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영어책 <<아줌마의 설렁설렁 잉글리쉬>>
드디어 내 영어책이 내게로 왔다.
내 책을 내가 사서 보다니. 에구구, 글쓴이에게는 공짜로 한 권 줄 것이지.
어쨌거나 이 감격, 감격. 그러나 나 혼자의 감격도 잠시.
욕심이었나?
난 한 편의 수필같은, 편안하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영어책을 쓰고 싶었다.
영어를 조금은 할 줄 아는 사람말고, 나처럼
여자, wuman인가 woman인가 waman인가, 참 뭔지.'우먼'이란 말은 알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스펠링이 어떻게 되는 건지 영.
그런데 스펠링의 스펠링은 뭐지?
선생, teacher, 그래도 이건 적을 수 있겠군.
나이가 서른넷인데 으음, 이건 또 스펠링이 어떻게 되지.
모르겠다. '써티 포'인 것 같은데 그걸 적자니 도대체 안 되는군.
중학교를 middle school이라고 하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독서, 독서를 뭐라고 하지.
책은 book이고 읽기는 read이니 book reading인가. 이것 참!
- 본문 중에서
영어때문에 상처(?)를 안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쉽게, 그저 잡지책을 넘기 듯 넘길 수 있는 그런 영어책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책을 본 남편의 소감은
"이거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책에 있는 영어도 너무 쉽고.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은 돼야지." 아, 난 세상에서 가장 쉽고 편안한 영어책 한 권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었는데, 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영어책>>>이 되어버렸다!!!!
"그래, 유치하다 왜?"
한마디 밖에 할 수 없는 내 현실을.
그래도 나 스스로는 이렇게 우겨본다.
"한 편의 수필같은 편안한 영어책"이라고.
내가 쓴 영어 책의 머리글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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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설렁설렁 잉글리쉬>>>의 머 리 말
Let's go for a walk.
(산책 가자.)저녁 8시경이면 나는 종종 아이들과 함께 동네 오락실에 있다.
아이들과의 저녁 산책은 우리들의 큰 즐거움이다.
먼저 쪼그리고 앉아 한번에 200원씩을 주고 설탕과 소다를 국자에 넣고 녹여 별 모양 다이아몬드 모양을 오리느라 가스불 아래에서 모두들 엄청난 집중을 한다.
그 다음은 상가 지하에 있는 오락실.
큰아이의 펌프 솜씨에 연신 감탄을 하며 작은아이가 앉아 있는 오락기로 왔다갔다, 요란하기 그지없는 오락실 안에서 나조차도 바쁘기만 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아몬드 봉봉으로 한 개 산다.
셋이서 돌아가며 한번씩 먹기로 했는데 작은아이는 욕심이 많아 보통 여섯 일곱 번은 빨고 내게로 건네준다.
그 다음은 서점이다.
동네 책방치고는 꽤 큰 데다가 해박한 주인 아저씨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 나와 우리 아이들이 거의 매일 들락거리는 곳이다.
다음은 과일 가게,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이기에 산책의 마지막은 보통 이 과일 가게이다.
과일 가게는 아파트 입구에 있다.
그 시간이면 우리 아파트 입구가 가장 붐비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겹겹이 서 있는 학원 차들, 아슬아슬하게 그 사이로 내리는 그 많은 아이들.
그들 등에 매달려 있는 가방들.
그 중에 영어 학원 차에서 내리는 우리 아이들 또래의 아이들도 참 많다.
영어.
나는 영어 부진아다.
그런데 여섯 살 난 둘째 아이는 엄마가 무슨 선생이냐고 물으면 "영어 선생님"이라고 대답한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영어를 참 못했었는데 열심히 노력하여 영문과를 나와 영어 선생을 하고 있는가보다 짐작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지금도 영어 부진아 상태이고 난 영어 선생이 아니라 과학 선생이다.
