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천국의 열쇠
오늘 하루 아이들과 어떠셨어요? 잠시 푸근한 휴식을 가져 보세요. 아래 글은 <책나무>라는 금성출판사의 사외보에 실린 제 글입니다. ![]() "어쩜 예슬이 클 때와 똑같냐? 온 다리가 멍투성이에 또 넘어지기는 왜 그렇게 잘 넘어져? 이거 봐라 이거! 높은 곳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거 좋아하는 건 큰 거나 작은 거나 둘이 똑같고. 걸어도 안 다녀요. 뭐에 그리 급해서 뜀박질을 해대고 길을 가도 인도는 두고 꼭 험한 곳만 찾아다니니 안 다치고 베겨? 요즈음 애들 중에 이런 다리를 한 애가 어디 있냐? 남의 집 애들은 상처 하나 없이 잘만 키우더구만. 에미라는 게." 어머니의 그 말씀에 큰 아이는 왜 자기를 걸고넘어지느냐고 입을 삐죽거리고 마지막으로 불통이 튄 나도 멋쩍어 아이의 다리만 몇 번 쓰다듬는다. 저라고 뭐 그렇게 안 키우고 싶겠어요 라는 말을, 너희들 정말 다리가 이게 뭐냐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늘 상처투성이에 멍이 군데군데 시퍼렇고 여름이면 모기 물려 가렵다고 긁어 생긴 딱지까지, 마치 전위예술가의 작품(?) 같은 우리 집 두 아이의 다리. 아이에게 꾸는 꿈은 참 여러 가지이다. 나는 어릴 적 다리에 화상을 입어 그 흉터가 심하게 남아있다. 그러기에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키워야지, 혼자 다짐을 하곤 했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큰아이는 어찌나 말괄량이인지 하루도 다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 였으니 아이의 두 다리에는 자라면서 얻게 된 크고 작은 흉터들이 정말 많다. 게다가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검게 그을린 피부, 그것도 얼룩덜룩하기까지 하니. 7살 작은아이는 그런 언니를 능가한다는 소릴 듣고 있으니 그 아이의 상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나의 '뽀얀 피부, 흉터 하나 없는 딸'에의 소망은 여지없이 깨어졌지만 나는 두 아이의 그 많은 흉터에 들어있는 발랄함과 도전정신, 신나는 추억들을 알고 있기에 그 작은 상처자국들을 미소로 바라본다. 물론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절반은 섞여 있다. 많은 엄마들이 '자식 정말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 말은 우리가 우리 부모님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에게서 종종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을 향해 참 많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허물면서 산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때때로 '정말 자식 맘대로 안 되는군'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받기도 하고, 결국은 '아이들보고 내게로 다가오라고 하겠어? 어른인 내가 마음 낮추고 다가가야지, 어쩌겠어?' 하며 내가 꾸었던 꿈들을 허물며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아이는 때때로 내가 꾸는 꿈을 여지없이 뭉개버리곤 한다. 이런 날이면 나는 크로닌의 책 '천국의 열쇠'를 찾아 책장 앞으로 간다. 『물밀 듯이 추억의 물결이 밀려온다.이 부분의 밑줄은 다른 부분에 그어진 밑줄과는 펜의 색깔이 다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에는 이 부분이 가볍게 스쳐지나갔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영화 한 편을 보아도 엄마의 눈으로 보게 되고 책을 한 권 읽어도 엄마의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아이로 인해 지옥을 경험해 보았다면 세상의 엄마들은 다 이해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순간 언뜻 책장에 있는 이 책이 눈에 들어 와 펼쳐 읽으면서 내게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 부분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너무 많은 꿈을 아이에게 꾸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렇지 못했었다는 이유로,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이라는 이유로, 내가 행복했었다는 이유로,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제지하고 강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다짐을 했었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핏덩이를 내 가슴에 처음으로 안은 감격의 순간에 그렇게 맹세를 했었다. 아이와의 첫 만남의 그 떨림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려 주는 이 페이지를 펼쳐두고 나는 나를 되돌아본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했었는데 과연 아이는 나로 하여 더 행복할까? 아이의 행복을 빼앗아 내 행복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널 위해서라며 강요하는 것들이 결국은 나의 위안을 위한 것들은 아닐까? 아이가 지금 내 눈앞에 보여주는 행동으로 말고, 그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라고 나를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위안을 얻는다.그리고 나는 정말 천국의 열쇠를 발견했다. 아이들과 내가 함께 행복해지는 열쇠를. 내가 찾은 열쇠는 나의 천국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열쇠가 말을 듣지 않을 때가 많아 우리 서로 힘들어 할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부분으로 나는 아이가 인생에서 자신의 천국을 스스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천국을 건설하기를 바라며 그 천국의 설계도를 직접 그려주는 사람이 아닌 묵묵히 무거운 벽돌을 날라주는 인부의 역할을 자청하고 싶다. 지금 '천국의 열쇠'를 읽느라고 나의 심부름 부탁하는 소리를 듣지 못해 내 분통을 터트리는 아이는 그 책의 어느 부분에 밑줄을 그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