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했던 2박 3일 가족 여행^^
<5월 17일>
2박3일 예정이던 여행은 갑자기 당일치기로 변경됐다.
굳이 멀리 가서 숙박비 내지 말고 가까운 곳으로 가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집에 와서 편히 자고 또 가까운 곳으로 가자는 남편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여.
몇 번을 가도 좋고 볼거리 많은 안동으로의 여행.
일찍 출발하여 하회마을과 탈전시관에서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고 중앙시장 찜닭골목에서 점심 먹고,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는 이천동석불상 가서 소원 빌고, 봉정사 가서 한 번 더...살림꾼인 남편은 의성장에 들러 햇마늘도 사고.
팔공산 전망 좋은 북까페에서 멋진 음악 들으며 차도 마시고.
그때 쯤 알게 되었다. 연세가 94세인 시어머니께서 어제 노환으로 입원하셨다는 걸.
조금 이른 저녁 먹고 다같이 병원에 가자고.
가족여행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남편은 어머니 입원소식을 어제 듣고도 혼자만 알고 있고 당일여행으로 바꾸자 했던 모양이다.
두 분 형님 계시니 하루 정도는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으리라.
남편은 자기는 병원에서 잘거니 집에서 조금 쉬고 뒤따라오겠다며 아이들과 먼저 가란다.
두 아이들이 할머니 화장실 동행이며 소소한 수발까지 다하니 솔직히 난 그저 어머니 말씀 들어주고 대답해주는 게 전부였다. 옆 침대 할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할매가 막내 미느리가 만만코 좋은갑네. 아까하고는 생판 딴사람 같네. 맏며느리 둘째며느리 왔을 때는 말도 안하고 가만히만 있드만. 진짜 딴사람 같어."
어머니께서 제일 좋아하는 칠남매 막내인 남편인지라 나는 그냥 덩달아 귀염받는 며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ㅎㅎ
우린 이제 막 집에 돌아왔고 남편은 어머니 곁에서 늘 그런 것처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리라. 같은 병실분들 눈치보며 속삭이듯...어머니께서 남편과 이야기할 때의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듯 하다. 그래서 내 폰에는 "소녀 같은 어머니 서정분 여사"라고 저장되어 있다.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어머니....
내가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약간 마른 할매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니트가 어울리는 여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반. 나머지 반의 이유는...
나를 유난히도 이뻐 하시며 나를 늘 '조선에 없는 영미'라 부르셨던 친정할머니. 할머니의 사랑을 너무 받다보니 고부간의 갈등이 심했던 어머니로부터 할매 편이라는 이유로 구박(?)까지 받았다는...ㅎㅎ
그런 할머니께서 3년을 병석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덩치가 좋으셨던 할머니를 일으켜 앉히고 씻기고 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다. 또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커가는 것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병원생활하면서 아이 무게에 힘겨울 때 똑같은 결심을 하곤 했다.
'건강하게 늙어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육십이 되었을 때는 마른 할매가 되어 죽을 때까지 잘 관리할 것. 혹여 내가 몸져눕더라도 나의 무게로 인해 아이들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나를 일으켜 앉히며 너무 무거운 내 무게로 기운빼지 않도록...'
그렇게 나를 사랑해준 할머니였지만 너무 힘겨우니 나도 모르게 원망의 마음이 생기는 걸 내가 경험해 보았으므로. 살아 숨쉬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던 아이의 몸무게가 늘어갈 때 고마우면서도 내 등에 느껴지는 아이의 무게가 너무 힘겹게 느껴지던 내 자신을 원망해 본 적이 있기에...
내가 늙어 가족들에게,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건강한 거. 그리고 혹시 모를 일이니 최소한의 무게로 한 두 번 일지라도 나의 무게로 인한 그들을 힘을 덜어 주는 거.
니트가 어울리는 마른 할매가 되고 싶은 이유이다.^^
<5월 18일-1>
어제 나는 '시각장애가 온 노모' 코스프레를 했었다.^^
조절식 첫날이었는데 매뉴얼에 의하면 아침을 안먹는다 였다. 하회마을로 가며 셔틀버스 대신 강변을 따라 걸어가기로 했는데 반도 못가 뒤로 쳐지는 나를 위해 걸음을 멈추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아그들, 노모 봉양 잘 하셔요."
