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대구는 하루종일 정말 덥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신 곳도 덥겠지요? 어제 밤 뉴스에서는 어제가 휴가의 절정이었다는데, 휴가는 다녀오셨어요? 저희들은 매주 목요일에 제가 일이 있는 관계로 남편이 지난 금요일부터 휴가를 냈었습니다. 정상대로라면 저희들은 지금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있을 테지만 남편은 출근을 했고 아이들과 저는 집에서 선풍기만 돌리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은 저희들의 짧게 끝나버린 여름 휴가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일주일 휴가가 2박 3일로 끝나버렸거든요.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 참 부산했었어요. 도시락을 싸고 텐트에 물고기 잡을 뜰채 까지 준비하느라 말입니다. 저희 집 새 식구인 잘생긴 총각(누군지 아시죠?)을 데리러 가면서 휴가는 시작 되었습니다. 남편이 이번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내자고 했더니 총각(앞으로 이렇게 적겠습니다)이 그러지요, 라고 대답을 했고 남편은 지리산 등반을 계획했었어요. 하지만 산장 예약이 되지 않은 바람에 저희의 첫 행선지는 악양에 있는 '청학동문화체험학교'로 바뀌었답니다. (청학동문화체험학교 홈으로 바로 갑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 뭔가 예감이 수상(?)하면서도 좋았어요. 갑자기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 녹화한 내용이 책의 몇 쪽에 나오느냐, 그리고 그 중 한 권이 필요한데 구할 수가 없으니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좀 빌려달라는 겁니다. 저희는 총각 집으로 가는 차안이었는데 말입니다. 마침 방송국에서 이야기하는 두 권 모두 휴가 가서 남편과 아이들이 읽겠다며 차에 싣고 출발을 했던 참이라 총각을 싣고 방송국에 들러 책을 건네줄 수 있었지요. 그 책들을 휴가 가서 읽겠다고 차에 싣지 않았었다면 일이 좀 복잡해졌을 텐데, 정말 예감이 수상하면서도 좋았다는 것을 공감하시겠지요? 방송국으로 둘러가느라 일정이 좀 늦어졌고, 남해 고속도로는 왜 그리 막히는지…. 게다가 섬진강을 따라 구례쪽으로 가는 길도 차들로 만원이더군요. 드디어 도착을 했는데 차에서 내린 식구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더군요. 학교 사진입니다.  종아리까지 풀이 자라있는 운동장에 낡은 학교 건물. "공포 영화 찍으면 딱 맞겠다. 여기가 어디에요?" "여고괴담 여기서 찍은 거 아니에요?" 사진은 그래도 훨씬 괜찮은 느낌입니다만 사실 저도 처음에는 좀 놀랐답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서예 교실, 다도 교실, 판소리 교실 등 몇 개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아무도 없고 비어있었어요. 그리고 교실 두 칸이 숙소라고 적혀있는데 마루바닥에 이불 몇 개가 전부였어요. 여기서 잘거라했더니 저희 집 아이들 눈이 동그래지더군요. 1층에서 판소리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 내려가 보니 두 아이가 열심히 판소리를 연습하고 있는데 그 소리가 낡고 허름한 학교 건물 때문인지 묘하게 느껴졌어요. 교장선생님이 외출중이라 체험학교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 일단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점심부터 먹었습니다. 남편도 생각했던 것과 다른지 일정을 조정해야겠다며 여기 저지 전화를 하더니 쌍계사쪽으로 옮기자고 하더군요. 짐을 챙겨 트렁크에 싣고 있는데 마침 김소현선생님이 외출에서 돌아오셨고 차 한자 하자고 하시면서 먼저 학교로 들어가셨어요. 가서 차 한잔하자고 했더니 예슬이가 몹시 짜증을 부리는 겁니다. 아마 멋진 휴가를 기대했는데 그게 무너져서 그랬겠지요. 