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영어, 수학을 잘 해야 엄마 자격이 생기는 걸까요?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지난 호 칼럼 『<제87호> Be the Reds!로 영어 여행을 해요. 』에 수정한 부분이 두 군데 있다는 것에 대해 【독자의 한마디】에 올려 두었는데 읽어 보셨는지요? 그 글을 읽어 보셔야 오늘 제 이야기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글로 바로 갑니다.

제 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늘 그렇듯 책의 도움을 빌려와야겠습니다.

『자전거포아저씨 라울 따뷔랭
이 책은 장 자끄 상뻬의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책 외에 제가 가지고 있는 그의 책으로는 《까뜨린 이야기》, 《얼굴 빨개지는 아이》, 《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 차이》, 《뉴욕 스케치》, 《어설픈 경쟁》이 있고 그가 그림을 그린 책으로는 《꼬마 니꼴라》와 《좀머씨 이야기》가 있네요. 좀 열렬 팬이죠? 우선 그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책들이랍니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갔네요.^_^

『자전거포아저씨 라울 따뷔랭』의 따뷔랭은 자전거의 구조와 수리에 관해서는 한 마디로 최고라 할 수 있지요. 그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자전거"를 "따뷔랭"이라고 부를 정도로요. 책 속의 내용입니다.

 

그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이 지역에서는 이제 자전거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따뷔랭〉이라는 말로 대신 하게 되었다.

그런 따뷔랭이지만 정작 그는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참 많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그는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지요.

 

따뷔랭의 창조자 라울 자신은 자기의 명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사람 자체와 그의 겉모양 사이에 잘못 분배된 무게가, 그런 대로 잡힌 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비밀의 무게이기도 했다. 하도 엄청나서 그 누구도 짐작조차 못할 비밀.
그것은 그가 자전거를 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따뷔랭〉을 탈 줄 몰랐다.

엄청난 노력을 해 보았지만 그는 끝내 두 발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그의 노력 덕분에 그가 얻은 것이 있답니다.

 

그는 기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따뷔랭은 자신의 실패의 비밀을 밝혀 내보려는 희망을 가지고 자전거의 모든 부분(안장에서 부터 베어링에 이르기까지)들을 방법론적으로, 줄기차게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수리를 맡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두 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 보려는 노력의 과정으로 인해 자전거수리공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최고"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게 되지요.

옆의 그림을 한 번 봐 주세요. 그가 무도회에 타고 간 자전거입니다.
두 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인정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하기 힘들었던 그는 그런 상황들을 재치로 모면하기 위해 자연스레 남을 웃기는 재주도 겸비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의 이런 모습, 세 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모습에 그답다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 생각하죠.

사진사 피구뉴와 친구가 되고 자전거를 타는 따뷔랭의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는 그의 제의와 그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결혼 8년째인 아내 마들렌의 권유를 넘어선 압력으로 인해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가지요.
여기서도 『이미지 만들기』를 접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막다른 골목에 이른 심정으로 그는 이렇게 까지 말했다.「나, 자전거 탈 줄 몰라요!」점점 더 화가 난 피구뉴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 농담 되게 웃기네요.」

그는 결국 자신이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 달리기 위해 자전거위에 올라탑니다.
그가 자전거와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석달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했지만 그 사건이 따뷔랭이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것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지는 못했답니다. 그의 아내 마들렌이 TV에 나가 놀라우리만큼 좋은 방향으로 상황을 해석했기 때문이죠.

 

격한 운동이 습관이 된 일부 남성들은 일정한 연령에 다다르면 마지막으로 한 번, 평소의 실력을 능가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고.

따뷔랭이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은 자전거를 탈 줄 몰라서가 아니라 모험이었다고.
게다가 피구뉴는 따뷔랭이 자전거를 타고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그 유명한 사진을 표지로 한 사진집을 내어 점점 더 만들어진 이미지를 향해 치닫지요.
그러나 갈등이 크게 자리잡아 그를 힘들게 하지요.

따뷔랭은 인터뷰를 완강히 거절했다. 물론 모욕감 때문이었지만 진실을 털어놓을까 봐 두려워서 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애교가 지나쳐 허풍이라고 까지 생각할 것이었고 뭐니뭐니 해도 피구뉴와 마들렌, 나아가 생 세롱의 신용까지도 손상될 게 뻔했다. 따뷔랭은 속으로 이 모든 것이 다, 사기라고 반복해 말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 어쨌든 사기는 사기인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이 책을 읽어보신 많은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책의 마지막은 여러분들의 몫으로 남겨 둘게요.
책 이야기가 많이 길었죠?
솔직히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 이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따뷔랭이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생겼어요. 그는 그의 가장 큰 비밀인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요. 자전거에 둘러 싸여 아가씨의 손을 잡고 있는 따뷔랭의 모습을 한 번 보세요.

