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농구 골대를 하셨어요? 주인공 하시지?
"예슬, 정빈! I am home!"
정빈이의 거의 기절할 것 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마치 한 3년은 못 본 것 같다.
아이는 내게 안겨 볼에다 뽀뽀를 하고 하고 또 하고.
"어머니, 저 울었어요."
"왜 울었어?"
"어머니 보고싶어서요. 어제도 안 오고 또 어제도 안 오고."
"그렇다고 울어?"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어머니는 저 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지."
"어머니도 울었어요?"
"아니, 안 울었어."
"왜 안 울었어요? 저 사진 가져가지 그랬어요?"
"정빈이 사진 가져갔지."
"사진 봤어요? 사진보고도 눈물이 안 났어요?"
"사진 보는데 무슨 눈물이 나. 그리고 엄마는 연수가 너무 재미있어서 사진도 자주 못 봤어."
옆에서 지켜보던 큰 아이가
"난리가 났었어요. 하루종일 어머니 보고싶다고…."
"그래, 우리 예슬이가 힘들었겠네. 동생 돌보느라고. 고마워. 놀러도 못 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겠네?"
"예. 근데 어머니 거기서 뭐하셨어요?"
"연극 연수였는데 참 재미있었어. 진짜로 연극도 해보고."
"연극에서 어머니는 뭐 하셨어요?"
"농구 골대."
"예? 농구 골대요?"
"응."
"그게 뭐예요. 주인공은 누구였는데요? 어머니가 주인공하지…."
"주인공?"
"주인공이 좋잖아요. 나 같으면 주인공 할텐데…. 어머니 같은 왕비 병이 어떻게…. 또 울고 불고 난리 치신 거 아니에요?"
"그렇지? 울고불고 난리 쳤을 거 같지?
엄마도 이제까지는 늘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거든.
하지만 엄마가 이번 연수를 선택 한 이유가 있었어.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엄마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얼마나 있을 수 있는지, 내 주장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주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뭐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었거든.
엄마가 잘난 척을 잘하잖아.
야, 잘난 척 안 하려고 하니 그것 참 힘들더라.
엄마에게 '잘난 척'은 어쩌면 삶의 원동력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야.
너 늘 엄마보고 '왕비병'이라고 하잖아.
그런 면에서 이번 연수는 엄마에게 참 소중한 경험이었어.
엄마는 농구 골대를 하면서 그 순간 참 고맙고 행복했었어.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하여튼 그랬어.
주인공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어떤 자신감…. 말이 잘 안되네."
"어머니가 주인공이 아닌 걸 했다는 게 신기해요. 그리고 그걸 별로 속상해하지 않는 어머니도 좀 이상하고요."
"그래, 하지만 더 이상은 설명을 못하겠어. 엄마가 농구 골대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는 것 밖에.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해 봐. 엄마 없는 동안"
"어머니 이번에도 진짜 전화 한 통 안 하시데요."
"전화는 뭣 하러?"
일단 집 밖에만 나갔다하면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 나이기에 이번 숙식을 한 연수 기간동안도 집에는 전화를 한 통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늘 잘 있다고 믿기에.
그러기에 내가 집으로 돌아 오면 아이들은 늘 할 이야기가 많다.
###오세암###
<본문 중에서>"조금 전에 누구한테 말을 했느냐?"
"감이 누나한테 했어."
"감이는 아래 큰절에 있지 않느냐?"
"아유 답답해. 누난 내 곁에도 있어. 감이 누나가 그랬어.
내가 있는 곳엔 어디고 감이 누나 마음이 따라와 있겠다고.""고 녀석 참…."
스님은 뒷머리를 만지며 선방 안으로 사라졌어요.
연수 기간 중 신문의 부음 난에서 정채봉님의 소식을 읽고 님의 동화 《오세암》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색연필로 그려진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림만으로도 늘 내 손이 가던 책.
큰 아이의 그림 공부 책으로도 쓰고 있는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온기를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어요!***
간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정빈 : Mom, I want milk.(어머니, 우유 주세요.)
냉장고를 열며
나 : Let's see. Oh, boy!(어디 보자. 어머, 이를 어쩌지.)
We are out of milk.(우유가 없네.)
나 : 예슬, what are you doing now?(예슬이 지금 뭐하고 있니?)
예슬 : Mom, I am very busy now.(어머니 저 지금 무지 바빠요.)
나 : So what?(그래서?)
예슬 : I'm so sorry. But I can't go.(진짜 죄송하지만 갈 수가 없어요.)
정빈 : I'll get to do.(제가 갔다 올게요.)
나 : What?(뭐라고?)
정빈 : I can do it.(저도 할 수 있어요.)
'너 정말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 왔지만
나 : I'm sure you will do fine.(우리 정빈이는 잘 할거야.)
정빈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정빈 : Mom, can I have some money.(어머니, 돈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