빨리 수영을 하고 싶다던 정빈이도 속이 상했는지 혼자 차안에 남겠다며 고집을 부려 차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어요. 2층 다도실에 마주 앉자 교장선생님이 예슬이와 총각을 보시더니 이러더군요. "자제분 인가요?" 그 순간 남편이 약간 놀란 듯 저를 쳐다보았고 제 눈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남편은 재빨리 그렇다고 대답을 했어요. 예슬이가 키가 커서인지 누나인줄 알았나 봐요. 그래서 잠시 설명을. "애가 오빠예요. 큰애는 고등학생이고 재는 중학생이고요." 교장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대부분 그 학교에 오시면 부모님들이 더 화를 내신다고.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지내게 할 수 없다고. 뭐 이런 데가 있느냐면서. 하지만 저희들은 교장선생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곳에 머물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물론 저희 집 두 아이의 얼굴은 일그러져갔고요.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시간조차도 10대의 두 아이들에게는 마치 벌받는 시간처럼 느껴졌지 않나 싶습니다. 이 더운 날에 더운 차를? 차 맛이란 게 도대체 뭐야? 이렇게 길게 몇 번씩 찔끔 찔끔 마셔야 하나? 등등,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차안에 남겠다던 정빈이가 혼자서 심심했는지 차 문을 온통 열어 둔 채 저희를 찾아오자 교장선생님이 막둥이냐고, 위에 둘이 이렇게 큰데 막둥이까지 있어 좋겠다고 껄껄 웃으시더군요. 이렇게 요즘은 어딜 가면 아들 하나에 딸 둘, 아이 셋의 엄마랍니다. 그곳에서 지내기로 결정이 되자 드디어 화가 끝까지 난 예슬이, 이번에는 자기가 혼자 차에 남겠다는 겁니다. 할 수 없이 물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하는 총각과 정빈이만 데리고 강으로 갔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물이 너무 좋으니 남겨두고 온 예슬이 생각이 나는지 남편이 다시 예슬이를 데리러 갔지만 그 고집을 꺾지 못하고 혼자서 돌아왔어요. "정말 저 나이 때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했더니 예슬이 또래의 여자 친구가 있는 총각이 맞다고, 정말 알 수가 없다며 맞장구를 치더군요. ^_^ 그 더운 날 혼자 차안에 남아 책이나 읽겠다는 예슬이 때문에 잠시 마음이 심란하기는 했지만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두 아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빈이는 오빠가 너무 재미있게 놀아주니 저희들은 필요없다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는 거 있죠. 해가 약간 기웃해지려고 할 즈음, 이 때쯤 강가 분위기 정말 좋지, 뭐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남편 휴대폰이 울렸고 아주 심각하게 전화를 받던 남편 하는 말이 "나 김천으로 발령 났어."라는 겁니다. 김천? 그럼 주말 부부? 이런 단어를 떠올리고 있는데 남편의 축하해 줘, 라는 말에 정신을 가다듬으니 남편은 활짝 웃으며 승진을 했다는 겁니다. 더 놀랬지요. 아직 나이가 있는데 설마? 했더니 사실이라고 축하해달라는 겁니다. 남편은 정말 너무 어린(?)나이에 승진을 하게 된 거였어요. 강가에서 찐하게 축하 뽀뽀를 한 번했지요. "야가,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아이고 좀 떨어져라. 이 아줌씨가 정말." "뭐 어때? 남편한테 뽀뽀한 건데. 진짜 축하해. 진짜로. 가정적인 남자 출세 못하다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거 아냐? 이거 신문에 좀 내야겠어." "인사 발표가 신문에 날 거야. 마누라 옆에 붙어서가 아니고 혼자 신문에 나기는 처음일거야." 이제까지 남편이 하고 싶다는 일을 몇 번이나 꺾은 저이기에 남편의 뜻밖의 승진은 제게도 너무나 큰 기쁨이었어요. 물론 일주일의 반 이상은 김천에서 지내야 하니 아빠와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정빈이도 안쓰럽고 이런 저런 일로 바쁠 때마다 안심하고 아이들과 집안 살림을 통째로 맡겼던 저는 타격이 크지 않을 수가 없지요. 