. 안 믿으시는 분들이 많으시군요. 흑흑흑

바쁘게 서둘렀는데도 김밥 싸는 일이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보니 생각보다 늦어져 기다리는 사람들 배고프겠다 싶어 마음은 급한데 퇴근 시간이라 길은 어찌 그리 막히던지요.

총각에게서 김밥 싸서 집에 가겠다고 보낸 문자를 일이 끝나고 보았다며 빨리 집에 가서 기다린다는 전화가 오자 정빈이는 방송국에 가지말고 오빠 집에 먼저 가자고 졸라대고.
할 수 없이 방송국에는 김밥 보따리만 전해주고 급히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총각은 요즘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는 중인데 정빈이는 모처럼 간 오빠 집에 낯선 오빠가 한 명 더 있는 바람에 조금 쑥스러운 듯 평소와는 달리 아주 얌전한 모습을 보여주어 개구쟁이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총각이 좀 의아해 할 정도였답니다.
모두들 집에서 싼 김밥이라는 것만으로도 무지 기분이 좋다며 기뻐해 주었어요.

이틀 동안 46줄의 김밥을 쌌더니 김밥 노래만 들어도 질리는 것 같고 한 동안은 김밥을 안 먹을 것 같지만 맛있게 먹어 준 사람들로 인해 제가 더 기뻤답니다.

오늘은 글이 아주 길어 단숨에 읽으시려면 숨이 몹시 찰 것 같습니다. 여기서 길게 한 번 심호흡하고 잠시 쉬어 가세요.
최근에 다른 곳에 실린 제 글 2편을 옮겨왔습니다.

너, 죽고 싶어?

“어머니, 저보고 욕 좀 하지 마세요.”
8살 작은아이가 이마를 잔뜩 찡그리면서 말했다.

“내가 무슨 욕을 했다고 그래?”
“했잖아요. 조금 전에 ‘짜쓱’이라고 했잖아요.”
“그게 무슨 욕이야? 짜쓱은 욕 아니야. 넌 어머니의 예쁘고 귀여운 딸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야.”

열심히 설명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짜쓱이 욕 아니어도 저는 그 말 정말 듣기 싫으니까 하지 마세요.”

옆에 있던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는 것이 도리어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 버렸다.
“야 임마, 말버릇이 왜 그래 엄마가 너 이쁘다고 그러는건데.”
“아버지는 왜 욕하세요? ‘임마’는 욕 맞죠? 그 말도 듣기 싫어요. 저는 임마도 아니고 짜쓱도 아니고 정빈이란 말이에요.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왜 그렇게 불러요?”
아이의 말에 남편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임마가 욕인가? 여보, 임마가 욕이야?”

선뜻 대답을 못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지만 사전에 나와 있지 않았다. 말을 하는 나는 별 생각 없이 하는데 받아들이는 아이는 너무나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던 중 ‘교단 폭언 실태 조사연구’에 관한 신문기사에 눈길이 멈추었다.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폭언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정작 교사들은 이같은 폭언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로 시작하는 글. ‘선생님의 폭언은 학생들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선생 오래 하니 느는 것이 협박이고 엄포야.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지. ‘죽을래? 그만 살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니. 안 그러고 싶어도 웬만한 말에는 꿈쩍도 안 하니 자꾸만 더 거칠고 자극적인 말을 하게 되고. 이러다 퇴직하면 떼인 돈이나 빚 받아주는 곳에서 스카우트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대학동창 모임에서 만난 한 친구의 말에 그 누구도 웃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를 우울하게 바라보았었다.

“야 임마, 너 오늘 나한테 죽고 싶어?”
참으로 섬뜩한 말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인 것이 사실이다. 설마 선생이 학생을 정말 죽이겠다고 그런 말을 하겠는가? 협박용이라는 걸 선생도 알고 학생도 알지만 말을 하는 선생과 말을 듣는 학생의 느낌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 짧지 않은 교단 생활에서 고집스럽게도 지키려 하는 것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다. 수업뿐만 아니라 담임으로서 학급의 조·종례를 할 때에도, 개인적인 만남이 아니면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내 큰아이와 동갑인 중학교 2학년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선생이 꼬박꼬박 경어 쓰는 것을 오히려 이상해하며 그러지 말라는 이야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경어를 쓰는 이유는 여러분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한 방법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아는 아이는 저절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줄 줄 아는 마음을 가질 거라고 믿기에.

