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촌스러운 녀자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전 역시 좀 촌스러운 사람인가 봅니다.

한 때 매년 만들던 제 문집의 제목이 "촌스러운 녀자"였었는데.

 

【1991년에 만든 문집의 표지】

문집의 첫 장을 옮겨 보았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닫혀진 공간에서 내가 바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흔들리는 태극기뿐임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바람에 덜컹이는 목재 유리창이라도 있다면 좋을텐데.

두터운 알미늄 샷슈 유리창문은 더 이상 덜컹임을 거부합니다.

너무 큰 무게를 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가 봅니다.

세토막으로 잘려진 그 나무틀의 유리문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그 덜컹거림도.

잘려짐이 없는, 그래서 밖의 풍경이 화랑에 걸린 풍경화처럼 느껴지는 이 유리문이 내게는 낯설고 어색합니다.

이런 날, 난 색연필을 찾습니다.

내 손에 쥐여져 있는 플라스틱 색연필.

내가 원하는 것은 실끝을 잡아당겨 빙글빙글 돌려 까면 심이 나타나는 그 색연필인데.

손에 쥔 색연필을 어쩌지 못해 당황하는 나에게 또 하나의 내가 말합니다.

'어이구 촌스럽기는.'

그렇습니다.

난 정녕 촌스러운 녀자임을 감출 수가 없나봅니다.

이 가을에 촌스러운 녀자가 촌스러운 몸짓을 해 봅니다.

역시나 전 …….

지난 일요일 조카 윤서의 첫돌이었습니다.

동생 네가 진주에 살고 있기에 아침부터 대구에서 진주로 친정어머니와 저의 고모님과 저의 가족이 길을 나섰지요.

요즈음 다 그러듯이 돌잔치는 뷔페에서 12시에서 3시까지 열린다고 하더군요.

좀 이른 시각에 도착한지라 동생네 집에 들렀다가 돌잔치 장소로 향했지요.

플라스틱 모형으로 돌상이 차려져 있고 연회석 한 켠에는 음식들이 잘 차려져 있더군요.

제부가 9남매의 막내이다 보니 윤서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니도 연세가 참 많습니다.

남편이 7남매의 막내이다 보니 저의 시어머님의 연세가 여든 셋인 것처럼요.

그래서 그런지 제 눈이 자꾸만 그분을 따라 다니고 있었지 뭡니까.

아드님과 며느리, 따님들이 곁에서 섬세하게 시중을 들고 계셔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저의 제부네 형제분들이 효심과 우애로는 고향인 창녕 바닥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는 말을 익히 전해들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배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남편도 제 마음과 같았나 봅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시니 뷔페 연회석의 의자도 편하지 않으실 테고 음식도 그렇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3시간이라는 시간이 참 길더군요.

오고가는 손님들은 그 사이에 편한 시간에 와서 축하를 해주고 식사를 하고 가면 되는데 정작 주인공인 아이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 있고 저희들도 나중에 동생네 집에 들렀다가 가려고 마칠 때까지 있으려니 그 시간이 만만치가 않았어요.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윤서 할머니께서 의자의 등받이를 잡고 졸고 계시지 뭡니까?

그 순간 제가 막 화가 나는 거예요.

만약 집에서 돌잔치를 한다면 방에 누워 편안히 한심 주무실 수 있을 텐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말입니다.

집에서 한다면 어른들 오랜만에 만난 친지나 동기간들과 방바닥에 편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힘드시면 두 다리 편히 펴고 누우시기도 하고 마주 누운 분과 팔베개를 하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시다가 깜빡 조시기도 하고 낮잠 한잠 길게 주무시기도 하시겠구먼, 싶은 것이 말입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엄청난 대식가인 울 남편 맛있는 음식들을 열심히 먹다가 문득 제 시선을 따라 그 분의 모습을 봤나 봅니다.

갑자기 수저를 놓더니

"편하고 좋기는 한데 어른들이 불편하시겠어. 3시간은 너무 길다. 집안의 어른이시니 늦게라도 오시는 손님들 때문에 먼저 집으로 가실 수도 없으시고. 어이구, 저러다가 혹여 넘어지실라."

시간도 넉넉하고 하다보니 남편과 저는 자연 저희 아이들 돌잔치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작은아이는 한참 아프고 있던 터라 돌잔치는 엄두도 못 내었지만 큰아이의 돌잔치는 했었거든요.

