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니에요?
지난주에는 화요일은 정빈이 운동회, 목요일은 예슬이 생일, 금요일에는 예슬이가 경주 문화엑스포 현장학습을 가, 분주한 한 주였습니다. 덕분에 김밥을 46줄이나 쌌답니다. 뭘 그렇게 많이 쌌는지 궁금하시죠? 정빈이 운동회 때는 학교에 가져 갈 것과 방송 날짜를 바꿔 준 방송국 스텝들을 위해 김밥을 쌌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김밥이 짠 거예요. 총각에게 목요일이 동생 생일이니 집에 와서 저녁 먹자고 했더니 다리가 아파서 꼼짝 못한다더군요. 저희 총각이 취직을 했는데 3일 동안 15층 아파트를 일일이 걸어다니며 일을 한 탓에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는 겁니다. 금요일 예슬이를 위해 김밥을 싸면서 정빈이 담임 선생님께 드릴 김밥도 싸고 저희 학교 선생님들께 드릴 김밥도 함께 쌌습니다. 그리고 저희 학교 선생님께는 제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달리 해드릴 것도 없고 해서 아이 김밥 싸는 김에 조금 더 싸서 그냥 마음이나마 전하고 싶어서요. 많이 싼다고 했는데 워낙 챙겨야 할 분이 많다보니 결국 따로 챙겨드리지 못한 분도 있어 도리어 미안하게 되어 버렸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나는 김밥 구경도 못했는데.'하실 분 있을 겁니다. 누군지 본인은 알 테니 여기서 미안한 마음 전해야겠어요. 오후에 출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뭔가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까닭을 그 때서야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김밥 쌀 장을 다시 보게되었지요. 장을 보면서 생각하니 금요일은 아침 7시에 출근해 거의 밤을 새다시피 일을 한다던 김피디 생각이 나더군요. 바쁘게 서둘렀는데도 김밥 싸는 일이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보니 생각보다 늦어져 기다리는 사람들 배고프겠다 싶어 마음은 급한데 퇴근 시간이라 길은 어찌 그리 막히던지요. 총각에게서 김밥 싸서 집에 가겠다고 보낸 문자를 일이 끝나고 보았다며 빨리 집에 가서 기다린다는 전화가 오자 정빈이는 방송국에 가지말고 오빠 집에 먼저 가자고 졸라대고. 총각은 요즘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는 중인데 정빈이는 모처럼 간 오빠 집에 낯선 오빠가 한 명 더 있는 바람에 조금 쑥스러운 듯 평소와는 달리 아주 얌전한 모습을 보여주어 개구쟁이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총각이 좀 의아해 할 정도였답니다. 이틀 동안 46줄의 김밥을 쌌더니 김밥 노래만 들어도 질리는 것 같고 한 동안은 김밥을 안 먹을 것 같지만 맛있게 먹어 준 사람들로 인해 제가 더 기뻤답니다. 오늘은 글이 아주 길어 단숨에 읽으시려면 숨이 몹시 찰 것 같습니다. 여기서 길게 한 번 심호흡하고 잠시 쉬어 가세요. ![]() 너, 죽고 싶어? “어머니, 저보고 욕 좀 하지 마세요.” “내가 무슨 욕을 했다고 그래?” 열심히 설명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는 것이 도리어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 버렸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지만 사전에 나와 있지 않았다. 말을 하는 나는 별 생각 없이 하는데 받아들이는 아이는 너무나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던 중 ‘교단 폭언 실태 조사연구’에 관한 신문기사에 눈길이 멈추었다.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폭언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정작 교사들은 이같은 폭언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로 시작하는 글. ‘선생님의 폭언은 학생들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선생 오래 하니 느는 것이 협박이고 엄포야.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지. ‘죽을래? 그만 살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니. 안 그러고 싶어도 웬만한 말에는 꿈쩍도 안 하니 자꾸만 더 거칠고 자극적인 말을 하게 되고. 이러다 퇴직하면 떼인 돈이나 빚 받아주는 곳에서 스카우트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야 임마, 너 오늘 나한테 죽고 싶어?” 그리 짧지 않은 교단 생활에서 고집스럽게도 지키려 하는 것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다. 수업뿐만 아니라 담임으로서 학급의 조·종례를 할 때에도, 개인적인 만남이 아니면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내 큰아이와 동갑인 중학교 2학년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선생이 꼬박꼬박 경어 쓰는 것을 오히려 이상해하며 그러지 말라는 이야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경어를 쓰는 이유는 여러분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한 방법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아는 아이는 저절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줄 줄 아는 마음을 가질 거라고 믿기에. 두 번째는,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다. 솔직히 ‘너희들 오늘 내 손에 죽고 싶어?’