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서울 가는 준비를 하면서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연휴 중간의 일요일입니다.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저희 가족은 점심을 앞산에 가서 먹고 집으로 돌아 와 남편과 예슬이는 야구를 보고 있고 정빈이는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서울로 가기로 되어 있어 저는 지금 조금 긴장이 되어 있는데 정빈이는 열심히 놀아야 버스 속에서 잠을 잘 수 있다며 노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새로 생긴 친구와 함께 앞산을 올랐었습니다.
뒤에서 찍은 사진인데 남편, 정빈, 예슬, 그리고 지난 호에서 소개를 해드렸던 저의 멘티입니다. 제 남자 친구말입니다.^_^

정빈이는 잠시 걸어갔고 남편이 거의 업고 올라갔답니다. 아이를 업고도 산을 어찌나 잘 오르는지. 저는 예상대로 제일 꼴찌로 헉헉대며 올라갔고 약수터까지 못 간 사람도 저뿐이었습니다. 아, 남자 친구 앞에서 스타일 왕창 구겨졌습니다.
오후 1시 반에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8시가 넘어 헤어졌는데 아이들은 역시 다르더군요. 오빠라 부르며 금방 친해져서는 쌀보리 게임도 하고 함께 어울려 잘 놀았답니다.

산행을 하는 동안 정빈이는 길가에 핀 민들레를 관찰하느라 한참을 열중했었어요.

그림도 그리고 색깔과 느낌까지 아주 상세히 적더군요. 현장학습(소풍)을 가면 관찰을 해야하는데 연습을 해야한다고 수첩과 연필, 지우개까지 들고나서더니 민들레를 보더니 그림책 "강아지똥"이 생각난다며 관찰과 기록을 시작하더군요.

초등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가는 현장학습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컸었는데 날짜가 마침 5월 7일로 정해지는 바람에 정빈이는 첫 현장학습에 결석을 하게 되었어요. 그 때는 서울에 있어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무척 아쉬워하던 아이는 이제는 스스로도 포기를 했는지 더 이상 서운한 내색도 하지 않는데 그게 더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물에 발을 담그기에는 일렀지만 남편이 들어가자 정빈이도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 가더니 차가운 물에 놀라 뛰어나와서는 두 손으로 발을 감싸쥐며 덜덜덜.
정빈이의 수첩 보이시죠?

혼자 헉헉대느라 스타일은 엄청 구겨졌지만 좋은 하루였어요.

월요일은 제 생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 축하를 해 주었는지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어요. 뽀뽀와 편지, 선물에 파묻혀 하루 종일 행복에 젖어 지냈답니다.

화요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교육정보센터로 바로 가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연수를 받았어요. 눈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저희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처리를 맡고 있는데 새롭게 바뀐 프로그램에 대해 배우느라...

아이들의 심정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고 온 날이었어요. 저는 컴퓨터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또한 너무나 좋아하는(남들이 특이체질이라고 함)사람인데도 하루종일 책상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강의를 들으려니 어찌나 힘들던지요. 마치고 운전하고 오는데 멀미가 느껴질 정도였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날 배운 것을 다른 선생님들께 전달 연수를 해야하니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처음부터 다시 해보며 복습과 정리를 하느라 거의 밤을 새웠습니다. 혼자서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니, 그거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보면 어디가 부족한지도 새롭게 알 수 있게 되고 정확한 개념을 잡을 수 있게 되거든요.

수요일은 더더욱 정신이 없는 하루였어요.
MBC 방송의 "포토에세이 사람"이라는 프로에서 저를 촬영하러 온 날이라 출근해서 따라다니는 카메라와 하루를 보내고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카메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답니다.

그 다음 날은 출장으로 밀린 수업도 해야했고 대구의 지방방송인 TBC의 "텔레북오늘은책요일"(오늘 5월4일 밤 10시50분 방송분)에 이야기손님으로 녹화를 하느라 또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희 학교 학부형님이 이 이야기 읽으시면 아이 병원 간다고 학교 비우고 딴 짓(?)하느라 수업 못하는 거 아니냐고, 아이들 수업에 피해가 가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실 지도 모겠습니다만,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수업에 대해서는 걱정 끼치지 않게 최선을 다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지난주에 이사온 703호, 민주네 가족을 초대해 스파게티를 나눠 먹었습니다. 퇴근길에 제가 먼저 인사를 했고, 시골에서 가져 온 미나리를 조금 갖다주면서 한 번 더 인사를 했었는데 스파케티를 만드는 김에 넉넉하게 만들어 함께 먹었지요.
이러는 제가 주책스러워 보인다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그 덕분에 좋은 이웃을 알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5학년, 3학년인 두 아이들은 저희 아이들과 어찌나 잘 놀던지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저희 집 남자도 금방 아이들과 친해져서는 함께 놀더군요.

그리고 어제 토요일에는 정빈이의 소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정빈이는 달리기를 해서 3등을 했답니다. 토요일에는 출근을 하지 않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남편에게 담임선생님께서 달리기를 시켜도 되느냐고 묻더랍니다. 남편은 괜찮다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뭐든 시켜달라고 했다네요.

손등에 3이라는 숫자가 아직 남아있답니다. 손을 씻을 때도 살살, 그 숫자가 지워지지 않게 씻고 있는 중입니다. 꼴꼴한 땀 냄새가 나고 있는데도 목욕은 절대로 안 한다고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손등의 3자가 지워질까봐서.

상품으로 줄넘기와 돋보기, 공책을 받아왔는데 줄넘기를 배우느라 어제 오늘 집에서 내복바람으로 줄넘기를 하느라 난리를 쳤습니다. 저희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아이를 참아주시니 말입니다.
"아이들은 뛰고 놀아야지, 괜찮아요. 마음껏 놀라고 하세요. 크면 그러고 싶어도, 그러라고 해도 안 그래요."
이사 온 날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 말씀이 고마워 더욱 조심을 시키지만 줄넘기를 하고 싶어하는 통에 어제는 콩콩거리는 소리가 많이 들렸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다 해주시는 두 분,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이제 출발 할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번에는 진짜 좋은 소식 들려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여러분들 내일 어린이날, 온 가족이 함께 잘 보내세요.

저희 가족은 떨어져서 어린이날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예슬이는 곧 있을 중간고사 준비로 열심이랍니다.

예슬이는 예쁜 딸이기도 하지만 제게 큰 힘이되는 친구이기도 하답니다. 제가 힘들어 할 때면 남편보다 먼저 저를 안아주고 제 뺨에 뽀뽀를 해주며 용기를 주곤하지요. 엄마에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아이랍니다.

그 아이가 제게 힘이 되어줄 때마다 친정어머니 생각이 나요. 저는 그런 딸이었나를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러면서 늘 죄송하고.

정빈이 때문에 이렇게 떨어져 있게 되는 경우가 많아 예슬이에게는 무척 미안한 마음이에요.

이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나 봐요. TV를 보던 남편이
"좀 일찍지만 저녁 먹고 가라"이러더니 남편은 저에게 저녁을 준비해주느라 바쁩니다. 쌀을 씻고 매운탕을 끓이고. 남편이 해 준 저녁을 먹고 서울 가는 버스를 타러 갈 겁니다. 정빈이를 위해서는 아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호박전도 부쳐준다는군요. 가는 버스속에서 먹으라고. 정빈이가 늙은 호박전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우리 정빈이와 저, 행복한 사람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