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딸이면서 내 딸들의 엄마이기도 한 나
책을 고르고 있는데 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웬 꽃이에요? 가만, 무슨 날인가? 스승의 날인가?"
서점 아저씨의 내일이 어버이 날이라는 말에 남자는 아차차 하며 꽃을 두 개 달라고 하면서 그럼, 내일 본가에 가봐야겠네 하며 스포츠 신문을 하나 골라 든다.
남자가 서점 문을 나서자 서점 아저씨 좀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며 한 마디 한다.
"어린이날 잊어버리는 사람은 없드만 오늘 하루 저 꽃보고 무슨 꽃이냐고 묻는 사람 참 많구먼. 어버이날 생각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하면서 좀 친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자신이 마치 어버이날을 잊어버렸던 사람 마냥 머쓱해한다.
5월 없이 4월 다음에 6월이었으면 좋겠다고, 시댁에 친정에 양쪽으로 해야하니 이거야 원, 다음 주는 또 스승의 날이고, 하는 두 엄마의 투덜거림 섞인 대화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는 어머니 위한 일기장이 따로 있다. 위한 다는 말이 적당하지는 않지만 내 어머니에 관한 내 마음들을 적어 놓은 글들이 거기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내 삶의 한 무게가 되어 버린 나의 어머니.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내 어머니를 위해 적고 있는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거기엔 늘 내 눈물과 후회와 안타까움이 있어 좀처럼 지난 글들을 다시 읽으려 하지 않건만 ….
지난 겨울 쓴 일기 하나를 옮겨본다.
『눈이 많이 내렸다.눈이 귀한 대구에 올 겨울은 왜 이리 눈이 많이 내리는지.
작은아이는 갑자기 옥수수가 먹고 싶단다.
찐 옥수수가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지난 번 시내 백화점에 들렀을 때 진공 포장을 해서 파는 옥수수를 본 기억이 있어 사다 줘야겠다고 집을 나섰다.
눈이 워낙 많이 내린 상태라 차를 가지고 가지는 못하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갔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 몇 걸음 가던 나는 눈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었다.
엉덩이에 느껴지는 아픔보다는 시내 한복판에서 넘어진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의 넘어지는 모습을 보았고 덩치는 산만한 아줌마가 길바닥에 꽈당 넘어진 모습은 그리 볼만 한 것은 아닐거라 생각을 하니 부끄러웠다.
급한 마음에 얼른 일어서야지 하며 서두르다보니 도리어 눈 위에 서너 번 더 미끄러지는 꼴을 보이게 되었다.완전히 눈 위를 몇 바퀴 뒹군 셈이 되어 버렸다.
그러는 사이 옷은 눈에 젖어 축축해져 버렸고 몇 번을 넘어지다 보니 손바닥, 무릎, 엉덩이 할 것 없이 욱신욱신, 통증이 느껴지고.
과학 선생아니랄까 봐 '역시 사람의 피부 감각 중 가장 많은 것은 통점에 의한 통증이야'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그래도 백화점까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옥수수를 사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서 문을 열어주시던 친정 어머니는 나의 몰골에 눈이 둥그래지시며 갈아입을 옷을 챙기려 황급히 안방으로 가시고, 가시는 길에 얼른 뜨거운 차라도 마셔야지, 하시며 주방으로 가셔서는 가스 불을 켜시고는 찻물을 올리시고 더운물에 목욕을 하라며 보일러의 조절기를 급탕으로 돌리신다.
춥고 피곤하였기에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옷을 들고 더운물로 목욕을 하고 욕실에서 나오니 그 사이 내가 좋아하는 허브 차가 준비되어 있고 거실에는 작은 소반에 차려진 점심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아이가 내게 안아달라고 두 팔을 벌렸고 내가 아이를 안아 올리자 어머니는
"아이는 내려두고 얼른 점심이나 먹어라. 다친 데는 없는 거냐? 엄마 힘들게…. 얼른 내려와 "
하신다. 괜찮아요 하는 내 말에
"너는 네 새끼니 괜찮은지 몰라도 나는 내 새끼 너무 힘든 거 보기 싫다 말이다."하신다.
그리고는 이야기하는 사이 국이 식었다며 국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싸해져 왔다.
60을 바라보는 어머니께서 자기 아이 먹고 싶다는 거 사다 주려다 추위에 벌벌 떨며 들어온 당신 딸자식 따뜻하게 먹이시려 주방과 거실을 분주히 다니시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져 왔다.
만약 어머니께서 옥수수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면 과연 내가 이 눈 쌓인 거리로 나섰을까?
어쩌면 쉽게
"오늘 같이 눈이 많이 오는 날 어디 가서 옥수수를 사겠어요. 다음에 사다드릴테니까 오늘 좀 참으시면 안 되겠어요?"
라고 말하지는 않았을까?
잘 먹지 않는 아이니 그거라도 먹으려나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옥수수를 사러 눈길을 나섰었는데 그런 나를 기다리시는 동안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눈길에 괜찮겠니?"
하시던 어머니께
"그거라도 먹고 싶다니 사다 줘야지요. 지하철 타고 가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하며 집을 나섰던 나.
난 그저 빨리 아이가 원하는 옥수수를 사다 먹이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어머니의 그 한 마디에 담겨있는 나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알아채지 못했었다.
지하철 타러 오가느라 꽤 걸어다녀야 할 텐데 눈길에 미끄러지지는 않았는지, 아직 감기가 떨어진 것도 아닌데 차가운 눈바람에 더 심해져 오는 것은 아닌지, 혹여 사러 간 곳에 없다고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건 아닌지, 자기 아이 챙겨 먹이겠다고 나선 딸자식 생각에 그 마음 얼마나 졸이셨을까?
내리 사랑이라 했던가?
나도 모르게 부모님보다 아이들에게로 향해버리곤 하는 내 마음을 어찌해야하나?
어머니의 딸이면서 내 딸들의 엄마이기도 한 나.
자식이라 늘 받기만 하면서 받은 사랑과 마음을 되돌리기보다는 내 것을 아이들에게로 주기 바쁜 나.
그분들에게서 받은 사랑과 마음이 나를 거쳐 우리 아이들에게로 흘러가는 거라 구차하게 변명을 해 본다.』
♥어머니 1♥김초혜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시집 【떠도는 새】 중에서
♥아버지의 마음 ♥몇 년째 병석에 계시는 제 아버지와 그 곁에서 애간장을 태우고 계시는 제 어머니,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바칩니다.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가장 화려한 사람들은
그 화려함으로 외로움을 배우게 된다.시집 【아버지, 울아버지】중에서
***잘못 거셨는데요***
전화벨 울리는 소리, 난 보통 아이에게 전화 받기를 부탁한다.
나 : The phone is ringing. Go get it.
(가서 전화 좀 받아 줘)
예슬 : I got it. Hello?
(알았어요. 여보세요?)
어떤 여자 분 : Hello? May I talk to Mr. Kim, please?
(김씨 계십니까?)
예슬 : Mr. Kim? We have no Mr. Kim here.
(그런 분 안 계시는데요?)
어떤 여자 분 : Is this 636-7856?
(636-7856아닙니까?)
예슬 : No, ma'am. I'm afraid you've got the wrong number.This is 636-7855.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여기는 636-7855입니다)
그렇지, 그렇게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