「당신께 제 생전 아무에게도 해 본적이 없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중략) 좋습니다……. 저……, 저는 ……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따뷔랭이 마음에 두었던 조시안은 매사에 농담을 잘하는 그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며 화를 내며 가 버렸답니다. 조시안이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요?
어쩌면 조시안은 따뷔랭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상대방이 진심으로 하려는 말 보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상대방이 해 주기를,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전 그런 경험이 있답니다.
결국 진정한 상대를 보지 못하고 내가 기대하고 만들어 놓은 이미지만에 매달리게 되는 경우.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자전거에 대해 그토록 해박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없었던 것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괜시리 눈물이 나는 거 있죠? 제가 영어 때문에 가졌던 상처와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의 저의 눈물의 의미를 아실 겁니다.

제가 쓴 글의 영어 수준은 중학교 1학년 정도일 거예요. 예슬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영어를 새로 시작 할 때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실력도 안되었던 제가 지금은 중학생이 된 딸을 위해 나름대로 영어 교재를 준비하곤 하니 가끔 제 자신이 대견할 때도 있답니다. 지난 호 칼럼도 예슬이에게는 좋은 교재가 되어 주거든요.
저는 아직 영어 전문가가 되지 못했습니다. 영어가 마냥 즐겁고 그저 제 아이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줄 수 있는 정도이지요.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킨다』에 제가 이렇게 적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영어책을 쓴 것을 의아해 한다. 평소 글을 쓰고 싶어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영어책이냐고 물어온다. 수필 정도면 그래도 이해할 것 같다며. 난 지금도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난 세상사람들에게 내가 영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 비밀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도중에 힘들어도 결코 포지하지 않도록 말이다. 누군가가 책을 냄으로써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난 영어책을 냈지만 전문가가 되지는 못했다. 아직도 턱없는 배움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성공을 한 셈이다. 이제 영어가 없는 내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난 이제 멈출 수 없는 기차를 탄 셈이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 없이 포루투갈어를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표를 만들 때는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정말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났어요. 아무 생각 없이 【언어∼의(형용사)】Brazilian 만을 적었다가 틀렸다 이야기를 보고 Portuguese/Brazilian으로 수정을 했지요.

오타났다는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소설 속의 자전거포아저씨 따뷔랭이었어요.
살아가면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 때가 가 있다는 것, 인생이란 참 우연에 의해 결정될 때가 적지 않다는 것, 등등 따뷔랭의 이야기는 짧은 글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제게 주는 책이거든요.

엄마가 된다는 것.

아휴∼∼∼, 오늘의 이 주제를 끌어내기 위해 정말 엄청나게 긴 사설이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한 분이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려 주셨어요.

이제 4개월 된 아기의 엄마인데 엄마 되기 참 힘들다고. 영어 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저를 보니 걱정이 앞선다고요.
아주 뛰어난 아이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아니지만 엄마가 몰라서 아이에게 못해주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자꾸 무슨 교육 아줌마들이 찾아와 권하는 전집으로 된 프뢰벨이라든지 몬테쏘리 아기나라 이런 책들을 사주어야 하는 것인지.
아이에게 노래불러주고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그렇게 놀아주는 일만 하는 것으로는 모자라는 것인지, 하고요.

제가 왜 위의 긴 글을 먼저 썼는지 조금 감이 오시는지요?
제가 영어를 시작한 것도, 틀린 부분을 지적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이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는 가 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 까 합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어떤 직장을 가지고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와 놀아주는 것만 열심이어도 그건 대단한 것일 겁니다. 아이와 노는 거, 결코 쉽지 않다는 거 우리 모두 잘 알잖아요.
아이도 자신과 신나게 노는 엄마의 모습에서 분명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이에게 꼭 뭐든 잘하는 엄마만이 필요한 걸까요?
예슬이의 수학 성적은 만천하에 알려져 있지요. ^_^
예슬이는 연휴가 끝나는 7월 2일부터 기말 고사를 칩니다. 예슬이가 가장 많이 준비한 과목은 역시 수학입니다.

아이들의 수학 문제들 참 많이 어렵다는 생각하시죠?
예슬이가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도움을 청해 문제집을 보니 에구,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하더군요.
두 문제만 옮겨 와 보았습니다.

 

【문제 1】
세로의 길이가 가로의 길이의 2배인 직사각형이 있다. 이 직사각형의 가로를 4㎝ 잘라내고, 세로를 3㎝ 잘라내어 만든 직사각형의 세로 길이는 가로의 3배이다. 처음 직사각형의 가로의 길이를 구하라.