당장 일을 반 이상으로 줄여야 할테니까요. 지금이 저에게는 가장 일이 많은, 제일 바쁠 때거든요. 남편의 도움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고요. 언젠가 제 마음의 벗이 제게 보내 준 글 중 일부입니다. 시간이 남을 때 찾아가는 친구가 아니라 바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친구여야 합니다. 우정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 이익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순수한 사랑과 우정입니다. 우정에 관한 글이지만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이제까지는 이 글을 남편에게 요구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제가 남편에게 해주면서 살날이 온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나 원했던 일이지만 그것조차도 포기할 수 있는 것. 저는 어젯밤과 오늘 여기 저기 일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느라 열심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제 볼일로 서울에 갈 계획도 현재로서는 무기한 연기상태가 되었습니다. 제 볼 일 보다는 남편이 살게 될 관사 정리며 남편 일이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이들, 제 일은 이제 맨 꼴찌로 밀려났습니다. 아이들에게, 특히 정빈이에게는 아빠의 몫까지 해야하니까요. 당장 오늘도 저는 작업실을 나와 정빈이와 마주 앉아 일을 했습니다.  "난 정말 영어가 너무 좋아."를 외쳐대며 영어 공부를 하는 정빈이를 도와주기 위해서요. 남편 같으면 컴퓨터 없이 아이에게만 집중을 하겠지만 저는 오전에 꼭 마무리를 해야 할 일이 있어 노트북을 끼고 아이와 마주 앉았답니다. 이런,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가버렸습니다. 발령 소식에, 그것도 당장 월요일부터 그 쪽으로 출근을 해야한다는 소식에 휴가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총각이 함께 한 첫 휴가라 계획이 무지하게도 많았었는데 말입니다. 해 질 무렵의 섬진강을 바라보며 총각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강을 잘 봐 둬. 누구의 느낌도 아니고 그저 네 느낌으로. 올 때 보던 강과 지금 보는 강이 다르지? 저기 모래밭의 물결 모양은 너무 아름답구나. 앞으로 네가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참 많은 작품 속에서 섬진강을 만나게 될 거야. 네가 보고 느낀 섬진강, 이 강을 알고 책 속에서 만나는 것과 전혀 모르고 만나는 것과는 정말 많이 다를 거야." 저는 총각을 만날 때마다 책을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총각은 책 읽는 것을 아주 싫어했었다는데 이제는 제가 주는 책을 곧잘 읽는답니다. 총각은 카메라에 섬진강을 담으려 애를 썼지만 어두워서 안 된다고 투덜거리더군요. "카메라보다는 네 기억 속에 담아 둬. 저 섬진강을." 총각이 언젠가는 그 날의 섬진강을 추억하며 읽는 책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냥 돌아오기에는 너무 아쉬워 그 길로 진주 동생 집으로 차를 몰아 동생 집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 먹은 후 바로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총각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이것저것 세심 하게 신경 써 준 동생 내외가 참 고마웠습니다. 차에서 내린 짐이 어찌나 많은지 총각이 놀라더군요. "아저씨랑 선생님이 너와 함께 가는 첫 휴가라서 계획이 많았어. 일이 이렇게 되어 차에서 꺼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상황이 이러니 네가 이해해 줘. 