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낸 아이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12월 첫날인, 일요일 아침은 정빈이로 인해 웃으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저희 부부의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자는 정빈이가 눈도 덜 뜬 상태에서 저희 부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에 제가 한 마디했습니다.
"정빈이 때문에 닭살 부부를 할 수가 없잖아."
저의 한 마디에 정빈이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평소 같으면 남편을 밀어내고 결국 저에게 꼬옥 안길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침대 저편으로 가 누우면서 하는 말이
"미안해요."하는 게 아닙니까?
구석에 가서 벽을 향해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에 저희 부부 눈물이 날 만큼 웃었답니다.

그렇게 시작한 휴일 아침은 남편 때문에 한 번 더 웃게 되었답니다.
【<제22호> 주말이면 "잠만보"가 되는 엄마!】에서 말씀드렸듯이 주말이면 잠만보가 되는 저이기에남편이 아침을 준비했는데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사람 하는 말이
"이야∼∼, 뱀 나오겠다."였습니다.
아침상에 어울리지 않는 상추쌈에 고들빼기 김치, 부추 김치, 배추김치 등 식탁에 전부 나물반찬이 이었거든요. 차린 자신이 생각해도 나물뿐인 식탁이 멋쩍었던가 봐요.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디에 뱀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학창시절 늘 나물 반찬뿐인 저희 집 식탁을 빗대어 밥 먹으라는 동생의 말에 제가 "그래, 소 풀 먹으러 가 보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식탁에서 뱀이 나오겠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어요.

오늘은 저도 함께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1월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에 한 번도 함께 가지 못했거든요.
오늘 저희들은 밭에서 배추를 뽑았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배추 속이 차지 않아 쌈 배추로 적당할 것 같았어요. 큰 포대에 두 자루나 가지고 왔답니다. 이번 주에 저희 집 식탁에는 여전히 뱀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일 것 같습니다. 워낙 야채를 좋아하는 저희들이라 배추 쌈으로 매끼를 먹을 것 같거든요. 아침에도 국물 없이 쌈을 잘 먹는, 아침을 먹지 않는 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랍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한 숨 돌리고 여유가 생겨서 인지 이야기가 길어졌어요.^_^
지난 일주일 동안 저희 집에서는 인터넷에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없는 일주일"
하루에 30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매일 인터넷에 접속을 하는 예슬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야기를 하던 도중 스트레스를 푸는 길이 채팅과 게임 밖에 없다는 이야기에 제가 많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다, 그래도 자기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사용 시간이 반도 안 된다고, 보통 두 세 시간은 한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도 다 하는 것인데 무엇이 그리 잘못 되었느냐는 논리를 펴더군요.

다른 아이들도 하니 나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적은 시간동안 인터넷에 접속하는 나에게 뭘 더 원하느냐, 나도 다른 아이들만큼 하고 싶지만 어머니의 의견을 받아들여 허락된 30분만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느냐며 여러 친구들과 채팅을 하다가 자신만 빠져 나와야 할 때 기분이 어떤지 아느냐며,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아이와의 대화에서 채팅이나 게임으로 밖에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모른다면 다른 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니 한동안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예슬이는 입이 한발이나 나온 상태에서 겨우 그래 보겠다고 했고요.
지난주는 제가 늦게 집에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컴퓨터의 키보드를 떼버리고 인터넷 접속도 끊어버렸답니다. 제가 이렇게 과격 엄마입니다.

오늘 읽기 시작한 책에 마침 제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옮겨 보았습니다.

 

[소비에 중독된 아이들]

집단에 의한 압박감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유행'이다.
"딴 애들은 이런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단 말이야."
이 말을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숱하게 듣게 되는 익숙한 말이다. 그렇지만 부모들은 이런 왜곡된 사실을 한 번 자세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그리고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타협하는 일이다. 집단 속에서 받게 되는 심리적 압박감은 큰 상처를 초래한다. 대게 이런 이유에서 담배, 술, 마리화나, 엑스타시 등의 마약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 다 하는데 한 번 같이 해보자, 겁낼 것 하나도 없다니까."
"아, 분위기 망치지 말고, 한 모금만 마셔. 그럼 너도 끼워 줄테니까."
자아 존중의 감정과 관련하여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집단에 소속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집단에 속해야만 한다는 강박감, 집단에 속한다는 것이 다른 아이들과 같은 것을 가지고 같은 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런 사고의 오류를 수정할 필요성이 절박해 제가 선택한 것이 인터넷과의 차단이었습니다.

물론 학교 컴퓨터실이 있고 PC방도 있어 아이가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제 눈을 속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답니다.

오늘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줄넘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예슬이, 정빈이, 사촌 영실이, 이렇게 셋이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한 동안 신나게 놀았지요. 그 놀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정빈이를 위해 아이들 큰아버지께서 직접 줄넘기를 하며 시범을 보여주시기까지 했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흰 파카를 입은 아이가 예슬이입니다.