【문제 2】
등산을 하는데 올라갈 대는 시속 3㎞로, 내려올 때는 다른 길을 시속 4㎞로 걸어서 모두 1시간 30분이 걸렸다. 총 5㎞를 걸었다고 할 때 올라간 거리를 구하라.

어떠세요? 만만찮아 보이죠? 이런 문제들만 스무 문제 정도 좌악 있는데 헉!하고 숨이 막히더군요.
그날 예슬이가 본 엄마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모든 문제를 척척 풀고는 '자, 이리와 봐.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 거야.'하는 모습이었을 거라 상상하시는 분이 있다면 천만에! 랍니다.

저 그날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마침 친정에 있던 때라 연습장도 마땅히 없어 달력 뒷면에다가 문제를 풀었는데 한 문제 푸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고 풀리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해보느라 달력이 모자랄 지경이었어요.
저의 그런 모습을 보던 동생(8월에 두 돌이 되는 딸이 있는)은 엄마가 저렇게 문제도 풀어야 하느냐며 제부에게
"자기야, 나는 저런 문제 풀 자신 없다. 그러니까 자기 돈 많이 벌어다 줘, 알았지?"하더군요.
동생은 제가 왜 그렇게 끙끙거리며 문제를 풀었는지를 몰랐을 겁니다.

예슬이는 엄마도 자신처럼 문제를 푸는데 엄청 헤맨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엄마의 설명을 들으니 금방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조금 있다가 다시 풀어 보려고 하니 잘 안 된다며 발을 구르더군요.

"엄마가 문제를 푸는데 너보다 조금 나은 것은 두 가지 때문일 거야.
첫째는 너보다 문제가 무엇을 요구하는 지 정확히 알아낸 것인데 이건 독서력과 관계 있겠지?
엄마가 너에게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해. 책 읽기 그 자체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이 결국은 국어적인 요소가 절반이거든. 문제가 무얼 원하는지 알아야 해답을 찾을 거니까.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일 거야. 엄마 생각은 그래. 수학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은 사고력일 거야.
넌 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네 스스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가를 알아내고 그것을 적절하게 적용시켜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은 얼핏 보면 우리 생활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지만 엄마는 그게 바로 우리의 생활이 아닐까 해. 무슨 말이냐고?

우리가 살면서 참 많은 문제에 부딪히잖아. 물론 수학 문제 말고. 그럴 때 결국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거든.
결국 자신의 생각과 노력으로 해결 해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수학 문제를 풀면서 길러 놓은 사고력과 논리력이 그 기본이 되어 준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엄마가 아무리 설명을 잘 해 주어도 결국은 네가 생각해서 풀어야만 네 실력이 되는 거야.

왜 안 되는지 아니? 문제를 푸는 방법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데 너는 엄마가 설명해준 그대로를 암기해서 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그 문제를 풀었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다르게 응용된 문제가 나오면 탁 막히게 되는 거야. 엄마 문제 푸는 거 봤지?
너 보다 많이 배우고 선생님인 엄마도 결국은 이리 궁리 저리 궁리를 해보고 이제까지 배운것들을 이것저것 끌어 들여서 문제를 풀어.
학원에 가서 강의를 들으면 도움이 될 지도 모르지만 학원선생님이 줄 수 있는 도움도 지금 엄마가 준 것 이상은 아닐 거야.
결국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것은 너거든. 문제를 잘 읽고 해석해서 문제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 것도 너의 몫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가지고 와야 할 공식을 찾아내는 것도 너의 몫이야. 그것들을 잘 응용하여 결국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도 너의 몫이고.

옆에서 도와 줄 수 있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이 문제는 이런 뜻이잖아, 그러니까 이런 공식을 가지고 와서 이렇게 푸는 거야, 라는 엄마의 설명에만 의지를 한다면 결국 엄마의 수학 실력은 올라갈 지 모르지만 너는 고개를 끄덕이는 연습만 하게 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어."

저의 절절 매며 문제를 푸는 저의 진짜 모습이 예슬이에게 어떻게 보였을까요?
수학 문제도 못 푸는 한심한 엄마로 보였을 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엄마의 수학 문제 푸는 모습을 보면서 수학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엄마도 어려워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도리어 편해졌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그런 느낌 알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쉽게 푸는 문제를 나만 못 풀고 있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의 그 심정.
그리고 엄마가 끙끙대기는 했지만 문제를 풀어 결국 답을 찾아내고 축구 골이 들어 간 듯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그 날 심하게 오버했습니다. 제가) 자신도 그런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그 즐거움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어요.