그리고 여행이야 앞으로도 자주 함께 할거니까 두고두고 좋은 기억을 만들면 되고 말이야." 총각은 괜찮다며 씨익 웃으며 짐을 나르느라 바쁘게 움직이더군요. 남편은 대구에 오자마자 여기저기 만나야 할 사람, 업무 인수인계, 짐 챙기기 등으로 바쁘더군요. 저는 덩달아 바빴는데 그 덕분(?)에 저희 집 아이 셋은 호강(?)했답니다. 호텔에 가자던 아이들은 호텔보다는 못하지만 에어컨 빵빵하게(기름값 대신으로) 틀어 놓은 집에서 맛있는 거 먹으며 만화도 빌려 보고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껌껌한 거실에서 영화도 함께 보며 자기들이 원하는 시원하고 편한 휴가를 즐기게 되었지요. 집으로 돌아 와 토요일 점심부터 일요일까지 아이들은 실컷 놀고 늦게 자고 늦잠까지 즐기는 휴가를 보냈답니다. 총각은 예슬이가 빌린 순정 만화까지 다 봤다고 하더군요. 각자 쇼핑백에 하나 가득 씩 만화를 빌려와서는 서로가 빌린 것까지 바꿔보느라 새벽까지 자지 않고, 오전 9시가 되어서 그것도 깨워서 일어났으니…. 남편도 휴가기간이라 그런지 일요일 아침 일찍 깨우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산에 다녀오더군요. 자기 침대를 오빠에게 내주고 거실 소파에서 잔 예슬이가 참 고마웠어요. 까탈을 부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역시 평소의 그 좋은 성격으로 아무 말 않고 오빠에게 자기의 침대를 내주더군요. 정빈이는 오빠 좋다는 것이 어찌나 괴롭히는지 총각이 정빈이랑 놀아주는 건 정말 힘들었다고 합니다. "동생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래. 언니 오빠를 아주 괴롭히지. 하지만 너 토요일 느낌푠가 거기 보니 동생이 다섯인가 있다는 아이 봤지? 그래도 너는 행복한 거다. 동생이라고 해 봐야 예슬이는 다 컸고 말썽부리는 것이라고는 정빈이 딸랑 하나 밖에 없으니, 그렇지? 지난번 촬영 왔던 그 피디가 정빈이 보고 뭐라 그랬어?" "강적요. 정말 딱 맞는 별명이에요." "강적이라. 정빈이가 예민해서 카메라를 보면 아주 심술을 부리지. 그리고 좋은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치대는 버릇이 있어. 너 힘들었지만 그게 다 너 좋다는 거야. 지난번처럼 오빠 싫다고 삐쳐서 옆에 오지도 않는 것 보다는 낫지 뭘 그래?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은 그런 거야. 이리저리 부대끼고 싸우기도 하면서 어우러져 사는 거지." 이렇게 2박 3일을 함께 보내고, 15일에 함께 동강으로 래프팅을 가자는 약속을 해두고 총각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희 집 화장실의 칫솔 살균기에 칫솔이 하나 늘었습니다. 총각이 칫솔을 남겨 두고 갔거든요. 다음에 오면 쓰겠다고. 남편은 휴가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게 된 것이 미안했었던가 봅니다. 어제 밤에 인사차 들른 토털 패션 매장에서 총각 운동화를 하나 사서는 갔다주자는 거예요. 총각 운동화가 낡았더라면서. 운동화를 사서 집에 갔더니 아주 마음에 든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남편이 더 쑥스러워 하는 거 있죠? 저보다는 자주 만나지 못하다보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구석이 남아 있던 남편이었는데 함께 한 2박 3일 동안 총각을 향한 마음의 문이 많이 열린 모양입니다. 이렇게 저희 다섯 가족이 함께 한 첫 휴가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참으로 길게 썼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짧게 쓸 줄 알아야 진짜 글쟁이라는데 저는 아직 아닌가 봅니다. 저희 가족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주말 가족' 주5일 근무이니 금요일 저녁에 올 거고, 주중에 한 번 회의가 있어 대구에 온다니 일주일의 반을 떨어져 살게 되겠지요. 새로운 상황이 저희 가족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걱정보다는 일단은 겪어보자, 라는 마음입니다. 더운 여름, 모두들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