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주말에만 TV를 보는 저희 가족이 일요일에 열심히 보고 있는 프로 중 하나가 <러브 하우스>라는 것입니다.
저와 큰아이 남편까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데다가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기쁨 때문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러브 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볼에 살짝 패는 보조개와 함께 웃는 모습이 어이 그리 밝고 이쁜지 보는 이의 마음마저 환하게 해주는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 옆에서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아저씨, 어머니의 흐르는 땀이 안타까워 뒤에서 연신 어머니의 얼굴의 땀을 훔쳐주는 고등학생 아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큰딸, 대학에 다니는 둘째, 셋째 딸. 그리고 시어머니, 고모부와 고모의 딸까지.
신발이라고는 딱 한 켤레씩 밖에 없다며 이야기하는 그네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해맑은 웃음.
옷이 별로 없어 밤에 다음 날 입고 나갈 옷을 서로 감추어 두기도 하고 일찍 나가는 사람이 입고 나가버리면 옷이 없어 외출을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한다며 서로의 어깨를 치며 깔깔거리며 웃는 그네들의 싱그러운 미소, 그 당당한 모습에서 정말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저런 것이구나, 보는 제 눈에는 눈물이 번지고 제 마음에는 그 웃음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아마비의 어머니, 왜소증과 신부전증의 아버지.
5일장을 돌며 오징어 행상을 하는 부모님.
하루 벌이가 많으면 2만원, 공을 치는 날도 있다며 눈물짓는 두 사람.
그런 부모님이 자신의 보물 1호이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는 자식들.
자신보다 키가 작은 남편을 꼬옥 끌어안으며
"아프지 말고 내 옆에서 오래 오래 살아."
라며 눈물짓는 아주머니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예슬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아파트 앞 동에는 제 중학교적 친구가 살고 있습니다.
예슬이와 친구의 딸이 3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친구이지요.
그 친구가 우리 예슬이에게
"엄마와 같이 놀러 와라."
라고 몇 번 이야기를 했었다는 데 우리 아이는 저에게 그런 말을 한 번도 전하지를 않았어요.
우연히 길에서 만나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이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 아이 대답이 절 무척 놀라게 하더군요.
"어머니, 지윤이 집은 정말 잘 살아요. 얼마나 잘 산다고요."
"그래서?"
"어머니 괜찮으세요?"
"뭐가?"
"어머니랑 지윤이 어머니 친구라면 서요? 어머니보다 훨씬 잘 사는 친구 집에 가도 어머니 괜찮으시겠냐구요?"
아이의 말에 의하면 엄마가 부자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마음이 상할까 봐 놀러 오라던 말을 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앞 동은 아파트 평수부터 우리와 다르다면서요.
아이들이란 그런 가 봐요.
전 아직 그 친구 집에 놀러 가 보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아주 반깁니다.
며칠 전에도 왔었거든요.
아이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전 우리 세대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로 아이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 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보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참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아.
너도 TV에 나온 그 가족들 보면서 느낀 게 많을 거야.
자신의 형편을 불평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에게 죄를 짓는 것과 같다고 엄마는 생각해."
행복이란 어떤 걸까요?
결혼 한 지 몇 해되지 않던 결혼 기념일에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내가 엄청 노력하기 때문이야."
"당신이 노력을 한다구?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내가 얼마나 양보하고 참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하면서 이 가정을 꾸려나가는지 당신 알기는 한 거야."
우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때 서로 놀란 것이 서로가 자신이 더 희생하고 양보하고 참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정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내가 한 번씩 왜 이러고 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아, 그 남자도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구나.
내가 이렇게 치사하게(?) 자기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아, 그 남자도 지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아이들과 집안 살림, 친구 한 번 제대로 못 만나고 이렇게 답답하게 가정에 얽매여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아, 그 남자도 나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 포기하고 취직을 결심하면서부터 늘 이런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몰라.
한 번은 남편이 자신의 고객 중에 40이 넘어 상처를 했는데 스물 여섯 된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아주 부러워하는 얼굴로 이야기를 합디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당신 지금 그 사람 부럽죠?"
울 남편 쑥스러운 듯 싱긋이 웃으며
"부럽기는 뭘. 그냥 이야기가 그렇다는 거지."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 당신이 그 사람 부러운 만큼, 꼭 그만큼 나도 그 사람이 부러워.
이게 무슨 의미인 줄 알죠?
우리 서로 똑같애.
당신이 남이 부러우면 나도 그 만큼 남이 부러워.
당신이 밖에서 놀고 싶으면 나도 그렇고.
당신이 아내와 자식들 때문에 부담스럽고 힘겨운 마음이드는 만큼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밖에서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럴 때가 있다는 거지.
당신이 그런 것만큼 꼭 그만큼.
당신보다 더 하다는 말도 않겠지만 당신보다 덜할 거란 생각도 하지마.
늘 당신이 하고 싶은 만큼만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거야."
전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 남편도 제가 가지고 있는 꼭 그만큼 내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제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남편도 꼭 그만큼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내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 만큼 그 남자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서요.
조금 딴 이야기이지만 월요일이 제 외할머니의 90번째 생신이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저의 친정 어머니께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답니다.
그 이야기는 어머니가 결혼하기 전 저의 외숙모 님이 시집을 오시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랍니다.
"엄마에게 100원만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50원만큼 만이라도 네 올케에게 해라.
그러면 너의 그 마음이 네 올케를 통해서 200원, 아니 몇 천 원이 되어 결국은 내게로 오게 된단다."
그래서 그런지 시누올케사이인 저의 친정어머니와 외숙모님은 유난히 사이가 좋으십니다.
마치 친자매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요.
저에게는 아직 올케가 없습니다만 저희 어머니 늘 그 말씀하시지요.
"나중에 협이 색시 들어오면 너희들이 잘 해줘라. 그게 엄마에게 효도하는 길이야."
그래서 저희 딸 넷이 모이면 그럽니다.
"나중에 협이 색시는 우리들이 돌아가면서 업고 다는 든 지 해야되겠다. 어머니 업고 다니고 싶은데 그걸 올케한테 하라고 하니 말이야. 날씬한 사람이 들어와야 할텐데."
행복한 가정이란 나 혼자의 생각으로 나 혼자의 노력으로가 아닌 서로 함께 노력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TV속의 그 가정이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서로가 함께 노력하여 만들어 가는 행복이기 때문일 거라 믿어 봅니다.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아이들을 양 옆구리에 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다.
【지은이의 말 중의 일부】
초ㆍ중ㆍ고등학교ㆍ대학교, 대학원이 없던 이전 시절에는 이야기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조기교육의 역할을 해왔다고 나는 확신한다.【차례 중의 일부】그렇다면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자라는 지금 세대는 참으로 허전하리라.
홀아버지 장가 보내기
어머니를 환생시킨 아들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삼 동서의 연극
무지개 문안
형을 감동시킨 꽁보리밥
삼 남매의 가슴에 새겨진 '하늘 천'자
구두쇠 부자의 서약서
옥식과 지네 비밀을 지켜준 시동생
귀한 자식일수록 초년고생을 시켜라
"옛날 어떤 곳에 한 영감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그대로 읽어주어도 그게 바로 이야기가 되는 책.
"딸이 셋 있었다, 딸이 셋 있었습니다"가 아닌 "딸이 셋 있었다고 한다."에서 느껴지는 혀 끝에 감도는 감칠맛이란.
이 이야기만 들려주면 되는 집안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