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은 텔레비만 좋아해 - 진효임
영감은 텔레비만 좋아해 - 진효임
우리 영감은
텔레비 리모콘을 안고 잡니다.
젊었을 적 나한테도 그렇게는 안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품에 안고 놓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깊이 잠 들어도
사극만 나오면
시간을
어찌 그리도 잘 아는지.
이제는 잠이 들었는가 싶어
텔레비를 끄면
왜 끄니
호통을 치면서
내가 언제 잠을 잤냐?
화를 낼 때, 나는 웃고 맙니다.
「치자꽃 향기」라는 시집에 있는 재미난 시입니다.
“처음 노인복지회관 한글반에 들어갈 때
친구들은 나이 칠십에 공부는 해서 무엇 하느냐고(중략)한글을 배우니까 즐거운 일이 참 많았습니다.(중략)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건 머리속 생각들을 내 손으로 직접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늦잠 대신 서점과 도서관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랫만에 절친과 수다로 오후를 ...
4시 넘어 집으로 와선 오늘 산 시집에 빠져 행복했습니다.
가을 준비로 곰국을 끓이는 준비로 분주한 남편이 소파에 누워 시집을 읽고 있는 마누라를 째려보는 시선이 강렬했으나 모른척하며 일흔 넘어 시를 쓴 시인의 세상에 빠져 있었지요. 20년 넘는 곰국 끓이기 노하우가 있는 남편인지라 늘 혼자 잘 하더니 오늘은 잔심부름을 시키며 노시인과의 만남을 방해해 결국 반쯤 읽고 멈추었답니다.
시집에 질투하는 남편에게 읽어준 시가 영감은 테레비만 좋아해입니다. 찜통을 들고 나르며 째려보던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더군요.
가끔 티비를 끄면 눈을 감은 채 안잔다...본다...하는 자기 모습이 보이는가 봅니다.ㅎㅎ
한글을 배우니 생각한 것을 쓸 수 있어 좋다는 시인처럼 이 가을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건 정말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남편이 째려보지않고, 심부름시키며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참았다면...지금과는 다른 시간을 맞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표현해준 그가 고맙답니다.ㅎㅎ 이 가을 우리 모두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봅시다.^^행복하시길...