예슬이는 그 날 이후 수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제가 풀어서 설명을 해준 문제집은 두고 다른 문제집을 하나 다시 샀습니다. 엄마가 설명해 준 문제들은 엄마의 설명이 너무 강하게 남아 결국 자기의 생각을 방해한다면서. 그리고 스스로 풀어서 해결한 문제가 주는 즐거움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예슬이는 수학 점수는 좋지 않았지만 누가물어도 수학을 좋아한다고 말을 한답니다.

이제는 좀 도와줄까? 하면 됐어요, 제가하면 돼요, 라고 말하며 씽긋이 웃지요.
중간고사에서 자신과 비슷한 점수를 받은 친구가 쉬는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예슬이를 보고
"너 아직 수학 공부하나? 난 벌써 포기했다."고 말을 하더랍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예슬이가 기특하잖아요.
예슬이가 얼마의 수학 점수를 받아 올지는 모르지만 저는 조금 더 기다려 보렵니다.
남편은 저녁 산책에도 빠져 가며 혼자 집에 남아 스스로 공부를 해준 예슬이가 기특하답니다. 어제는 제게 "얼마나 고마운지."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이처럼 엄마가 된다는 것은 영어를 잘하고 수학을 잘해서 아이를 내 손으로 척척 가르쳐 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겁내지 않고 도전해 보는 용기, 못하는 모습이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참 큰 힘을 얻지 않을까 합니다.

그 다음으로 아이들의 책과 교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라는 이야기는 참 많이들 하잖아요.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책과 교구들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저는 아직 은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릅니다. 좀 어이없어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인 걸 어쩝니까?
시찌다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예슬이 때는 솔직히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었고, 정빈이 때는 알아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요. 그 때는 그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철이 좀 든 엄마였거든요.

저도 한 때 몬테소리가 없으면 아이를 못 키울 줄 알았던 적이 있었어요.
예슬이 태어나고 백일도 안되어서 외판원이 와서는 그거 없이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투로, 게다가 아이 엄마가 그것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은근히 저의 자존심까지 건드리더군요.
그 때는 며칠이기는 했지만 정말 그 거 없으면 큰 일 날 것 처럼 느껴졌어요.
이런 저를 본 남편이 그러더군요. 너무나 뻔한 이야기 아시죠?
"나는 그런 거 없어도 잘 자랐다. 그런 거 있는 줄도 모르고 컸어도 늘 1등만 했다. 그리고 애가 공부는 무슨 공부? 애는 잘 먹고 잘 자면 그만이지."
울 남편이 폐교되어 없어진 산골학교 출신이라는 거 아닙니까? 처음에는 그 말이 왜 그리시대에 뒤떨어진 소리처럼 들리던지요?
그 때는 솔직히 무슨 뚜렷한 주관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경제적인 형편이 안 되어서 참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일 겁니다.

제가 워낙 그림책을 좋아해 서점에 가면 그림책 코너로 제일 먼저 달려가는데 그 곳에 있는 책으로도, 꼭 그런 거창한 전집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것으로 마음이 다 잡아지더군요.
그 때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했었어요.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에 대해.
저희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앞으로 너무나 많이 휘청일 것 같다, 교구, 교재보다는 여행을 많이 데리고 다니고 그림과 음악을 많이 접하게 해주자 였어요.
책은 낱권으로 주로 구입을 했고, 때로는 전집이 더 쌀 때도 있는데 그것도 헌 책을 구입했지요. 한글 나라, 영어 나라(제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등 교재들이 많지만 저희 아이들은아무 것도 해 본 적이 없답니다.
참 욕심이 나지만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는 첫 발견 시리즈 원서도 서점에 가서 보고 오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있지요.
있으면 없는 것보다야 좋겠지요. 어쩌면 돈 없어 못해주는 부모의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집 두 아이 그래도 잘 자라고 있다고 믿고 있고 있습니다.

엄마의 중심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재를 얼마만큼 준비하느냐 보다는 한 권의 그림책이라도 엄마가 즐거워하며 읽어 주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중심이 아닐까요?
저는 아직 저를 위한 책을 더 많이 삽니다.

긴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것, 용기를 내어야 할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아이를 키우는데 교구, 교재, 책 그 무엇보다 우선 인 것은 엄마의 목소리로 불러주는 자장가 한 소절, 아이가 마음 것 파고 들 수 있는 엄마의 따뜻한 가슴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책을 고르는 것을 도와주는 사이트는 많이 있답니다.몇 군데 링크를 시켜 볼게요.

어린이 도서연구회

애기똥풀의 집

맘스쿨의 엄마유치원의 그림책이랑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