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 선생님들, 제가 드린 선물 받으셨죠?
졸업하기 전날 예슬이는 반 친구들과 선생님을 위한 깜짝 파티를 마련한다며 며칠동안 이런 저런 준비로 열심이었어요.
그런 아이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촌지』를 주제로 쓴 글이 적지 않더군요.
「<제24호> 이거 선생님께 드릴 촌지야! 」
「<제29호> 스승의 날, 나는 촌지를 많이 받고 싶다.」
예슬이는 학기초에, 스승의 날에, 학기말에 선생님께 선물하는 걸 참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 선물을 해주지 않는 저에게 큰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정말 예슬이의 초등학교 6년 동안 선생님께 선물이라고 해 본 것이 딱한 번 있습니다.
지난가을 예슬이가
"우리 선생님의 방석이 너무 낡았어요. 어머니께서 새로 사 주세요. 어머니도 선생님이시면서 왜 그렇게 선물을 안 하세요? 선물 받으면 좋잖아요. 어머니가 우리 선생님 방석 하나만 사주세요."
라고 졸라대는 통에 서문시장에 들러 방석과 쿠션을 사서 예슬이에게 들려 보낸 것이 제가 예슬이 선생님들께 드린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네요.
예슬이의 여섯 분의 담임 선생님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저에게 많이 섭섭했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교사이면서, 그 수고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무심할 수 있을까,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 수고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정말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그런 제가 염치도 없이 자식 맡겨두고 왜 그랬을까요?
그런데 저는 여섯 분 선생님들께 분명히 『선물』을 드렸다고 우기고 싶으니 이건 또 웬일입니까? 뻔뻔해도 정말 분수가 있지!
"선생님 저희 학원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 안 했는데요."
"학원에서는 그렇게 안 배웠어요."
"우리 학원 선생님은 그런 것은 복잡하니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문제 푸는 방법만 알면 된다고 하던데요."
"학교 진도랑 학원 진도랑 안 맞아서 힘들어요."
"학원 숙제 때문에 학교 숙제는 할 시간이 없었어요."
"빨리 마쳐주세요. 학원 차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가 듣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게 되는 말들입니다.
작년 2월 15일에 제가 쓴 글이 있군요. 제가 예슬이 선생님께 드린 선물은 바로 이것이랍니다. 『오로지 선생님의 수업만이 전부인 아이가 있다는 것.』 그래서 예슬이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누구보다 크고 자꾸만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고마운 분들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의 부실을 이야기합니다. 학교는 이미 붕괴되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학교 선생에게 아이 공부를 맡겨두는 간 큰, 겁대가리 없는 부모가 아직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슬이를 공교육에, 학교 선생님에게만 맡겨두는 겁 없는 짓을(?)한 간 큰 엄마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아이의 과학 공부를 맡겨주길 바라는 공교육 현장의 교사이기도 합니다. 45분 동안 저와의 수업이 전부가, 완벽한 공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저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저와 함께 한 수업은 절반의 수업이라고 말합니다. 그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의 공부여야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저와 함께 한 수업을 기반으로 하여 스스로 책을 찾고, 인터넷의 정보를 찾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좀 더 알고 싶은 영역들을 자발적으로 넓혀 나가기를 권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아이는 학원에 보내면서 내 학급의 아이들은 내 수업으로 만족하기를 바라는 그런 이중성을 용서할 수 없기에 학원에 보내 보충 공부가 필요한 아이를 내 고집으로, 내 욕심에 묶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학원에 안 보내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인 냥, 무슨 특별한 육아의 노하우인 냥 허세를 부리면서, 내 아이는 학원에 안 보내도 잘만 크더라고 남들에게 내세우기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늘 이렇게 갈등과 고민, 그리고 선택의 연속이더군요. 오늘 아침 앞산 등반 길에 예슬이가 묻더군요. "어머니, 저 학원에 보내실 거예요?" 국어 수학 같은 과목을 배우는 학원에요." "필요하다면 다녀야지. 하지만 일단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보고 결정하자. 엄마가 옆에서 도와줘 볼게. 그래도 안되겠다 싶고 네가 꼭 필요하다면 학원에 가서 도움을 받는 것도 좋아. 