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치는 날 새벽에 놀이터로 놀러갔었어요
작년에 문제집 값만큼 공부를 하라고 했었던 이야기 기억나시죠?
이번에도 역시 7,500원을 주고 문제집을 샀는데 미술, 음악, 체육 문제만 풀었습니다.
다른 과목은 안해도 된다는 자가진단(?)에 따라서요.
정빈이는 시험때문인지 더위 때문인지 어제 저녁 때 밥을 안 먹고 공연히 트집을 잡아 잠시 누워 자는 척을 하다가 그만 진짜 잠이 들어 버리는 바람에 7시부터 자기 시작해서 오늘 새벽 4시까지 잠을 자더군요.
기말고사를 준비중인 예슬이도 여전히 밤 10시가 취침 시간입니다. 새벽에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 공부를 하는데 오늘은 예슬이 정빈이 모두 그 시간에 일어나게 된 거지요.
예슬이는 EBS 강의를 듣고 정빈이도 1시간 정도 문제집을 풀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자느라 몰랐고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오늘 저는 제일 늦게, 5시 20분에 일어났거든요.
김천으로 출근을 하는 남편을 대구역까지 바래다 주는데 정빈이도 같이 갔었어요.
신천동로를 타고 역으로 가는 길에 신천 주변에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기에 정빈이에게 우리도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올까 물으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날 수는 없는거라며 고개를 젓더군요.
"매일 일찍 저녁을 먹고 7시나 늦어도 8시쯤 자면 새벽 4시에 일어날 수 있을거야. 어차피 언니 깨워야 하니까 그 때 일어나서 우리는 운동 하러 나오자."
했더니 생각해 본다고 하더군요.
새벽이기는 하지만 벌써 열기가 후끈한데 정빈이가 집을 나서며 들고 나온 것은 한겨울 목도리였어요. 여우 목도리 흉내를 낸 인조털로 된 목도리인데 동물을 너무 좋아하는 정빈이가 텔레비전에 어떤 여배우가 몸에 휘감고 나온 여우목도리를 보고 너무 갖고 싶어해 구제품 시장을 뒤져 산 거랍니다. 인조털이지만 아이의 눈에는 똑같아 보이나 봐요. ㅎㅎㅎ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여우모양의 털목도리를 목에 휘감은 정빈이 모습은 저절로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수위 아저씨 한 말씀 하시더군요.
"이렇게 더운데 무슨 털을 감고 다니냐?"
남편을 데려다 주고 돌아와 주차장을 차를 세우고 난 뒤 놀이터에 그네 타러 가겠냐니까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어젯밤 트집이 혹여 시험때문에 힘들어 하는 거였다면 아이의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요.
어머니, 생선에서는 왜 비린내가 나요? 식초가 들어 있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비린내가 안나는 것은 비린내 나는 물질과 식초가 반대 성질이라 섞여서 땡, 하고 성질이 없어져서 그런 거죠?
책에 보니까 참치 통조림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데 진짜에요?
철을 불에 달구면 늘어지잖아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은 여름에는 그 길이가 12cm 정도 늘어난다는데 정말 그래요?
뭐뭐 해줄게, 할 때는 께라고 써요? 아니면 게라고 써요?
그네를 타면서 어찌나 물어대는 지 대답해주느라 입이 다 아플 지경이었답니다.
새벽의 놀이터에서 누구 그네가 더 높이 올라가는 지 시합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까치 울음 소리가 들리더니 한 마리가 저희들 근처까지 날아 와 앉았는데 정빈이가 귀엽다고 거의 숨이 넘어 갈 지경이었답니다.
"오늘 좋은 일이 생길 모양이야. 까치가 저렇게 울어대니 말이야.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 오기도 하고."
하는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정빈이가 그네에서 엉덩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떨어졌지 뭡니까?
놀란 것과는 달리 아이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거예요.
"바로 이건가 보다. 그네에서 떨어져도 안 다친 일, 바로 이 일이 엄마하고 정빈이에게 일어날 좋은 일이었나봐. 그리고 너 오늘 시험도 잘 치겠다. 이렇게 운이 좋으니 말이야."
했더니
"제가 그네에서 떨어졌는데도 안 다친 것이 그렇게 좋은 일이에요? 어머니에게는 그렇겠어요. 어머니에게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렇죠?" 하는 겁니다.
그러고도 둘이서 좀 더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합을 하다가 조금만 더 놀고 싶은 정빈이를 달래 집으로 돌아왔어요.
"오늘 준비물은 뭐니? 시험 치니끼 필기구만 가져 가면 되니?"
"필기구랑 삼각자 가져오래요."
"삼각자 어디 있는지 아니?"
"으음~~~, 글쎄요~~~ 그게."
"찾아 봐"
찾아보라는 저의 채근에도 그새 집어든 과학 잡지를 읽느라 정신을 빼앗긴 정빈이는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한 번 더 이야기를 하자
"아마 학교 있을 걸요?"
"그래도 찾아 봐. 혹시 집에 있을 지 모르잖아."
"그냥 자 하나, 아무거나 가지고 가면 되요."
"삼각자가 필요하니까 가지고 오라고 하셨을거야."
"그냥 자로도 삼각자처럼 쓰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그냥 자로 삼각자처럼 자기가 알아서 쓴다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정빈이의 시험 치는 날 아침 시간은 지나갔고 학교로 가려고 가방을 메던 정빈이는 무슨 생각에서인 지 가방을 내려 놓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자기가 좋아하는 동요 한 곡을 열심히 치더니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학교로 갔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난데다가 놀이터에서 신나게 논 까닭에 혹시 시험 치다 깜빡 조는 건 아닌 지 모를 일입니다. 가끔 그러거든요.
"어머니, 제가요 오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글쎄 책상에 엎드려 깜빡 잤지 뭐예요? "ㅎㅎㅎ
기운이 딸려 가끔씩 그렇게 엎드려 잠이 들곤 한다는 정빈이거든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은 멋적은 듯 씨익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답니다.
지금쯤 열심히(?) 시험을 치고 있을 정빈이,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