그 때는 남의 집 2층에 전세를 살던 때였는데 아이 돌잔치 준비로 경험 없는 젊은 부부 거의 보름을 돌잔치에 끙끙거렸던 기억이 있지요.

전 거실 바닥을 세제와 수세미로 다 닦아내고(혼자 거실 바닥에 유난을 떠느라고)는 몸살이 나 누워버렸고 남편은 밤마다 메모지에 준비할 음식과 그를 위한 장보기 계획을 짜고 초대할 손님들 명단을 정리해 보고하느라 부산을 떨었었지요.

한복을 살까말까로 고민하다가 꼭 사야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물리치고 그냥 평소 입던 것 입히자로 결론을 내렸지요.

남편과 저는 아이의 돌 사진도 사진관에 가서 찍을 계획도 없었기에 한복을 돈 들여 사기도 그렇고 아이에게 그리 편하지도 않은 옷을 입힐 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 친정 어머니 무지 화가 나셨지요.

아이 돌날에 한복도 한 벌 안 사 입힌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 날 양쪽 집과 아는 분들이 손님으로 얼마나 많이 올 건데, 손님들이 뭐라 그러겠느냐시며 당신이 사오신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울 남편도 고집이 만만치 않거든요.

자기가 생각한 것을 좀처럼 꺾지 않는 편이라 결국 남편과 제가 결정한대로 한복은 사지 않고 기념 사진도 찍지 않기로 결정을 했지요.

맞벌이다 보니 며칠 미루어 일요일로 날짜를 잡고 토요일부터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준비를 했고 일요일 하루 참 많으신 분들이 예슬이의 첫돌을 축하해주러 오셨지요.

물론 예쁜 한복 한 벌 사 입히지 않은 것 때문에 시누들, 동서들 등등 한 소리 안 하시는 분들이 없드만요.

그리고 그 다음 일요일에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제가 다녔던 대학 캠퍼스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갔었습니다.

10월의, 가을의 캠퍼스는 참 아름답더군요.

이제 돌이 지난 아이가 뭘 알겠습니까마는 제가 공부했던 건물로 남편이 공부했던 건물로, 함께 거닐었던 오솔길로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엄마가 공부했던 곳, 아버지가 공부했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해주고 엄마와 아버지가 손잡고 다니던 이야기, 뽀뽀를 했던 곳을 기억해 보기도 하면서 남편과의 추억을 더듬어 보고, 아이가 스물이 되어 자신의 젊음을, 사랑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건강하게 자라기를 지는 노을을 보며 둘이 함께 기원하기도 하고, 아이의 스냅 사진을 몇 장 찍어 주는 것으로 아이의 돌잔치를 우리 식(?)으로 마무리를 했지요.

앨범을 펼치면 한복을 입고 찍은 예쁜 돌 사진은 없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하루 종일 어울려 축하해주고 놀던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돌잔치 날 찍은 사진】

 

 

【경대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으로 확대하여 두고 보고 있는 사진】

전 아직까지 집들이든 연말 송년회든 손님은 집에서 치르고 있습니다.

가끔 남편의 친구나 회사 식구들이 놀 장소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저희 집으로 청하지요.

역시 전 좀 촌스러운 구식 사람인가 봅니다.

남편에게 제가 그랬지요.

"여보, 우리 아이 하나 더 낳을까? 그래서 시골집에다 솥 걸어두고 국 끓이고 해서 돌잔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걸 한 번 보여줄까?"

울 남편 기절을 하면서

"머리 허옇게 해서 애 돌잔치를 하란 말이야? 이 아줌마가 정신이 있는 거야?"

곁에서 저희 부부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친정어머니 이 때다 싶어

"그래도 낳아만 봐라. 금방 자라지."

딸 만 둘인 게 늘 마음에 걸리고 아쉽다는 어머니께서 얼른 한 마디 거드시더군요.

저희들도 우리 집 한 칸 없이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비좁은 집에서 돌잔치고 집들이고 다했었는데.

맞아요. 집들이!

제가 결혼해서 처음 살았던 곳이 13평 아파트였는데 그곳에서 남편 회사 식구 21명도 청해서 신혼집들이를 했었어요.

다 앉지도 못해서 남편은 서서 밥을 먹었었지요.

이제는 그런 집에 초대를 하면 손님들이 싫어할지도 모르겠군요.

세월은 변하고 거기에 따라 시절에 맞추어 따라 변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저 같은 촌스러운 아줌마는 어찌할까요?

