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을 꿈꾸는 아이들
엄마 학교 언니야의 엄마라니까 잠이 오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참 힘든 시간들이었다.
학급의 아이들의 가출과 1학년 후배들을 폭행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큰 아이는 자기 친구들도 거의 대부분 가출에 대해 생각을 한 적이 있고 그런 이야기를 가끔은 한다며 언니들의 가출 사건에 유독 관심을 가진다.
15살의 아이들의 가출.
장미(이건 나만이 부르는 그 아이 이름이다.)는 내가 이 학교에 오면서 만난 아이로 학생들의 학력이 그리 좋지 않는 우리 학교에서 내가 유일하게 과학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했던, 나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가지게 했던 아이였다.
비록 우리 반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참 따뜻하게 자라왔다는 것이 저절로 느껴지는 아이였다.
장미는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그 해맑은 얼굴로 한껏 꿈을 꾸던 그런 아이였었다.
과학 시간이면 나를 당황하게 하는 그 아이의 지적 호기심에 번번이 난감해 하면서도 그 아이를 만나는 날이 기다려지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장미가 2학년이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가출을 하고 후배들을 폭행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단정하고 깔끔하던 차림새는 노랗게 염색을 한 머리에 무스를 잔뜩 바르고, 귀는 세 군데나 뚫어 귀고리를 하고, 교복치마는 허벅지 중간까지 오게 짧게 자르고 신발은 구겨 신고 길게 기른 손톱은 여러 색깔들로 화려하기만 하고.
난 한 아이가 너무도 다르게, 그것도 너무도 단시간에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어느 만큼, 어떤 방법으로 전해져야하는지에 대한 혼란으로 큰 열병을 앓았었다.
표면적으로는 보통 이야기하는 문제아가 될만한 조건은 하나도 갖추지 않은 아이 장미.그 아이의 불만은 엄마의 너무 큰 관심이었다.
그냥 좀 내버려두라는, 밤 12시가 넘도록 놀고 와도 그냥 두라는, 친구 집에서 자고 와도 아무 말 말고 그냥 두라는 것이 장미가 부모님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건대 장미의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은 그리 유별나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평범한, 아니 도리어 좀 모자라는 듯한 감마저 들었는데 장미는 끝내 그것을 구속이고 간섭이라며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해버렸다.
아이를 찾으러 밤거리를 헤매 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도 10대의 골짜기를 지내 온 사람인데 난 왜이리 건망증이 심한 것일까?
나도 한 때 가출을 꿈꾸던 아이였던 것 같은데.
왜 이리도 그 때의 그 절박하던 감정은 어디 한 곳에 새끼손톱만큼의 흔적도 찾을 수 없고….
난 장미의 일을 지켜보면서 그저 내 작은 노력에 나 혼자 몸부림을 쳤을 뿐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가출과 폭행 사건.
난 아이들 앞에서 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멀리 가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을 돌아오게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다는 사실에….
그저 목이 매여 나오지 않는 말 대신 손이나 잡아주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너무나 힘없는 눈물 줄기 밖에 내 보이지 못하는 나 자신.
엄마들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너무 약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저렇게 멀리 가는 동안의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들이 필요할거라는, 그러니 우리들의 끝없는 인내와 포옹, 사랑의 말들만이 아이들을 우리의 곁으로 오게 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또 다시 겪게 될 절망, 그로 인해 아이와 부모가 서로에게 주어야 할 상처들.
어쩌면 우리 아이들 모두가 가출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
딸아이는 친구가 집을 나오면 우리 집에서 재워 주겠다며 친구에게 그렇게 힘이 들면 나와 버리라고 말을 한 적도 있다면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마주 보이는 저 예쁜 눈동자 깊숙이 저 아이의 불화산도 끓어오르고 있겠지.
난 과연 그 끓는 화산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림 읽어주는 여자,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내가 너에게 뭔가 해줄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 말을 남긴 채 그는 떠났다. 내가 좋아해 온 그림들을 보면 내가 보인다. 최근에 와서 좋아하게 된 그림들의 특징은 뭔가 '덜 그린' 그림이다. 뭔가 덜 그렸다는 느낌 그래서 내가 완성하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림 가능성으로 비어 있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결에 스며들게 하는 그림. 그랬구나, 덜 그린 듯한 저 그림이 나를 붙잡듯 조금은 부족한 듯한 그 모습이 상대에겐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구나. 마티스의 이 그림을 보면서 나를 떠나간 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욕심을 내는 책 중에 하나가 바로 그림이 있는 책이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 보다 그림책을 더 좋아하는 이유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가득 들어 있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를 반기기 때문이리라. 난 그림을 참 좋아한다. 어쩌면 가지 못한 또 하나의 길에 대한 미련이 이리도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학급의 아이들을 위해 책을 고르러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에 "그림"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 두 번째 책. 난 그림이 있는 책은 참으로 아끼면서 본다. 맛난 과자가 줄어들 때의 안타까움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그리고 책장을 넘겨 새 그림을 만나는 순간은 난 운명처럼 누구를 만나듯 심호흡을 하곤 한다. 난 이 책들로 인해 내 미술 노트가 생겼다 내가 그림을 읽어 준다면, 하면서 적어 보고 있는 글들이다. 이 봄, 미술관을 집안으로 들여 보기를 바라면서 권해본다. ***아껴야 잘 살죠!*** 출근하는 나에게 예슬 : Mom, when you will be back? 나 : I'll be back after I finish my work. 예슬 : When will that be? 나 : Today is Saturday. Well, right around two p.m. How come? 예슬 : Are you busy in the afternoon? 나 : No. I free then. Why? I am busy now. 예슬 : I need to get new dress shoes. The chorus have to wear black dress shoes. 작년에 사준 검정 구두를 떠올리며 나 : You have black dress shoes. 예슬 : My old shoes are tight. 나 : We're a little low on money these days. 헌 구두를 그냥 신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I'll think about it. Anyway, see you later. 그렇게도 되고 싶던 합창단원이 되었으니, 합창단원이 되고 싶어했던 마음을 아는지라, 새 구두도 사고 싶을 거라는 생각에 하나 사줘야겠다며 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예슬 : I don't need new shoes. I am going to wear old shoes. It'll wear for quite a while. 나 : What? Why did you think that? 쌩긋이 웃으며 내 팔짱을 끼며 하는 말 예슬 : Conservation is the key to living well. 어이구, 내 강아지! 기특하기도. 이럴 때를 대비하여 외워 둔 문장 한 번 써먹어야지. She is a fully matured person. 부탁드릴게요. Give her big hand.<본문 중에서>
(언제 오세요?)
(퇴근하면 오지.)
(그게 언제쯤인데요?)
(토요일이니까, 오후 2시쯤. 왜 그러는데?)
(오후에 바쁘세요?)
(별일 없는데 왜 ? 엄마는 지금이 바빠.)
(새 구두 사야를 사야되요.)
(합창단원은 검은 색 구두를 신어야 하거든요.)
(너 검은 색 구두 있잖아?)
(헌 구두는 작아요.)
(요즈음 쪼끔 형편이 좋지 않는데.)
(한 번 생각해보자.)
(어쨌든 이따 보자.)
(새 구두 안 사주셔도 되요.)
(헌 구두 신기로 했어요.)
(헌 구두 한참은 더 신을 수 있겠어요.)
(그래?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아껴야 잘살죠.)
(그 애는 참 속이 깊어요.)
(큰 박수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