두 번째는,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다. 솔직히 ‘너희들 오늘 내 손에 죽고 싶어?’라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상황이 많으며, 그럴 때 감정이 잔뜩 묻어 있는 말들을 내뱉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기에 그런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여러분들, 오늘 선생님 손에 죽고 싶어요?”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 아닌 다음에야 이러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는 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잠시 교실 밖으로 나가 나를 다스리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지금 선생님이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합니다.”

교단에 첫발을 딛는 후배들에게 내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경어 사용’을 당부한다. 선생으로서 나를 다스리는 한 방법으로.

-한겨레21-

이러다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니에요?

"콩 가려내지 마."
밥에 섞인 콩을 일일이 가려내는 동생을 보고 예슬이가 입까지 앙 다물며 한마디한다.
"난 콩 싫어. 보리밥도 싫어."
정빈이도 지지 않을 기세다.
"너 그렇게 편식하면 키 안 큰다."
예슬이가 너무 빠르게 결정타를 때린다. 그러고도 부족한 지 덧붙이기 까지한다.
"너 그래서 언제 백 칠십 되겠니? 꿈도 꾸지 마."

언니의 말에 콩을 가려내던 정빈이의 손길은 멈추고 풀이 죽은 모습이 되면서 목소리마저 힘이 없다.
"난 빨리 백 칠 십 되고 싶어."
"그러니까 골고루 먹어야 할 거 아냐. 너 학교에서 급식 먹을 때는 어떻게 하냐? 이것 저것 골라내느라 급식 시간 다 보내는 거 아냐?"
"아니야. 학교에서는 잘 먹어."
"설마? 집에서 이러는데 학교에서는 더 하겠지? 급식에는 별거 별거 다 나오는데. 가끔 나도 먹기 힘든 게 나오는데 너는 안 봐도 알만하지 뭐."
정빈이는 뭔가 반론을 제기하려는 몸짓을 잠시 했지만 할 말이 없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 애절했다.

"언니야, 그만 해. 정빈이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야. 학교 급식은 잘 먹는다잖아. 언니가 정빈이 학교에 가 보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어. 정빈이가 유난히 콩을 싫어해서 그런걸 거야. 정빈이도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언니도 알면서 그래. 그렇지, 정빈아?"
자기편을 들어 준다 싶자 설움이 복받치는 지 우리 집 막내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주렁주렁 달린다. 목소리에도 설움이 듬뿍 묻어 있다.
"나도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언니는 그것도 모르면서."

정빈이는 키가 170cm가 되는 것이 소원 중의 하나이다.
워낙 약한 아이이기는 하지만 키는 또래에 비해 적은 편은 아니지만 7살 위인 중학생인 언니의 키가 워낙에 크다 보니, 그리고 늘 언니와 똑같고 싶다고 외치는 아이인지라 정빈이는 언니만큼 크는 것이 절실하다.

게다가 정빈이가 백 칠십을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는데 바로 컴퓨터 때문이다.
내가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보아온 아이인지라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정빈이는 컴퓨터를 잘 다룬다.

될 수 있으면 컴퓨터 앞에 앉지 못하게 하지만 한글 97의 많은 기능을 사용 해 자기만의 책을 만들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어렵지 않게 하고 가끔은 이정현 언니의 노래를 듣고 싶다며 컴퓨터를 켜 놓고 따라 부르기도 하니 어깨 너머로 배운 것치고는 만만치 않은 실력(?)인 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

하지만 정빈이는 학교에 들어가고 부터, 아니 정확히는 알림장에 학급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는 말이 적혀 오고,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위한 아이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가 집으로 오고 부터 정빈이는 나로 인해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을 거의 금지 당하게 되었다.

아이가 자기 반 홈페이지를 찾아 선생님과 친구들이 올려 올려놓은 글들을 읽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저도 글 쓰고 싶어요. 글을 쓰려니까 로그인 해야한대요.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록 주세요."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왜 안돼요? 선생님이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 보라고 했단 말이에요. 지원이도 글 써놓았는데. 가람이도 호정이도. 경현이는 그림도 올려놓았어요. 저도 저런 거 하고 싶어요. 해 주세요, 네?"
"안 된다고 했잖아."
"왜 안 되요? 엄마 나빠.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고. 엄마 정말 나빠. 자기는 맨 날 컴퓨터 하면서 나는 하지도 못하게 하고. 이제 엄마하고 말 안 할 거야."
"자기라니? 엄마가 네 친구야? 그리고 너 왜 엄마에게 반 말 해? 엄마에게 친구처럼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지?"
정빈이는 이 말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치이."