[비디오 가게에 가면 이 영화 한 번 보세요.]

 

♥천국의 아이들♥

3일에 걸쳐 3번을 본 영화랍니다.

어머, 이렇게 적고 보니 포스터 속에도 <3>이란 숫자가 있네요.

<3>이란 숫자와 인연이 있다면서 쬐끔 우기고 싶네요. ㅎㅎㅎ

예슬이와 한 번 보고.

액션 영화를 즐기는 울 남편, 아이들과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혼자서 컴 앞에 앉아 사이버 바둑을 두더니 그 다음 날 절 통역관으로 앉혀 두고 보는 통에 한 번 더 보고.

다른 집 남편들도 대부분 그런 다지요?

같이 영화를 보면서 늘 옆에 앉은 제게 묻습니다.

"저거 왜 저래?"

"아까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거야?"

"조금 전에 그 장면 뭘 뜻하는지 알 수가 없군. 무슨 의미였지?"

그러다가 제가 성심 성의껏(?) 대답을 해 주지 않으면 성을 내기도 합니다.

"왜 그러냐니깐? 그 사람 어디 갔느냐고 묻잖아!"

같이 보는 전들 그 사람이 어디 갔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만은 끝내는 이럽니다.

"좀 가르쳐주면 어때서? 빼기는!"

처음에 같이 살 때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지? 혹시 지능이 좀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희 친정 아버지께서 늘 TV를 보면서 어머니께 귀찮게 질문을 해서 자주 다투는 걸 본 기억도 있고 제 주변의 남자들만 그런지, 하여튼 제가 알고 있는 남자들은 거의 증세가 비슷하더군요.

지금은 그런 모습이 귀엽다니 까요.

울 남편도 자신을 너무 잘 아는지라 아이들과 함께 보는 좀 무게(?)가 있는 영화는 보면서 자신이 끊임없이 묻게 된다는 걸 알고 그러면 아이들이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잠든 뒤나 그 다음 날 절 통역관으로 앉히고 보곤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남편의 관람을 돕기보다는 두 번째 그 느낌이 더 강해 통역관으로 절 써준 남편이 고맙기까지 하더군요.

남편에게 장면 장면들을 설명하면서 처음 볼 때 놓쳤던 정말 작지만 큰 부분들이 절 영화 속으로 빨려 들게 하더군요.

그 다음 날 또 한 번 보았지요.

저희 학급의 37명의 공주들과 함께.

미국 영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이란 영화의 독특한 경험을 한 번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요.

87분 동안 상영되는 영화라 아침 자습 시간과 1교시 사회 시간 1시간을 빌려서요.

사회 선생님이 영화 보여주느라 1시간 시간을 빌린 걸 알면 화를 낼지도 모르기 때문에 비밀!

교장 교감 선생님이 아시면 더 큰일이겠지요. 진짜 쉿! 쉿! 비밀!!!

영화의 내용은 참 간단하고 사소한 것입니다.

첫 장면은 구두를 수선하는 아저씨가 다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것입니다.

이 때 남편에게 한마디했지요.

"구두 모양과 색깔을 잘 봐 둬. 이 구두를 기억하고 있어야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어."

동생의 구두를 수선해서 오던 알리가 야채 가게에 들른 사이 가게 앞에 놓아 둔 수선한 동생의 구두를 고물상 아저씨가 쓰레기인 줄 알고 가져가 버리면서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동생 자라의 "그럼 나 학교 갈 때 뭐 신어. 신발은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라는 말에 아픈 엄마, 5달이나 밀린 집세 등을 생각하며 부모님께 이르지 말라고 동생에게 간절히 부탁을 하지요.

퇴근 해 온 아버지가 예배 때 쓸 설탕을 망치로 부수고 있는데 자라가 차를 내 줍니다.

바닥에 있는 설탕을 차에 넣어 마시라는 딸아이에게

"이건 예배 때 쓸 것이란다. 우리 것이 아니야."

남편에게 또 한 마디 했지요.

"저 많은 설탕 조각 중에 한 조각 넣어 먹은 들 어떻겠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가지지 않는 거야.

여긴 중요한 장면인데 두 가지를 볼 수 있어야 해.

하나는 너무나 정직한 아버지의 고달픈 삶이지.

저렇게 순수하고 정직하지만 너무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것.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야.

그리고 또 하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는 것은 별게 아니라는 거지.

정직 하라, 라는 말을 열 번 백 번 할 필요가 없는 거야.