큰 아이가 내게로 되돌아 걸어와 손을 꼭 잡고 내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갔고, 걸음이 유난히 빨라 조금 더 앞서갔던 작은 아이가 우리를 기다리면 말했다.
"어머니, 선글라스 끼고 그렇게 오니...시각장애가 있는 노모 같습니다."
"그려? 그럼 그렇다고 생각하고 노모 봉양에 최선을 다해 주셔요."
하회마을에서는 큰아이가, 석불상과 봉정사에서는 작은 아이가 정말 알뜰히도 챙겨주었다.ㅎㅎ
봉정사 일주문 옆 의자에 앉아 쉬다가 법당을 향해 다들 일어서는데 이 참에 함 웃자 싶어 내가 말했다.
"노모는 더는 못가겠으니 여기서 유언을 말하겠다. 다들 이리로 모이시오."
세 사람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먼저 내가 아끼는 핸드백들은 싸우지 말고 둘이서 똑같은 수로 나누고, 신발과 옷은 작은 애는 맞지 않으니 모두 사이즈 맞는 큰 애가 하고, 그리고...보석들은"
"옷하고 신발 언니 했으니 저 주실거죠?"
"아니, 진짜는 모두 아버지께 남기니 팔아서 아버지 경제에 보태라고 하고, 액세서리 보석들은 너희 둘이 알아서 나누어라."
"뭐 더 주실 거 없으세요?"
"더는 없어. 똑똑하고 이쁘게 낳아 주었으니 그걸로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면 될 거니 더 이상은 없어."
한바탕 웃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는데 봉정사 법당 올라가는 계단 밑에서 갑자기 어떤 나이든 분이 내 팔을 잡으며 걸음을 멈추게 하더니 이러셨다.
"저 두 아이 엄만가요?"
그렇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잠깐만 자기 말을 들어달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관상을 좀 보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나도 모르게 말해줘야겠다 싶은 사람을 딱 두 번 만났는데 오늘 저 아이들이 세 번째라...꼭 말해드리고 싶어서요. 두 아이 참으로 닮았는데 둘 다 진짜 크게 될 아이들이니 엄마가 잘 키워주십시오. 신경 써서 잘 키워 그릇 만큼 클 수 있도록..."
어제 스마트폰 네비 서비스가 중단되어 한참을 헤매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봉정사를 꼭 가야겠다던 거 이 말씀을 들으려고 그랬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일주문 옆 의자에서 내가 웃자며 유언을 말할 때 옆 의자에 앉아 있던 분이었던 게 생각났다. 유난히 우리 쪽을 유심히 보셔서 조금 의아해하며 약간 경계의 눈빛도 보냈었는데...그 분이 내게 이 말씀을 해주려 계단까지 따라오셨단다.
좋은 말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오르다말고 낯선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가서 그 말씀을 전했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말했다.
"그러니까요. 신경 써서 키우셔요."
"자기야, 집에 가면 도화지에 펜으로 아주 신경 써서 신경이라 써서 한 장씩 주셔요."
"알았어. 내 아주 심하게 신경 써서 써 주꾸마."
"그 분 말씀 참 고맙잖아. 너희들에게 이리도 큰 덕담을 해주시니...근데 어머니는 진즉에 알고 있었어. 니들이 크게 될 사람이라는 거. 그래서 무지 신경 쓰며 키웠고 키우고 있고...알지?"
내 말어 또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아...네네네에~~~"ㅋㅋ
봉정사를 내려오는 길에 작은 아이는 꽃을 향해 날고 있는 나비들을 보더니 장자의 호접지몽을 시작으로 교종, 선종,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에 관해, 불교와 유교, 도교의 차이점과 각각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아주 깊이 있는 내용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화법에 대해 칭찬했더니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에 자기 생각을 더한 거라며 다음 노모 봉양 때는 법과 정치시간에 배운 것을 이야기 해주겠단다.ㅎㅎ
나는 우리 아이들이 크게 될 사람들이라 믿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부모 고맙고 귀한 줄 알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따듯한 사람으로...
이보다 더 큰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그들아, 고맙다. 그리고 무지 많이 사랑한다.
