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개미>의 작가 베르베르씨를 만나러 방송국 갔었어요.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지난 호 칼럼에서 예슬이와 함께 "KBS의 TV 책을 말하다"의 여름특집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나다 녹화방송 방청을 할 계획이라고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후기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좀 게을렀죠? 옆의 사진은 제가 찍은 베르베르씨의 모습입니다. 한여름에 가죽 재킷을 입은 모습이 이제까지 제가 접한 사진 속의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이었어요. 제가 본 사진 속에서의 그의 모습은 작가의 천재성을 강조해서인지 굉장히 강하고 가까이 가기 힘든 느낌을 주었었는데 그의 쾌활하고 유머있고 약간 개구장이(?)같은 모습을 보면서 많이 놀랐답니다.

제가 사인 받으려고 들고 간 책은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이었어요. 이 책은 1993년에 출간됐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저자가 직접 개정 증보해 출간한 책으로 제가 즐겨 보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은 저로서 어떤 책을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을까 하는 것도 고민 아닌 고민이 었답니다. 결국 이 책을 선택했고 사인도 받았답니다. 아래에 있는 그의 사인 어떠세요?

촌사람 방송국 가서 한참을 헤맸습니다. 모이라는 장소를 찾을 수가 없어서 물었는데 가르쳐 주는 말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을 물어 겨우 찾아갔지 뭡니까? 방송국, 미로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방청객도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을 맡겨야 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의아하더군요. 물어보았는데 대답을 속시원히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질문의 기회를 얻어서 갔었기에 작가를 따라 먼저 입장을 해서 회의실에서 다른 질문자들과 어떻게 진행될 거라는 설명을 듣고 드디어 녹화현장을 갔답니다.영어로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저희 학교 영어선생님에게 부탁까지 해서 준비해 간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덕분에 영어 실력은 좀 늘었지 않을까 합니다. 가는 차안에서도 혼자 막 연습하고 했었거든요. 못말리는 아줌마입니다.^_^

동시통역으로 진행 된 녹화 현장의 모습들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아침 10시에 도착해서 오후 2시가 되어 끝이 났으니 방송 된 50분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짐작이 가실 겁니다. 녹화현장에 참 많은 직업들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너무나 열심이셨던 PD님의 모습은 거의 감동의 수준이었어요.

마침 진행을 하시는 박명진 교수님이 불어를 전공하신 분이라 간간이 베르베르씨와 불어로 대화를 나누시면서 그 때 그 때의 상황을 전해주시는 모습은영어와 동시통역 에 관심이 많은 예슬이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나 봐요.

녹화는 말씀하셨던 계획처럼 착착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PD님이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진행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눈치를 보니 베르베르씨가 이야기를 잘 하시는 통에 도저히 처음 계획 대로 1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질문의 기회가 갈 것 같지가 않지 뭐예요.

저는 거의 끝 쪽에 순서가 있었는데, 할 수 있을까 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너무 갑자기 진행자가 독자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하자 순간적으로 순서를 정해 놓으신 분들이 멈칫하며 아무도 손을 안 드는 거예요.

어렵게 신청을 해서 먼길을 왔다는 생각, 정빈이의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한 마디라도 해야만 한다는 조금 절박한 심정도 있고 해서, 기회다 라는 생각과 함께 얼른 손을 들었고 자리가 좋았던 덕분에 제일 먼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답니다.

사실은 작가님이 주셨던 질문을 게스트 중의 한 분이 먼저 해버리는 통에(그 순간 얼마나 당황 되던지요) 차례가 오면 무슨 말을 해야하나, 이미 대답을 한 것을 또 물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얼떨결에 기회가 주어지자 그래도 평소의 순발력(?)으로 작가님이 주신 내용이 아닌, 제가 궁금했던 걸로 질문을 혼자 바꿔서 해버렸답니다.

글쓰기를 즐기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지금까지는 비록 아웃사이더로 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주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작업을 철학소설로 봐 달라는 그의 말에서 정말 한 사람에게는 우주보다 더 무한함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 날 찍은 예슬이 사진도 보여드릴게요. 개그맨 이윤석씨와 찰칵!

다 나가고 난 뒤 진행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찰칵!

이 번 방송 녹화 참여로 예슬이는 방송국 구경부터 많은 체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는 두 딸에게 모두 선물을 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또 하나의 수확은 제가 김갑수씨의 팬인데 직접 만나 몇 마디지만 이야기도 나누고 사인까지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베르베르씨의 우리말 번역을 전부 하셨다는 이세욱씨의 사인도. 이세욱씨는 예슬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어요. 오늘 주제가 마치 '사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_^

작년 가을에 만났던 김갑수씨의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를 아직도 펼쳐보는 저는 이 사람, 참 매력적이라 생각한답니다.

오늘 저희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터뷰는 거절'이라는 정빈이와의 약속을 어기고 <까사리빙>이라는 잡지와 인터뷰를 했답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또 다시 정빈이는 지쳐 기자들이 떠나고 다섯 시간 가까이 낮잠을 자고 겨우 일어났답니다. 정말 나쁜 엄마죠? 9월호 나오면 많이 봐 주세요. 그래야 정빈이가 덜 서운할 거 같아서요.(옆으로 새고 있죠? 에궁) 그 일로 아침부터 심란하여 책을 빼들었는데 이 책이었어요. 오후에 지쳐서 자는 정빈이 옆에서 미안한 마음으로 누워서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저를 발견했답니다.

이 책에 "기타 등등의 인생"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있는데 이렇게 시작합니다.

고교 시절의 일이다. 생물 선생님은 실험실용 흰 가운을 즐겨 입고 수업에 들어 왔다.(중략)

선생님은 혼잣말로 넋두리를 하곤했다.
"그래, 나는 기타 과목 선생이야……."

초임 시절 왜 수학 선생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했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시간짜리 과목이다 보니 15학급에 들어가면서 똑같은 내용의 수업을 15번이나 하며 혼자 절망했었던 시절. 그러나 15번이나 반복해야했었기에 얻은 게 있어요. 재미있는 수업을 해야겠다는 것, 아이들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15번을 해도 내가 지겹지 않고 재미있고 싶다는 열망.

기타 등등의 인생에서 나 혼자만이라도 주인공이 되고자 열정을 부렸던 시절은 교사로서의 제 인생에 참으로 큰 밑거름이 되어 주었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종종 저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곤 해요.그러니 이 번 방송 참여는 제게도 참 좋은 추억이 되었답니다. 물론 베르베르씨와의 대화에서 김갑수씨의 의견은 저와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저는 그가 매력적입니다.

인기 작가였던 만큼 의견도 많다고 하네요.

진부한 질문을 한 저(그렇지만 그건 정말 궁금했거든요.)처럼 작가에게 걸맞는 참신성이나 독특한 아이디어, 이벤트가 없고 밋밋했던 것과 fiction을 조금만 더 이해했으면 좋겠다 싶은 어떤 분에 느끼는 아쉬움이 있었답니다. 저의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요? 과학이 아닌 철학으로 인식되어지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아프게 가슴에 남더군요.

그래도 무지 행복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