만약 아버지가 설탕 한 조각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차에 넣고 아이들에게 정직해야 하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고 생각해 봐.

그리고 이제부터 집중해서 잘 봐야돼.

아이들이 공책에 쓰면서 하는 대화, 그리고 눈빛, 그리고 자라의 손에서 스르르 빠지는 몽당연필과 알리가 주는 뒤에 지우개가 달린 새 연필, 그 연필을 쥔 자라의 손에서 말해지는 그 복잡한 심정을 볼 수 있어야 해."

울 남편의 영화 취향과는 한참 거리가 먼 탓에 이렇게 옆에서 해 줘야 한답니다.

남편과 저의 영화 보기는 이렇게 이어졌지요.

영화의 내용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고 몇 장면만 소개할게요.

 

오빠의 운동화를 신고 간 자라가 체육 시간에 자꾸만 뒤로 물러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아마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오빠의 운동화가 더럽고 냄새가 나서 챙피하다고 둘이서 한 짝씩 운동화를 빨다가 손에 묻은 비누로 비누 방울을 만들어 날리는 장면입니다.

음악과 영상이 정말 아름답지요.

 

자신의 잃어버린 헌 구두를 신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집을 알아 둔 뒤 방과후에 오빠를 데리고 그 집을 찾아가지만 장님의 아버지와 자신들보다 더 궁색한 그 아이의 형편을 보고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둘이서 숨어서 도리어 눈물을 흘리는 장면입니다.

 

정말 너무 아이다운 장면이라서 도리어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시나리오와 감독의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지요.

마라톤 대회의 3등 상품이 운동화이기에 알리에게는 1등도 2등도 필요없고 오직 3등만이 절실합니다.

"저 바보 자슥, 계속 1등으로 가서 결승 테이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3등을 하면 될텐데 달리는 중간에 3등을 하면서 갈려고 저러다니."

이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한 말입니다. 정말 전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봐요.

 

저희 반 아이들 모두가 이 장면에서 영화가 끝이 나는 바람에 몹시 당황을 하더군요.

알리가 달리기 대회에서 돌아와 다 낡은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부르트고 까진 두 발을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연못에다 담급니다.

알리의 두 다리로 모여드는 금붕어들.

저의 반 아이들은 확실한, 눈에 보이는 결말에 익숙해서인지 너무 허탈하다, 황당하다고 표현을 하며 영화가 끝났다며 비디오를 끄는 저를 제지하지 뭡니까?

무슨 끝이 이러냐면서 말입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지요.

 

다음 글은 김정은님의 홈(홈으로 바로 갑니다.)에서 옮겨온 이 영화에 대한 김정은님의 감상인데 소개하고 싶어 가져와 보았습니다.

 

처음 화면부터 궁끼가 절절 흐른다. 이미 다 헤져 거의 신을 수 없게 나달나달하고 색조차 바랜 낡은 비닐 구두를 길거리의 신기루장수가 큰 바늘로 이리 저리 헤집으며 꼬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리고 아무리 우리나라의 소년 소녀가장이라도 이 정도까지 심각한 상태의 신발을 꼬매 신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보지만-왜냐하면 꼬매는 가격이 더 비쌀테니까?- 21세기에 과연 이런 나라가 다 있구나 하는 탄식으로 시작하는 이란영화 천국의 아이들...

이란이란 나라는 반문화제국주의, 반세계화를 부르짖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부르짖고 는 나라중에서도 특히 과격한 나라라 볼 수있고, 반문화제국주의와 관련한 성공적인 사례연구와 발표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미 차기 영화의 대안이라고까지 주목받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같은 걸출한 감독도 나오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란영화-단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이란영화로 한정하겠다.-에는 그다지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또한 천진한 어린이들을 많이 쓰는 동화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사소한 주제에 탐닉한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란 영화의 한계라고까지 볼 수 있는 이런 점에 대해서 나는 처음에는 정치와 종교를 일치시키는 보수적인 통제체제와 이슬람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자생한 풍토일 뿐이라고, 요즘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 영화계에서 한두번은 독특한 시각과 참신한 비쥬얼이라고 주목받을 수는 있겠으나 어차피 이런 식의 영화는 어느 정도 발전되면 더이상 도약하지 못하고 답보되거나 정체되어버릴 것이라는 주제넘게 오만한(?) 생각을 해왔었다.