아그들아, 우리가 더 늙어 진짜 노부모가 되는 날이 올 거야. 아버지 만큼은, 아버지께서 할머니께 하는 만큼은 바라지도 않아. 어머니는 그만큼 못했으니.... 그래도 우리 많이 사랑해다오.... 우리가 너희를 사랑으로, 진짜 신경써며 키우고 있으므로....
은근 협박성인 것도 인정한단다.^^
<5월 18일-2>
연휴 이틀 째 여행지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급변경 됐다. 어른 입원 중인데 무슨 여행하겠지만 넷이서 보람된 여행을 다녀왔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밤새 걱정을 하셨을 게다.
뒷밭 상추도 솎아내야 하고 고추모종 심은 거 물도 주고 지지대도 세워줘야 하고 당근 밭의 잡초도 뽑아줘야 하고 정골 밭도 갈아야 하고...이렇게 밤새 걱정을 하셨을 거다.
'내 몸 아파 누웠는데 상추가 다 뭐고 고추가 말라 죽는 게 무슨 상관이에요. 쓸데없는 걱정 말고 건강 회복에나 신경 쓰셔요.'
보통 드라마에서 들을 수 있는 대사다.^^
하지만 남편은 약속했을 것이다. 자기가 다 할 테니 걱정 마시라고.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그 일들을 하기 위해 시골집으로 여행을 갔다.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노모 컨셉을 이어가는 중인 나인지라 내일은 뒷밭 상추 솎아내는 일만 내게 주어졌고 나머지는 남편과 두 아이들이 하기로...
굽 높은 샌들을 신고 간 정빈이는 검정고무신을, 나도 낡아서 시골집에 갖다 둔 남편의 운동화로 일꾼 모드로 변신.ㅎㅎ
모두들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오늘 우리 가족 여행은 힘은 들었지만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부추와 상추를 선물로 가져왔다.
아버지를 따라 따가운 햇살 아래서 열심히 일해 준 두 아이도 고맙고
땅도 참 고맙다. 이렇게 귀한 먹을 것을 주고 도시에서는 돈까지 주고 버려야 하는 음식물 쓰레기까지도 다시 되받아주는 땅.
어머니 걱정하시는 일 모두 해결하기 여행을 마치고 일에 지친 아이들은 집에서 쉬고 우린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남편은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방식이 아닌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사랑함으로...♥
<5월 18일 -3>
어머님 곁에 작은 아주버님이 주무시겠다며 극구 집에 가라고 해서 남편과 함께 집으로 왔다. 길어질지 모르니 서로가 잘 조율하며 가자는 아주버님의 말씀에...
돌아오는 길에 친정집에 잠시 들렀다. 동생의 산후 뒷바라지하러 분당 가서 두 달 만에 오신 부모님 얼굴을 잠시라도 보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두 개나 산 잣죽 때문이었다는 게 더 솔직한 거다.
잣죽을 사오라는 남편 말에 가끔 이용하는 죽 집에 전화해 주문하고 가지러 가는데 남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관문시장가서 푹 퍼진 것으로 사오세요.>
평소 같으면
'아, 진짜 뭔데. 벌써 주문했는데 어쩌라고? 시킬 때 콕 찍어 거기꺼라고 말하던지....'
했을지 모르지만 오늘 상황은 다르다. 남편은 편찮으신 어머니로 인해 마음 아프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하루 종일 먼지 날리는 시장에서 뚜껑도 없이 노출되어 위생적이지 않다던 지, 아침에 끓여 다 식은 것 보다 주문과 함께 끓이는 따듯한 죽이 더 낫다는 등의 이유는 의미가 없다. 푹 퍼진 재래시장의 죽을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남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나는 두 개의 죽을 사야만 했다. 내가 먹어도 되니 굳이 남편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말했다. 이러저러하여 죽을 두 개 샀으니 죽도 드리고 잠깐 얼굴도 보자고.
마침 늦게 외출서 돌아온 어머니께서 저녁을 못 드셔서 배가 몹시 고픈데 잘 됐다며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께서 죽을 드시는 동안 친정아버지와 같이 셀카 찍기 놀이에 열중.ㅎㅎ
"아버지, 좀 웃으셔요. 치즈으~~~다시요."