가만있을 내가 아니다.
"윤정빈, 너 그러고 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지 알지? 어디 버릇없이 엄마에게 치이라는 말을 하고, 게다가 방문을 닫아. 다시는 그 방에서 못 나오는 거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지금 나와서 엄마하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너 그 방에서 진짜 영원히 못나오는 일이 생겨."

달래야 하나 계속 이런 강경 자세로 밀고 나가야 하나 잠시 갈등을 했지만 일단 강경하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앞 베란다로 가 열린 창문으로 방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아이는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혀 있던 작은 쪽지를 찾고 있는 눈치였다.
그걸 보는 순간 어쩜 날 꼭 닮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쿡쿡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나는 나중에 한 대 얻어맞는 한이 있어도 절대 안나가며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찾아 엄마 몰래 로그인 해 볼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쪽지를 찾지 못한 정빈이는 혼자서 엄청 성질을 부리더니 평소 물건을 제대로 안 챙기는 자신을 자책하는지 자기 머리를 콕콕 몇 대 쥐어박기까지 했다.

정보화 시대(?)라서 그런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정보생활이라는 교과서를 가지고 컴퓨터를 배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해야만 할까? 그것이 정보 사회로 가는 지름길일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친구들과 쪽지를 교환하여야 하는 걸까?

정빈이가 학급 홈페이지에 접속해 선생님과 친구들이 올려 둔 글을 읽느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컴퓨터를 통해서라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지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아들과 대화하기 위해 아들에게 쪽지를 보내 대화를 신청하는 텔레비전의 공익광고. 언제 컴퓨터를 배웠냐고 묻는 아들, 아들과 대화하려고 배웠다 답하는 엄마.
나는 그 장면에서 슬픔과 섬뜩함을 동시에 느꼈다. 한 집에 살고 있는 엄마와 아들이 각자 자기 방 컴퓨터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니.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숨결을 느끼면서는 대화를 못한단 말인가?
저 아이는 가족과조차 마주 앉지 못하는데 타인과는 어떻게 마주 앉아 의사 소통을 할까?

지나친 기우겠지만 나는 그 순간 이러다가 우린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서만 나 아닌 타인과 소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섬뜩함이 느껴졌고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난 가끔 예슬이가 보내 온 메일에 이렇게 쓴다.
'네가 하는 이야기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이런 것 정도는 메일이 아니라 직접 해 줬으면 좋겠어.'

어쩌면 아이와 다른 코드로 대화하려는 구시대적인 엄마로 인해 우리 모녀의 대화는 서로 채팅을 하며 많은 대화를 하는 모녀보다 부족한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를 향해 쏟아내는 수 백마디의 말보다는 서로의 입김이 서로의 얼굴에 가 닿는 오프라인에서의 몇 마디에 더 가치를 두고 싶다.

컴퓨터가 나쁘기만 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당장 나조차도 컴퓨터 없이는 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니, 그 누구보다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그 어딜 가도 제일 먼저 챙기는 물건이 노트북이다.

하지만 나는 정빈이가 컴퓨터 앞에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친구들의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자전거를 타며 동네를 돌며 놀기를 권한다. 컴퓨터 게임으로 블록을 쌓기보다는 모래성을 쌓고 흙장난을 하기를 권한다.

그래서 댄 핑계가 큰 아이 예슬이였다.
"언니도 하루에 30분밖에 컴퓨터를 안 해. 정빈이 키가 언니처럼 백 칠십이 되면 그 때는 마음대로 해도 돼. 키가 백 칠십 정도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스스로 판단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언니는 그러거든. 백 칠십이야. 그러니까 얼른 커."
정빈이와는 한 달에 한 번 학급 홈에 접속해 친구들의 글을 읽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정빈이는 가끔 이렇게 나를 협박(?)해 가슴 떨리고 갈등하게 만든다.
"이러다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니에요?"
키가 백 칠십이 되어 매일 컴퓨터를 하고 싶은 정빈이는 골라 낸 콩을 다시 입으로 가져간다.

-책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