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나가죠? 벌써 개학한 학교도 많다고 하네요. 저와 예슬이는 내일 개학입니다. 정빈이는 다니는 곳이 없으니 개학을 할 것도 없네요. 아이들 방학 어떻게 보냈는지요? 저희는 서울 오르락내리락 하느라고 다 보낸 것 같습니다. 이제는 훌쩍 커버려 제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예슬이도 함께 서울에 다녀오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지요. 서울에 있는 동안 잠깐씩 볼일을 보는 저를 위해 동생을 돌보아주는 일이 예슬이에게 맡겨졌거든요. 그리고 집에서도 놀자고 졸래대는 정빈이의 등살에 못 이겨 동생과 놀아주는 시간이 가장 많습니다.
이 번 방학에도 예슬이는 일주일에 한 번 플릇 레슨을 받는 것 말고는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난 1학년 동안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통해 이제는 어느 정도 공부라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며 열심이었습니다.
작년 12월 31일 모 방송사의 9시 뉴스에서 앵커가 이렇게 말을 했어요. "국민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감격스러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러고는 잠시 생각할 여유를 주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지요. "바로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그것, 월드컵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거실 바닥에 앉아 있던 예슬이가 바닥을 치며 깔깔 넘어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아닌데, 나는 아닌데. 나는 내 성적 올라 간 것 생각했는데. 월드컵 보다 더 감격스러운 내 성적." 예슬이는 1학기 때보다 전교석차가 100등 가까이 올랐습니다. 1학기말에는 450명 중 200등이 넘었었는데 2학기말에는 135등을 했거든요.
누군가 저의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그러더군요. "나는 엄마가 더 대단한 것 같아. 135등이 뭐야? 35등도 아니고. 그 성적을 지금 웃으면서, 잘했다며 전하는 엄마가 진짜 진짜 대단한 것 같애. 나 같으면 숨 넘어가도 몇 번은 넘어 갔을 거야. 그런데 진짜 그 등수가 잘했다고 이러는 거야? 진짜야?" 저는 진심으로 저희 예슬이가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슬이도 나름대로 성적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누가 잘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잘해 보고 싶었기 때문에. 하지만 저를 닮아 체육이라면 전교 꼴찌를 했을 것이고, 컴퓨터 또한 이론 시험은 그 비슷했을 겁니다. 그 외에도 아직 감을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지식의 깊이가 모자라 널뛰듯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성적으로 인해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1년 동안 네 번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마냥 지켜보고만 있었지요. 실패를 해도 지금 해 봐야 한다는 생각, 과연 아이 스스로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였지요. 그리고 그런 시행 착오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학습 방법도 알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더 많이 해야하는지를 알게 되기를 바라며 기다렸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너를 1등으로 만들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냐고? 엄마가 공부해서 전과목 과외선생님 노릇하고 요점 정리해주고 예상문제 뽑아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키면 그 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안 하느냐고? 그건 너희 실력이 아니기 때문이지. 엄마가 과학 선생이니 과학만큼은 100점이라거고 묻던 친구가 있었다고 했지? 그런데 너 중간고사에서 과학 성적이 제일 나빠 그 친구가 놀라더라고. 엄마가 도와줘서 얻은 100점보다 너 혼자 힘으로 얻어 온 76점이 더 소중한 거야. 그건 진짜 100% 너의 것이니까. 그렇게 조금씩 실력이 쌓여서 언젠가는 네 힘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예슬이도 자신의 성적 결과에 너무 만족을 했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특할 따름이지요. 제가 칼럼에 성적을 공개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된다고 하는 걸 봐도 아이가 얼마나 자신의 성적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지 아실 겁니다.
이렇게 1년을 보낸 예슬이는 이 번 방학 동안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기는 하지만 1학년을 지내면서 사회 과목이 어렵더라면서 세계사쪽의 책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2학년 준비도 많이 해두었습니다. 게다가 2학년이 되면 남편이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겠다며 지금 현재 아이 보다 남편이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 한문, 수학은 아이가 도와달라고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아마 남편은 예슬이의 좋은 과외 선생님이 되어 줄 겁니다. 저보다 아이들과 더 잘 지내니까요. 과외비 많이 달라고 하면 안 되는데. 요것이 저의 현재 걱정거리입니다.^_^
그리고 예슬이가 열심이었던 것 중 하나가 오늘 2월 9일 열리는 코스프레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였어요. 엠파스 백과서전에는 코스프레에 관해 이렇게 나와 있더군요.