그리고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울분이라고나 할까? "가난한 하층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벌이조차 고마워하고 그 벌이가 끊길가봐 노상 조마조마해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 행복하다." 는 식의 긍정적인 그네 식의 자족을 참 마땅치 않아 하는 편인데 이처럼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널려 있는데도 비판을 못하며 나름대로 자기식의 자족만을 찾는 아랍권의 분위기가 숨막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물론 나의 이런 식의 비판에 대해 물신주의자라고 매도할 수도 있고 제국주의자라고 매도할 수있다.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든가 잘 산다고 사람 마음마저 풍요롭지는 않다라든가 너무 서구인 중심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라든지 무수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뿐인가?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세상에서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든가, 지금 우리나라에도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하층민이 많다라는 식의 비난도 나올 수 있다.

또 어떻게 어린아이들의 천진한 눈망울을 보며 그런 세속적인 비판이 나올 수 있는가하는 비난도 충분히 각오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왜 국가 시스템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보다 여유로울 수 있는데 왜 그러한 노력을 보여주지는 않고 지레 정신적인 행복이나 자족만을 추구하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런 답답함은 신분제도가 굳어진 인도 관련 화면을 보며 굳힌 선입관이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헤진 구두를 꼬매는 처음 장면을 보며 음, 또 궁끼가 흐르는군...

숙제공책 하나를 가지고 영화 하나를 만들더니 이제는 이 헤진 구두를 가지고 어디까지 영화를 끌어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차츰 차츰 "이란은 또 인도와는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덧 굳어진 나의 선입관을 지우려 애썼다.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6~70년대식 "엄마없는 하늘 아래"처럼 궁끼가 흐르지만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은 도저히 만들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있어 보였다.

뭐든지 좀 불편하더라도 참아야 한다는 의식, 억울함이 있어도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고 가슴 속으로만 끙끙 앓지만 그렇게 불쌍해 보이지 않는 모습, 가족끼리 이웃끼리 서로 서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양보하고 이끌어나가는 모습, 발이 부르트고, 지각을 해서 야단 맞더라도 곧 죽어도 남에게 도와달라거나 애걸하지 않는 유별난 자존심, 목표대로 안됐더라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낙천적인 체념과 함께 마치 신의 선물이라는 듯 오버랩되는 아버지 자전거 위의 빨간 동생 구두들 조차 우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다.

그러나 이란영화와 인도영화와는 또 달랐다.

다른 점이라면 바로 거의 굳어진 신분제도 아래 탈피해볼 노력조차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인도인의 체념과는 전혀 다른 이란만의 고유한 민족성이라고나 할까?

이란은 어떻게 하든 못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잘살아 보기 위해 노력하다가 안되는 것을 체념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망가진 자전거를 타고 시내 부자집 동네로 정원사 부업을 나갔다가 자전거에서 넘어져 치료비로 일당을 날려버릴 망정 일당을 받고 뭐도 사고 뭐도 사고 계속 일해서 잘살아 보겠다는 아버지의 소시민적 꿈이 보기 좋았고 여동생의 운동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라톤에 나가 오로지 3등을 하고자 발이 부르트도록 달리는 소년의 꿈과 스스로 해결하겠노라는 자존심 앞에 어느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을까?

이 자존심이야말로 바로 이란영화의 독특함이고 더욱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있는 궁끼와 자존심 없는 궁끼...

갑자기 뭔 일만 생기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모금방송을 하는 우리나라의 행태를 보면서 왜 정부가 복지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산불, 재해등등-조차 국민에게 습관적으로 떠넘기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만약 이 영화에서처럼 구두 하나 장만해주는 것이 가장 큰일이라면 당연히 소년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어렵지 않게 몇몇 사람의 모금으로 해결해주었을거다.

백지장도 맞들면 낮다는 미명 하에 말이다.

과연 어느쪽이 더 발전 가능성이 있을까?

모금을 하면 구두야 쉽게 얻겠지만 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이론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자존심 있는 궁끼가 더 발전가능성이 높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기야 어려서 궁끼가 흐르는 사람은 커서도 흐른다며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며 자존심을 버리고 적당 적당히 도움도 받으며 살라고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예 내 자식만은 고생시키지 않고 죽을 때까지 왕자나 공주대접 받도록 키우겠다며 기를 쓰는 것이 요즘 우리나라 실태인데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나는 비록 불가능하지만 자존심있는 궁끼 쪽에 박수를 주고 싶다.

참고 인내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뜰날이 올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