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한 모를 선물하고 얻은 행복
저의 이 한마디에 저희 집 두 아이 서로 마주 보며 깔깔 웃고 넘어갑니다. 예슬이가 정빈이에게 이러더군요.
“열시가 애 이름 같다, 그지?”
저도 열시야, 라는 말을 하면서 무슨 애 이름같냐 싶었는데 느끼는 것은 거의 같은 가 봅니다.
두 아이 잠이 들고 난 뒤 오늘은 일이 있어 좀 늦게 까지 깨어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오늘 저녁 저희 집 풍경은 이랬습니다.
학교에서 8시 20분까지 야간자습을 하고 집에 돌아 온 예슬이는 훈민정음 읽기 시험이 있다면서 식탁 의자에 앉아 열심히 국어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저와 정빈이는 두부를 만들었답니다.
예슬이는 어제부터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는데 그 이유는 ‘집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솔직히 정빈이와 저 때문에 집이 조용하지를 않거든요. 시끄럽다는 예슬이 말에 정빈이와 제일 구석방에서 소리 안내고 놀겠다고 해보았지만 일단 학교에서 한 번 해보겠다면서 어제 오늘 늦게 집에 돌아 왔습니다. 오늘은 수학이 좀 되는 것 같다면서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인 지 일주일 내내 돌아서면 시험이라면서도 국어 시험 준비에 열심이더군요. 그런 예슬이의 모습을 보니 참 흐뭇하고 기뻤답니다.
두부는 왜 만들었느냐고요? 저희가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고 있거든요. 온 식구가 두부를 좋아해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데 진짜 고소한 것이 그 맛이 정말 일품이랍니다. 저희가 먹을 두부를 만들려고 콩을 불려 놓았는데 저녁을 먹고 난 뒤 1층에 새로 이사를 왔다며 팥 시루떡이 배달(?)되어 왔더군요.
보통 때는 이사 오는 이웃이 있으면 크게 잘 차리지는 않더라도 간단한 일품요리를 해 저녁 한 끼 정도는 같이 하는데 요즘 제가 새로 시작한 일이 있어 한동안은 그럴 여유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사 온 이웃이 아직 업고 다니는 돌이 안 된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녁 먹으로 오는 것을 번거로워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생각 끝에 불려 두었던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포장이사라 쉽다고는 하지만 이사 온 며칠은 시장 가기도 힘들잖아요. 두부 한 모 있으면 된장찌개로 한 끼 정도 해결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서요. 그리고 낯선 공간에 온 묘한 느낌도 아는 이웃이 한사람이라도 생기면 빨리 편안해지기고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사 온 이웃은 꼭 챙기려고 하는 편이랍니다.
두부 만들기에 저 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정빈이입니다.
블랜더에 간 콩을 끓일 때 열심히 젓는 것도 정빈이의 몫. 장난기가 넘치는 정빈이입니다.
뜨거운 콩물도 주머니에 잘 옮겨 담습니다. 물론 제가 도와주기도 하지만 정말 뭐든 재미로 깔깔 넘어 가는 정빈이는 좀처럼 저에게 넘겨 줄 생각을 않는답니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콩물 짜기는 뜨거울 때는 제가 하고 식은 다음에는 역시 정빈이의 몫입니다. 어찌나 열심히 주무르고 짰던 지 오늘 드디어 주머니가 터져 버렸답니다.
다시 콩물을 끓이는 동안에는 부탁하지 않아도
“콩 250g에 응고제는 7.5g. 그러니까 작은 술 하나와 이분의 일 작은 술 하나”
라며 혼잣말까지 해가며 응고제를 물에 녹여 놓는 센스(?)도 발휘한답니다. 콩물의 온도가 80℃이하로 내려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온도계를 넣어 온도를 재는 것도 정빈이가 좋아하는 일이고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 진 저희 집 두부입니다.
두부가 왜 원기둥 모양(정빈이 표현)이냐고요? 물을 뺄 틀로 밀가루 체를 쓰거든요. 식구들도 처음에는 이 둥근 모양의 두부를 의아한 모습으로 보더군요. 한 마디 해주었습니다.
“두부가 네모라는 고정관념은 버리세요.”
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는 두부를 떡을 가져 왔던 은박지 접시에 담아 이사 온 이웃을 찾아 갔습니다. 많이 놀라더군요. 직접 만들었느냐고, 아직 따뜻하다며 눈이 동그래지는 새댁을 보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새댁의 얼굴에도 흐뭇함이 보이더군요. 그 기분을, 오늘 두부 한 모로 인해 느꼈던 그 기분을 언젠가는 그 새댁도 누군가에게 전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제가 너무 행복해지더군요.
저희 두 아이도 엄마가 새로 이사 온 이웃을 위해 두부를 만드는 것을 보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겠지요. 같이, 아니 저보다 더 많은 일을 한 정빈이의 기분은 예슬이와는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작은 나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비결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는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