수 십장을 찍고 같이 어떤 사진이 제일 이쁜지도 고르고. 죽을 다 드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거 한 번 봐라. 전화번호가 이상하게 저장되고 같은 사람이 몇 번이나 저장되고 뭔 난리가 난 거 같다. 같이 좀 보면서 지우고 이름 잘못된 건 고치고 쫌 하자."
아직 폰 사용이 익숙하지 못한 어머니는 최순희를 죄순희로 박영희를 빅영히로 저장을 해두었다. 한참을 어머니 폰을 들여다보며 수정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도 폰을 내미시며 당신 것도 봐달라셨다. 폰의 전화번호부를 여는 순간 울컥했다.
아버지 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11개가 전부였다. 20년 전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후 거동도 불편하시고 마주하고 이야기해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아버지이기에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은 그러지를 못했다.
셋 째 딸 전화번호가 없어졌다며 다시 저장해달라는 아버지. 그래서 12개가 된 아버지의 전화번호부.
어쩔 수 없이 사게 된 잣죽으로 찾아갔지만 잠시 셀카와 이야기로 즐거웠다. 친정어머니는 당신과는 같이 셀카 안 찍느냐고 곱게 눈까지 흘기셨지만 비싼 딸인지라 오늘은 특별히 아버지와만 찍은 거라며 좀 튕겨 보았다.ㅎㅎ 다음에 와서 같이 찍어요, 라는 설렘을 드리고 싶어서...
아버지께서 당신이 제일 잘 나왔다고 고른 사진을 다시 보니... 마음이 짠하다.
기다리는 부모 교보 베스트 1위 했을 때 불편하신 몸으로도 거긴 직접 꼭 가보고 싶다며 외출하셨던 그날을 가장 신났던 날로 기억하고 계신다며 또 그런 날이 언제 오냐고...또 보고 싶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씨익 웃어주셨다.
오래 우리 곁에 계셔 주시기를....
<5월 19일>
연휴 세 번 째 날의 계획은 은밀했다.ㅎㅎ
남편 - 마지막 날은 우리는 너희 모른다. 너거 자는 새벽에 엄마하고 둘이...
딸 - 어디 가실 건데요?
나 - 바다
남편 - 고마. 거기까지만. 혹시 애들이 우리 따라올라꼬 더 먼저 일어나 트렁크에 타고 있을지도 모르니...더는 알려고 하지 마.
딸들(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더니)- 안 궁금합니다. 하나도 안 궁금하니 두 분이서 잘 다녀오셔요.
남편 - 아니야. 말은 저렇게 하면서 정보 알아내려고 할지도 모르니 절대 넘어가서 말하면 안돼.
두 딸의 표정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은밀한 둘만의 바다여행의 보안을 유지하려 애쓰던 남편은 선한 소년 같기도 하고 애인과 첫 여행에 들뜬 청년의 아름다움마저 풍겼었다.
그렇지만 그 은밀한 여행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 저러고 계시는데 바다는 무리겠지? 당신 괜찮나?"
남편을 너무도 잘 아는 나다. 어머니때문에 마음 아프고 아내에게 미안한 지금의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무심한 듯한 배려라는 것을.
첫 째가 그만을 위한 밥상. 늘 먹던 비슷한 소박한 밥상이지만 그만을 위한 것임을 또박또박 말해주는 밥상이 필요하다.
된장은 평소 넣지 않는 청량고추와 고춧가루로 매운 맛을 내고 호박을 듬뿍 넣어 끓이고, 밀가루를 조금만 넣고 종잇장처럼 얇게 부친 부추전과 빙초산을 넣은 초고추장, 상추쌈 해 먹을 낙지젓갈과 열무김치. 의성장에서 자신이 고른 마늘도 맛보고 싶어 할 거다.
"자기야, 마늘이 너무 괜찮아. 자기는 진짜 마늘 보는 눈이 있어."라는 칭찬과 함께.
나의 예상은 적정했고 남편은 만족해했다.
그리고 어제 예매해 놓은 조조영화 보기. 영화관은 현대백화점CGV.
오전에는 조카들도 있고 사람들 많을 테니 오전만 우리 둘이 쓰자며 남편을 위해 고른 영화 '몽타주'.
"닌 위대한 개츠비 보고 싶제? 닌 이런 영화 안 좋아하잖아?"