라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상황이 많으며, 그럴 때 감정이 잔뜩 묻어 있는 말들을 내뱉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기에 그런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여러분들, 오늘 선생님 손에 죽고 싶어요?”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 아닌 다음에야 이러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는 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잠시 교실 밖으로 나가 나를 다스리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지금 선생님이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합니다.” 교단에 첫발을 딛는 후배들에게 내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경어 사용’을 당부한다. 선생으로서 나를 다스리는 한 방법으로. -한겨레21- ![]() 이러다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니에요? "콩 가려내지 마." 언니의 말에 콩을 가려내던 정빈이의 손길은 멈추고 풀이 죽은 모습이 되면서 목소리마저 힘이 없다. "언니야, 그만 해. 정빈이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야. 학교 급식은 잘 먹는다잖아. 언니가 정빈이 학교에 가 보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어. 정빈이가 유난히 콩을 싫어해서 그런걸 거야. 정빈이도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언니도 알면서 그래. 그렇지, 정빈아?" 정빈이는 키가 170cm가 되는 것이 소원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정빈이가 백 칠십을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는데 바로 컴퓨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컴퓨터 앞에 앉지 못하게 하지만 한글 97의 많은 기능을 사용 해 자기만의 책을 만들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어렵지 않게 하고 가끔은 이정현 언니의 노래를 듣고 싶다며 컴퓨터를 켜 놓고 따라 부르기도 하니 어깨 너머로 배운 것치고는 만만치 않은 실력(?)인 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 하지만 정빈이는 학교에 들어가고 부터, 아니 정확히는 알림장에 학급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는 말이 적혀 오고,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위한 아이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가 집으로 오고 부터 정빈이는 나로 인해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을 거의 금지 당하게 되었다. 아이가 자기 반 홈페이지를 찾아 선생님과 친구들이 올려 올려놓은 글들을 읽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가만있을 내가 아니다. 달래야 하나 계속 이런 강경 자세로 밀고 나가야 하나 잠시 갈등을 했지만 일단 강경하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 쪽지를 찾지 못한 정빈이는 혼자서 엄청 성질을 부리더니 평소 물건을 제대로 안 챙기는 자신을 자책하는지 자기 머리를 콕콕 몇 대 쥐어박기까지 했다. 정보화 시대(?)라서 그런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정보생활이라는 교과서를 가지고 컴퓨터를 배운다. 정빈이가 학급 홈페이지에 접속해 선생님과 친구들이 올려 둔 글을 읽느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대화하기 위해 아들에게 쪽지를 보내 대화를 신청하는 텔레비전의 공익광고. 언제 컴퓨터를 배웠냐고 묻는 아들, 아들과 대화하려고 배웠다 답하는 엄마. 지나친 기우겠지만 나는 그 순간 이러다가 우린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서만 나 아닌 타인과 소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섬뜩함이 느껴졌고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난 가끔 예슬이가 보내 온 메일에 이렇게 쓴다. 어쩌면 아이와 다른 코드로 대화하려는 구시대적인 엄마로 인해 우리 모녀의 대화는 서로 채팅을 하며 많은 대화를 하는 모녀보다 부족한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를 향해 쏟아내는 수 백마디의 말보다는 서로의 입김이 서로의 얼굴에 가 닿는 오프라인에서의 몇 마디에 더 가치를 두고 싶다. 컴퓨터가 나쁘기만 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당장 나조차도 컴퓨터 없이는 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니, 그 누구보다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그 어딜 가도 제일 먼저 챙기는 물건이 노트북이다. 하지만 나는 정빈이가 컴퓨터 앞에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친구들의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자전거를 타며 동네를 돌며 놀기를 권한다. 컴퓨터 게임으로 블록을 쌓기보다는 모래성을 쌓고 흙장난을 하기를 권한다. 그래서 댄 핑계가 큰 아이 예슬이였다. 정빈이는 가끔 이렇게 나를 협박(?)해 가슴 떨리고 갈등하게 만든다. -책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