 

아이들은 심심해서 마당 구석에 있는 밧줄로 무얼 할까 궁리를 하다가 줄넘기를 생각해 낸 것이지요. 심심하면 창의적으로 변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어요. 너무 많은 장난감, 심심하지 않게 제공되는 볼거리, 들을 거리들이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자기 생각을 빼앗고 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그 날 예슬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까지 갔었느냐면요, 인터넷 접속에 대해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첩첩 산골로,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는 곳으로 너를 데리고 이사를 갈 지도 몰라, 였습니다. 필요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하루라도 접속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그렇게 접속을 해 채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그 길을 택할 수도 있다고.
엄마가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아이인지라 힘겹게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됩니다.

한 선배는 그것도 실컷 하고 나면 안 한다고, 한 1년 정도 '도 닦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자신도 아이가 게임에 빠져 한 1년 정도 정신을 못 차리더니 지금은 마음을 잡았다면서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제가 예슬이의 채팅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 중 가장 큰 이유가 채팅 때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아이가 주고받는 쪽지 내용을 오며가며 보게 될 때가 있는데 채팅용어들로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 거친 말과 욕설이 오고 가기도 합니다. <기다리는 부모>에서도 썼던 아이들이 채팅을 하면서 주고받는 언어들, 그 무엇보다도 고쳐주어야 할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과 마음을 터 넣고 대화를 하기 위해 세이클럽에서 만나기도 하고 메일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아이들이 쓰는 채팅용어들을 쓸 수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그것이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한 방법이라는 것에는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잃게되는 것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희 반 아이들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채팅용어 안 쓰고 메일 쓰려니너무 힘들다고, 국어 공부 새로 해야 한다는 걸 너무나 절감하고 있다고, 친구에게 바른 국어를 써서 메일을 보냈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석해 달라는 아이까지 있다'고 합니다.

눈높이가 맞지 않아서, 아이들이 쓰는 채팅 용어를 쓰지 않아서 제게 학생들의 메일이 많이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 한 사람이 그런다고 해서 아이들이 얼마나 변할까, 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저희 반 학급 카페에 아이들의 글이 올라오지 않은지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선생이 너무 바빠 아이들에게 소홀한 것이 아니냐며 항의(?)의 메일을 보내 오시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그 카페를 만들어 주고 처음 얼마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제 역할은 전부라고 생각을 합니다. 운영자가 따로 정해졌고 아이들 스스로 꾸려 나가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그곳 보다 더 재미있고 채팅 용어를 마구마구 써도 되는 곳이 많은데 그곳을 자주 찾지는 않을 겁니다.
언젠가 문을 닫는 한 이 있어도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 꾸려 나가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문을 닫게 된다면 그것도 아이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경험이 될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맞춤법 공부를 따로 해가며 제게 메일을 보내 오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기에 저는 희망을 느낍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이들에게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은 '우리의 말'이 아닐까 합니다. 나 하나가 이런다고 되겠어, 라는 생각 대신 나라도 이런다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아니 저보다 더 먼저 그리고 더 앞서 실천에 옮기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시는 여러분들도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니 저보다 더 많이 생각하시고 나름대로의 방법들을 실천하고 계시리라 생각하니 괜히 유난을 떤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제가 한 일년 빠져있게 두라는 선배의 말을 듣지 않고 아이를 닦달하는 이유는 그 시간동안 아이에게 베어버릴 언어적인 습관을 과연 그 다음에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고칠 수 있을까? 그 때는 좀 더 성숙해서 자신의 생각이 더 있기는 하겠지만 습관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습관, 얼마나 무서운가는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도 어쩌면 너무 늦어 이렇게 아이와 저 모두 힘들게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직설적인 자기 감정 표현, 걸러지지 않은 언어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반말들.
예슬이 말처럼 누구보다 적게 채팅을 하고 어머니 말을 따라 존댓말을 쓰고 바른 말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도 아이의 말은 자꾸만 거칠어지고 있는 게 보이고 느껴지거든요.

그런 이유와 함께 제가 예슬이에게 인터넷 접속을 차단시킨 것은 내 아이가 혹시라도 따돌림을 당하면, 이라는 걱정 대신, 내 아이만이라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살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래서 당당하게 나름대로의 삶의 패턴을 고집하면서도 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는 바램에서랍니다.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해야하고, 다른 아이들이 보는 TV프로그램을 봐 야하고,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야 집단에 속하고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아이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예슬이는 휴대폰이 없습니다. 아이말로는 자기말고는 다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 사이에 '난리'라고 까지 표현되는 '야인시대'도 '나는 그거 안 보는데'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예슬이는 밤 10시만 되면 잠을 자는 아이거든요.

남과 같아져야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현대인들의 한 특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으며 아이들의 창의성을 길러주고 개성을 가지도록 채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과 같아야 편안함을 느낀다는 모순.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도 아이들은 잘 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슬이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채팅말고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