하는 남편에게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이라 할 수 있는 영화라니 꼭 함 보고 싶어요. 자칫 이런 영화는 사운드 별로인 집에서 보면 제대로 느낄 수 없잖아요. 제가 영화에서 제일 크게 생각하는 게 음악인 거 알죠?"
라는 말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남편을 설득하여.ㅎㅎ
경제학도로서 전공 이야기 할 때 제일 눈이 반짝이는 남편의 기분 전환을 위해 영화과 가는 차 안에서는 기업측면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질문을 해
"비전공자인 너에게는 이런 시각이 낯설겠지만... 어쩌고 저쩌고..."
신이 난 남편의 열띤 강의도 듣고.ㅋㅋ
영화도 성공.
"한국 영화 그렇지 뭐. 내가 안 본다하고는 또 속고."
라며 투덜대곤 하던 남편이
"나름 괜찮네. 잘 만들었네." 했으니 말이다.
9층 갤러리 구경도 하고 마지막은....
나의 촉 대로라 이 시점에서 나는 가만있어도 된다. 내 촉의 정확도만 점검하면 되는 것이다.
역시나...나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뺨빠바~바바ㅋㅋㅋ
남편은 신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신발 매장으로 가보잔다. 몇 군데 휘리릭 돌더니 내게 말했다.
"니도 함 봐라."
남편은 어제의 시골집 여행과 결국 못 간 은밀한 여행으로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정말요? 안 그래도 여름 구두 필요했었는데...이쁜 걸로 골라야지. 10cm 힐이 젤 이쁜데 나이가 있으니 앞에 가보시 있는 걸로 딱 마음에 드는 걸로 사야지이~~~우앙 신난다. 가격 불문하고 무조건 사줘야 해요, 알았죠?"
세상에나...심봤다아~~~
이월 균일가 매대에서 발견한 완전 나의 쓰따일. 가격도 너무 착한 49,000원.
"억지로 싼 거 살라카지 말고 니 하고 싶은 골라라."
"으으응. 이거 사고 싶어요. 이거 사 주세요. 이거 신고 가야지. 어때요? 진짜 딱 내 스타일이죠?"
병원으로 오는 길에 이야기했다.
"어머니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 계셔주신 거 고맙게 생각하기로 해요. 당신이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요. 좋았던 모습 다 잊혀져버리고 아픈 모습만, 어머니가 당신에게 너무 가슴 아프게 남게 될까봐 두렵다는 거.
그 어떤 모습도 전부 어머니에요. 그것만 기억해요. 그리고 우리 정빈이 키우면서 깨달은 거 있잖아요. 죽고 사는 문제는 우리 몫이 아니라는 거. 그러니...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아름답게 이별하는 준비라고 생각해요.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어머니 볼 때도 너무 슬픈 얼굴 하지 말고. 그냥 담담히 함께 하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그리고 어머니 때문에 다른 가족들과도 맘 상하지 않기로 해요. 다행히 다들 효자이니 큰 문제없겠지만 혹여 문제가 생기면 모두 당신이 한다고 하셔요. 결국 경제적인 것이 될 테지만 형들은 누나들은, 하는 마음 가지지 말고 그냥 내 엄마라는 거, 그것만 생각하고 결정해요.
난 당신이 어머니와의 남은 시간이 조금 덜 후회스러운 날이 되었음 해요. 오래 갈 수도 있고 경제적인 것으로 힘겨울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근데 어머니는 더 긴 시간 쪼들리는 살림에도 당신 키워주신 분이다 생각하면...당신이 잘 했으면 좋겠어요."
남편은 보호자 침대에 누워 낮잠이 들었고, 그런 아들을 한참 바라보던 어머니도 스르르 눈이 감기시던 잠이 드셨다. 밤마다 요강에 오줌을 누시는 어머니를 위해 갖다 놓은 요강.
남들 다 소변기에 누는데..남들 보나다나....라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내가 굳이 요강단지를 가져 온 이유는 그게 어머니의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은 것으로나마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시라고...
어머니는 어제부터 가끔씩이지만 지금을, 현재를 살지 못하고 당신이 기억하는, 우리가 모르는 공간과 순간들을 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남편은 지금 많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