저번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학원이라는 것 자체가 너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해. 결국은 무슨 일이든 똑같이 네가 그곳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어오느냐의 문제일 거야. 엄마가 어제 읽은 책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의 공부를 도우려고 아주 많은 노력을 했대. 그 중에서 아침 식사 전에 30분 동안 영어 문장을 외우게 했다는 말이 있었어. 아침에 자면서 보내는 30분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시간이거든.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침대에서 힐끔힐끔 보는 시계는 정말 빨리 가버리잖아. 깜빡 졸은 것 같은데 30분 정도는 후딱 흘러 가버리고. 그렇게 아침 시간을 보내는 사람과 힘들지만 털고 일어나서 영어 문장을 30분씩 외운 사람하고는 많이 다른 인생을 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중학교 생활에서 너에게 제일 먼저, 그리고 많이 부탁하고 싶은 것이 시간 조절과 활용이야. 지금도 봐. 이렇게 아침 일찍 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 식구 모두 지금쯤 이불 속에서 뒹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다 보면 일요일 오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 가버릴 거야. 엄마가 너의 곁에서 많은 힘이 되도록 노력할게. 이제까지 엄마가 늘 엄마 일이 우선 이었고 엄마 일 때문에 예슬이 일이 뒤로 밀려나곤 한 적이 많았었잖아. 예슬이가 엄마 많이 이해해주고 스스로 잘 알아서 해 와준 것에 대해 너무 고마워하고 있어. 올해는 엄마가 많이 노력할게. 중학교라는 또 하나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너에게 엄마가 많은 힘이 되도록 애쓸게. 일단은 엄마와 함께 해보자." 운동을 몹시 싫어하는 예슬이를 위해(?) 저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산을 자주 오릅니다. 덕분에 남편은 정빈이를 업고 오르내리는 엄청난 수고를 해야하지만 말입니다. 지난주의 여행에서도 마지막 여정으로 청도 운문사의 사리암에 올라갔었는데 그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계단 길을 아이와 오르는데 어찌나 투덜거리고 힘들어하는지요. 그럴수록 저희 부부 더 굳은 결의를 하지요. 더 자주 산에 올라야겠다고. 좀 더 험한 산을 올라야겠다고. 오늘은 저희 아파트 등산모임에서 주최하는 소백산 등반을 갈 계획이었는데 아이들은 안 된다고 해서 앞산엘 갔었답니다.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아요. 물론 예슬이는 올라갈 때에는 투덜거리기만 하고 숨차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뭐 하러 산에는 오르느냐 등등 불만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엄마와 아버지가 절대로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목표지점까지 가기는 가지요.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렇게 투덜거리던 아이가 정상에 오르고 나면 태도가 확 달라지는 겁니다. 아마도 자신도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나 봐요. 그 다음부터는 다 내려 올 때까지 어찌나 쫑알쫑알 이야기를 해대는지. 에궁, 이야기가 또 옆으로 흘렀네요. 예슬이 선생님들∼∼∼ 저 분명히 선물 드린 거 맞죠? 제가 드린 선물 기쁘게 받으셨죠? 예슬이는 스승의 날 마다 엄마가 챙겨주지 않았기에 자신이 더 정성스레 편지를 쓰고 자신의 용돈으로 선생님께 선물을 마련하고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매일 색종이 한 장에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써 드렸답니다. 글자도 다 모르고 입학을 한 아이였는데 선생님이 참 좋았나 봐요. 그래서 어느 날 부턴가 예슬이는 색종이를 꼭 가지고 가서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선생님께 가져간 색종이에 편지를 써서 드렸다는 겁니다. 《오늘 만들기 수업 정말 재미있었어요.》 《◇◇가 떠들어서 선생님 속상했지요?》 뭐 이런 한 두 줄의 글을 적어서 선생님께 드렸다더군요. 선생님이 모아 둔 예슬이의 편지가 서랍 가득인 걸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었던지요. 그 선생님도 이렇게 가슴에 남는 선물은 처음이라며 예슬의 선물에 고마워 하셨어요. 스스로 고마움을 알고 1,000원 짜리 한 장으로 선물을 고르느라 며칠을 고심하며 보낸 아이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슬이의 작지만 스스로 마련한 정성이 담긴 선물과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믿고 바라보며 보낸 그 시선들이 예슬이 선생님들께 드린 가장 큰 선물임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거 봐요. 제가 선물 드린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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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고집 때문에, 내 자존심 때문에 아이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