복장’을 뜻하는‘코스튬(costume)’과 ‘놀이’를 뜻하는 ‘플레이(play)’의 합성어이다. 줄여서 코스프레라고도 한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대중스타나 만화주인공과 똑같이 분장하여 복장과 헤어스타일, 제스처까지 흉내내는 놀이이다. 만화와 게임캐릭터를 친구로 삼아 성장한 캐릭터세대의 대표적 문화이다. 이 놀이는 원래 영국에서 죽은 영웅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모습대로 분장하는 예식에서 유래하였다. 그 뒤 미국에서는 슈퍼맨이나 베트맨과 같은 만화캐릭터들이 입은 의상을 입는 축제가 유행하였고, 이것이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만화나 영화, 컴퓨터게임 주인공들의 흉내내기로 확대되고 대중화되었다. 한국에서는 1995년부터 시작되어 만화, 영화, 연예인, 컴퓨터게임 캐릭터 등으로 확대되어 또 하나의 청소년 문화로 자리잡았다. 특히 코스튬플레이 사이버동호회의 활성화로 10대들 사이에 각광받는 신종 마니아 문화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예슬이가 준비한 것은 '우사다'라는 캐릭터 입니다. 캐릭터 사진과 예슬이의 사진입니다. 다리에
묶는 끈도 있는데 이 사진에는 없네요. 키가 170cm인 아이인데도 귀엽죠? 아님, 제가 고슴도치엄
마라서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요?^_^
예슬이는 방학 동안 이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문 시장에 옷감을 뜨러 가는 일부
터 스스로의 힘으로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 행사에 거는 기대가 아주 크답니다. 이렇게 만화에 관심이 많은 예슬이다 보니 만화책 빌려보는데도 용돈이 만만치 않게 지출될 겁니
다. 그리고 집에 있는 종이마다 만화를 그려대니 자연 정빈이도 언니의 영향을 받아 만화 그리기를 즐겨하지요. 정빈이가 그린 그림 한 번 보실래요?
괴물에게 잡혀가게 생긴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잘 그렸다고 하자 예슬이가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교육비를 달라는 겁니다. 자신이 그리는 것을 보고 배워서 그런 것이라면서요. 물론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을 하기는 했지만 언니가 있어 정빈이가 배우는 것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가끔 언니 숙제해 둔 공책에까지 만화를 그려 놓아 예슬이를 기절시키는 일도 있지요.
정빈이는 "나의 꿈"이라는 제목의 책도 한 권 만들었어요.
자그마치 32쪽이나 되는 책이랍니다. 정빈이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서 만든 책이에요. 그 중 한 쪽을 보여드릴게요. 정빈 : 어머니 뭐 좋아하세요?(똑같은 질문이 다섯 번 째 반복 중) 엄마 : 모자, 아버지와 손잡는 것 그리고 뽀뽀하는 거.(좋아하는 것을 다 말해 버린 상태에서 겨우 생각해 낸 것들) 정빈 : 으윽, 닭살. 그걸 어떻게 그려요? 엄마 : 그런 것을 그릴 수 있어야 화가지. 곰곰 생각을 해 보고 그려 봐. 이런 대화 끝에 탄생한 장면입니다.
뽀뽀하기 위해 내민 입술이 예술이지요?
이렇게 저희 집 두 아이는 7살이라는 큰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잘 논답니다. 언니가 방학 숙제를 마무리한다고 방에 틀어박혀 있던 금요일 하루는 언니 방문 앞을 열 번도 더 가보고 언제 놀아줄거냐며 졸라대더군요. 오후 6시가 넘어서 언니의 같이 놀자는 말에 좋아하는 정빈이의 모습을 한 번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였어요.
정빈이는 영어 책 읽기도 아주 좋아합니다. 한 번 읽어달라고 하면 집에 있는 영어 책이 거의 다 나올지경이지요. 언니 숙제하는 동안 영어 책 읽어주느라 제가 목이 다 쉬었어요. 제가 지쳐 잠시 쉬는 동안은 혼자서 제가 하던 율동까지 흉내내면서 혼자서 놀기도 합니다.
엉덩이가 아프다며 베개를 깔고 앉는 정빈인데 학교에 갈 때에도 베개를 가져간다고 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답니다.
아이들이 방학 동안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몰두할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번 방학을 보내면서 예슬이는 부쩍 많이 자란 것 같습니다. 아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다른 일도 더 열심히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영어 일기도 아주 잘 써 놓았더군요. 그것을 본 친구가 인터넷의 예문들을 보고 베낀 것이 아니라 진짜 직접 썼느냐고 몇 번이나 묻더랍니다. 아마도 포토�을 좀 더 많이 하고 싶고, 코스프레 참가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엄마에게 잔소리 듣거나 '행사 참여 취소'라는 불호령을 면하기 위해 눈치껏 한 것이었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2학년이 되는 예슬이는 좀 더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열심히 하고 싶어합니다. 예슬이가 보낸 지난 1년, 그리고 이 번 겨울 방학은 아이를 많이 성장시켜 준 것 같습니다. 저희 아파트의 어떤 분은 저를 만날 때 마다 묻습니다. "선생님, 예슬이 아직 아무 데도 안 다녀요?" 아직은 집에서 혼자 한다고 하면 불안하지 않냐고 물으십니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 예슬이가 집에서 놀기만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건 지금 그 나이의 아이의 삶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언젠가 도움을 받아야 할 날이 오면 저는 기꺼이 학원에 보내든 과외를 시키든 할 겁니다. '절대로'라는 말은 하지 않는 답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 전쟁(?)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지난 번 인터넷이 안 되었을 때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코스프레 동호회다 포토� 동호회다 가입한 곳도 많고, 게다가 이번 방학에는 소설까지 써서 인터넷에 올린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만만찮았어요. 결국 예슬이 컴퓨터는 인터넷 차단이라는 강력 처방까지 했었답니다. 제가 누굽니까? 폭군 엄마 아닙니까? 예슬이는 엄마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알아서 눈치껏 행동을 하기에 전쟁의 빈도가 조금 적은 것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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