그런 사람이 무슨 영어 학습에 관한 책이냐고, 영어 선생이란 말은 또 웬 말이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난 분명 영어 부진아이기도 하고 영어 선생이기도 하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턱없는 부진아이고, 우리 집 두 딸에게는 영어를 아주 잘하는, 그래서 아직 어린 둘째 아이는 자기 엄마가 영어 선생님인 줄 알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나와 같은 영어 부진아를 위한 책이다.
학창 시절 영어 단어 쪽지 시험에서 선생님이 불러 준 10개 중 최고로 많이 적을 수 있었던 단어가 겨우 3개였던 우리,
틀린 단어로 빡빡 숙제를 해야 했고,
연습장을 메우기 위해 고민하다 펜을 두 개, 세 개 반창고로 묶어 한꺼번에 써본 경험이 있는 우리,
그게 들통이 나 손바닥이 불이 나도록 맞아 본 경험이 있는,
영어 학급 평균이 68점인데 35점 받은 시험지를 이마에 붙이고 복도에 서 있어 본, '평균 이하의 학생' 경험이 있는 우리,
영어 본문 읽기에서 꺾어지는 발음으로 듣는 친구들이 민망하여 선생님의 눈치를 보게 했었던,
영어 교과서 빈 여백을 우리말 해석으로 빽빽이 메워 놓았던 우리,
영어가 안 돼 할 수 없이 팝송을 멀리하고 대중 가요만 부르는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바로 이런 나와 같은 영어 부진아를 위한 책이다.
난 한번도 영어의 유혹에 넘어 가보지 못했다.
영어의 매력을 느껴보지도 못했다.
남들이 영어가 재미있어 AFKN을 보고 팝송 가사를 들고 노래를 흥얼거릴 때에도 나는 그저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난 중학교 1학년 때의 악몽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단어 읽기에서 내 이름이 불려졌고 선생님의 지휘봉 끝이 머문 단어는 JUICE.
나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주이쎄"였다.
얼굴이 벌게지신 선생님, 책상을 두드리며 넘어갈 듯 웃는 친구들.
"뭐라꼬? 주이쎄? 뭘 달란 말이고?
오냐, 주꾸마. 니한테 줄 수 있는 건 이 매뿐이데이.
이건 니가 내 보고 달라고, 주이쎄라고 애걸해서 주는 매니까 불만은 없을 끼다.
이리 나오너라. 니는 주스도 안 사묵나? 주스 병에 적힌 글자도 한번 안 봤나?"'주스'를 '주이쎄'로 읽은 죄(?)로 그 다음 영어 시간부터 "어이, 주이쎄"로 불려졌고 난 영어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정말 끝이었다.
대학 시절 그저 폼으로도 한번쯤 가는 영어 회화 학원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 영어 부진아인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 집 두 딸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나에게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게 해주었고, 지칠 때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가 되어 주었고, 나와 함께 영어를 공부하는 동료가 되어 주고 있다.
나는 엄마들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영어를 하자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영어뿐 아니라 그 이상을 느끼고 그들 인생에 좋은 거름이 된다고 믿기에.
아이들은 내가 배우면 자연스럽게 나를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될 것이기에.
우린 함께 마주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하기 위한 방법도 필요하지만 엄마보다 더 영어를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 10대의 아이들과 함께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하고 싶다.
우린 우리 스스로가 아이를 밀어내면서 자식도 품안의 자식이지…, 하면서 씁쓸해 하는 것은 아닌지.
10대는 떠나보내야 할 나이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도 떠나고 싶지 않지만 많은 외적 강요에 의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난 영어로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해 보았고 성급하다 싶게 이 책을 내는 이유는 "우리 집"이라는 "영어의 장"을 만들어 줄 가족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밤거리를 방황하는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을 집으로 보낼 수 있는 작은 길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램이 너무도 크기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본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영어를 열망하는 모든 영어 부진아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이런 아줌마도 영어가 되는데 젊은 아가씨, 멋진 총각들이 어찌 안 되겠는가?
2001년 2월 이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